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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마법사 무림에 가다-85화 (85/351)

# 85

10화

“흑풍마군이 징마동에 들어간 것과 비슷한 시각, 이공자께서도 폐관수련에 들어갔습니다. 그 기한은 대공자 흑풍마군과 같은 2년이라 합니다.”

여전히 사공소는 무심한 듯 표정의 변화를 보이지 않았지만 눈동자는 달랐다.

“폐관수련?”

“예.”

“흠…….”

사공소는 퉁명스럽게 침음성을 내뱉었다. 하지만 그 마음은 달랐다.

“이유는 아는가?”

겉으로는 아무런 신경도 쓰지 않는 것처럼 보이나 사실은 그게 아님을 율기는 잘 알고 있었다.

“아마 대공자 흑풍마군에게서 자극을 받은 듯 보입니다. 소신의 생각으로 경쟁심이 아닌가 사료되옵니다.”

“그렇군.”

고개를 끄덕이는 사공소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살짝 번졌다.

“대장로와 우연찮게 이공자에 관한 이야기를 잠시 나누었는데, 흑풍마군이 대공자에 오르는 것을 보며 많은 것을 느낀 듯 보였다 합니다. 대장로는 그것을 말하면서 아주 흡족해하는 마음을 숨기지 않았습니다.”

“그런가?”

“예.”

“그렇군.”

사공소는 다시 한 번 머리를 끄덕이며 희미한 미소를 살짝 지었다.

“수고했다. 그만 나가보라.”

“예, 교주님.”

율기가 나가고 사공소는 등받이에 몸을 기대며 활짝 열린 창문으로 보이는 바깥 풍경을 쳐다보았다. 시선은 확 트인 밖을 향해 있지만 초점은 잡혀 있지 않았다.

‘폐관수련이라…….’

창밖으로 향한 사공소의 눈동자에는 사공찬의 얼굴이 떠올라 있었다.

안 그래도 어제 오늘 사공소의 마음은 매우 복잡했다. 사공찬의 얼굴을 떠올린 사공소의 눈빛이 잠시 후 매정할 정도로 차갑게 식었다.

‘진정 내 자식이라면 능히 모든 것을 밟고 올라서야 할 것이다. 당당히 네 힘으로 모든 것을 쟁취하거라, 찬아.’

* * *

빛 한 점 들어오지 않는 자그만 지하 광장.

바로 징마동 내 한 석실이었다.

그 중앙에 마현이 조용히 눈을 감은 채 가부좌를 틀고 앉아 명상에 빠져 있었다.

징마동에 들어와서 마현은 벽곡단으로 끼니를 때우며 대부분의 시간을 이처럼 명상으로 보냈다.

자신의 모든 것들인 마법과 무공을 처음부터 차근차근 되짚고 있었다.

그렇게 하나하나 모든 것을 되짚은 마현의 명상은 마법과 무공의 근간을 이루는 단전에 이르렀고, 그 생각은 원론적인 부분으로까지 이어졌다.

‘결국 단전이나 심장은 마나를 모으는 곳. 단지 마나, 기를 모으는 곳일까?’

마현의 생각은 서서히 깊어져갔다.

‘단전이라는 것이 단순히 몸의 일부분을 이용해 마나, 기를 모으는 장소일까? 그러면 드래곤들은?’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던 마현은 마법에 가장 이상적인 신체를 가진 드래곤을 떠올렸다.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들에게 있어 드래곤 하트는 어떤 존재일까?’

서서히 마현은 깊은 생각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애초에 드래곤은 우리 인간과 달리 태어나면서 드래곤 하트를 가지고 태어난다. 그렇다면 그들은 드래곤 하트를 자연스러운 몸의 일부로 느낄까? 아니면 태어나면서 의식적으로 마나를 집약하는 장소로 이해해 갈까?’

드래곤이 아닌 이상 마현이 그것을 알 수는 없었다. 그렇기에 마현은 자신이 만약 드래곤으로 태어나 마법을 펼친다면 드래곤 하트를 어떻게 느낄까, 고민에 빠져들었다.

오랜 시간 많은 생각을 하고 또 했다.

결론은 하나였다.

‘태어나면서부터 가진 드래곤 하트. 사람이 숨을 쉬듯이 마나 역시 자연스럽게 모으는 게 당연한 일일 것이야. 그렇다면 드래곤은 드래곤 하트를 의식적으로 마나를 모으는 곳이 아닌…… 자연스럽게 몸의 일부라 느낄 것이 분명해. 그럼 마법사들은? 무인들은? 심장이 아닌 마나, 기를 모으는 데 있어 가장 완벽하다는 단전에 마력을 모은 나는?’

그렇게 파생된 생각들은 마현 자신에게로 이어졌다.

‘나는 단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었지?’

그 질문에 당황한 것은 정작 자신이었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 부분에 대해서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었다.

처음에는 단지 심장이 아닌 단전으로 마나를 모은다는 것을 알고 충격을 받았다. 그리고 이제껏 단전에 마력을 모아 그것을 바탕으로 서클을 만들면서도 단전에 대한 우수성만 느끼며 어떻게든 마법과 조화하려는 노력만 기울였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단전을 받아들였을 뿐이었다.

‘나는 단전을 내 몸의 일부라고 생각하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나?’

그 물음에 마현은 고개를 저었다. 왜냐하면 아니었기 때문이다.

단전은 몸의 일부가 아닌 그저 마법을 펼치기 위해 마력을 모으고, 서클의 중심이 되는 마법의 축이라고만 생각했던 것이다.

즉, 인위적으로 마력을 몸에 쌓기 위해 몸의 일부를 내어준, 단지 그것일 뿐 숨을 받아들이는 폐처럼 자신의 일부분이라 여기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비록 선천적인 것은 아니나, 내 몸 안에서 나의 힘의 원천이 되어주는 단전을 결국 나의 일부분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게 옳은 답일까?’

그때였다.

우우웅!

조용히 마현의 아랫배에서 잠들어 있던 단전이 울음을 토해냈다.

‘응?’

마현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분명 마현은 의식적으로 단전을 깨우지 않았다. 그런데 단전이 스스로 움직인 것이다.

‘지금 이 생각에 답이 있다.’

마현의 마음은 금세 흥분으로 휩싸였다.

하지만 이런 흥분은 문제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고 애써 마음을 진정시켰다.

‘이제껏 정체되었던 서클을 한 단계 더 높일 수 있는 답이 이 생각에…….’

마현은 가부좌 위에 올려놓은 두 주먹을 말아 쥐었다.

‘나는 다시 올라갈 것이다! 과거의 나로, 과거의 7서클 대흑마법사로…….’

* * *

후우웅!

거센 주먹이 바람을 거스르며 허공을 때렸다.

팡!

웅장하면서도 무거운 보법을 밟으면서 뜨거운 기운을 몰아치는 양곽원의 얼굴은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

남해태양궁으로 돌아온 소궁주 양곽원은 미친 듯이 오로지 무공수련에만 매달렸다. 하지만 그가 행하는 것은 수련이 아니었다.

매일매일 탈진할 정도로 몸을 휘두르니 그건 수련이 아니라 자학에 가까운 몸부림이었다.

턱.

결국 모든 내력을 다 쓰고, 체력까지 바닥이 나자 양곽원은 더 이상 서 있지 못하고 바닥에 쓰러지듯 주저앉았다.

“헉헉헉…….”

거친 숨과 함께 입에서 단내가 풍겼다.

“젠장!”

평소 그답지 않게 입에서 거친 말이 튀어나왔다. 그런 그의 머릿속에 두 명의 인물이 떠올랐다. 하나는 마현이었고, 다른 한 명은 설린이었다.

그 둘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그것이 그를 더욱 괴롭히고 있었다.

자신을 농락한 마현도 그러했고, 별것 아니라고 여겼던 설린도 그랬다.

‘차라리 몰랐으면……, 차라리 못 봤으면…….’

양곽원은 팔로 눈을 가리며 연무장 바닥에 벌러덩 누웠다.

자신을 농락한 마현과, 그를 향해 이 세상 누구보다 화사하게 웃음을 보여주던 설린의 미소가 다시 떠올랐다.

양곽원의 입술이 꽉 깨물어졌다. 팔에 가려진 양곽원의 눈에서 은은한 살기가 떠돌았다.

죽이고 싶었다, 마현을…….

압도적인 힘으로 설린, 그녀 앞에서.

그리고 그녀를 취하고 싶었다. 그래서 자신만의 여인으로 만들고 싶었다.

‘오직 나를 향해서만 짓는 설린의 화사한 미소를 보고 싶다.’

하나의 질투심은 살심으로, 또 다른 하나의 질투심은 집착으로 바뀌어갔다.

양곽원도 모르는 사이 조금씩, 조금씩…….

자박 자박 자박.

그렇게 혼탁한 마음이 양곽원의 욕망이 가득 채울 때 낯선 발자국 소리가 연무장 위로 올라왔다.

“누구냐?”

양곽원은 신경질적인 목소리로 나직하게 소리쳤다.

“무슨 일이 있었던 게냐?”

들려온 목소리에 양곽원은 재빨리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런 양곽원 앞으로 남해태양궁 궁주 양위도가 다가왔다.

“아, 아버지.”

양곽원은 못난 모습을 보였단 생각에 당황하며 고개를 숙였다.

“시원한 나무 그늘로 가자구나.”

양위도는 양곽원을 데리고 연무장 한편에 드리워진 그늘로 향했다. 미리 준비를 해온 듯 그를 따라온 시녀가 시원한 냉차를 내왔다.

“마교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게냐?”

양위도는 양곽원을 보며 걱정 어린 눈빛과 목소리로 물었다.

“그게…….”

양곽원은 쉽게 말을 꺼내지 못했다.

양위도는 아들이 마교에 갔다 오는 사이 무슨 일이 생겼음을 직감적으로 알아차렸다. 쉽게 말을 꺼내지 못하는 것을 보면 그만큼 말하기 어려운 일이리라.

양위도는 답을 재촉하지 않고 천천히 기다려 주었다.

그렇게 한동안 시간이 흘렀다.

뜸을 한참이나 들인 양곽원의 입이 열렸다.

“마교에서의 마지막 날…… 있었습니다.”

양곽원은 설린에 대한 마음과 그로 인해 마현과 얽힌 일들을 가감 없이 말했다.

“흠……. 그런 일이 있었구나.”

양위도는 양곽원의 말에 무겁게 침음성을 내뱉었다.

“죄송합니다, 아버지. 소자 못난 모습을 보인 것 같습니다.”

양곽원은 풀이 죽은 모습으로 죽도 못 먹은 사람처럼 힘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어깨를 펴라, 너는 남해태양궁의 소궁주다.”

양위도는 엄한 목소리로 양곽원의 움츠러든 어깨를 펴게 만들었다.

“가지고 싶은 것이 있으면 가지면 될 것이고, 없는 건 손에 넣으면 되는 자리가 바로 남해태양궁의 소궁주 자리다.”

“…….”

“북해빙궁의 설린이야 네가 가지면 될 것 아니냐.”

아버지의 말에 양곽원의 숙여지던 머리가 번쩍 올라갔다.

“그리고 마교의 흑풍마군이야 네가 꺾으면 될 것 아니냐. 그걸 할 수 있는 자리가 바로 남해태양궁 소궁주 자리다. 그러니 어깨를 펴고 고개를 들어라.”

“아, 아버지.”

“네가 싫다고 해서 접었지만 북해빙궁으로 설린과의 혼사를 넣어보마.”

“……하지만 그녀가.”

“못난 놈. 이 애비가 누구냐? 남해태양궁의 궁주다. 그깟 북해빙궁이 혼사를 받아주지 않으면 강제라도 그녀를 끌고 와 네 앞에 데려다주겠다.”

“……!”

양곽원의 눈빛은 희망으로 인해 생기가 가득 찼다.

“그리고…… 이삼 년 후를 생각했지만 이렇게 된 이상, 내일부터 이 애비가 남해태양궁의 모든 것이라 할 수 있는 열양신공(熱陽神功)을 전수해 주겠다.”

“아버지.”

양곽원의 눈은 파르르 떨렸다.

“어깨를 펴라, 너는 남해태양궁의 소궁주다!”

두 부자의 주먹에 힘이 들어갔다.

* * *

우우우웅!

징마동 석실 안이 가볍게 흔들렸다.

마현의 몸에서 퍼져나가는 공기의 파동 때문이었다.

쿵!

마현의 머리 정수리 끝, 백회혈에서 강한 충격의 여파가 퍼져나갔다. 그 충격으로 인해 마현의 몸이 꿈틀거렸다.

쿵!

다시 한 번 마현의 몸이 흔들렸다.

“크으으으!”

마현의 입에서 가느다란 신음이 흘러나왔다.

백회혈에서 희미하지만 뿌연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있었다.

쿵! 쿵! 쿵!

강한 충격이 거듭될수록 뿌연 김은 서서히 짙어져갔다.

그런 마현의 몸이 어느 때부턴가 강하게 흔들렸다.

펑!

이제껏 들리던 소리와 다른 막혀 있던 관이 뚫리는 듯한 시원한 소리가 마현의 백회혈에서 울려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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