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흑마법사 무림에 가다-74화 (74/351)

# 74

24화

마교 교주 사공소의 환갑 연회는 화려했다.

풍악이 그치질 않았고, 보기 드문 진미들과 명주들이 끊임 없이 나왔다. 하지만 정작 사람들이 가장 흡족함을 느낀 것은 귀나 입이 아닌 눈이었다.

마주전 앞 넓은 광장 중앙에 마련된 거대한 비무대에서 벌어지는 마인들의 무술 시범이 너무도 흥미진진했던 것이다.

물론 눈이 즐거운 것은 마교의 마인들에게만 국한된 건지도 모른다. 정파를 대표하는 무림맹 관계자들의 안색은 그다지 밝지 않았다.

그렇게 장내에 흥이 최고조로 달아올랐을 때 흥에 취한 사공소가 말문을 열었다.

“누가 본좌의 눈을 즐겁게 해줄 것인가?”

“교주님.”

허진이었다.

“좋은 생각이라도 있는 겐가?”

사공소의 질문에 허진이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아직 장막에 가려진 사공자 흑풍마군의 실력을 견식해 보는 것이 어떨지요.”

허진의 대답에 사공소의 눈빛이 순간 반짝였지만, 그는 이내 태연한 표정으로 말했다.

“부교주, 이 사람. 제자 자랑을 하고 싶은 모양이군.”

“그렇게 되는 건가요?”

허진의 말에 사공소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쁜 생각은 아니군.”

사공소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번에 새로이 마교 공자 자리에 오른 흑풍마군을 소개하겠노라.”

마주전 연회 자리를 가득 채운 군중들의 시선이 한순간 마현에게로 쏠렸다. 사공자에 대한 이야기는 익히 들었지만 사실상 지금 이 자리는 그 존재를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즉, 교인들이라고 해도 고위 인사들 몇몇을 빼고는 마현을 풍문으로만 들었지 직접 대면한 이는 거의 없었다.

허진이 마현을 힐끗 쳐다보며 전음을 날렸다.

『사냥 준비가 끝났으면 사냥 시작을 알리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구나.』

『스승님.』

『이 자리에서 너의 힘을 교인들에게, 그리고 손님들에게 각인시켜 주거라!』

허진의 말에 마현은 입술을 한일(一)자로 굳게 다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마현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와아아아아!”

“우와아아아아!”

마현이 천천히 거대한 비무장으로 걸음을 옮기자 우렁찬 함성이 터져 나왔다.

그 함성에는 기대와 우려가 섞여 있었지만 현재 공자의 지위와 무공의 정도는 마교의 앞날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는 점에서, 마교인들은 하나같이 열렬히 응원했다.

비무대로 올라간 마현이 손을 살짝 들어올리자 함성이 잦아들며 이내 조용해졌다.

조용함 속에 마현은 포권을 취하며 입을 열었다.

“무림 동도들에게, 그리고 교의 형제들에게 처음으로 인사를 드리겠소. 흑풍마군 마현이오. 교주님의 은혜에 이 자리에 서게 되었소. 내 아직은 가진 힘이 미천하나 마인이 무엇인지 확실히 보여드리겠소.”

“와아아아아!”

“교주님. 천세, 천세, 천천세!”

“마교. 천세, 천세, 천천세!”

마현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다시 함성이 터져 나왔다. 그 함성에 마현은 제자리에서 몸을 한 바퀴 돌며 포권을 취했다. 그렇게 좌중을 둘러보던 마현의 눈에 설린이 보였다. 두 사람의 눈이 마주쳤다.

설린은 마현을 향해 살짝 눈웃음을 지어 보였다.

당연히 함성을 지르는 가운데에서도 사람들의 이목은 설린과 마현에게로 모였다.

상당히 껄끄러운 인사였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설린과 가깝다는 것을 보여줄 필요가 있어 마현 역시 살짝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여 화답했다.

“자네 제자 능력이 대단하군.”

사공소는 짓궂은 표정을 지었다.

“신 역시 제자에게 저런 능력이 있을 줄은 몰랐습니다.”

허진은 무안한 듯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천하의 빙화를 녹여 버리다니 말이야…….”

“…….”

“조만간에 국수를 먹는 거 아닌가?”

“…….”

허진은 마땅히 대답할 말이 없어 그저 어색하게 웃으며 고개만 연신 숙였다.

“좋은 때야. 그렇지 않은가?”

“그렇습니다, 교주님.”

두 사람의 모습을 그렇게 좋게 받아들이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질투와 시기를 보내는 자들도 있었다.

그중 한 사람이 바로 양곽원이었다.

마현을 향해 화사한 웃음을 보이는 설린을 보는 순간 양곽원의 가슴에서 뜨거운 그 무엇이 울컥 솟아올랐다.

머릿속으로 애써 털어냈던 부친 남해태양궁주 양위도와의 대화가 다시 떠올라 머리를 복잡하게 만들었다.

“누가 흑풍마군을 상대로 뜨거운 무위를 뽐내겠는가?”

그때 사공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양곽원은 설린과 마현을 쳐다보며 충동적으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런 자신의 행동을 뒤늦게 깨닫고는 ‘아차!’ 싶었지만 이미 늦었다.

그때는 이미 사람들의 시선이 온통 양곽원에게 쏠려 있었다.

어쩔 수 없이 양곽원은 사공소를 향해 포권을 취하며 허리를 숙였다.

“마교 교인들만 보셔서 심심할 테니 오랜만에 태양궁의 무위도 한 번 보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자네가?”

사공소는 흥미로운 눈빛을 보였다.

비단 그 뿐만이 아니었다. 다른 이들 역시 흥미로운 얼굴로 눈을 빛냈다.

“아직은 미천한 실력이지만 이렇게 후한 대접을 받았으니 초대받은 여러 문파들을 대표해 제가 재롱을 한 번 떨어볼까 합니다.”

“하하하하, 남해태양궁 소궁주의 실력이 미천하다면 어지간한 무림인들은 모두 죽어야겠군.”

흡족한 웃음을 터트리며 사공소는 양곽원의 청을 허락했다.

“허락하네.”

“감사합니다, 교주님.”

양곽원은 다시 한 번 포권을 취한 후 비무대로 훌쩍 뛰어 올라갔다.

“우와아아아!”

“와아아아!”

그 단순한 동작만으로도 경공술에 상당한 조예를 보이자 이내 좌중에서는 함성이 터져 나왔다. 또한 그 함성은 남해태양궁의 무공을 볼 수 있다는 기대감으로 더욱 커져갔다.

비무대로 올라온 양곽원 역시 마현처럼 포권을 취하며 비무대를 한 바퀴 돌았다. 그리고 그 역시 마지막으로 설린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자신이 비무대에 올라왔음에도 마현만을 보고 있는 설린의 모습에 울컥 질투심이 피어올랐다.

아마 조용히 자리를 지키고 앉아 있었다면 그런 감정 정도는 충분히 다스렸을 것이다. 하지만 비무대에 오르면서 묘한 열기에 휩싸인 탓인지 반드시 이기고 말리란 호승심이 불타올랐다.

‘어차피 이렇게 된 이상 꺾으리라.’

그리하면 분명 설린이 자신을 향해서도 저런 화사한 미소를 보여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에 양곽원은 성큼성큼 마현에게 다가갔다.

“이 자리에서 다시 뵐 줄 몰랐습니다.”

자신의 속마음을 감추며 양곽원은 최대한 예의를 갖추어 포권을 취했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마현의 인사에 양곽원은 곁눈질로 설린을 한 번 쳐다보고는 입을 열었다.

“저야말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인사가 끝나자 둘은 뒤로 물러나 거리를 만들었다.

“시작하라!”

사공소의 손이 올라가자 비무를 알리는 북소리가 비무대를 가득 채웠다.

둥. 둥. 둥. 둥. 둥―

“와아아아아!”

“우와아아!”

북소리에 맞춰 흥분된 함성이 터져 나왔다.

‘무공이 칠(七), 마법이 삼(三).’

허진이 해주었던 말을 떠올리며 마현은 서클 단전에서 마력을 끌어올렸다.

마현의 눈에서 지독한 마기가 폭사되었다.

후우웅―

그와 동시에 천천히 가슴으로 올라오는 마현의 손에서 파장이 만들어졌다.

‘수공?’

뜻밖의 무공을 본 탓인지 양곽원의 눈매는 가늘어졌다.

양곽원이 알기로 마현은 사공자지만 부교주 허진의 제자였다. 그 때문에 허진의 독문무공을 이은 제자라면 당연히 검을 뽑을 거라 생각했다.

‘그러고 보니 마 공자가 검을 가지고 다니는 것을 보지 못했군.’

그렇게 마현을 가늠하며 양곽원 역시 내력을 서서히 끌어올렸다.

“흑풍마군이 자네의 진전을 제대로 이어받은 모양이야.”

사실 허진의 독문무공을 제대로 알고 있는 이는 사공소뿐이었다. 그렇기에 오직 사공소만이 마현이 마라독혈수공을 펼치는 것을 보고 고개를 끄덕인 것이었다.

“좋게 봐주시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감사는 무슨…….”

사공소는 턱을 괴며 비무대를 내려다보았다.

“흠……!”

마현은 양곽원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열기에 미간을 살짝 좁혔다.

‘과연 남해태양궁의 양공이라는 소리인가?’

살이 익을 듯한 열기에 마현은 더욱 마력을 끌어올렸다.

파지직!

양곽원의 열기와 마현의 마력이 허공에서 부딪히며 파장이 맞부딪히는 소리가 났다.

과거 같으면 냉기를 담은 얼음 계열의 마법으로 열기를 막았겠지만 지금은 달랐다. 순수한 마력의 힘만으로도 충분히 막을 수 있다는 것을 이제는 알았기 때문이다.

단지 효율적인 면만 보고 따지면 그냥 마법으로 열기를 막는 것이 더 효과적이지만 지금은 경우가 다르다.

마교에 자신의 존재를 확실히 각인시키려면 보다 패도적인 무공을 보여줘야 하기 때문이다.

‘굳이 흑마법까지 드러낼 필요는 없겠지.’

생사를 건 싸움도 아니고 단순히 흥을 돋우기 위한 비무였다.

마현은 허진이 말했던 것처럼 마법을 선보일 생각은 없었다. 물론 그렇다고 마법사인 그가 마법을 쓰지 않을 수는 없다. 다만 마현은 마법을 무공이라는 포장 안에 감추어서 펼칠 생각이었다.

후우웅!

그때 양곽원이 뜨거운 열기가 가득 찬 주먹을 내질렀다.

마현은 마라환영보를 밟으며 뒤로 물러났다.

콰과광!

비무대 바닥이 들썩일 정도로 엄청난 힘의 파장이 몰려왔다.

매끈한 돌을 갈아 만든 비무대 장판석 몇 장이 열기에 의해 검게 그을린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마현은 차가운 눈으로 장판석에서 양곽원을 향해 고개를 들었다.

파밧!

눈이 마주치는 순간 마현은 앞으로 뛰쳐나갔다.

마현은 마라환영보를 밟으며 순식간에 양곽원 앞으로 다가섰다.

후아앙!

그러자 양곽원은 뒤로 한 걸음 물러나며 마현의 가슴을 향해 주먹을 내질렀다. 뜨거운 열기로 인해 옷깃이 누렇게 타며 노린내가 풍겨 올라왔다.

마현은 신형을 옆으로 틀었다.

그러자 양곽원의 몸도 함께 옆으로 틀렸다.

그리고 둘의 눈이 마주치는 순간!

번쩍!

마현의 몸이 바닥 아래로 푹 꺼졌다.

아니 양곽원의 눈에는 그렇게 보였다.

“아이스 볼(Ice ball)!”

마현은 아이스 볼, 빙구(氷球)를 만들었지만 양곽원에게 날리지 않았다.

쿠아아앙!

아이스 볼을 손 안에 말아 쥔 채 마라독혈수공의 한 초식으로 공격해 들어갔다.

“헙!”

양곽원은 헛바람을 들이마시며 양팔을 예(乂)자 모양으로 교차시켜 마현의 공격을 방어했다.

쾅!

폭음과 함께 양곽원의 신형이 뒤로 한 자가량 주르륵 밀렸다.

후득 후득 후드드득!

마현과 양곽원 사이에 자그만 얼음 알갱이들이 마치 우박처럼 비무대 위로 떨어졌다.

쩌저적!

다시 신형을 세우는 양곽원의 두 팔은 마치 북해빙궁의 빙공에 맞은 것처럼 새하얀 얼음으로 뒤덮여 있었다. 남들에게는 보이지 않았지만 양곽원이 입술을 지그시 깨무는 모습이 마현의 눈에는 보였다.

투둑 투둑 툭툭툭!

양곽원의 두 팔을 감싼 새하얀 얼음들이 순식간에 녹으며 바닥에 떨어졌다.

“마라독혈수공이 빙공 계열이었나? 본좌는 몰랐는걸.”

사공소는 흥미로움이 가득 담긴 눈동자를 반짝이며 말했다.

“신은 마라독혈수공을 빙공으로 가르친 적이 없습니다. 다만 하나를 가르쳐 주면 열을 익히는 제자라…….”

허진 역시 속으로 어느 정도 놀랐지만 워낙 마현의 신비로운 능력을 많이 보아온 터라 겉으로 그 감정이 표출되지는 않았다.

“결국 제자 자랑이군. 그렇게 안 봤는데 어느새 팔불출이 다 되었어.”

“그렇습니까?”

허진은 알게 모르게 어깨를 펴며 웃음을 지어 보였다.

양곽원의 뺨이 씰룩거렸다. 그리고 입술도 자근자근 씹고 있었다.

이러려고 나온 것이 아니었다.

물론 마교 공자라 쉽지는 않겠지만 무공에서는 좀 더 우세한 모습을 보여줄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생각과 달리 설린이 보는 이 자리에서 한방을 먹이기는커녕 오히려 초반부터 자신이 한방 크게 얻어맞은 꼴이 되었다.

양곽원은 어금니를 꽉 깨물며 앞으로 몸을 날렸다.

마현 역시 신형을 아래로 낮추며 마주 달려 나갔다.

후우웅―

패도적인 면만 따진다면 마교에 뒤지지 않는 남해태양궁이라 그런지 양곽원은 다시 한 번 마현의 가슴을 향해 주먹을 날렸다. 마현은 신형을 틀어 그런 양곽원의 주먹을 옆으로 흘렸다.

‘흠?’

순간 마현의 눈동자가 동그랗게 떠졌다.

‘허초?’

아니나 다를까, 마현의 옆구리를 향해 양곽원의 주먹이 날아오고 있었다.

블링크로 피하면 되겠지만 마현은 굳이 피하지 않았다. 블링크를 너무 남발하면 결국 눈에 띄기 때문이다.

“암 바클러!”

마현은 왼손을 당겨 자그만 원형의 방어막을 만들었다.

콰광!

폭음과 함께 뜨거운 열기가 마현의 얼굴과 몸을 덮쳤다.

“큭!”

눈조차 뜨기 어려울 정도로 양곽원의 주먹에서 쏟아진 열기는 생각 이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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