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7
2화
진지한 기건양의 얼굴 때문인지 대답하는 부대주들의 표정이 자못 심각했다.
기건양은 고개를 끄덕이며 관도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관도에서는 마현이 발길을 멈추고 북해빙궁을 배웅하고 있었다.
『기 대주.』
그때 웅천대주의 전음이 들려왔다. 분위기로 보아 거사를 시작하자는 의미인 듯했다.
기건양은 재빨리 말을 가로챘다.
『우리는 잠시 한 걸음 물러나 있겠소.』
『무, 무슨 뜻이오?』
갑작스런 기건양의 말에 웅천대주는 그야말로 당황스런 모습이 역력했다. 그의 얼굴이 순식간에 딱딱하게 굳어졌다.
『별 뜻이 있는 건 아니오. 다만 우리보다 웅천대의 손에 해결되는 것이 더 보기 좋을 거란 생각이 들어서 그렇소. 먼저 나서시오, 우리는 그저 거들 테니까.』
기건양의 설명에 웅천대주는 그제야 표정을 풀며 나직하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중요한 이때 갑자기 염왕대가 몸을 돌리는 것이 아닌가 내심 걱정했는데 다행이었다.
웅천대주는 크게 안도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 생각해 주시니 감사할 따름이오. 내 이 빚은 꼭 갚겠소.』
사실 웅천대주는 은근히 염왕대를 신경 쓰고 있었다.
웅천대의 입장에서 다른 것은 몰라도 마현과 흑풍대주의 목만은 반드시 베어야 했다.
물론 가장 중요한 것은 마현과 흑풍대주의 목을 누가 베는 것이냐보다 반드시 베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거사가 끝난 후 주군 앞에 섰을 때는 다르다.
그런 심정을 기건양이 알아주니 웅천대주는 마음이 한결 놓였다.
그러는 사이 마현의 배웅은 거의 끝나가고 있었다.
웅천대는 조용히 검자루에 손을 올렸다.
곧 북해빙궁 사절단은 자리를 떠났고 관도 위에는 마현과 흑풍대만이 남았다. 그리고 잠시 후, 사절단의 모습이 관도에서 완전히 사라지자 마현과 흑풍대가 천산으로 몸을 돌렸다.
스릉!
그 순간 웅천대주는 날카로운 눈빛을 하고서 검을 뽑아들었다.
“쳐라!”
살기가 가득 담긴 일갈이 웅천대주의 입에서 터져 나오고 웅천대가 기다렸다는 듯이 몸을 날렸다.
웅천대주는 염왕대주 기건양과 눈빛을 교환한 후 웅천대원들을 따라 관도로 뛰어내렸다.
순식간에 몸을 드러낸 웅천대는 살기를 내뿜으며 마현과 흑풍대를 완전히 에워쌌다.
웅천대주는 싸늘한 눈빛으로 마현을 노려보았다.
그러자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마현이 입가를 실룩이며 그를 향해 돌아섰다.
“이제 시작이군.”
당황한 얼굴이 아니었다.
오히려 여유롭고 느긋해 보이기까지 했다.
‘뭐, 뭔가 잘못되었다.’
순간 불길한 생각이 웅천대주의 머릿속을 채웠다. 급히 고개를 돌려 주위를 살폈다.
자신들의 뒤를 따라 나타나야 할 염왕대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흑풍대주!”
그런 웅천대주의 귀에 마현의 차가운 목소리가 들렸다.
“예, 주군!”
왕귀진이 우렁찬 목소리로 대답했다.
“저들을 모조리 죽여라!”
“충!”
왕귀진의 대답과 동시에 흑풍대원들이 몸을 돌려 자신들을 둘러싼 웅천대와 마주섰다. 웅천대를 쳐다보는 흑풍대원들의 표정은 하나같이 싸늘했다.
“스켈레톤, 소환!”
“일어나라, 귀여운 아이들아! 소환!”
흑풍대원들의 몸에서 마기가 뿜어져 나왔다. 마기는 한순간에 주위를 휘감았다.
투둑 투둑 그르르르륵!
이상한 소리가 마현과 흑풍대를 에워싼 웅천대를 둘러싸기 시작했다.
“헙!”
“헉!”
당연히 그 소리에 반응하며 뒤로 물러나던 웅천대원들은 두 눈을 부릅뜨며 헛바람을 들이마셨다.
땅거죽이 불쑥 튀어 오르더니 새하얀 뼛조각들이 흙바닥을 뚫고 올라오는 것을 본 탓이다.
-낄낄낄낄낄.
-킬킬킬킬!
-먹이다! 먹이! 킬킬킬!
음산한 목소리가 뚜렷한 방향 없이 사방에서 들려왔다.
후드드득.
흙덩이가 떨어지는 소리와 함께 새하얀 뼈로만 만들어진 해골들이 땅속에서 튀어나왔다. 검이며, 도며, 창을 든 삼백의 새하얀 스켈레톤이 웅천대를 에워쌌다.
“사, 사술이다!”
“으득, 으드득!”
처음 보는 괴이한 광경에 웅천대원들은 공포를 느끼며 몸을 가늘게 떨었다.
아무것도 없는 맨땅에서 사기를 내뿜는 듣도 보도 못한 존재들이 일이십도 아니고 무더기로 나타났으니 어찌 보면 당연한 반응이었다.
아마 스켈레톤이 아닌 보통의 무인들이었다면 웅천대가 이처럼 당황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죽여라!”
흑풍대주 왕귀진의 살기 어린 명이 떨어졌다.
삼백의 스켈레톤이 저마다 무기를 날카롭게 세우며 웅천대를 향해 서서히 다가가기 시작했다.
“모두 정신 차려라! 한낱 골강시일 뿐이다!”
웅천대주는 입술을 깨물며 목소리에 내력을 담아 소리쳤다. 그 소리에 우왕좌왕하던 웅천대원들이 조금씩 정신을 차렸다.
-낄낄낄.
웅천대주는 보란 듯이 검을 들어 음산한 웃음을 내뱉으며 다가오는 스켈레톤 한 구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빠각!
너무나도 쉽게 검이 스켈레톤의 몸을 갈랐다.
후드드득!
스켈레톤은 허무할 정도로 쉽게 부서지며 바닥으로 무너졌다.
“보아라! 아무것도 아닌 골강시들이다!”
웅천대주는 다시 한 번 소리치며 검을 들어올렸다. 자신의 일검과 호통에 대원들이 더욱더 정신을 차릴 것이라 여겼다.
하지만 결과는 그의 예상과는 너무나도 달랐다. 대원들이 하나같이 눈동자를 파르르 떨며 입을 벌리는 모습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 그들의 시선은 웅천대주를 넘어 등 뒤로 향해 있었다.
웅천대주는 어금니를 꽉 깨물며 급히 돌아섰다.
“헉!”
뒤로 고개를 돌리는 순간 웅천대주는 눈이 튀어나올 정도로 크게 뜨며 헛바람을 들이마셨다.
산산이 부서진 뼈 조각들이 스멀스멀 모이더니 다시 완벽한 해골의 모습으로 조립되고 있었던 것이다. 더구나 그게 끝이 아니었다.
-낄낄낄.
다시금 완전한 모습을 갖춘 스켈레톤은 처음처럼 음산한 웃음을 터트리며 그들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이익!”
웅천대주 역시 음산한 기운을 내뿜는 스켈레톤의 모습에 적지 않은 공포심을 느꼈지만 그런 마음을 밖으로 내보일 수 없었다.
웅천대주는 눈빛을 무겁게 굳히며 다시 몸을 일으킨 스켈레톤을 향해 몸을 날리려 했다.
‘응?’
하지만 그는 마음과 달리 앞으로 튀어나가지 못했다. 땅을 박찰 오른 다리를 무엇인가가 꽉 붙들고 있었기 때문이다. 고개를 내려 보니 땅속에서 새하얀 뼈로 만들어진 손목이 튀어나와 그의 오른 발목을 잡고 있는 것이 보였다.
“갈! 이 요물들이!”
웅천대주는 일갈을 터트리며 자신의 발목을 잡은 뼈를 자르기 위해 검을 들어올렸다.
그 순간이었다!
푹 푹 푹!
십여 개의 뼈들이 땅을 뚫고 올라와 웅천대주의 다른 발목까지 붙들었다.
-내 먹이야, 먹이!
-내꺼야, 내꺼! 낄낄낄!
그렇게 발이 묶이자 주위에 있던 십여 구의 스켈레톤이 웅천대주를 향해 달려들었다.
“이야압!”
쐐애애액―
웅천대주는 평소보다 더 큰 기합을 지르며 검을 휘둘렀다.
퍼석! 파각!
일 검에 다섯 구의 스켈레톤이 산산이 부서졌다. 하지만 웅천대주의 눈동자는 조금 전보다 더 큰 공포로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부서진 다섯 구의 스켈레톤이 다시 뼈마디가 맞물리며 몸을 일으키고 있었던 것이다.
“흐아압!”
웅천대주는 다시금 소리치며 검을 휘둘렀다.
쑤아아아악―
퍼석! 서거거걱!
다시 몸을 일으킨 다섯 구의 스켈레톤을 포함해 십여 구의 스켈레톤이 단숨에 반 토막이 나 버렸다. 하지만 웅천대주의 눈동자는 더욱 극심한 공포로 무섭게 흔들렸다.
“으, 으으으!”
그때까지도 웅천대주는 땅속에서 튀어나온 손목들이 발목뿐 아니라 허벅지까지 올라와 하체를 온전히 붙든 것도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그가 부르르 몸을 떨며 급히 검을 들어올렸다.
“죽어라, 이 요……!”
순간 웅천대주의 눈동자가 딱 멈췄다. 동시에 번쩍 들어올렸던 검도 공중에서 멈췄다.
자신의 의지로 멈춘 것이 아니었다.
잠시 멈추었던 눈동자가 급격히 요동쳤다. 두려움에 떨리는 그의 눈길이 검을 들고 있는 자신의 손을 더듬었다.
웅천대주의 눈이 튀어나올 듯 부릅떠졌다.
어느 샌가 그의 손에 두 구의 스켈레톤이 매달려 있었던 것이다.
-캬캬캬캬!
-키키키키키!
스켈레톤의 뻥 뚫린 동공에서 시퍼런 안광이 번쩍이는 것이 보였다.
타다다닥!
우두두두두!
그렇게 잠시 틈이 보였다. 스켈레톤들은 그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순식간에 삼십이 넘는 스켈레톤이 웅천대주의 몸을 덮쳤다. 웅천대주의 몸은 그야말로 새하얀 뼈들에게 묻혀 옷자락 하나 보이지 않게 되었다.
그 뼈다귀 속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으아아아악!”
고통을 이기지 못하는 처절한 비명이었다.
동시에 하얀 뼈 사이사이로 시뻘건 피가 튀어 올랐다. 이어 살점도 뜯겨 나왔다.
푹!
뼈다귀 위로 웅천대주의 손이 불쑥 솟아올랐다.
그 손은 허공의 무언가를 잡으려는 듯 꿈틀거리다가 이내 힘없이 꺾였다. 툭 떨어진 그의 손 위로 스켈레톤이 다시 튀어 올랐다.
“흑풍대주.”
그 모습을 보던 마현이 왕귀진을 불렀다.
“예, 주군.”
“웅천대주의 머리를 가져오라!”
“명!”
왕귀진은 즉시 웅천대주를 뒤덮은 스켈레톤을 향해 터벅터벅 걸어갔다.
왕귀진이 온몸에서 사기를 내뿜으며 다가가자 아귀 떼처럼 웅천대주를 덮치던 스켈레톤들의 움직임이 멈췄다.
왕귀진이 가까이 다가갈수록 스켈레톤들은 겁을 먹은 듯 우르르 뒤로 물러났다.
“헙!”
“크흑!”
스켈레톤이들이 일제히 물러나고 난 자리에는 갈가리 찢겨진 웅천대주의 처참한 시신이 있었다.
그 잔혹한 광경에 웅천대원들의 입에서 저마다 공포에 찬 비명들이 터져 나왔다.
왕귀진은 허리에 찬 검을 뽑아들었다. 그리고 단칼에 웅천대주의 목을 잘랐다.
서걱!
왕귀진은 피가 뚝뚝 떨어지는 웅천대주의 머리를 들고 마현에게로 갔다.
“주군, 가져왔습니다.”
왕귀진은 공손히 두 손으로 웅천대주의 목을 마현에게 바쳤다.
“수고했다.”
마현은 그 머리를 부대주인 철용에게 넘겼다.
“필요한 것을 얻었으니 한 놈도 빠짐없이 모조리 죽여라!”
“명!”
왕귀진이 대답하기가 무섭게 사이한 음성들이 주변을 메웠다.
-키키키키키!
-캬캬캬캬캬!
“이제 너희들의 시간이다! 죽여라!”
왕귀진의 명이 떨어지자 스켈레톤들이 각자의 무기를 번쩍 들어올리며 일제히 웅천대를 덮쳤다.
“으아아악!”
“사, 사람 살려!”
“크아아아!”
삼백 구의 스켈레톤이 삼십의 웅천대를 한순간에 뒤덮어 버렸다.
웅천대원 누구 하나 제대로 된 비명을 지른 자가 없었다. 짧은 단발마를 끝으로 더 이상 인간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다만 붉은 피만이 땅바닥을 적시며 퍼지고 있을 뿐이었다.
마현은 그 모습을 지켜보다 고개를 들어 관도 옆으로 뻗은 숲속 한곳을 쳐다봤다.
마현은 기건양이 몸을 숨기고 있는 곳을 정확하게 직시하며 입을 열었다.
“기건양이라고 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