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9
4화
마현은 다시 마력 속에 잠든 네 가지 기운 중 화염의 기운을 끌어올렸다. 불 계열의 마법이 힘을 과시하기엔 적합했고, 시각적으로도 가장 큰 위력을 보이는 까닭이었다.
‘파이어 레인(Fire rain)이 가장 적합하지만 아직 서클이 뒤따라주지 않아! 하지만 그 효과를 낼 수 없는 건 아니지!’
서클 단전에서 마력을 끌어올린 마현은 파이어 에로우 마법을 중첩시켰다.
“파이어 에로우, 리터레이션(Reiteration)!”
쿠오오오오오!
허공에 뜬 마현을 중심으로 새빨갛게 이글거리는 수많은 불덩이들이 피어올랐다. 그 불덩이들은 곧 길고 뾰족하게 변했다.
마현은 투시 마법으로 웅천각 내에 서성이고 있는 추도영을 발견하고 그가 있는 곳을 위주로 근 오십여 발의 파이어 에로우를 웅천각으로 발사했다.
씨이이익―
쌔애애액―
파이어 에로우는 가늘지만 특유의 뾰족한 파열음을 만들어내며 웅천각 전체를 뒤덮었다.
콰과과광―!
가볍지만 날카로운 파열음과 달리 웅천각에 부딪힌 파이어 에로우는 강렬한 폭음을 만들어냈다.
파이어 에로우가 작렬한 웅천각은 순식간에 불에 휩싸였다.
결국 웅천각은 그 불을 이기지 못하고 삐걱거리기 시작하더니 가장자리부터 우르르 무너져갔다.
콰르르르르―
“으아아악!”
“부, 불이다!”
“사, 사람 살려!”
갑자기 건물이 내려앉자 사람들이 너도나도 비명을 지르며 웅천각에서 빠져나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런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무구를 들고 있는 스켈레톤들이었다.
“누구를 막론하고 모조리 죽여라!”
왕귀진은 냉정하게 명을 내렸다.
그 명에 스켈레톤들의 손은 더욱 무자비하게 움직였다.
서걱!
“크아아악!”
시뻘건 주둥이를 내밀고 모든 것을 집어삼키는 화마에, 새하얀 해골의 스켈레톤, 사방으로 튀어 오르는 피와 살점들.
웅천각의 모습은 한 마디로 지옥도, 그 자체였다.
콰과광!
그때, 한 폭의 지옥도 안쪽에서 폭음이 터졌다.
마현의 명에 의해 잠시 물러났던 회회혈마를 비롯한 장로들은 몸을 숨긴 채 웅천각을 지켜보고 있었다.
마현이 어떻게 추도영의 목을 벨 것인지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던 까닭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마현의 무위를 보고 싶은 것이다.
마현에게서 그 무엇보다 강렬한 공포를 느꼈지만 정작 마현의 힘은 보지 못했다. 그렇기에 마현의 명에도 불구하고 몰래 기척을 숨긴 채 웅천각이 잘 내려다보이는 곳에 몸을 숨기고 장로들은 눈을 빛내고 있었다.
콰과과광!
마현의 몸 주위에 생긴 불덩이들이 웅천각으로 향하는 문과 담장을 부숴 버렸다.
“헙!”
너무 놀라 헛바람을 들이마셨던 회회혈마는 ‘아차!’하는 표정을 지으며 재빨리 손으로 자신의 입을 틀어막았다. 비단 회회혈마뿐만이 아니었다. 삼안혈화도, 역천마도도 회회혈마와 별반 다르지 않은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그건 시작이었다.
셋은 지금 자신들이 꿈을 꾸는 것인지 착각할 정도로 공황에 빠져들었다.
듣도 보도 못한 골강시들이며, 마현의 허공답보, 거기에 조금 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렬한 불덩이, 화우(火雨).
타다닥, 타다다닥!
회회혈마는 공포감에 다시 물들었다. 떨리는 턱은 이빨들을 부딪치게 만들었다. 그는 애써 정신을 차리며 겨우 손으로 떨리는 턱을 잡았다.
타닥, 타다닥!
하지만 어금니가 부딪히는 소리는 멈추지 않았다. 턱을 잡은 손에 힘을 더 주었지만 매한가지였다. 자세히 들어보니 그 소리는 자신의 것이 아니었다. 의아해하며 고개를 돌리니 삼안혈화가 턱을 바르르 떨며 어금니를 부딪치는 소리를 내고 있었던 것이다.
‘내, 내 생전에 저런 무공이 있다는 소리를 듣지 못했다.’
저 정도의 무력이 한 개인에게 집중된다고 생각하니 끔찍했다.
마법에 대해 모르는 세 장로는 마현의 모습이 마치 무신의 재림이 아닐까 생각이 들 정도로 충격에 휩싸였다. 그 충격의 가장 밑바탕에는 마현에 대한 공포가 짙게 깔려 있음은 두말 할 필요가 없었다.
추도영은 웅천대를 보내고 알 수 없는 불안감을 느꼈다. 그 불안감으로 인해 추도영은 제자리에 앉질 못하고 방 안을 서성거렸다.
‘왜 이렇게 초조한 거지?’
추도영은 어느새 손바닥 안에 땀이 흥건하게 차있음을 깨달았다. 추도영은 옷에 손바닥을 문질러 땀을 닦았다.
‘분명 실패할 수가 없는 작전이다. 그런데 뭐란 말인가? 이 초조함은…….’
“주, 주군!”
그때였다.
지붕에서 웅천사검의 수좌인 수검이 아래로 떨어지며 모습을 드러냈다.
“무슨 일이냐?”
초조함을 반영하듯 추도영의 목소리에는 짜증이 깊게 묻어나왔다.
“지금 이, 이곳으로 사공자가 흑풍대를 이끌고 오고 있다 합니다.”
“뭐야?”
추도영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시, 실패한 건가?’
추도영은 입술을 앙다물며 주먹을 으스러지도록 말아 쥐었다.
‘일단 이 위기를 넘겨야 한다.’
그렇게 생각한 추도영은 다급하게 수검을 내려다보았다.
“지금 동원할 수 있는 전력은 몇이지?”
사실상 추도영이 거느릴 수 있는 공식적인 무력단체는 웅천대가 전부였다.
“웅천사검까지 합해 스물한 명입니다, 주군.”
추도영은 무영대처럼 남들의 이목을 숨긴 채 은밀히 마인들을 키우고 있었다. 그 마인들은 무영대처럼 외부에 그 실체가 드러나지 않은 이들이 아니라 바로 웅천각 내에 소속된 하인들이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하인들로 변장시킨 마인들이었다.
‘충분하지는 않지만, 적어도 최악의 상황만큼은 면할 수 있겠군.’
“그들을 집합시켜라.”
“명!”
추도영의 명에 수검이 답할 때였다.
콰과광!
강렬한 폭음이 들렸다. 그 폭음은 은은하게 땅을 뒤흔드는 파장을 동반했다.
‘벼, 벽력탄?’
사실 추도영은 벽력탄 이외에 다른 것은 생각하지 못했다.
‘어떻게 벽력탄을?’
추도영의 눈이 반짝였다. 그때서야 염왕대와 웅천대가 왜 실패했는지 어느 정도 이해가 되었다.
“수검, 이…….”
콰과과과광!
강렬한 폭음이 이번에는 웅천각 건물을 요란하게 뒤흔들었다. 그 충격에 웅천각은 비명을 지르며 몸을 비틀었고, 그로 인해 지붕에서 먼지가 후르르 쏟아져 내렸다.
그것을 채 파악하기도 전에 추도영은 불타오르는 지붕을 봐야 했다.
“이익!”
자신의 서실 지붕까지 번진 불을 보며 추도영은 이를 악물었다.
콰과광!
다시 한 번 폭음이 들렸고, 지붕의 서까래가 불길에 휩싸이며 추도영이 서 있는 머리 위로 무너져 내렸다.
“이, 이놈! 마현!”
추도영은 머리 위로 떨어지는 서까래를 향해 강기를 담아 일장을 내질렀다.
퍼벙!
서까래는 힘없이 산산이 부서지며 사방으로 비산했다. 조각난 서까래는 불과 함께 오히려 서실을 더욱 맹렬하게 불태우기 시작했다.
“이검, 삼검!”
추도영 앞으로 웅천사검 중 이미 죽은 사검을 제외하고 셋 모두 모습을 드러냈다.
“길을 뚫어라. 지금 마현의 목을 따러간다!”
“명!”
수검이 앞으로 나서며 벽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콰광!
수검의 검에 벽은 힘없이 무너졌다.
추도영과 웅천사검 셋은 동시에 무너진 벽 구멍 사이로 몸을 날렸다.
그런 그들을 가장 먼저 맞이한 것은 스켈레톤들이었다.
“요, 요물?”
수검이 가장 먼저 튀어나갔다. 그러자 이검과 삼검 역시 그 뒤를 이어 몸을 날려 추도영을 보호했다.
“흐음!”
스켈레톤의 뻥 뚫린 동공 사이로 사이하게 비치는 기광에 수검은 어금니를 꽉 깨물며 검을 틀어잡았다. 당장이라도 덤벼들 것처럼 사기를 내뿜던 골강시들이 무슨 이유에서인가 반 장가량 뒤로 물러났다.
“이렇게 다시 볼 줄 몰랐군.”
이어 들려온 목소리.
추도영은 마현의 목소리임을 알아차리고는 눈을 부릅떴다.
툭!
그때 둥근 물건이 하늘에서 툭 떨어졌다.
그것은 데구르르 굴러 추도영의 발 앞에서 딱 멈췄다. 바로 웅천대주의 머리였다.
“고맙군. 이렇게 너를 죽일 수 있게 만들어 줘서.”
추도영은 반사적으로 목소리가 들려오는 방향으로 고개를 들었다. 파란 하늘 위에 떠 있는 마현을 발견한 추도영의 눈동자가 급격히 커졌다.
마현은 천천히 허공을 밟으며 추도영 앞으로 내려왔다. 추도영은 자신을 향해 차갑게 입언저리를 뒤튼 마현을 보자 저도 모르게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입술에서 터진 피가 새하얀 윗니를 붉게 물들였다.
“흑풍대주.”
“예, 주군.”
“공간을 벌려 자리를 만들라. 대공자의 목을 직접 베고 싶다!”
“명!”
왕귀진이 명을 받드는 순간, 추도영과 웅천사검은 알지 못했지만, 그들을 감싼 스켈레톤들 중에 후미에 서 있던 삼십여 구가 땅 아래로 스며들었다.
드득 드드득!
그들은 이내 추도영과 웅천사검 사이로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갑작스럽게 땅에서 튀어 올라온 스켈레톤들은 곧 웅천사검을 몰아쳐 추도영과의 거리를 만들었다. 웅천사검은 추도영을 보호하기 위해 조금이라도 다가가려고 검을 휘둘렀지만 소용없었다.
제아무리 무력이 월등하다고 해도 웅천사검 한 명 당 백 구의 스켈레톤이 몰려드는 것을 막을 수는 없었다. 몰리고 또 몰린 웅천사검의 머리 위로 결국 스켈레톤이 덮쳤다.
“으아악!”
“크아아악!”
웅천사검의 비명이 들려오자 마치 흥겨운 음악이라도 듣는 것처럼 마현은 섬뜩함이 담긴 화사한 미소를 지으며 추도영을 쳐다보았다.
“멋지지 않나? 내 수하들의 모습이.”
그런 마현을 보며 추도영은 온몸을 바르르 떨었다.
무서워서가 아니었다. 짙은 패배감과 치욕을 느낀 것이다.
“네놈의 목숨만은 반드시 끊어 버리고 말 것이다.”
이제 모든 것이 끝났다고 느낀 추도영이었다.
스르릉.
추도영은 다짜고짜 마현을 향해 검을 뽑으며 달려들었다.
“훗! 블링크!”
마현은 코웃음을 치며 추도영이 서 있던 장소로 순간이동 했다.
“윈드 커터, 리터레이트!”
마현은 수십 발의 바람의 칼날, 윈드 커터를 추도영의 등을 향해 날렸다.
쐐애애애애―
마현의 기척을 느끼며 뒤로 돌아서는 추도영의 눈동자를 새하얀 강기로 만들어진 검사(劍絲)가 가득 채우고 있었다.
생각 이상으로 엄청난 수의 검사들을 모두 막을 수는 없었다. 추도영은 이를 악물며 검을 휘둘러 주요 사혈과 신체 몇 군데만을 보호했다.
사각, 사각, 사가각!
추도영의 팔과 다리, 그리고 옆구리에 자잘한 검상들이 만들어졌다. 깊은 상처는 아니었다.
사실 마현이 노린 것 역시 그것이었다. 단번에 치명타를 주어 싸움을 일시에 끝내는 것이 아니라 작아도 수많은 상처를 추도영의 몸에 입힐 생각이었다.
“이공자의 얼굴에 난 상처를 기억하나? 그 상처가 왜 아물지 않았는지 알려주지.”
마현의 몸에서 시커먼 마기가 뿜어져 나왔다.
“운드 애그러베이션!”
마현은 추도영의 몸에 난 검상에 상처악화 마법을 걸었다.
푸하아악!
상처들이 더욱 깊고, 크게 갈라지며 피가 분수처럼 뿜어져 나왔다.
“크악!”
생각지도 못한 고통에 추도영은 충격을 받았다. 그 충격에 추도영의 몸이 휘청거렸다.
“크으으으.”
고통에 가득 찬 신음을 흘리면서도 추도영은 마현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흡사 야차처럼 독기 어린 눈으로 마현을 노려보며 검을 들었다.
푸학!
잠시 지혈이 되는가 싶던 추도영의 몸에서 다시 한 번 피가 뿜어져 나왔다.
후우우웅!
동시에 추도영의 검에서 강기가 만들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