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흑마법사 무림에 가다-96화 (96/351)

# 96

21화

“하, 하오나……. 섣불리 정파 세력권 내에서 조사를 벌이다가 자칫 정파와 부딪히면 더 큰 일이 벌어질 수가 있어 어, 어쩔 수 없었습니다.”

호태악의 말도 틀린 바가 없어 마현은 미간에 주름만 잡을 뿐 더 이상 추궁하지 않았다.

“그나저나, 독패장이란 곳에서 노골적으로 본교의 짓이라 떠벌…….”

말하던 마현은 독무웅을 떠올렸다. 그리고 그가 독패장의 소장주임을 기억해냈다.

“독패장이 어떤 곳이지? 그리고 소장주 독무웅에 대해서도 설명하라.”

“독패장은 원래 본교를 섬기던 마도 방파였지만 20여 년 전 사천성 판도가 동서가 아닌 남북으로 바뀌며 정파로 편입한 문파이옵니다. 그런 연유로 정파에서 온갖 멸시를 받았으나 5년 전부터 급격히 그 세가 커져 지금은 사천성 정파 세력권에서 사천당문 다음으로, 속청검문과 더불어 패자로 군림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독무웅은 독패장이 패자로 군림하기 전, 그러니까 5년 전에는 유순하고 부드러운 성품이었지만 지금은 편협한 면을 많이 보이는 자입니다. 더욱이 독패장이 성도에서 자리를 확고히 잡았다고는 하나, 사천성을 비롯한 무림에서 자신의 무가가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는 것에 대해 상당히 불만이 많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호태악은 제법 오랜 시간을 들여 독패장과 독무웅에 대해 설명했다.

“아마 그런 연유로 독패장이 더욱 본교를 지목하며 나서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흠…….”

마현은 의자 팔걸이를 손가락으로 두들기며 생각에 잠겼다.

‘5년 전에 급격히 무가의 힘이 커졌다. 그리고 핏빛 마기…….’

마현의 머릿속으로 독무웅의 눈빛에서 언뜻 드러난 핏빛 마기가 떠올랐다. 그의 눈동자는 서탁으로 내려가 보고서 위로 향했다.

‘분명 뭔가가 있어…….’

톡. 톡. 톡. 톡.

적막감에 사로잡힌 사천총타실 안에서는 마현이 의자 손잡이를 두들기는 소리만이 한동안 들렸다.

* * *

침실로 돌아온 독무웅은 물기가 촉촉한 비단 수건으로 입가와 목에 묻은 피를 닦아낸 후 신경질적으로 수건을 방구석에 던졌다. 그리고는 의자로 걸어가 털썩 주저앉았다.

“어떻게 되었습니까?”

독무웅의 눈동자에서 피에 절은 마기가 피어올랐다.

“죄송합니다, 소장주님.”

패권단 단주가 면목이 없다는 듯 고개를 숙였다.

쾅!

독무웅은 주먹으로 탁자를 내려쳤다.

콰직, 우당탕탕탕!

탁자는 그만 그의 주먹에 힘없이 부서졌다.

“어떻게 된 건지 자세히 설명해 보세요.”

단주는 부단주에게 보고받은 내용을 그대로 전했다.

“지금 제자들을 풀었으니 마교 세력권으로 넘어가 있지 않은 이상 금방 찾을 수 있을 겁니다.”

“찾으십시오, 반드시 찾아야 합니다. 감히 사천성에서 나 독무웅에게 그런 짓을 하고 결코 살아 있어서는 안 됩니다.”

독무웅은 살기를 내뿜으며 어금니를 빠드득 갈았다.

그런 독무웅의 눈썹이 살짝 꿈틀거렸다. 그의 눈동자가 지붕 위로 슬며시 향했다.

“누구냐!”

독무웅은 갑자기 일갈을 터트리며 지붕 위로 몸을 날리며 붉은 색 마기, 즉 피에 젖은 마기가 담긴 일장을 내질렀다.

퍼벙!

지붕은 일수에 부서지며 구멍이 뚫렸다.

천장과 지붕에서 파편들이 떨어지기도 전에 독무웅이 구멍 사이로 몸을 날렸다. 구멍을 빠져나온 그는 지붕 위에 안착하며 재빨리 주위부터 살폈다.

구우우, 구우우―

파다닥.

울음소리와 함께 부엉이 한 마리가 파음에 놀라 달빛 속으로 날아올랐다.

“흠…….”

주위를 살펴보아도 아무도 없었다.

뒤 이어 패권단 단주가 지붕 위로 뛰어 올라왔다.

“무슨 일이십니까, 소장주님.”

주위를 날카롭게 살피던 독무웅은 눈빛을 누그러트렸다.

“내가 너무 민감했던 모양이군.”

독무웅은 그리 말하면서도 주위를 한 번 더 유심히 살폈다.

“오늘 오후 일로 신경이 많이 날카로워진 듯싶습니다. 그로 인해 겨우 가라앉혔던 마기가 다시 폭발했으니 심신이 모두 지쳤을 겁니다.”

단주의 말에 독무웅은 고개를 끄덕이며 주위를 살피던 시선을 거두었다.

“제가 무슨 일이 있어도 그자를 찾아 소장주님 앞으로 끌고 오겠습니다. 그러니 오늘 하루는 편히 쉬십시오.”

“그러고 보니 피곤하군요. 그럼 단주님만 믿겠습니다.”

독무웅과 패권단 단주가 다시 지붕 아래로 내려가고, 얼마 후 지붕 위로 안개가 모이듯 검은 피풍의를 입은 사내가 모습을 드러냈다.

바로 왕귀진이었다.

왕귀진은 차갑게 가라앉은 눈빛으로 지붕에 난 구멍을 통해 잠시 독무웅과 패권단 단주를 내려다보다 다시 신형을 감추었다.

* * *

사천당문 가주실.

밝은 촛불 아래 사천당문 가주 암향사우(暗香死郵) 당자성과 소가주 당화평이 앉아 있었다.

“오늘 오후에 일은 잘 보았느냐?”

“사소한 일이 있어 이야기를 제대로 끝맺지 못했습니다, 아버지.”

“무슨 일이 있었던 게냐?”

당자성의 질문에 당화평은 객잔에서 있었던 일을 간단히 이야기해 주었다.

“선무를 쓰는 청년?”

“예, 아버지.”

“선무라……, 흔하지 않은 무공을 익힌 자로구나.”

마현이 단 몇 수만에 독무웅을 제압했다는 말에 당자성은 호기심을 드러냈다.

“강호초출인 듯하며 선무를 익힌 자라……, 누구의 진전을 이어받았을까?”

당자성은 무림에서 섭선을 사용하는 몇몇 인물을 떠올렸다.

“특이한 점은 없더냐?”

“단순한 몇 수에 무릎을 꿇린 터라…… 죄송합니다.”

“아니다, 아니야. 네가 죄송하기는…….”

“특이한 점을 굳이 꼽으라면 무복이 아닌 검은 비단으로 된 서생 옷에 검은 색 섭선을 든 것입니다.”

“서생 옷에 섭선이라…….”

당자성의 머릿속에 가장 먼저 떠오른 이는 마교 부교주 염라서생 허진이었다. 무림에 널리 알려진 허진의 특징이 바로 푸른빛 서생 옷에 섭선이었다.

하지만 꼭 그렇게 단정할 수만은 없었다. 보통 선무를 쓰는 이들은 대체로 서생 옷이나 유생들이 즐겨 입는 유의를 착용하는 일이 잦았다.

그래도 혹시나 하는 생각이 들기는 했다. 들리는 바에 의하면 허진의 제자이자 마교 대공자인 흑풍마군이 마교를 대표해 무림맹 무림대회에 참석한다고 했다.

만약 그가 마교에서 나왔다면 열에 아홉은 이 사천성으로 올 것이 분명했다.

“혹 그에게서 마기는 느껴지지 않았느냐?”

당자성의 질문에 당화평은 고개를 저었다.

“단편적이지만 그의 내력은 정순해 보였습니다.”

“자세히 설명해 보거라.”

전혀 갈피를 잡지 못한 당자성은 더욱 호기심을 느꼈다.

“마 소협은 초식조차 구사하지 않고 독무웅의 무릎을 꿇렸습니다.”

“호오…….”

당자성은 슬쩍 감탄사를 터트렸다.

“그가 보여준 것은 선막, 선기, 그리고 선강뿐이었습니다.”

당자성의 눈동자가 슬쩍 커졌다.

“선강이라고? 정말 궁금해지는구나.”

흥미가 동하는 눈빛이었다.

“너와 비교하면 어느 정도라 여겨지느냐?”

“그가 구사하는 것을 정확히 보지 못해 속단할 순 없지만 그리 녹녹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흠…….”

당자성은 고개를 끄덕이며 나직한 침음성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정파 무림에 또 한 명의 후기지수가 탄생하겠구나. 상황이 그랬으니 인연을 맺기는 어려웠겠구나.”

당자성의 말에 당화평은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곧 있을 비연이의 생일잔치에 올 것입니다, 아버지.”

“비연이의 생일날?”

당자성은 생각지도 못한 대답에 살짝 놀라는 듯 보였다. 당화평은 마현이 어떻게 당비연의 생일날 초대를 받게 되었고, 응하게 되었는지 간략하게 말해 주었다.

“하하하하. 비연이가 큰일을 했구나.”

“결론적으로는 그렇습니다.”

당화평 역시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이 기회에 친해 두거라. 무림에서 가장 큰 힘은 무엇보다도 인맥과 친분이니라.”

“소자 역시 잘 알고 있습니다.”

당화평의 시원한 대답에 당자성은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안 그래도 얼굴을 한 번 보고 싶었는데 잘 되었구나……. 어차피 보면 누구의 제자인지 알게 되겠지.”

당자성은 수염을 쓰다듬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 * *

톡. 톡. 톡. 톡.

단지 손가락이 의자 손잡이를 두들기는 소리일 뿐이었다.

아무런 의미도 없는 소리였지만 호태악은 갈수록 긴장하고 있었다. 마치 그 소리가 자신의 숨통을 죄여오는 듯 답답함을 느꼈다.

끼이익.

그런 호태악의 숨통을 사천총타실 문 경첩이 트이게 해주었다.

“후우…….”

문이 열리며 삐거덕거리는 경첩 소리에 맞춰 호태악은 조용히 숨을 내쉬었다.

흑풍대 대주 왕귀진이 안으로 뚜벅뚜벅 들어왔다.

왕귀진은 호태악을 보자 가볍게 고개를 숙인 후 마현 앞으로 걸어가 한쪽 무릎을 꿇으며 군례를 취했다.

불과 5년 전 사천총타에 하급무사로 있던 왕귀진의 모습이 아니었다.

왕귀진의 몸에서 자연스레 풍기는 기세에 호태악은 저도 모르게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호태악이 알던 왕귀진은 저렇게 냉정한 사람이 아니었다. 조금 단순하고 고지식해도 사람 냄새가 나는 녀석이었다.

그런 단순함과 고지식함 때문에 가끔 사고를 쳐도 호태악은 항상 웃으며 그의 잘못을 덮어주곤 했었다.

예전에 마현의 직속 무력단체인 흑풍대에 들어갔다는 소식을 듣고 호태악은 속으로 축하해 주었다. 그런데 이처럼 바뀌어 있을 줄은 몰랐었다. 이제는 쳐다보기도 어려울 만큼 강한 기세를 뿜어내고 있었다.

‘도대체 대공자는 어떤 사람이기에…….’

호태악이 그렇게 생각할 때 왕귀진이 마현에게 보고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떻게 되었나?”

“주군께서 짐작하신 것처럼 그는 마공을 익히고 있었습니다.”

이미 짐작하고 있었던지라 마현은 아무 말없이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혹 사천성 아녀자들의 실종사건과 연관이 되어 있더냐?”

“죄송합니다, 주군.”

왕귀진은 고개를 깊숙이 숙이며 대답했다.

“독패장 내장원의 경비가 너무 삼엄하여 거기까지는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분명 냄새는 났습니다.”

“그 말의 뜻은?”

“속하의 생각으로는 연관이 있을 것 같습니다.”

“그리 보는 이유는?”

“독패장 소장주의 얼굴과 상의에 피가 묻어 있었습니다. 그건 누군가와 싸우는 과정에서 뒤집어쓴 피가 아니었습니다.”

“소장주만 마공을 익혔더냐?”

“아닙니다. 일일이 다 확인을 하지는 못했지만 적어도 독패장 수뇌부들은 모두 익혔을 것이라 사료되옵니다.”

“일단 그들이 익힌 마공이 무엇인지 알아볼 필요가 있겠군.”

마현은 생각을 대략적으로 정리했다.

“수고했다. 오늘 하루는 푹 쉬어라. 내일부터는 힘든 생활이 될 것이다.”

“명!”

왕귀진이 나가자 마현은 호태악을 불러세웠다.

“호 총타주.”

“예, 대공자님.”

“아마 내일은 사천성 아녀자 실종에 관한 배후로 마교가 지목되는 일이 생길 것 같다. 그러니 사천총타 내 교인들과 마인들에게 숨을 죽이고 웅크리라 명하라.”

“명을 받드옵니다.”

호태악의 대답을 들으며 마현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피곤하군.”

“이미 잠자리를 마련해 두었습니다.”

“안내하라.”

마현은 호태악을 따라 그가 준비한 침실로 향했다.

* * *

다음 날, 정오도 지나기 전이었다.

마현이 예상했던 대로 사천성 아녀자들 실종사건의 배후에 마교가 있다는 풍문이 파다하게 퍼졌다. 그 풍문을 뒷받침하는 증거로 그동안 알려지지 않은 의심스러운 정황들도 함께 떠돌았다.

사천성에서 북쪽 정파 지역에서만 아녀자들이 실종되었지 남쪽 마교 지역에서는 일어나지 않았다는 점과, 관이 마교는 제외한 채 사천당문을 비롯한 정파에만 협조요청을 했다는 점이었다.

아무리 발 없는 말이 하루에 천리를 간다고는 하지만 누군가 의도적으로 소문을 내지 않고서야 이처럼 빨리 소문이 퍼질 리가 없었다.

“훗.”

마현의 입에서 실소가 흘러나왔다.

“우습군.”

뻔히 눈에 보이는 일이었기에 마현은 그저 실소를 터트릴 뿐이었다.

“호 총타주.”

“예, 대공자님.”

“일단 웅크리라 명을 내렸는가?”

“예, 사천성 내 모든 지부에 명을 내렸습니다.”

“잘했다. 혹시 모를 일이 터지면 괜히 골치만 아파질 테니까.”

마현은 깍지를 끼며 턱을 괴었다.

“그럼 슬슬 사냥 준비를 해볼까?”

마현의 눈에서 살기 어린 마기가 폭사되었다.

그 마기에 호태악은 움찔거렸다. 그 역시 마인이었고 한 명의 무인이었지만, 마현의 마기는 몸이 오싹해질 정도로 패도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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