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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마법사 무림에 가다-86화 (86/351)

# 86

11화

고통에 찬 마현의 표정이 언제 그랬냐는 듯 곧 평온해졌다.

“후우…….”

살짝 열린 마현의 입술 사이로 편안한 숨결이 흘러나왔다.

우우웅!

마현의 몸이 잔잔히 요동쳤다. 마현의 숨결과 몸에서 새하얀 운무가 흘러나오더니 이내 그의 몸을 완전히 에워쌌다. 처음에는 흐릿한 정도였던 운무가 이내 짙어졌다. 이윽고 마현의 몸은 운무에 가려 그 모습이 보이지 않게 되었다.

그때 놀랍게도 마현의 몸이 바닥에서 반 자가량 둥실 떠올랐다.

“후우. 후우. 후우…….”

조용한 석실에는 오로지 마현의 옅은 숨소리만이 들렸다.

새하얀 운무 위로 세 가지 색깔을 가진 화려한 기운이 서서히 올라왔다.

바로 백회혈 위였다.

그 세 가지 색깔을 가진 기운은 서서히 곧 하나의 형태를 만들어갔다. 그것은 아직 채 피지 않은 꽃봉오리였다. 그렇게 채 만개하지 않은 세 꽃봉오리는 마치 식물이 양분을 흡수하듯 하얀 운무를 흡수하기 시작했다.

서서히 마현의 몸을 둘러싼 새하얀 운무가 옅어지면 옅어질수록 세 가지 빛깔의 꽃봉오리는 몸체를 꿈틀거리며 조금씩, 조금씩 개화하기 시작했다.

시간이 흘러 마현의 몸을 둘러싼 새하얀 운무가 모두 꽃봉오리에 흡수되자 기다렸다는 듯이 세 송이의 꽃은 만개(滿開)했다. 언제까지나 활짝 피어 형형색색의 화려함을 뽐낼 것만 같던 세 송이 만개한 꽃은 마현의 백회혈 속으로 다시 흡수되었다.

꽃이 아닌 세 가지 색을 가진 기운으로 변한 그것은 임맥과 독맥을 비롯한 기경팔맥을 따라 마현의 단전으로 스며들었다. 그리고 서클로 옮겨졌다.

우우우웅!

마현의 몸이 울고, 단전이 울었다. 그런 단전 주위로 또 하나의 서클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그 서클은 바로 마현의 여섯 번째 서클이었다.

* * *

2년 후.

마현이 6서클을 완성하던 바로 그 시각.

굳게 닫힌 문 앞에서 대장로 혈월마성이 초조한 듯 서성이고 있었다. 좀처럼 열리지 않는 문을 흘깃흘깃 쳐다보고 또 쳐다보았다.

끼익!

그때 굳게 닫혔던 문이 활짝 열렸다. 그 뒤로 사공찬의 모습이 보였다.

“주군.”

혈월마성은 활짝 열린 문 앞으로 뛰어가 허리를 숙였다.

“오랜만입니다, 대장로.”

고개를 드는 혈월마성은 사공찬을 보는 순간 온몸을 파르르 떨었다.

‘달라지셨다!’

사공찬이 가진 기운은 더욱 무거워졌고, 차분해져 있었다.

“대공자는 나왔습니까?”

사공찬은 징마동이 있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아직 나오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곧 나올 것입니다.”

“어떻게 변했는지 보고 싶어지는군요.”

사공찬은 징마동 쪽에서 눈을 떼지 않으며 눈빛을 굳혔다. 주먹을 말아 쥔 그의 눈동자에는 투기가 뜨겁게 일렁이고 있었다.

거대한 바위로 주먹 하나가 날아갔다.

푸욱!

주먹에 담긴 힘으로 보아 거대한 바위가 산산조각 날 것이라 여겨졌는데, 아니었다.

주먹은 마치 큰 두부에 조용히 손을 밀어 넣은 것처럼 거대한 바위에 꽂혔다.

그 주먹이 다시 조용히 바위에서 빠져나왔다.

거기에는 원래부터 바위에 구멍이 뚫려 있었던 것처럼 딱 주먹만 한 구멍이 뚫려 있었다.

바위에 난 구멍을 자세히 살펴보니 마치 뜨거운 용암 같은 열기에 녹은 듯 표면이 매끄럽게 바뀌어 있었다.

짝짝짝!

바위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서 박수소리가 들렸다.

“열양신공 중 열양신권을 완성했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그만하면 네 또래에서 적수를 찾아볼 수 없을 것이다. 아니 천하에 적수를 찾기 어려울 것이다.”

“이제 시작이옵니다, 아버지.”

양곽원의 자신만만한 모습에 양위도는 흡족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2년 전 잠시 의기소침했던 양곽원의 모습은 이미 온데간데없었다. 오히려 그 일이 있기 전보다 더 당당한 모습을 갖추었다.

“내일 북해빙궁으로 매파를 보내겠다. 그리고 너에게 패배를 안겨준 흑풍마군을 이제는 네가 무릎을 꿇려라. 알겠느냐? 너는 남해태양궁의 소궁주다!”

“알겠습니다, 아버지.”

양곽원은 입술을 한일자로 굳게 다물며 두 눈에서 뜨거운 열기를 폭사시켰다.

그르르릉!

두꺼운 석문이 좌우로 갈라졌다.

어두운 징마동 내부가 드러났다.

자박 자박 자박.

그 어두운 통로에서 마치 산책하는 듯한 가벼운 발자국 소리가 조금씩 커지고 있었다.

그리고 얼마 후.

검은 그림자가 밝은 태양 아래 모습을 드러냈다.

갑작스러운 빛 때문일까? 모습을 드러낸 사내는 눈가를 살짝 찌푸렸다.

“대공자를 뵈옵니다!”

“주군을 뵈옵니다!”

“그동안 수고하셨습니다!”

“그대들을 이렇게 다시 보니 좋군.”

환하게 웃음을 짓는 사내는 바로 마현이었다.

* * *

징마동에서 나온 직후 마현은 마주전 대전 안에서 마교 수뇌부가 보는 가운데 정식으로 대공자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며칠 후.

한가로운 아침을 맞이하는 마현에게로 군사 율기가 담당하는 비영대원 하나가 찾아왔다.

“무슨 일이냐?”

“오늘 오전에 있을 대전회의에 대공자께서도 참석하라는 전갈을 가지고 왔습니다.”

“대전회의에?”

비록 마현이 대공자 신분을 얻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공자위 중 한 자리일 뿐 소교주 자리가 아니었다. 그렇기에 공자 자리에 걸맞은 대우는 받지만, 그렇다고 교를 이끌어가는 주요 회의에는 참석하지 못하는 신분이었다.

“나만 참석하는 것인가?”

“아닙니다, 다른 공자님들도 참석하시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자신뿐만 아니라 다른 공자들 역시 참석하는 회의라니 생각보다 중한 논의가 오갈 회의임에 틀림없었다.

마현은 고개를 들어 창밖을 쳐다보았다.

“오전 회의라면 지금 바로 나서야겠군.”

시간이 촉박하지도 않았지만 그렇다고 다른 일을 하기에는 여유롭지 못한 시간이었다. 차라리 시간이 남아도 지금 일어나는 것이 편한 그런 시간이었다.

“알았다.”

마현의 대답에 비영대원은 허리를 숙인 후 흑풍각을 나섰다. 그가 나가자마자 마현 역시 자리에서 일어나 옷을 갈아입은 후 바로 마주전으로 향했다.

건물의 특성상 부마전 내에 있는 흑풍각에서 마주전까지의 거리는 상당히 가까웠다. 얼마 시간이 흐르지도 않아 마현은 마주문 앞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가 막 마주문으로 들어서는데 한 무리의 인물들이 다가왔다.

무리의 중심에는 사공찬이 있었다.

징마동에서 나온 후 처음 대면하는 자리였다.

사공찬 역시 마현을 보았는지 먼저 다가왔다. 마현도 발걸음을 멈추고 그를 향해 몸을 돌렸다.

다가오는 사공찬을 보는 마현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흠…….’

회회혈마 장로에게서 사공찬도 자신이 징마동에 들어간 날 폐관수련에 들어갔으며 2년간의 폐관을 마치고 같은 날 나왔다고 보고를 받았다.

마현은 자신이 달라진 것처럼 사공찬 역시 달라졌음을 깨달았다.

진중해진 기운이 무겁게 다가왔다.

‘하지만…….’

마현은 슬쩍 입 꼬리를 말아 올렸다.

“대공자에 오르신 걸 축하드립니다.”

사공찬은 허리를 살짝 숙이며 말을 높였다.

“이공자에게 경어를 들으니 어색하군.”

마현의 말에 사공찬 역시 입언저리를 비틀었다.

“역시 그렇지?”

사공찬은 뒤틀린 입언저리를 차갑게 만들었다.

“대공자 자리에 오른 것은 마땅치 않아도 축하는 해주마.”

“그리고?”

마현은 사공찬이 더 할 말이 있다는 것을 간파하고 물었다.

“소교주 자리는 반드시 내가 앉을 것이다. 그 이야기를 직접 해주고 싶어서 이렇게 축하인사를 건넨 것이다.”

“확실히 쥐새끼 같은 추도영보다 네가 낫군.”

“나를 인정한 것인가?”

“인정받고 싶나?”

마현의 되물음에 사공찬은 차갑게 웃던 입술을 한일자로 굳게 다물었다.

“기분이야 좋지 않겠지. 하지만 그 말이 매끈한 숫돌이 되어 내 검을 더욱 날카롭게 해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미치겠군.”

“날카로운 검이라……, 심심하지는 않겠군.”

마현은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하지만 이내 진중한 표정을 지었다.

“인정하지.”

사공찬의 표정이 와락 일그러졌다.

“느낌대로 별로 좋지는 않군.”

“하하하하하하!”

솔직한 사공찬의 말에 마현은 웃음을 터트리며 몸을 돌렸다. 마주전으로 향하는 마현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사공찬의 표정이 순간 딱딱하게 바뀌었다.

‘지지 않는다! 소교주 자리엔 반드시 내가 오를 것이다.’

사공찬은 주먹을 말아 쥐며 스스로 다시 한 번 다짐했다.

마현은 마주전 오른편에 마련된 자신의 자리로 다가갔다.

나란히 놓인 세 개의 의자 중 가장 끝자리에는 이미 도착한 삼공자 도종극이 자리하고 있었다.

“낄낄낄.”

도종극은 마현을 보자 음습한 웃음을 나직하게 터트렸다. 마현은 그런 도종극 앞으로 걸어가 섰다. 그는 시선만 아래로 깔아 음산한 웃음을 머금은 도종극을 내려다보았다.

팽팽한 기운이 둘 사이에서 만들어졌다.

그러자 웅성거리던 마주전 안이 조용해졌다.

마현은 도종극을 내려다보며 소리 내어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그리곤 몸을 돌려 자신의 자리로 가서 앉았다.

도종극은 일그러진 얼굴로 마현을 쳐다보았지만 마현은 의자 등받이에 편히 몸을 기대고 앉았다. 전혀 도종극을 신경 쓰지 않는 모습이었다.

그 모습에 도종극이 굳은 표정으로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아무도 보지 못했지만 그의 눈동자에서 붉은 기운이 순간 맴돌다가 사라졌다.

“낄낄낄.”

그러더니 다시 특유의 음산한 웃음을 터트리며 고개를 돌렸다.

시간이 흘러 마주전의 의자가 다 찾다. 그리고 사공소와 허진, 율기가 마주전 안으로 들어왔고 지루한 대전회의가 시작되었다. 그렇게 한식경쯤 흘렀다.

“오늘 마지막 안건입니다.”

군사 율기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마현은 이 마지막 안건 때문에 자신을 비롯해 두 공자가 대전회의에 참석했음을 깨달았다.

“석 달 후, 무림맹에서 4년마다 여는 무림대회에 이례적으로 본교를 정식으로 초대했습니다.”

그 말에 마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자신을 비롯한 세 공자 중 한 명을 무림맹으로 보낼 모양이라고 추측했다.

“아마도 2년 전 본교에서 교주님의 환갑 연회에 정파를 비롯해 세외 삼궁을 초대했기 때문일 거라고 봅니다. 특히 그때 본교의 무력을 보여준 것에 대해 자극을 받아 그들 역시 본교를 초대한 것이 아닌가 사료되옵니다.”

율기는 보고의 말미에 자신의 생각을 덧붙였다.

“비록 지금은 평화적인 시기라 해도 무림맹 역시 우리에게 지지 않는 무력이 있음을 알리고 싶었겠지. 이 기회에 무림맹에 대해 살펴보는 것 역시 나쁘지 않을 거라고 본좌는 생각한다.”

사공소는 자연스럽게 자리하고 있는 세 공자를 쳐다보았다.

“하여 본좌는 세 공자 중 하나를 무림맹으로 보낼까 한다.”

역시나 마현이 생각한 바로 흘렀다.

비록 대전회의라고는 하지만 사실 교주 사공소의 말이 법이다. 그렇기에 누구 하나 선뜻 이견을 내놓지 않았다.

세 공자를 두루 살피던 사공소의 눈동자가 마현에게로 고정되었다.

“원래 의견을 수렵해 세 공자 중에 한 명을 보내려 했지만…….”

사공소는 마현에게서 시선을 떼고 대전 중앙으로 고개를 돌렸다.

“대공자 흑풍마군을 무림맹으로 보내겠다.”

“교주님의 뜻을 받드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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