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8
3화
기건양은 순식간에 웅천대주가 죽고, 웅천대가 몰살당하는 모습에 눈이 튀어나올 만큼 놀랐다.
더욱이 웅천대를 몰살시킨 것은 흑풍대도 아니었다. 생전 듣도 보도 못한 새하얀 해골들이었다. 기건양은 저도 모르게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가, 강시인가……? 그것도 뼈로 만들어진 골강시…….’
그가 알고 있는 강시와 완전히 다른 모습이었지만 달리 강시 말고는 설명할 길이 없었다. 순간 기건양의 머릿속으로 회회혈마의 말이 스쳐지나갔다.
“무슨 일이 있어도 사공자와 부딪히지 말게. 그분에게 충성을 맹세한다면 더 좋고……. 어차피 오늘 보게 되겠지만…… 짧은 내 식견으로 보건대 교에서 가장 무서운 이는 바로 사공자일 거네.”
그 말을 하던 회회혈마의 표정이 불현듯 떠올랐을 때였다.
“으아아악!”
“크아악!”
웅천대의 비명소리가 관도를 가득 채웠다.
삼백 구의 골강시 속에 웅천대가 아닌 염왕대가 서 있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자 몸이 으스스 떨려왔다.
하지만 그 생각은 오래가지 않았다.
골강시의 수는 어림잡아 삼백 정도였다. 그리고 염왕대는 오십 명이었다.
수적 열세가 있었지만 생각보다 골강시는 그리 강해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저 괴물들은 죽지 않는다.
더욱이 웅천대를 포위하고 있는 흑풍대는 아직 움직이지도 않은 상태였다.
백전백패!
웅천대처럼 쉽게 무너지지 않겠지만 결국 골강시와 달리 피와 살로 이루어진 살아 있는 사람인 염왕대는 시간이 지날수록 지쳐 죽어나갈 것이 분명했다.
무참히 죽어나가는 염왕대의 모습이 머릿속에 그려지자 기건양의 얼굴은 새하얗게 질려버렸다.
기건양은 애써 그 생각을 털어버리며 마현을 쳐다보았다.
회회혈마의 말처럼 교에서 가장 무서운 이는 바로 마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주시하던 마현이 고개를 드는 모습이 보였다. 공교롭게도 그의 눈은 정확히 자신이 숨어 있는 곳을 쳐다보고 있었다.
분명 그가 서 있는 곳에서는 자신이 굳이 몸을 숨기지 않더라도 보이지 않을 텐데 말이다.
기건양은 순간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기건양이라고 했나?”
그때 사공자 마현의 목소리가 기건양의 머릿속을 울렸다.
기건양은 벼락이라도 맞은 것처럼 몸을 부르르 떨었다. 마현은 확실히 자신을 보고 있었던 것이다.
저 멀리 떨어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바로 앞에서 자신을 꿰뚫어 보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마현의 시선이 강하게 느껴졌다.
기건양은 너무 놀라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기 대주라 부르지. 차후 이장로와 함께 한 번 찾아오라.”
그 말을 끝으로 마현은 기건양이 몸을 숨긴 곳에서 시선을 돌렸다. 참았던 숨이 그제야 터져 나오며 살 것 같았다.
『대주님.』
그때 1부대주의 전음이 들려왔다.
기건양은 정신을 차리며 명했다.
『……돌아간다!』
『명!』
염왕대와 함께 조용히 자리를 벗어나면서 기건양은 다시 한 번 마현과 흑풍대를 향해 눈길을 주었다.
* * *
회회혈마는 내성 입구 앞에서 불안한 듯 서성거리고 있었다. 그의 마음을 대변하는 듯 양 손바닥이 땀으로 흥건했다.
“정신 사나워요.”
그와 함께 서 있던 삼안혈화가 신경질적인 목소리로 소리쳤다. 회회혈마는 여전히 서성거리며 그런 삼안혈화를 노려보았다.
“그만들 하시오.”
내원 벽에 몸을 기대고 팔짱을 낀 채 눈을 감고 있던 역천마도가 조용히 둘을 말렸다.
“크흠!”
“흥!”
둘은 동시에 불쾌한 음성을 터트리며 고개를 홱 돌렸다.
“후우…….”
회회혈마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다시 성문을 힐끔 내다보았다. 불안함에 갈증을 느꼈던지 입을 쩝쩝 다시며 시선을 거두던 회회혈마의 고개가 별안간 성문 쪽으로 홱 돌아갔다.
“오셨다!”
그리곤 육중한 몸을 이끌고 바람보다 더 빠르게 내성 밖으로 뛰쳐나갔다.
눈을 감고 있던 역천마도 역시 눈을 번쩍 뜨며 벽에서 떨어졌다. 삼안혈화와 눈이 마주친 둘은 동시에 내성 밖으로 달려 나갔다.
“주군.”
앞서 뛰어간 회회혈마는 마현 앞에 이미 허리를 깊숙이 숙이고 있었다. 삼안혈화는 그런 회회혈마를 잠시 노려보다 이내 자신도 허리를 숙였다.
“어디 상하신 데는 없으십니까?”
“여기서 나를 기다린 것인가?”
“예, 주군.”
마현은 고개를 들어 내성 저쪽 깊숙한 정원을 살펴봤다.
“가신 일은 잘 되었습니까?”
“이걸 말씀하시는 겁니까? 크크크.”
회회혈마의 질문에 마현의 뒤에 있던 왕귀진이 핏물이 뚝뚝 떨어지는 머리를 들어올렸다. 회회혈마는 그제야 안도의 미소를 조용히 머금었다.
“다른 이들은……?”
혹 놓친 이들이 있을까 싶어 회회혈마는 마현의 눈치를 살피며 조심스럽게 왕귀진에게 물었다.
“모두 죽였습니다.”
왕귀진이 눈짓으로 뒤를 가리켰다.
회회혈마뿐만 아니라 삼안혈화와 역천마도가 일제히 고개를 돌려보니 흑풍대원들의 손에 하나같이 핏물이 뚝뚝 떨어지는 머리가 들려 있었다.
회회혈마는 설마 저렇게 수급을 들고 올지 몰랐던지 놀란 듯 눈을 깜빡이며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추도영은?”
마현의 물음에 화들짝 정신을 차린 회회혈마는 내원(內園)을 가리키며 대답했다.
“지금 웅천각에 있습니다.”
“웅천각이라…….”
마현은 시선을 들어 웅천각이 있는 방향을 쳐다보았다. 그리고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구름 한 점 없는 새파란 하늘 위에 태양만이 홀로 떠 있었다.
“피로 물들이기에 더할 나위 없는 하늘이군.”
마현의 차가운 목소리에 회회혈마를 비롯한 셋은 흠칫 몸을 떨었다.
“남들 이목에 띄어봐야 좋을 것 없으니 셋은 일단 빠지도록.”
“예, 주군.”
마현은 셋에게서 시선을 떼며 왕귀진을 불렀다.
“흑풍대주.”
“예.”
“가자! 교의 율법에 따라 피의 값을 받으러.”
“충!”
세 장로는 조용히 옆으로 자리를 비켜섰다.
“저녁에 보지.”
세 장로는 조용히 허리를 숙이며 마현의 명을 받아들였다. 마현은 살짝 고개를 까닥이곤 웅천각이 있는 곳을 향해 힘차게 발걸음을 내딛었다.
그런 마현의 뒤로 짙은 마기와 함께 살기가 피어올랐다. 흑풍대는 피가 뚝뚝 떨어지는 웅천대원들의 머리를 들고 마현을 따라 웅천각으로 향했다.
* * *
웅천각으로 향하는 마현과 흑풍대의 소식은 순식간에 마교 안으로 퍼져나갔다.
그 소식을 가장 먼저 접한 것은 사공찬이었다.
“뭐라고 했나?”
사공찬의 말에 독혈대의 대원 하나가 다시 답했다.
“현재 사공자 흑풍마군이 흑풍대를 이끌고 웅천각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그거 말고!”
“흑풍대의 손에 웅천대의 수급이 들려 있었습니다.”
“웅천대의 수급이?”
“그렇습니다, 주군.”
수하의 대답에 사공찬은 잠시 미간을 좁히더니 이내 웃음을 터트렸다.
“크하하하하하!”
사공찬은 대충 상황이 짐작이 갔다.
“마현이 북해빙궁을 배웅해 주고 바로 교로 돌아온 것이 맞나?”
“소신이 알기로는 그러하옵니다.”
“그렇다면 그사이 대공자가 웅천대를 시켜 마현과 흑풍대를 기습했다는 소리인데……. 마현이 추도영에게서 그 빚을 어떻게 받을지 궁금하군.”
혼잣말하듯 중얼거리던 사공찬이 이내 다시 명했다.
“사공자에게서 시선을 떼지 말고 앞으로 일어나는 모든 일을 빠짐없이 보고하라.”
“명!”
독혈대원이 명을 받고 방을 빠져나갔다.
사공찬은 활짝 열린 창문으로 걸어가 밖을 쳐다보았다.
‘능구렁이 같은 추도영이 그리 쉽게 일을 벌이지 않았을 텐데……. 분명 겉으로 보이지 않는 그 무언가가 있는 게 틀림없어.’
사공찬의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 * *
저벅, 저벅, 저벅!
마현이 흑풍대를 이끌고 웅천각으로 가는 발자국 소리는 숨죽인 마교 내원의 정적을 조용히 뒤흔들고 있었다.
웅천각으로 향하는 작은 길.
지나가는 이 하나 없고, 얼굴 하나 내미는 이도 없었다.
하지만 마현은 확연히 느끼고 있었다. 숨을 죽인 채, 몸을 숨긴 채 지금 자신과 흑풍대를 지켜보고 있음을.
‘이 기회에 본교 모든 마인들이 알게 될 것이다. 나 마현, 카칸에게 이빨을 드러낸 자의 최후가 어떤지를!’
웅천각이 눈에 들어오자 그저 차갑게만 가라앉아 있던 마현의 눈에서 살기와 함께 마기가 폭사되었다. 마현의 살기와 마기에 반응한 것일까. 마현의 뒤를 따르던 흑풍대에서도 진득한 마기와 함께 살기가 뿜어져 나왔다.
투둑 투둑 툭툭툭.
거기에 웅천대의 수급에서 떨어진 핏자국으로 인해 주변이 점점 붉게 물들어갔다.
웅천각을 둘러싸고 있는 낮은 담장 너머로 웅천각이 눈에 들어왔다.
마현은 걸음을 멈추지 않은 채 양손을 벌렸다.
“파이어 재벌린!”
마현의 손에서 순수한 불로만 만들어진 창(槍)이 만들어졌다.
지이이잉―
단 한 자루가 아니었다.
도합 열 자루의 화창(火槍)이 마현의 양손에서 갈라져 둥실둥실 떠 있었다.
마현의 눈에서 마기가 번쩍였다.
쐐애애애액!
쑤아아아앙!
그 순간 열 자루의 화창이 기염(氣焰)을 토하며 웅천각으로 통하는 문과 그 주위를 둘러싼 담장으로 날아갔다.
콰과과과광!
화창이 담장과 문에 부딪히자 엄청난 굉음과 함께 거대한 불기둥이 솟아올랐다. 이내 뜨거운 열기가 더 뜨거운 바람을 만들어냈다.
“가라!”
마현의 얼음장 같은 명이 떨어지자 흑풍대는 기다렸다는 듯이 몸을 날렸다.
주위로 흩어진 흑풍대는 원진을 그리며 웅천각을 에워쌌다.
서른 명의 흑풍대가 웅천각을 완전히 에워쌀 수는 없었다. 하지만 흑풍대는 서른 명이 아니었다. 흑풍대의 몸에서 칠흑 같은 마기가 뿜어져 나왔고, 그 마기는 땅속으로 스며들었다.
드륵, 드르르륵!
다시 땅거죽이 들썩거렸다.
-캬캬캬캬캬!
-캬르르르!
땅속에서 음산한 웃음이 터져 나왔다.
새하얀 뼈들이 땅속에서 툭툭 튀어나오더니 이내 스켈레톤이 제 모습을 갖추며 모습을 드러냈다.
도합 삼백삼십!
충분히 웅천각을 에워싸고도 남는 수였다.
마현은 흑풍대가 웅천각을 완전히 에워싸는 것을 보며 허공으로 몸을 날렸다.
“플라이(Fly)!”
마현은 마치 허공답보를 시현하는 것처럼 허공에 발을 내딛었다. 그리고 계단을 오르듯 신형을 허공으로 띄워 웅천각이 내려다보이는 하늘로 올라갔다.
마현은 서클 단전에서 마력을 모두 끌어올렸다.
아직 5서클의 흑마법사라 대규모 공격 마법을 펼칠 수는 없지만 상관없었다. 전보다 더 진하고 풍부한 마력이 뒷받침하고 있었던 까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