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0
5화
단전에서 모든 내력을 끌어올린 모양이었다. 그로 인해 몸에 무리가 갔고, 자연적으로 지혈이 되던 상처들이 다시 터진 것이다.
“오라!”
마현은 추도영을 향해 비웃음을 날리며 손가락을 까딱거렸다. 동시에 서클 단전에서 마기를 끌어올렸다.
“죽엇!”
독기 어린 기성을 터트리며 달려드는 추도영을 보며 마현은 입을 열어 중얼거렸다.
“포이즌 포그(Poison fog)!”
마현의 등 뒤로 짙은 독기로 이루어진 안개가 만들어졌다.
파밧!
추도영은 엄청난 살기를 내뿜으며 마현 앞으로 뛰어와 검을 휘둘렀다.
마현은 마라환영보를 밟으며 독 안개 뒤로 물러나 두 손을 들어올렸다.
“윈드!”
팡!
마현의 양손에서 강한 바람이 터져 나왔다. 그 바람에 독 안개는 앞으로 밀려나갔다. 그렇게 되자 마치 추도영이 독 안개 속으로 뛰어든 꼴이 되고 말았다.
“크아아아악!”
시커먼 독 안개 속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추도영이 온전한 몸이었다면 숨을 참고 모공을 닫으면 문제가 없었겠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랐다. 숨을 참고 모공을 닫아도 몸에 난 수많은 상처가 있었다.
독은 추도영의 상처로 스며들었다.
푸학!
검은 독 안개 밑으로 살짝 드러난 추도영의 발 주위로 시커먼 피가 툭툭 흘러내렸다. 그렇게 흐르던 피는 추도영의 발을 중심으로 근 반 자가량 번져나갔다.
쿵!
독 안개 아래 땅바닥으로 힘없이 주저앉는 추도영의 무릎이 보였다.
마현은 그 모습을 보며 차가운 목소리로 마법을 시전했다. 그리고 손을 아래로 내렸다.
“본 스워드!”
후우우웅!
마현이 아래로 내린 손바닥에서 검은 빛이 뿜어져 나왔다. 그 칠흑 같은 빛 속에서 새하얀 뼈로 만들어진 검 한 자루가 서서히 솟아 올라왔다.
마현이 굳이 본 스워드, 골검을 든 이유가 있었다. 비록 누구 한 사람 앞에 나서지 않았지만 지금 수많은 눈이 자신을 지켜보고 있음을 알고 있었다. 그들에게 똑똑히 보여줄 필요성을 느꼈다. 가장 원시적인 방법이 때로는 가장 무서운 공포를 주는 법이다.
마현은 골검을 움켜잡고 추도영에게 다가가며 손을 휘저어 독 안개를 없앴다.
안개가 사라지자 온몸이 피에 흠뻑 젖은 추도영이 무릎을 꿇은 채 앉아 있는 모습이 드러났다. 그는 검을 바닥에 찍은 채 간신히 고개만 들어 마현을 노려보고 있었다.
마현은 그런 추도영 앞으로 걸어가 골검을 들어올렸다.
“감히, 나 마현에게 겁 없이 이빨을 내민 죄, 죽음뿐이다!”
쐐애애액!
마현의 골검이 새하얀 반월을 그렸다.
서걱!
“끄륵!”
매끄러운 일검에 추도영의 목은 몸과 분리되어 땅바닥에 툭 떨어졌다. 고통에 찬 비명을 지를 겨를도 없이 죽음을 맞이한 것이었다.
마현은 이미 독으로 썩어가는 추도영의 수급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는 몸을 허공에 띄웠다.
불에 타 검은 뼈대만 남은 웅천각 위로 날아올라간 마현은 앙상하게 남은 지붕 위 골격에 추도영의 머리를 박았다.
머리가 꽂힌 그 기둥에 마현은 골검으로 한 줄의 글을 남겼다.
피로 쌓은 원한의 대가는 오직 죽음뿐이다!
* * *
“피곤하군.”
모든 일정을 끝내고 마휴당으로 온 사공소는 어깨와 목을 주무르며 너스레를 떨었다.
“수고하셨습니다.”
“수고는 무슨……, 수고는 자네가 했지.”
사공소는 허진을 향해 손을 휘저었다.
“차가 왔군. 들지.”
그사이 시녀가 쟁반에 차 두 잔을 내왔다. 전처럼 향긋한 차가 아니라 쌉쌀한 약초향이 나는 차였다.
“큼흠…….”
그 향에 사공소가 얼굴 가득 주름을 만들며 마땅찮은 음성을 내뱉었다.
“차향으로 보건데 율 군사 짓이군.”
“그래도 드십시오, 피로를 푸는데 생맥산차보다 더 좋은 것은 없습니다.”
허진은 부드럽게 웃으며 먼저 차를 들었다.
사공소 역시 어쩔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차를 들었다.
“하지만 영 맛이…….”
“그래도 율 군사의 성의를 봐서 드십시오.”
사공소는 인상을 찌푸리며 차를 입으로 가져갔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것으로 보아 뜨거울 텐데도 사공소는 단숨에 후루룩 목으로 넘겼다.
“크으!”
그러더니 마치 약을 먹은 것처럼 인상을 확 찌푸리며 대뜸 소리쳤다.
“여봐라, 이 쓴맛을 헹구게 용정차를 내오너라.”
허진은 빙그레 웃음을 지으며 차를 들었다. 그 역시 쓴맛이 조금 걸렸지만 나름 맛이 나쁘지는 않았다.
이미 준비하고 있었던 듯 시녀가 재빨리 용정차를 내왔다. 사공소는 그제야 편한 미소를 지으며 차를 한 모금 들이켰다.
“좋구나…….”
기분 좋은 미소를 지으며 차를 내려놓던 사공소는 허진을 향해 입을 열었다.
“부교주, 제자를 아주 잘 키웠더군.”
“예쁘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니야, 아니야.”
사공소는 찻잔을 내려놓으며 말을 이었다.
“그 정도 자질과 배포면 능히 소교주 자리에 오를 만하지.”
사공소의 말에 허진의 표정이 찰나지만 굳어졌다 풀렸다. 그것을 사공소는 놓치지 않았다.
“너무 조급히 생각하지 말게.”
“…….”
“자네가 중간에서 어쩐다고 해서 능력도 안 되는 자가 소교주 자리에 오를 수 없는 것처럼, 능력이 있으면 오르는 자리가 바로 소교주 자리네.”
“…….”
사공소의 말에 허진은 아무런 말도 꺼내지 못했다.
“그냥 순리에 맡겨두게. 적어도 본좌는 모든 것을 떠나 능력이 되는 아이가 소교주 자리에 올라야 한다고 생각하니까.”
“교, 교주님.”
말을 마친 사공소는 그냥 빙그레 미소를 지으며 차를 들었다. 그사이 차는 많이 식어 있었다.
“들게, 차가 벌써 식어가는군.”
“감사합니다.”
허진은 사공소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감사는 무슨……, 당연한 일을 가지고.”
그때였다.
콰당!
마휴당 문이 벌컥 열리며 군사 율기가 허겁지겁 달려 들어왔다.
“교, 교주님.”
“무슨 일인데 이리 오두방정을 떠는 겐가?”
거친 숨을 몰아쉬며 안으로 들어온 율기는 사공소를 향해 입을 막 열려다가 그 앞에 앉아 있는 허진을 보자 잠시 당황한 듯 머뭇거렸다.
“무슨 일이냐?”
“……그게.”
율기는 허진의 눈치를 살피며 말꼬리를 흐렸다.
“사공자에 관련된 일인지라…….”
허진의 표정이 순식간에 딱딱하게 굳어졌다.
“군사, 내가 들어서는 안 되는 일인가?”
“그건 아니옵니다, 부교주님.”
“그럼 말해 보라.”
사공소는 그냥 보고하라 명을 내렸다.
“큼!”
율기는 잠시 망설이는 듯 헛기침을 내뱉더니 사공소를 향해 입을 열었다.
“지금 흑풍마군이 흑풍대를 이끌고 웅천각으로 향하고 있사옵니다.”
“흑풍대를 이끌고?”
사공소와 허진은 그 보고에 깜짝 놀랐다. 특히 허진의 놀람은 더 했다.
누구보다 마현을 잘 아는 이가 바로 허진이었다. 최소한 허진이 알고 있는 마현은 아무런 생각 없이 일을 저지를 아이가 아니었다.
“이유는?”
사공소의 물음에 율기는 식은땀을 소매로 닦으며 말했다.
“흑풍대원들의 손에…….”
“손에?”
율기의 보고가 시원하게 흘러나오지 않자 사공소는 미간을 찌푸렸다.
“흑풍대원들의 손에 웅천대의 수급이 들려 있었습니다.”
“뭐라? 흑풍마군은 북해빙궁을 마중하러 나간 것이 아니었던가?”
“맞습니다.”
좁아진 사공소의 미간에 내천자(川)의 주름이 만들어졌다. 그와 동시에 얼마 전 율기의 보고가 머릿속에 떠올랐다. 바로 무영대에 관한 보고였다.
“아둔한 녀석, 결국 앞뒤 가리지 않고 일을 저지른 모양이군.”
사공소의 목소리에는 실망감이 깊게 묻어나왔다.
“교주님, 명을 내려주시옵소서.”
그때였다. 비영대원이 하얗게 질린 얼굴로 마휴당 안으로 뛰어 들어왔다.
“구, 군사님.”
“무슨 일이냐?”
비영대원이 율기의 귀에 대고 말하려는 순간, 사공소의 딱딱한 목소리가 들렸다.
“그냥 말하라. 무슨 일이냐?”
율기의 눈치를 살피던 비영대원이 율기가 고개를 살짝 끄덕이자 사공소를 향해 허리를 숙이며 입을 열었다.
“조, 조금 전……. 사공자 흑풍마군의 손에 대, 대공자 추도영의 목이 떨어졌습니다.”
“뭐라?”
사공소와 허진은 동시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마현의 행동은 빨라도 너무 빨랐다.
“흠…….”
당황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안절부절못하는 허진과 달리 사공소는 조용히 눈을 감으며 묵직한 침음성을 내뱉었다.
“율 군사.”
사공소는 조용히 율기를 불렀다.
“예, 교주님.”
“당장 대전회의를 열어라. 그리고 사공자 흑풍마군을 대전으로 부르라.”
“지금 당장 준비하겠나이다.”
율기는 사공소의 명에 서둘러 마휴당을 벗어났다.
“부교주.”
“심려를 끼쳐 송구하옵니다.”
허진은 허리를 깊숙이 숙였다.
“어찌 자네가 사과할 일인가?”
“하오나…….”
“섭섭하게 생각할지 모르니 미리 언질을 주겠네.”
“…….”
“율법대로 행한 일이라면 그 죄가 약하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중벌을 면치 못할 것이네. 율법은 무슨 일이 있어도 지켜져야 하는 것이니까. 알겠나?”
사공소의 목소리는 냉정했다.
“알겠습니다.”
대답하는 허진의 목소리는 조금 떨리는 듯싶었지만 특별히 불안해하는 기색은 아니었다.
비록 걱정은 되지만 쉽게 움직일 마현이 아니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대전으로 가세나.”
“예, 교주님.”
허진은 사공소와 함께 마휴당을 벗어나 마주전으로 향했다.
* * *
마주전으로 장로들과 각 당주, 원주들이 긴급히 소집되었다.
갑작스럽게 소집된 대전회의로 마주전 안은 전과 달리 조금 소란스러웠다. 몇몇 정보가 빠른 이들은 이미 왜 회의가 열렸는지 알고 있었는지 대부분 마현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당연히 회회혈마와 삼안혈화, 역천마도 역시 대전회의 때문에 마주전에 들어섰다.
“어떻게 될까요?”
삼안혈화는 이렇게 빨리 대전회의가 소집될지 몰랐던지 조금은 불안한 기색을 보였다.
“낸들 알겠소?”
“휴우, 그래도 불안하군요.”
“그렇게 불안할 것까지는 없소. 주군은 어디까지나 교의 율법대로 행한 것이니까.”
역천마도가 불안해하는 삼안혈화를 보며 말했다.
“그래도 주군께서 대공자를 그리 무참히…….”
“그런 걱정보다 이 기회에 주군을 대공자로 추대하는 것을 논의하는 게 건설적으로 보이는구려, 끌끌끌.”
칼칼한 노인의 목소리가 들렸다.
세 장로가 고개를 돌리자 가릉이 주름이 자글자글한 웃음을 보이며 다가왔다.
“오셨소이까?”
“가 당주께서 대전회의라…… 이거 오래 살고 봐야겠네요.”
불안하던 마음이 가릉을 보자 조금은 희석이 되었는지 삼안혈화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그래도 셋보다는 넷이 더 낫지 않을까 싶어 왔소이다.”
“그나저나 가 당주. 조금 전 말씀의 뜻은…….”
역천마도가 가릉이 다가오며 했던 말을 떠올리며 무슨 뜻인지 되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