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7
17화
“흑풍마군의 일은 어떻게 할까요?”
사공소는 율기의 물음에 의자팔걸이에 팔을 걸치며 턱을 괴었다.
“군사 생각은 어떤가?”
사공소는 눈을 올려 율기를 쳐다보았다.
“소신은 쉽사리 판단할 수가 없습니다.”
“하긴.”
사공소 역시 율기와 비슷했다.
마현이 율법을 어긴 것은 없었다. 마교의 율법대로 딱 서른 명의 흑풍대를 수하로 삼았다. 문제는 가 당주가 특이하게 해골로 만든 강시였지만 그것은 율법에는 없는 조항이었다.
“무영대를 보아서는 그냥 모른 척 눈감아 주는 것이 형평성에 맞긴 하겠지만……, 무영대는 어떻게 될 것 같나? 흑풍마군이 그들을 흡수할 것 같은가?”
“잘 모르겠습니다.”
율기는 자신 없는 목소리로 답했다.
“예상해 본다면?”
“소신의 능력이 미천해 예상조차 할 수 없습니다.”
“예상조차 할 수 없다? 그대가?”
율기의 대답에 사공소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흑풍마군의 생각과 행동 대부분이 항상 생각지도 못한 방향으로만 움직이는지라…….”
“그래도 근 삼 년이나 살폈으면 대략적인 움직임은 어느 정도 예상할 수 있지 않은가?”
“이런 말씀을 드리기 송구하옵니다만…… 흑풍마군의 움직임 태반이 저의 시야에 없사옵니다.”
“그대의 시야에 없다? 본교의 모든 것을 볼 수 있는 그대가?”
사공소는 적지 않게 놀랐는지 목소리의 억양이 살짝 올라갔다.
“혹 부교주 때문인가?”
“아닙니다.”
“아니면?”
“가장 큰 이유를 대자면 그를 가까이에서 지켜볼 수가 없습니다. 어떤 힘이 시야를 모두 가로막고 있사옵니다. 아마 소신조차 아직 파악하지 못한 흑풍마군의 수신호위 때문이 아닐까 그저 조심스럽게 추측해 볼 뿐이옵니다.”
율기는 식은땀을 소매로 닦으며 대답했다.
“허어……, 이것 참.”
사공소는 쩔쩔매는 율기를 보며 기가 막힌다는 듯 헛웃음을 터트렸다.
“내 부교주에게 듣기로 흑풍마군에게 그 무엇도 해준 것이 없다고 들었는데……, 혹 부교주가 나에게 거짓을 말한 것인가?”
“그건 아닐 것입니다. 사공자가 독자적으로 모든 힘을 갖춘 것만은 확실하옵니다.”
“흠…….”
사공소는 나직하게 신음성을 흘렸다.
“내가 본 것보다 더 큰 그릇이란 소리인가?”
사공소는 마현을 떠올렸다.
자연스럽게 아들 사공찬의 얼굴 또한 떠올랐다.
“찬이는 지금 뭐하고 있는가?”
“이공자께서는 자신의 무공 수련과 더불어 독혈대 훈련에만 매진하고 계십니다.”
사공소는 흡족한 미소를 지으면서도 시름 어린 한숨을 내쉬었다.
“휴우…….”
생각 이상으로 마현은 사공찬에게 있어서 버거운 존재였다.
“사자새끼가 사자로 클 수 없다면 아예 도태되는 것이 나을지도…….”
그렇게 홀로 중얼거린 사공소는 복잡한 마음에 깊은 신음을 속으로 삼켰다. 한참 동안 눈을 감고 고민하던 사공소는 결연한 눈빛으로 고개를 들었다.
“마교 제일(第一) 율법은 약육강식 강자군림이다. 그냥 두어라!”
“교, 교주님…….”
율기는 사공소에게서 아들 사공찬에 대한 걱정 어린 중얼거림을 들었기에 무언가 제재가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결과는 뜻밖이었다.
“강한 자가 교를 이을수록 교의 영광은 더욱 커진다. 그리 알고 물러가라.”
사공소는 몸을 돌리며 손을 휘저었다.
율기는 더 이상 말을 하지 않고 그저 허리를 숙인 후 마휴당을 빠져나갔다.
사공소는 등받이에 몸을 깊게 파묻으며 눈을 감았다.
* * *
무영대주는 복잡한 눈빛을 머금은 채 의자에 앉아 있었다. 그는 머리를 뒤흔들더니 허리를 숙여 양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어지러웠다.
몸이 현기증을 느끼는 그런 어지러움이 아니라 생각이 어지러웠다.
그 이유는 단 한 가지.
현재 무영대주는 머리와 감정이 전혀 정반대로 따로 놀고 있었다.
머리는 분명 자신을 발탁해 이제껏 키워준 추도영에게로 향해 있었지만 감정은 마현에게로 향해 있었다. 분명 지금 가슴이, 본능이 추도영을 배신하라 말하고 있었다. 그것이 당연하다 느껴졌고, 그게 추도영에게 진정 충성하는 거라 느끼고 있었다.
말도 안 되는 논리였다.
분명 머리는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상황이 이쯤 되면 자신은 금제의 발동으로 죽어야 한다. 그런데 지금 자신은 그 어떤 금제의 영향도 받지 않고 있었다.
“도대체……, 도대체 왜?”
무영대주는 다리 사이로 얼굴을 파묻은 채 머리를 흔들었다.
달칵.
그렇게 무영대주가 괴로워할 때 문이 열렸다.
마현과 가릉이 안으로 들어왔다.
문이 열리는 소리에 고개를 든 무영대주는 안으로 들어오는 마현을 보는 순간 번개를 맞은 것처럼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러더니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마현을 향해 오체투지했다.
마현은 그런 무영대주를 보며 의자로 걸어가 앉았다.
“일어나라.”
“예, 주군.”
무영대주는 마치 평생을 마현을 위해 살아온 이처럼 공손히 몸을 일으켰다.
그의 목소리는 너무나도 자연스러웠다. 하지만 그 자연스러움이 결코 자연스러울 수가 없음을 이내 깨달았다. 머리와 감정이 따로 놀고 있음을 깨닫자 잠잠했던 눈동자가 다시 흔들렸다.
“복잡한가?”
“그렇습니다.”
마현의 질문에 너무나도 쉽게, 공손히 대답이 나왔다. 복잡함은 더욱 복잡해졌다.
“그렇겠지. 하지만 이것만 알아두면 편해질 것이다.”
“……?”
“적어도 너는 죽지 않는다.”
마현의 목소리는 귀를 넘어 뇌로 전해지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깊이 각인되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약속하지.”
어느 순간부터 무영대주는 마현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다만 그것을 무영대주는 인식하지 못했다.
“대공자가 죽는다면 널 완전히 죽음으로부터 해방시켜 주겠다.”
“그 말씀은?”
무영대주의 질문에 마현이 고개를 돌려 함께 들어온 가릉을 쳐다보았다.
“가 당주의 의견에 의하면 대공자만 죽는다면 네가 가지고 있는 천형인 금제가 사라진다. 나는 적어도 너와 무영대를 이용하기 위해 다시 금제를 가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무영대주는 조용히 눈을 감고 마현의 말을 깊이 생각했다.
‘죽지 않아도 된다…….’
그렇게 속으로 중얼거린 무영대주의 머릿속에서 과거의 일들이 한꺼번에 떠올랐다.
원하지 않았지만 거부할 수 없었던 금제. 그리고 그 금제를 당하던 날 이후 살기 위해 악착같이 추도영을 향해 충성심을 떠올린 날들.
‘결국 살기 위해서는 새로운 주인을 모실 수밖에 없는 것인가?’
“훗!”
무영대주는 쓴웃음을 짧게 내뱉었다.
금제로 인한 충성심. 결국 그 금제가 무너지자 목숨보다 중하던 충성심이 이제는 목숨보다 못한 것이 되었다.
물론 다시 살기 위해서는 마현에게 충성해야 하지만. 지금 이런 갈등 속에 마음은 계속 마현에게 충성하라 외치고 있었다.
금제는 아니지만 그와 비슷한 세뇌를 당했음을 무영대주는 깨달았다. 동시에 그 세뇌로 인해 자신이 추도영의 금제에서 어느 정도 벗어났다는 것도.
결국 답은 한 가지였다.
“새로운 주군을 뵈옵니다.”
무영대주는 마현을 향해 부복했다.
“살기 위한 거짓된 충성이라…….”
하지만 마현은 그런 무영대주를 바라보며 웃음을 지어 보였다.
“나에게 힘을 실어준다면 나 역시 그대와 무영대에게 그 이상의 대가를 주겠다.”
마현의 말에 무영대주는 머리를 더욱 깊게 숙였다.
* * *
무영대주가 자의 반 타의 반에 의해 마현에게 충성을 맹세한 이후 마현은 생각보다 많은 정보를 손에 쥐었다. 추도영뿐만 아니라 사공찬과 도종극에 관한 정보까지 알 수 있었다.
추도영이 애초 무영대를 만든 이유가 소교주에 오르기 위해서였다. 그 때문에 무영대주가 마현에게 가장 먼저 내민 정보는 파벌에 대한 것이었다.
아직까지 명확히 들어난 파벌은 없었다.
그 이유는 세 공자 사이에서 아직 큰 충돌이 없었던 까닭도 있었지만 교주 사공소가 소교주에 대한 언급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드러내놓고 움직이지 않을 뿐이었다.
현재 마교에는 총 여덟 명의 장로가 존재하는데, 대장로 혈월마성(血月魔性)을 비롯해 오장로 염왕부(閻王斧), 팔장로 혈음검(血蔭劒)은 교주 사공소의 아들이자 이공자인 사공찬을, 이장로 회회혈마, 삼장로 역천마도, 칠장로 삼안혈화는 대공자 추도영을, 사장로 흑살거부(黑殺巨斧), 육장로 적두귀효(赤豆鬼嚆)는 삼공자 도종극을 암암리 지지하고 있었다.
이처럼 마교를 구성하는 핵심 인물들은 이미 파벌에 의해 갈라져 있었다.
“흠……, 어느 정도 파벌이 만들어져 있을 거라 예상은 했지만 장로들 모두 파벌에 속해 있을 줄은 몰랐습니다.”
가릉은 무영대주의 정보에 깜짝 놀랐다.
“이 정도 세세한 정보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아직까지 대공자가 나머지 두 공자를 제거하지 못했다니 이상하군.”
마현 역시 대공자가 이렇게 상세하게 상대방에 대한 정보를 가지고 있을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그건 제아무리 소교주 자리를 두고 경쟁하는 사이라고 해도 함부로 상대를 죽일 수 없기 때문입니다.”
가릉의 설명에 마현은 눈살을 찌푸렸다.
“그렇다면 나 역시 대공자를 죽일 수 없다는 뜻인가?”
“교의 율법에 의하면 그렇습니다, 주군.”
“율법에 의하면 그렇다?”
마현의 질문에 가릉은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문제는 명분이지요.”
“명분이라…….”
“명분만 충분하다면 죽여도 무방한 곳이 또한 본교이기도 합니다.”
가릉의 말에 마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그런 명분을 가지기 위해 대공자가 위험을 무릅쓰고서 암암리에 무영대를 만들었을 것입니다.”
“명분이라…….”
마현은 생각에 잠기며 손가락으로 탁자를 두들겼다. 곧 말려 올라가는 마현이 입술에 살기가 담겼다.
“그렇다면 먼저 움직이도록 숨통을 조이면 되겠군.”
“그렇다 해도 쉽게 움직이지 않을 것입니다.”
“움직이게 만들면 돼.”
“방법이 있으신 겁니까?”
잠시 생각에 잠기는 듯하던 마현의 입가에 차가운 미소가 떠올랐다.
“마침 교주님의 연회가 있으니 딱 안성맞춤이군.”
마현의 말뜻을 이해하지 못한 가릉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일단 세 장로들부터 잘라야겠다.”
마현의 말에 가릉의 눈빛이 반짝였다.
* * *
“휴.”
한한파파는 다시 무표정한 모습으로 돌아가 버린 설린을 보며 몰래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무슨 일이 있으셨기에…….’
설린은 어젯밤 분명 조금은 들뜬 얼굴로 마현을 보기 위해 마객당을 나갔었다. 그리고 약 한 시진이 지나서야 돌아왔다.
내심 좀 더 나은 모습으로 돌아오길 기대했던 한한파파였다. 그것이 좋든 나쁘든 오랫동안 얼음처럼 굳어 있던 감정이 다시 되살아날 것이라 믿었다. 그래서 일부러 따라가지도 않았다.
‘따라갔어야 했는데…….’
이왕이면 늙은이가 빠지고 젊은 두 남녀가 조용히 만나는 것이 더 좋을 것이라 여겼는데, 막상 결과를 보니 어젯밤 따라가지 못한 게 후회스러웠다.
‘이대로 북해로 돌아가야 하나?’
그러기에는 너무 아쉬웠다.
이렇게 마음이 닫히면 이제는 영영 다시 감정의 문을 열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 어젯밤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아봐야겠다.’
이대로 돌아갈 수 없다고 생각한 한한파파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가씨.”
설린은 조용히 고개를 돌렸다.
“잠시 나갔다가 오겠습니다.”
“그렇게 해.”
설린의 목소리는 음향의 고저 없이 그저 따라하는 앵무새처럼 무미건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