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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마법사 무림에 가다-101화 (101/351)

# 101

1화

탁.

허진은 읽던 책을 덮으며 고개를 돌려 활짝 열린 창문을 쳐다보았다. 창문으로 따사한 햇살과 파란 하늘이 눈에 들어왔다. 허진은 마치 풍경이라도 감상하는 것처럼 한동안 창문 밖을 바라봤다.

똑똑.

그때 자그만 소음이 허진의 사색을 방해했다.

“누구냐?”

“부교주님, 마주전에서 사람을 보내왔습니다.”

“교주님이? 들어오라.”

바로 문이 열리고 한 시녀가 안으로 들어왔다.

“교주님께서 부교주님을 찾으십니다.”

“교주님께서?”

“예.”

“알겠다.”

마침 읽던 책도 덮은 터라 허진은 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디에 계신가?”

“마휴당에 계십니다.”

“심심하셨던 모양이군.”

허진은 피식 웃으며 마주전에서 온 시녀와 함께 마휴당으로 향했다.

“무료하셨던 모양입니다, 교주님.”

“왔는가?”

사공소는 손짓으로 맞은편 의자를 가리켰다.

“본좌는 자네가 무료할까봐 불렀네.”

사공소는 허진을 보며 히죽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잘하고 있을지 솔직히 걱정이 됩니다.”

허진은 사공소가 그런 것처럼 자신 역시 솔직한 감정을 내비쳤다.

“대공자 자리도 꿰찬 놈이니 알아서 잘 하겠지. 이 기회에 정파와 한바탕 소란을 만드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고 말이야.”

그렇게 말하는 사공소의 얼굴에는 나른함이 엿보였다.

반면 허진의 얼굴은 굳어졌다.

“그 말씀은?”

“솔직히 너무 오랫동안 평화로웠다고 생각하지 않는가?”

사공소의 목소리는 담담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음성 자체의 느낌일 뿐이었다.

“흠…….”

허진은 미간을 좁히며 자신 앞에 놓인 찻잔을 내려다보았다.

“오랜 평화는 강한 힘을 갖게 해주지. 하지만 그 힘이 그저 안으로만 모이면 불만도 불만이지만 다른 생각을 갖게 만들거든.”

“불순한 움직임이 포착된 것입니까?”

허진이 놀란 듯 눈을 크게 떴다.

동시에 그의 몸에서 은은한 살기도 풍겼다.

“후후.”

허진의 심각한 그 모습에 사공소는 가벼운 웃음을 터트렸다.

“그리 심각해 할 필요는 없네. 그냥 그렇다는 것이지…….”

사공소가 부드럽게 말했지만 허진은 여전히 편한 모습은 아니었다. 사공소가 정말 그의 말처럼 그냥 말한 것이면 모르지만 혹여나 어떤 낌새를 눈치챈 것이라면 결코 그냥 넘어갈 일이 아닌 까닭이었다.

그때였다.

시녀가 다가와 군사가 왔음을 알렸다.

“지금 율 군사께서 알현을 청했사옵니다.”

“율 군사가? 안으로 들어오라 하라.”

사공소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율기가 바로 들어왔다.

“오늘 보고는 받은 걸로 아는데…….”

“따로 보고해야 할 것이 생겨 이렇게 찾아왔습니다.”

율기는 두툼한 보고서를 옆구리에 끼고 있었다.

“뭔가?”

율기는 선뜻 입을 열지 못하고 슬쩍 허진을 쳐다보았다. 그 모습에 사공소는 피식 웃으며 물었다.

“대공자 일인가?”

“그렇습니다.”

“확실히 인물은 인물인 모양이군. 군사 입에서 대공자의 일이 자주 거론되는 것을 보면 말이야.”

사공소와 율기의 대화에 허진은 귀를 쫑긋 세웠다. 율기가 따로 이렇게 찾아와 보고를 드리는 것을 보면 그리 가벼운 일이 아니라는 뜻이다.

“조금 전 전서구를 통해 사천총타에서 급보가 날아왔습니다. 어제 대공자가 사천성 무림맹 소속 무가인 독패장을 멸문시켰습니다.”

“……!”

율기의 보고에 사공소의 몸이 순간 우뚝 멈췄다.

반면 허진은 저도 모르게 입을 벌리며 짧지만 격앙된 어조로 소리쳤다.

“며, 멸문?”

“그렇습니다, 부교주님.”

율기의 대답에 반쯤 몸을 일으켰던 허진은 의자에 털썩 주저앉으며 소리 없는 한숨을 내뱉었다.

“푸하하하하하!”

그런 분위기 속에서 느닷없는 웃음소리가 터졌다. 바로 사공소의 웃음소리였다.

“여기 사천총타에서 보낸 급보이옵니다.”

율기는 사공소 앞으로 한 장의 보고서를 공손히 내밀었다.

서찰은 받아든 사공소는 천천히 보고서를 읽어나갔다.

“우연인가…… 아니면 의도된 행동일까?”

사공소는 사천총타에서 온 보고서에 등장한 걸왕의 이름에 흥미로운 눈빛을 띠었다.

“일단 걸왕이 한자리에 있었으니 정마대전으로 이어지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율기는 잠시 허진의 눈치를 살폈지만 자신의 의견을 숨기지 않았다.

“허나, 분명 그들을 벌하고 본교의 마공서를 찾아오는 것이 당연한 일이기는 하나 대공자의 행동은 위험했습니다.”

“위험이라……, 군사.”

사공소가 문득 고개를 들며 율기를 바라봤다.

“예, 교주님.”

“본교는 마교다. 그리고 흑풍마군은 본교의 대공자다.”

“……?”

“그깟 정파가 무서워 행동을 하지 못한다면 본교 대공자의 신분이 아까운 것이지…….”

사공소는 보고서를 탁자 위에 던지듯 내려놓았다.

“그나저나 아쉽군.”

사공소는 식은 찻잔을 들어 목을 축이더니 홀로 중얼거리듯 다시 입을 열었다.

“뜨거워질 대로 뜨거워진 마인들의 피를 식히는가 싶었는데…….”

그 목소리에 율기와 허진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너무 오랜 평화는 약이 아니라 오히려 독이지……. 안 그런가?”

사공소는 대답을 바라는 듯 눈동자를 돌려 허진과 율기를 쳐다봤다.

하지만 허진은 묵묵히 사공소를 쳐다볼 뿐이었고, 율기는 조용히 허리를 숙였다. 허진과 사공소는 보지 못했지만 율기의 입술이 순간 살짝 틀어졌다.

* * *

사천당문 가주의 막내딸이자 늦둥이인 당비연의 생일잔치는 마현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큰 규모로 열렸다. 아무리 명문세가라지만 고작 열두 살짜리 여자아이의 생일잔치치고는 지나치게 화려하고 풍족했다. 그만큼 사천당문의 힘이 강하다는 뜻이리라.

마차에서 내린 마현을 쳐다보는 시선들은 상당히 불편해하는 기색들이 역력했다. 또한 반감에 가득 찬 눈빛도 있었고, 그의 등장에 적지 않게 놀란 모습도 보였다.

딱히 어떤 눈빛이라 콕 집어 이야기할 수 없을 정도로 다들 복잡했다. 다만 사람들의 공통적인 감정을 굳이 묶는다면 아마 적대감일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불과 이틀 전 마현의 손에 사천성 정파 무림의 한 축이었던 독패장이 멸문했다. 비록 독패장이 되돌릴 수 없는 짓을 저질렀고, 또한 멸문이 되어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이었지만 정파의 치부가 마교의 손에 의해 지워졌다.

그러니 노골적으로 적대감을 표출시키지도, 반기지도 못하는 복잡한 감정이 뒤섞인 것이다.

그렇기에 사천당문에 모인 사람들은 어정쩡한 자세로 마현을 맞이했다.

단 한 명만 빼고.

“아저씨!”

바로 당비연이었다.

마현 앞으로 쪼르르 뛰어온 당비연은 손을 허리에 척하고 올렸다. 그리고는 똘망똘망한 눈동자를 위아래로 움직이며 마현의 몸을 훑었다.

“흐음…….”

거기다 묘한 음성을 냈다.

“왜 그러냐?”

당비연은 다시 팔짱을 끼며 한 손으로 턱을 매만졌다. 여자아이가 마치 어른 흉내를 내는 듯한 모습에 마현은 그저 입가에 미소만 띠울 뿐이었다.

“아저씨.”

“으응?”

“아저씨, 마교 사람이야?”

“그런데.”

“그럼 아저씨도 막 사람 피 마시고 그래?”

그 질문에 당황한 것은 마현이 아니라 사천당문의 사람들이었다.

마현은 그들의 표정을 보며 당비연에게 다가가 쪼그려 앉아 눈높이를 맞추었다. 그리고는 당비연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부드럽게 말했다.

“사람들의 피를 마시는 이는 마교도 아니고 정파도 아니다.”

“으음?”

당비연은 이해하지 못하는 표정이었다.

“그런 짓을 저지르는 자들은 정도, 마도 아닌 악(惡)이다. 악!”

“악?”

“그래, 악. 바로 악인들이 저지르는 것이다.”

“아아.”

당비연이 고개를 끄덕이자 마현은 다시 한 번 머리를 쓰다듬으며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는 다시 입을 열었다.

“악인은 죽어 마땅하다. 그렇지?”

“응, 그럼.”

당비연은 매달리듯 마현의 소매를 잡았다. 마현은 고개를 들어 사천당문의 사람들을 비롯해 자신을 마중 나온 이들을 쳐다보았다.

“험험…….”

마현의 시선에 사천당문의 가주 당자성은 나직하게 헛기침을 내뱉었다.

마인 중의 마인, 마교의 대공자가 저런 말을 하자 어찌 들으면 궤변인 듯하지만 마땅히 틀린 말도 아니기에 그저 헛기침으로 분위기를 바꾸고자 했다.

“안으로 드시지요.”

상황이 어찌 되었든 마현은 오늘 잔치의 주인공인 당비연의 초대를 받아온 손님이었다. 언제까지 밖에 세워둘 수는 없었다.

당자성은 몸을 비켜서며 길을 열었다.

“감사합니다.”

마현은 그런 당자성을 향해 공손히 포권을 취하며 허리를 살짝 숙였다. 과하지도 않는, 그렇다고 무례가 느껴지지도 않을 딱 적당한 예였다.

“아저씨. 오늘 맛있는 거 많아.”

당비연은 마현의 소매를 끌었다.

“그래.”

마현은 그런 당비연의 손에 이끌려 발걸음을 내딛었다.

정문을 통해 사천당문으로 들어서며 마현은 익숙한 얼굴인 당화평과 당문혜, 그리고 정호영을 향해 가볍게 눈인사를 건넸다.

그러자 그 셋 역시 어색하게 마현의 인사를 받았다.

당비연의 손에 끌려가듯 사천당문 안으로 들어가 버리는 마현을 보며 당화평은 미간에 주름을 잡았다.

“흠…….”

그의 입에서 절로 무거운 침음성이 흘러나왔다. 마현의 등을 쫓던 당화평의 시선은 자연스레 해맑은 얼굴로 웃으며 즐거워하는 당비연에게로 향했다.

당비연은 이제 열두 살이 된 아이였다.

아직 세상을 알 수 있는 나이가 아니었다.

‘하지만 하필 그런 질문을…….’

당화평은 조금 전 당비연이 마현에게 한 질문을 떠올렸다.

당비연도 정파 무림의 한 핵심인 사천당문의 여식이었기에 자연스레 마교에 대한 호기심을 내비쳤었다. 그때마다 당화평은 그저 가볍게 마인들은 피를 마시며 마공을 익힌다고 이야기해 주었다.

별다른 이유는 없었다.

그저 아이들에게 가장 무서운 것이 피라고 생각해 그리 대답해 주었을 뿐이었다.

마인은 무서운 이들이고 어울려서는 안 되는 인물이라고 각인시키기 위해.

“오라버니.”

그런 생각에 빠진 당화평 곁으로 당문혜가 다가왔다.

“안으로 드셔야지요.”

“그래. 안으로 들어가야지.”

당화평은 안으로 들어가면서도 좀처럼 마현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무슨 생각으로 왔을까?’

자신이라면 안 왔을 것이다.

‘무슨 의도를 가진 것인가?’

한 번 가지기 시작한 의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계속 이어졌다. 하지만 뾰족한 답은 없었다.

그저 짙은 의심이 생겼고, 자신의 입장으로는 이해할 수 없다는 것뿐이었다.

당비연의 손에 이끌려 마현이 간 곳은 사천당문 대연무장이 훤히 보이는 석단 위, 주요 손님들이 자리하는 귀빈석이 아니었다.

대연무장 한구석에 마련된 자그만 좌판이었다.

바로 번화가 대로에서 당과를 팔던 그 좌판이었다.

“오늘은 당과가 아주 많아. 그리고 공짜다!”

“아이구, 아가씨. 어?”

당비연을 보고 한껏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숙이던 노점상 주인은 마현을 보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설마 이곳에서 마현을 볼 줄은 몰랐던 것이다. 물론 마현이 오늘 보자고 했지만 주인은 그 말을 믿지 않았었다.

“하나 주게.”

마현은 가볍게 눈으로 인사를 건네며 노점상 주인이 건네는 당과를 받아들었다.

“오늘은 하나 다 먹을 수 있는 겐가?”

마현의 농담에 노점상 주인은 그 의미를 깨닫고 자그만 웃음을 터트렸다.

그도 그럴 것이 마현이 자신에게 당과를 사러온 것이 두 번이었다. 문제는 그 두 번 다 당과 하나를 제대로 먹지 못했다는 것이다.

“하하하, 오늘은 마음껏 드십시오.”

노점상 주인은 마현에게 당과 하나를 더 내밀었다.

마현은 이미 다 먹은 당과 꼬챙이를 내려놓으며 다시 하나를 더 받아들었다.

“사람들이 기다리니 이것까지만 먹지.”

마현은 눈으로 이미 석단 위에 자리한 사람들을 가리켰다.

“비연아, 가자.”

“응.”

마현은 당비연과 함께 당과를 먹으며 대연무장 중앙을 통해 석단 위로 걸어갔다.

당연히 모든 시선이 그 둘에게 모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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