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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마법사 무림에 가다-87화 (87/351)

# 87

12화

회회혈마를 비롯해 마현을 따르는 몇몇이 자리에서 일어나 허리를 깊게 숙였다.

“교, 교주님. 다시 한 번…….”

다른 이들이 막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그때였다.

“조용!”

사공소는 마기가 담긴 목소리로 대전의 소란을 잠재웠다.

“대공자 흑풍마군은 앞으로 나오라.”

“예, 교주님.”

마현은 자리에서 일어나 사공소 앞으로 걸어 나갔다.

“2년 전 본좌의 환갑 연회에서 그대가 보여준 무력은 실로 놀라웠다. 아마 무림맹 인물들에게도 강한 인상을 주었을 것이라 본좌는 생각한다. 그러하기에 무림맹으로 가 다시 한 번 본교의 위상을 높이고 오라.”

“명을 받드옵니다.”

마현은 허리를 숙였다.

‘잠시 교를 떠나 머리를 식히는 것도 나쁘지 않겠군.’

마현이 비록 이 세상에서 다시 눈을 떴지만 중원과 무림이라는 세상을 잘 모른다. 단지 거지촌에서 잠시 생활한 것이 이 세상 생활의 전부였다. 그 외의 시간은 마교에서만 보냈으니 사실상 귀로 듣고, 글로 읽은 것이 전부였다.

‘더불어 하르센 대륙으로 돌아갈 방법이 있는지도 알아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고.’

“대공자 흑풍마군은 대공자 자리에 오른 후 징마동에서 징벌을 받은 터라 그 직위에 합당한 의무를 하지 못했다. 하여 이 기회에 사천총타를 비롯해 본교 여러 지부를 돌아보고 오라.”

“교주님의 명을 받들겠나이다.”

세상을 둘러보고 오라는 명까지 더해지자 마현은 다시 한 번 깊이 허리를 숙였다.

“율 군사.”

“예, 교주님.”

“호원 원주와 상의해 흑풍마군을 동행할 이들을 선별하라.”

그 말에 마현은 숙이고 있던 허리를 폈다.

정확한 뜻을 밝히지 않았지만 사공소는 마현에게 호원칠무대 중 한 단체를 붙여줄 생각인 듯 보였다.

하지만 마현은 홀로 편히 가고 싶었다. 홀로라고는 하지만 마현에게는 흑사신도 있었고, 함께 갈 흑풍대도 있었다. 그렇기에 다른 이들이 더 따른다면 오히려 짐만 될 뿐이었다. 더욱이 움직이는 데 많은 제약이 따를 것이 분명했다.

“교주님, 신이 청을 하나 올리겠나이다.”

“말하라.”

마현은 허리를 완전히 펴고 자신의 뜻을 피력했다.

“교주님의 하해와도 같은 마음은 신 역시 아오나, 신은 흑풍대만으로 족하옵니다.”

사공소는 태사의에 몸을 기대며 한 손으로 턱을 괬다.

“흑풍대만 이끌고 가겠다고?”

“그렇습니다.”

한동안 마현을 쳐다보던 사공소는 눈만 돌려 어느 때부터인가 대전회의에 참석하고 있는 가릉을 쳐다보았다.

“하긴 30명이되 30명이 아니지.”

마현은 잠시 뜨끔했지만 이내 무덤덤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왜냐하면 잘못한 사실도, 교의 율법을 어기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교주님.”

이때다 싶어 혈월마성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신이 한 말씀 올리겠나이다.”

사공소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자 허락한 것으로 여긴 혈월마성은 마현을 향해 입을 열었다.

“사공자, 아니 대공자 흑풍마군의 흑풍대는 엄연히 교의 율법을 어긴 단체이옵니다. 또한 강시술을 복원했음에도 불구하고 사사로운 이권에 사로잡혀 교가 아닌 한 개인에게 강시를 바친 가 당주 역시 엄벌에 처해야 할 것으로 사료되옵니다, 교주님.”

그 말이 시작이었다. 마현을 섬기는 세 장로와 가릉을 제외한 대부분의 인물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혈월마성의 말에 동조하고 나섰다.

“클클클.”

그때 칼칼한 웃음을 터트리며 가릉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교주님, 이 노신이 한 말씀 올려도 되겠나이까?”

가릉이 자리에서 일어나자 다른 이들은 그가 무슨 말을 할지 두고 보자는 듯 일제히 눈을 부라렸다.

“말하라.”

대략적인 것은 이미 정보 수집을 통해 알았지만 마현과 가릉 사이의 관계는 정보 수집만으로도 알 수 없는 것들이 있었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사공소 역시 궁금했던지 말리지 않았다.

“그전에 대장로에게 한 가지 묻겠습니다. 대장로, 아마 이 가 모가 거의 하루도 빠지지 않고 대공자를 찾아가는 것 때문에 그런 추측을 한 듯하오, 안 그렇소?”

“그렇소!”

대답하는 혈월마성의 목소리는 곱지 않았다.

“뭐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지……, 클클클.”

가릉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웃음을 흘렸다.

“교주님, 이 노신이 거의 매일 대공자를 찾아가는 것은 골강시 때문이 맞사옵니다.”

“이제야 실토를 하는구려!”

“엄벌에 처해야 하옵니다!”

시끄러운 목소리가 일제히 터져 나왔지만 가릉은 여전히 웃음기를 지우지 않은 채 말을 이었다.

“하오나! 그건 골강시를 만들어 주기 위해서도, 가르쳐 주기 위해서도 아니옵니다. 그건 이 노신이 주책을 무릅쓰고라도 대공자께 골강시를 비롯한 강시술에 관한 것을 배우기 위함이옵니다.”

“어느 안전이라고 거짓을 고하는가!”

혈월마성은 노기가 가득한 목소리로 가릉을 향해 일갈을 터트렸다.

“대장로 말씀대로 이 가 모가 강시술을 복원했으면 좋겠소이다. 율 군사라면 아직까지 이 노 모가 강시술을 복원하기 위해 밤낮으로 씨름하고 있음을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안 그렇소이까, 율 군사?”

율기는 가릉의 말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조용하라!”

다시 시끄러워지는 소리에 사공소는 눈살을 찌푸렸다.

“흑풍마군, 가 당주의 말이 사실인가?”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당연히 대공자는 만든 골강시를 교에 바쳐야 하는 것. 교주님, 대공자는 사사로이 개인의 힘을 키우는데 혈안이 되어 있사옵니다.”

마현은 혈월마성의 말에 피식 웃으며 그에게로 몸을 돌렸다.

“대장로.”

아무런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 눈빛으로 마현은 혈월마성을 바라보았다.

“내 골강시를 교에 바치면 대장로께서도 자신의 독문무공을 전부 공개하겠소?”

“어찌 골강시와 독문무공을 비교하는 것이오?”

혈월마성은 마현의 말에 발끈했다.

“갈!”

그러자 마현은 목소리에 마력을 담아 일갈을 터트렸다.

우우웅!

엄청난 마력이 담긴 터라 대전 안이 그 파장으로 한바탕 울음을 토해냈다.

“자신의 것은 공개하지 못하면서 어찌 흑풍대의 힘의 원천인 골강시를 내놓으라고 억지를 부리는 것인가?”

마현은 마기가 담긴 눈빛으로 혈월마성을 노려보았다. 혈월마성 역시 마현에게 지지 않고 마기가 담긴 눈빛으로 맞받아쳤다.

“그렇다면, 이렇게 하면 어떻겠소?”

마현은 또박또박 한 자 한 자 말을 내뱉었다.

“대장로께서 독문무공을 공개하지 않으면서 내가 골강시를 교에 바치는 방법이 있소.”

의심스러운 말이었지만 혈월마성으로서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말해 보시지요.”

“본인이 소교주 자리에 오르면 되지 않겠소? 그렇다면 자연스레 골강시 역시 교의 것이 되는 것이니까.”

혈월마성의 인상이 확 찌푸려졌다.

설마 마현이 저렇게 대놓고 소교주 자리에 오르겠다고 말할 줄은 미처 몰랐던 것이다.

“신이 한 말씀 올려도 되겠나이까?”

마현과 혈월마성 사이에서 팽팽한 기세가 맞부딪히는 가운데 사공찬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교주님께서 골강시에 대한 것을 차라리 이 자리에서 윤허를 해주시옵소서.”

사공소의 눈빛이 반짝였다. 동시에 대전 안이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이유는 단 한 가지. 설마 사공찬이 마현을 두둔하고 나설 거라고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사공소 역시 사공찬이 무슨 뜻으로 그리 말했는지 궁금하긴 마찬가지였다.

“대공자는 스스로의 힘으로 절전된 강시술을 복원해냈사옵니다. 동시에 교의 율법 또한 어기지 않았사옵니다. 만약 이 자리에서 대공자의 골강시에 대한 제재가 들어간다면 어느 교인이 잃어버린 과거의 유산을 복구하겠으며, 새로운 힘을 창조하겠나이까.”

사공찬은 말을 하면서 고개를 돌려 마현을 쳐다보았다.

“그러니 대공자의 힘이자 흑풍대의 골강시를 윤허해 주시옵소서. 단!”

사공찬의 눈에 힘이 들어갔다.

“대공자께서 소교주 자리에 오르지 못한다 하더라도 골강시는 교를 위해 쓰여야 한다는 약조를 받아야 할 것이라 사료되옵니다.”

아무도 사공소의 눈빛을 보지 못했지만 사공찬을 바라보는 눈빛에 감정이 담겼다. 그것은 한층 커버린 자식을 바라보는 대견함과 흐뭇함이었다.

사공소는 사공찬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공자의 말을 받아들여 대공자의 골강시를 윤허한다. 하지만 그 전에 대공자 흑풍마군.”

“예, 교주님.”

마현은 사공소의 부름에 허리를 숙였다.

“오로지 교를 위해 골강시를 쓰겠는가?”

“신, 그 명을 받들겠나이다.”

“오늘 이후로 골강시에 대해 누구도 왈가왈부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사공소의 목소리는 대전 안을 가득 채웠다.

* * *

대전회의가 끝나고 마주전을 걸어 나오는 사공찬 곁으로 혈월마성이 뛰어왔다.

“주군.”

“…….”

“아니 어쩌자고 대전회의에서 그런 발언을 하신 겁니까?”

사공찬은 혈월마성을 잠시 쳐다보다가 저 뒤에서 걸어 나오는 마현을 응시하며 입을 열었다.

“제가 더 강해지면 됩니다. 그리고 독혈대가 더 강해지면 됩니다.”

사공찬은 잠시 뜸을 들이다 마현이 다가오자 다시 말을 이었다.

“소교주 자리는 제 것입니다.”

혈월마성에게 말하고 있었지만, 사실 그것은 마현이 들으라고 하는 말이었다.

사공찬은 마현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자신만만하고 당당한 미소였다.

“주, 주군.”

“먼저 실례하겠습니다.”

사공찬은 몸을 돌렸다.

그런 그의 모습이 마현의 눈에서 서서히 멀어졌다.

“주군.”

그때 마현의 곁으로 회회혈마와 가릉이 다가왔다.

“흠…….”

마현은 제법 무거운 침음성을 삼키며 몸을 돌렸다. 하지만 여전히 그의 눈은 멀어져가는 사공찬의 등을 향해 있었다.

“고양이인 줄 알았는데 역시 호랑이 새끼란 말인가?”

“많이 달라졌군요.”

가릉의 말에 마현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제야 시선을 거뒀다.

“아마 소교주 자리에 오르기에 가장 힘든 걸림돌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군.”

마현은 잠시 멈췄던 발걸음을 다시 내딛었다.

무림맹으로 가기로 결정이 났지만 마현은 생각 외로 느긋하게 준비했다. 다른 이들을 이끌고 간다면 이것저것 준비할 것이 많았지만 이번 출행에서는 마현 홀로 흑풍대를 이끌고 가기 때문에 그다지 준비할 것이 없었다.

회회혈마가 대략적인 준비를 마친 후 마현을 찾아왔다.

“주군, 이번 출행에 타고 가실 마차를 준비했습니다.”

“마차?”

“주군 홀로 나가시는 터라 4두마차로 준비했사옵니다. 그리고 주군을 보필할 흑풍대 전원에게 말을 지급하겠습니다.”

회회혈마의 말에 마현은 고개를 저었다.

조용히, 그리고 편히 무림에 나가고 싶었다. 하지만 4두마차를 탄다면 자연스럽게 이목이 집중될 것이다. 그렇게 되는 순간 상당히 불편한 일들이 생길 것이 분명했다.

“나 역시 말을 타고 가고 싶군.”

“안 됩니다, 주군.”

의외로 회회혈마의 말은 단호했다.

“주군께서 단지 사천총타를 비롯해 분타들을 시찰하는 것이라면 상관없겠으나 이번 출행의 주목적은 시찰이 아니라 무림맹 무림대회에 정식으로 초청을 받아 본교 대표로 참석하는 것입니다.”

회회혈마의 장황한 설명에 마현은 낯을 찌푸렸다.

“그러니 이번에는 속하의 말대로 4두마차를 타고 가십시오.”

회회혈마는 뜻을 굽히지 않았다. 그러나 마현은 마차를 타고 가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그럼 이렇게 하면 되겠군.”

“……?”

“무림맹에 갈 때 4두마차를 타도록 하지.”

그러면서 마현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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