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흑마법사 무림에 가다-84화 (84/351)

# 84

9화

내일 마현은 징마동으로 들어가야 한다. 징마동에 들어가면 2년이라는 시간 동안 밖으로 나오지도 못하고, 또 누군가를 만나지도 못한다.

물론 징마동에 들어간다고 해도 마현이라면 마법을 이용해 언제든지 밖으로 나올 수 있다. 하지만 마현은 그럴 생각이 없었다.

비록 벌을 받아 2년간 징마동에 갇히는 것이지만 동시에 폐관수련의 명도 함께 받았다.

‘아직 가야 할 길은 멀다.’

마현은 자연스럽게 손을 아랫배 위로 가져갔다.

단전이 느껴지고 그 주위로 5개의 서클도 느껴졌다.

여기까지 정말 숨 가쁘게 달려왔다. 그로 인해 한동안 수련에 전념하지 못했다.

징마동으로 들어가는 이 벌이 달리 생각하면 마현에게 있어 다시 도약할 수 있는 기회였다. 차분히 뒤를 돌아보고, 그동안 등한시했던 수련에 다시 몰두할 수 있는 시간이 되어야 했다.

어느새 마현의 발걸음은 부마전 앞에 다다랐다. 부마전 창문 한지 사이로 감색 촛불의 빛이 새어나오고 있었다.

‘다행히 주무시지 않는구나.’

마현은 빙그레 미소를 지으며 부마전 안으로 들어갔다.

“스승님, 제자 현이옵니다.”

“들어오너라.”

허진의 음성은 부드러웠지만 마현을 쳐다보는 눈빛은 왜 이리 늦게 찾아왔느냐고 타박하고 있었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스승님.”

마현은 허진 앞으로 다가가 앉았다.

“……녀석. 현아.”

허진은 마현을 나직하게 불렀다.

무엇을 묻기 위해 부른 목소리가 아니었다. 마현을 부르는 목소리에는 수많은 감정들이 뒤엉켜 있었다.

마현은 문득 마주전에서 걱정스러운 눈으로 자신을 쳐다보던 허진의 눈빛이 떠올랐다. 놀란 모습을 애써 감추는 모습도 보였었다.

“적어도 이 스승에게 언질을 해주면 좋았지 않느냐.”

“죄송합니다, 스승님.”

허진의 타박에 마현은 고개를 숙였다.

“너무 급박하게 상황이 진행되어 미처 스승님께 알리지 못했습니다.”

“어찌되었든 소교주 자리에 한 발 다가섰구나.”

흡족함이 담긴 미소가 흘러나왔다.

추도영을 죽인 일에 대해서 허진은 궁금한 점이 많았지만 굳이 묻지 않았다.

그저 그동안 서로 바빠 나누지 못했던 소소한 일상의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렇게 그 둘은 오랜만에 정겨운 이야기꽃을 피우며 밤을 지새웠다.

짹짹짹, 짹짹.

어느새 촛불은 꺼져 있었고 촛불을 대신해 아침 햇살이 방 안을 환히 밝히고 있었다.

“오늘 징마동에 들어가야 하는 너를 내 욕심에 그만 밤을 지새우게 만들었구나.”

허진은 마현이 징마동에 들어가면 2년간 볼 수 없다는 생각에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이야기를 나눈다는 것이 그만 밤을 지새우고 말았다.

“피곤하겠구나.”

허진은 걱정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괜찮습니다, 스승님. 어차피 징마동에 들어가면 남는 게 시간일 테니 들어가서 한숨 푹 자도 됩니다.”

그때 방 안으로 유령대 제2부대주 구영이 안으로 들어왔다.

“무슨 일인가?”

“지금 밖에 흑풍대를 비롯해 몇몇 교인들이 소주군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현이를?”

“징마동으로 들어갈 시간이 다 되어 소주군을 배웅하기 위해 모인 것 같습니다.”

“벌써 시간이 그렇게 되었나?”

허진은 아쉬운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그럼 슬슬 일어나야겠지. 일어나자구나.”

허진은 마현과 함께 자리에서 일어나 부마전 밖으로 나갔다.

부마전 앞에는 흑풍대 전원과 가릉, 그리고 회회혈마, 삼안혈화, 역천마도가 서 있었다.

허진은 가릉과 흑풍대가 마현의 사람이라는 것은 알았지만 세 장로는 뜻밖이었는지 잠시 걸음을 멈추며 눈을 크게 떴다.

‘저 셋은 추도영의 사람이라 알고 있었는데…….’

그런 생각 때문이었을까. 허진과 세 장로 사이에 어색한 기운이 살짝 감돌았다.

“부교주님을 뵈옵니다.”

회회혈마가 허진 앞으로 한 걸음 다가가 허리를 숙였다.

과거야 어찌되었든 이제는 주군의 스승일뿐더러, 교의 부교주이니 먼저 한 걸음 다가가야 했다.

“부교주님을 뵈옵니다.”

“부교주님을 뵈옵니다.”

회회혈마의 뒤를 따라 삼안혈화와 역천마도 역시 허진을 향해 예를 차렸다.

허진은 그들의 인사를 받으며 자연스럽게 그들을 맞이하는 마현을 잠시 쳐다보았다.

일부러 물어보지 않았지만 추도영이 어떻게 죽었는지 대략 짐작할 수 있었다.

“이제부터는 주군에게만 충성을 맹세했습니다. 그러니 과거의 일은 부교주님께서 너그러이 묻어주십시오.”

회회혈마는 허진의 그런 마음을 간파하고 허리를 더욱 깊숙이 숙였다. 마음을 다한 모습이었다.

“그리하시지요, 스승님.”

“험험.”

마현의 말에 허진은 나직한 헛기침을 내뱉은 후 세 장로를 향해 입을 열었다.

“앞으로 현이를 잘 부탁하네.”

여전히 부담스러워하는 목소리였지만 처음보다는 많이 부드러워져 있었다.

“오로지 주군께 충심을 다하겠습니다. 그러니 너무 심려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회회혈마가 대표로 대답했다.

“늦겠습니다, 주군.”

그때 구영이 허진에게 다가와 조용히 말했다.

“시간이 너무 빠르구나.”

허진은 아쉬운 눈빛으로 마현을 불렀다.

“현아.”

“예, 스승님.”

“잘 다녀오너라. 2년 후에는 한층 발전한 너의 모습을 보고 싶다.”

허진은 자신이 끼면 오히려 껄끄러운 자리가 될까봐 스스로 뒤로 물러났다.

“그럼 2년 후에 뵙겠습니다, 스승님. 그동안 평안하시옵소서.”

마현은 허진 앞으로 다가가 크게 절을 올렸다.

“오냐, 너도 몸 건강하거라.”

“예, 스승님.”

* * *

번쩍!

방 안이 촛불과는 비교조차 되지 않을 정도로 밝은 빛으로 가득 찼다.

푹.

그 빛이 한순간 사라지고 방 안에는 희미한 촛불 하나만 용을 쓰고 있었다.

번쩍!

다시 방 안에 밝은 빛이 만들어졌다.

푹.

번쩍!

푹.

번쩍!

그렇게 방 안에서는 밝은 빛이 만들어졌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그렇게 좋으실까?’

창문 밖으로 꺼졌다 켜지기를 반복하는 빛을 보며 한한파파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굳이 방에 들어가 보지 않아도 짐작할 수 있었다. 아마 설린은 침상에 누워 요상한 빛을 만들어내는 반지를 만지작거리고 있을 것이다.

물론 한한파파도 그 반지를 처음 봤을 때에는 신기했다. 세상에 이런 물건이 다 있을까 싶기도 했다. 하지만 그 신기함도 하루 이틀이지, 근 보름째 설린은 밤마다 저렇게 침상에 누워 빛을 만들었다가 없애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마교 사공자 이야기를 들으면 좋아하실까?’

한한파파는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적어도 감정을 잊지 않게는 해주겠지.’

한한파파는 설린의 방으로 들어갔다. 아니나 다를까. 설린은 침상에 누워 빛을 만들었다가 없애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아가씨.”

“누구? 파파?”

설린은 침상 위에 라이트 구를 만들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가씨, 제가 재미난 소식을 가져왔답니다.”

한한파파는 설린 곁으로 다가가 침상에 걸터앉았다.

설린은 고개를 돌려 한한파파의 입을 쳐다보았다. 여전히 전처럼 말이 없는 무표정한 얼굴이었지만 전과 달리 많이 부드러워져 있었다. 그 모습에 한한파파는 다시금 미소를 지었다.

“마현 공자에 관한 이야기인데……, 할까요?”

순간 설린의 눈동자에 생기가 감돌았다.

“뭔데?”

관심 없다는 듯한 말투였지만 그녀의 눈동자는 반짝이고 있었다.

“우리가 마교를 떠난 날 기억하세요?”

“어.”

여전히 설린의 대답은 짧았다.

“그날 추도영 대공자가 마현 공자를 암습했다네요.”

한한파파의 말에 설린의 눈동자는 급격히 차갑게 식었다. 과거와 같은 눈동자였지만 한한파파는 분명 달라진 점을 알 수 있었다.

전에는 어떤 경우에도 눈에 의미를 담지 않았지만 지금은 감정에 따라 그렇게 변한 것이기 때문이다.

한한파파는 마현이 설린에게 있어 감정의 문을 열어주는 존재라는 것을 확신하며 끊었던 말을 다시 이었다.

“놀랍게도 사공자인 마현 공자가 마교 율법에 따라 엄청난 무위를 선보이며 추도영 공자를 단칼에 베어 버렸다네요.”

설린의 눈빛에서 차가운 감정이 서서히 사라져갔다.

“그로 인해 마현 공자는 이제 사공자가 아니라 대공자가 되었다고 하고요.”

“그래?”

설린은 자신과 상관없는 이야기를 들었다는 듯 그냥 무덤덤한 어투로 대답했다.

‘응?’

하지만 건성으로 대답하는 설린의 눈은 분명 웃고 있었다.

한한파파는 놀라 다시 눈을 동그랗게 뜨고 설린의 눈을 살폈다. 그러나 착각이었는지 설린은 부드러운 눈빛을 머금고 있었지만 웃음은 짓지 않고 있었다.

‘휴우…….’

실망감에 한한파파는 속으로 한숨을 머금었다.

‘하긴 이제 고작 한 걸음 떼었는데 뛰는 것을 바란 것인지도…….’

한한파파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냥 아가씨께서 궁금해하실 것 같아 말씀드리러 온 것이에요. 그럼 주무세요.”

한한파파는 부드러운 손으로 설린의 손을 한 번 따뜻하게 잡아주고는 그녀의 방을 빠져나갔다.

‘마현 공자가 이제는 대공자? 그럼 소교주가 되는 건가?’

설린은 한한파파가 했던 말들을 다시 처음부터 떠올렸다.

푹.

습관적으로 반지를 돌리자 방 안을 환하게 비추던 라이트 구가 사라졌다.

번쩍!

팽그르르 돌던 반지가 제자리로 돌아오자 다시 방 안은 환해졌다.

‘마 공자가 대공자라…….’

설린은 잠시 앉아 있다가 그대로 침상으로 누웠다.

기분이 묘했다. 그 묘한 기분은 즐거움이었다. 그냥 기분이 좋았다.

‘음? 왜 내가 기분이 좋지?’

설린은 미간을 좁혔다.

‘마 공자랑 나는 아무런 사이도 아닌데……, 왜 내가 이처럼 기분이 좋지? 나랑은 아무런 상관도 없는 이야기인데…….’

그런 생각 때문이었을까. 조금 덥다고 느끼며 침상에서 일어났다.

시원한 물로 세안을 한다면 이 묘한 감정과 기분 나쁜 열기가 사라질 것 같았다.

자리에서 일어나 설린은 방 한구석에 놓인 대야로 향했다. 그리고 탁자에 놓인 물주전자를 들어 차가운 물을 대야에 따랐다.

쪼르르르.

물주전자에서 흘러나온 물은 금세 대야를 가득 채웠다. 그리고 이내 대야에서 물이 넘치며 바닥으로 쏟아졌다.

주르르.

하지만 그것을 의식하지 못하고 설린은 대야 앞에 세워진 거울을 보고 있었다.

‘내, 내가…….’

거울에 비친 설린의 입술은 희미하지만 미소를 짓고 있었다.

* * *

“흑풍마군이 징마동에 들어갔다고?”

“그렇습니다, 교주님.”

“알았네.”

사공소는 율기의 보고를 받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보고가 끝나고 나갈 것으로 생각했던 율기가 여전히 서 있자 사공소는 의아한 눈으로 물었다.

“더 보고할 것이 남았나?”

“소소한 것이지만 드릴 보고가 하나 더 남았습니다.”

“무엇인가?”

비록 소소한 것이라지만 율기가 보고를 하겠다고 하는 것을 보면 들어서 나쁘지 않을 것이라 판단했다.

“이공자에 관한 것이옵니다.”

“찬이?”

“예.”

사공소는 무심한 듯 시선을 거두었지만 마음은 그렇지 않았다. 그런 부자의 마음을 잘 알았기에 율기는 사공찬에 대해 보고를 올렸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