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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마법사 무림에 가다-65화 (65/351)

# 65

15화

왕귀진이 술에서 깨면 섭섭해 하겠지만 몰래 철용을 불러 따로 명을 내렸던 것이다. 이유는 왕귀진의 성격 때문이었다. 그 덕분에 추도영이 쉽게 미끼를 덥석 물기는 했지만 말이다.

마현이 자신의 거처에서 나서는 그 순간.

흑풍각 담장을 복면으로 얼굴을 가린 채 소리 없이 넘는 두 그림자가 있었다.

바로 웅천수검의 사검과 무영대주였다.

담장을 넘자마자 그림자 속으로 스며든 무영대주는 얼굴을 살짝 찌푸렸다. 담장까지 풍겨오는 지독한 술 냄새 때문이었다.

‘지독히도 마셨군.’

무영대주는 흑풍대를 이루는 이들의 출신 성분을 떠올리며 더욱 얼굴을 찌푸렸다.

일단 흑풍각 담장을 넘은 둘은 곧바로 움직이지 않았다. 어둠속에서 몸을 숨긴 채 기회를 엿봤다. 조금 지루하다는 생각이 들 무렵 흑풍대원 하나가 부스스한 모습으로 일어났다.

술이 덜 깬 모양인지 비틀거리며 허리춤을 푸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러더니 주위를 살피더니 비틀거리는 다리로 사검과 무영대주가 은신해 있는 거목 아래로 걸어왔다.

‘멍청한 놈.’

그런 생각을 동시에 가지며 고개를 돌린 무영대주와 사검은 서로의 눈을 응시했다. 절호의 기회였다. 그렇지만 둘은 더욱 신중한 모습을 보였다.

비틀비틀 쓰러질듯 거목 아래로 걸어간 흑풍대원은 바로 철용이었다.

‘대어다!’

그냥 보통 흑풍대원인 줄 알았는데 술에 취해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멍청이가 다름 아닌 흑풍대 부대주였다. 무영대주와 사검은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몸을 더욱 웅크렸다.

더욱 큰 빈틈이 보일 때 철용을 순식간에 제압해 이곳을 빠져나가기 위함이었다.

“으으……, 취한다.”

철용은 몸을 못 가눌 정도로 비틀거리며 거목 밑으로 다가와 허리춤을 내렸다. 하지만 더욱 몸을 은밀히 숨기는 것에 신경을 쓰는 바람에 무영대주는 물론 사검도 회색으로 물든 철용의 눈동자를 보지 못했다.

마정석에서 이어진 마법진의 힘으로 지금 철용은 투시 마법을 통해 정확히 무영대주와 사검을 보고 있었다.

쏴아아아―

허리춤이 내려가자마자 폭포수 같은 오줌발이 거목을 향해 뿜어져나갔다. 술에서 아직 덜 깬 모양인지 철용의 다리가 한 번 휘청거리더니 허리가 돌아갔다.

오줌 줄기는 거목이 만들어낸 그림자 위로 뿌려졌다. 그 그림자 속에는 무영대주가 은신해 있었다. 당연히 무영대주는 철용의 오줌을 그대로 뒤집어썼다.

그 황당한 일에 무영대주는 이를 박박 갈며 철용을 노려보았다. 그런데 그런 자신의 눈을 철용이 정확히 노려보고 있었다.

무영대주는 직감적으로 뭔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느꼈다.

그런 느낌이 잘못되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철용의 입가로 비웃음이 번지는 것이 보였다.

“시원하냐? 나도 시원하다.”

‘하, 함정?’

사검 역시 무영대주의 반응에 함정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두 사람은 눈이 마주치는 것과 동시에 몸을 날렸다.

무조건 도망을 쳐야 했다. 아니면 자결뿐이었다.

무영대주는 단검을 뽑아들며 어둠 속에서 튀어나와 철용을 덮쳤다.

허리춤을 잡은 채 뒤로 물러나는 철용을 보며 분명 자그만 틈이라도 생길 것이라 여겼다. 무영대주는 그를 향해 단검을 휘둘렀다.

철용은 느긋한 표정으로 뒤로 물러나며 여유 있게 허리춤을 묶었다.

그 사이 무영대주는 더욱 날카롭게 단검을 철용의 목을 향해 찔러 들어갔다. 그리고 단검이 철용의 목을 찔렀다.

깡!

순간 무영대주의 얼굴에 당황하는 모습이 보였다.

단검과 철용의 목 사이에서 마치 쇠붙이가 맞부딪혔을 때처럼 불꽃이 튀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훗!”

철용은 기다렸다는 듯이 손을 뻗어 잠시 공황에 빠진 무영대주의 단검을 손으로 움켜쥐었다.

“헙!”

철용의 움직임으로 자신의 실수를 깨달은 무영대주는 재빨리 단검을 비틀며 뒤로 물러나려 했다. 그런데 그건 생각만으로 끝날 뿐 행동으로 이어지지 못했다.

다만 단검이 철용의 손 안에서 비틀어지며 기이한 마찰음을 만들어냈다.

끼긱― 키기긱―

그 소리 역시 마치 쇠뭉치를 쇠로 마구 긁는 듯한 음이었다.

“외, 외공?”

무영대주는 그렇게 짧게 비명을 질렀다. 하지만 그는 이내 철용이 보이는 힘이 외공과 다른 그 무엇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하지만 그 생각은 그리 오래 이어지지 못했다. 철용의 왼손이 목을 움켜잡았기 때문이다.

“컥!”

숨이 막혀 거친 숨을 토해내는 무영대주를 위로 번쩍 들어올렸다.

“뭣들 하나?”

철용은 고개를 돌려 사검을 쳐다보며 짧게 소리쳤다.

스르륵!

그러자 사검 주위로 네 명의 흑풍대원이 안개보다 더 은밀하게 모습을 드러냈다.

“헉!”

사검은 갑작스럽게 모습을 드러낸 흑풍대원들의 모습에 헛바람을 들이마셨다.

“크크크크.”

흑풍대원이 나직한 흉소를 터트리며 사검을 향해 터벅터벅 걸어갔다.

사검은 눈빛을 가라앉히며 허리에서 검을 뽑았다.

흑풍대원들 역시 검을 뽑으며 사검을 둘러쌌다.

“주군!”

그때 마현이 연무장 구석 거목 아래로 모습을 드러냈다.

철용은 무영대주를 바닥에 내동댕이친 후 발로 목을 찍어 누르며 군례를 취했다.

이 순간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마현까지 등장하자 자신들이 철저히 속았다는 것을 깨달은 무영대주는 마지막 선택을 해야 했다. 그는 자결하기 위해 턱을 살짝 벌렸다.

“홀드!”

그것을 보자 마현의 오른손에서 마력이 뿜어져 나와 무영대주를 감쌌다.

“그렇게 쉽게 죽으면 안 되지.”

마현이 턱을 살짝 들어 무영대주를 가리키자 철용은 그의 목을 발로 더욱 강하게 찍어 누르면서 복면을 벗겼다.

점혈을 한 것도 아닌데 몸이 굳어버린 무영대주는 자연스럽게 고문을 떠올렸고, 고문에 의한 자백을 떠올렸다. 그 순간 금제가 발동했다.

“으으으으!”

목에서 뻗어 나온 굵은 핏줄은 금세 무영대주의 얼굴을 뒤덮었다.

“슬립!”

이미 무영대의 금제를 한 번 겪은 적이 있었기에 마현은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잠을 재워 죽는 것을 막았다. 이렇게 쉽게 무영대주에게 슬립과 같은 기본 마법을 걸 수 있는 것은 중원에서 마법이 생소했기 때문이고, 마현이 5서클의 능력자였다는 점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무영대주의 내력이 그다지 강하지 않은 데 있었다.

그렇기에 마현은 무영대주에게만 마법을 걸었을 뿐 사검에게는 시현하지 않았다. 슬립 마법에 당한 무영대주는 눈을 스르르 감더니 목이 옆으로 젖혀졌다.

“어차피 필요한 건 한 놈뿐이니…….”

마현은 고개를 틀어 사검을 쳐다보며 입가에 차가운 미소를 만들었다.

“저자의 목을 대공자께 선물로 보낼 것이다.”

“명!”

철용을 포함한 다섯의 흑풍대원들은 군례를 취하며 우렁차게 목소리를 터트렸다.

“크크크크. 아가들아!”

사검 앞에 서 있던 흑풍대원이 음침하면서도 사랑이 듬뿍 담긴 목소리를 내뱉었다.

푹!

그때 땅속에서 하얀 뼈만 남은 손 하나가 불쑥 솟아올라 사검의 발을 움켜잡았다.

“헙!”

사검은 흠칫하며 아래를 내려다보다 더욱 놀라 한 번 더 헛바람을 들이마셔야 했다.

쐐애액― 서걱!

사검은 검을 휘둘러 자신의 오른발을 잡고 있는 해골의 손뼈를 베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왼발 부근에서 다른 해골의 손뼈가 불쑥 솟아올라와 사검의 발을 다시 움켜잡았다.

“이익!”

사검은 다시 검을 휘둘렀다.

푹 푹 푹 푹 푹!

그러자 십여 개의 손뼈들이 불쑥불쑥 튀어나와 사검의 다리를 잡았다.

-케케케케케!

-캬캬캬캬캬!

이어 사기로 가득 찬 음산한 음성들이 땅바닥 아래서 터져 나왔다.

* * *

마현은 사술 쪽에 깊은 조예가 있는 가릉을 불렀다.

가릉은 흑풍대를 통해 이야기를 전해 들었는지 흑풍각 내 마현의 서실로 헐레벌떡 뛰어 들어왔다.

“주군, 어디 상하신 데는 없으십니까?”

가릉은 거친 숨결조차 제대로 다스리지 않고 말부터 내뱉었다.

“그러다 숨넘어가겠다.”

자신을 이처럼 생각해 주는 가릉의 모습에 마현은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맞은편 의자를 가리켰다.

“헉헉, 헉헉헉. 켁켁―”

숨을 가다듬는 가릉에게서 가래가 끼는 소리가 더해졌다.

마현은 탁자 위에 놓인 물주전와 잔이 담긴 쟁반을 가릉 앞으로 내밀었다. 가릉은 물 한 잔을 시원하게 마시고서야 숨을 편히 고를 수 있었다.

“이른 시간에 그대를 부른 것은 다른 이유가 아니라…….”

마현은 고개를 돌려 서실 구석에 누워 있는 한 중년 사내를 가리켰다.

“누구……. 혹 이른 새벽 흑풍각을 침입한 자입니까?”

“그래. 그리고 2년 전쯤 우리를 미행했던 무영대를 기억하지?”

가릉은 그때를 떠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금제가 발동하는 것을 보니 무영대 중 한 명일 거야.”

“그렇군요.”

“혹 아는 자인가?”

가릉은 자리에서 일어나 구석에 눕혀져 있는 무영대주의 얼굴을 살폈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처음 보는 자입니다.”

“흠…….”

마현은 나직하게 침음성을 흘린 후 가릉을 쳐다보았다.

“그대는 마의이니 금제에 대해서도 알고 있겠지?”

“모든 금제를 다 안다고 할 수는 없지만 대략적인 원리는 알고 있습니다.”

“다행이군.”

마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금제에 관해 설명해 보라. 일단 금제에 대해 알아야 저자를 깨울 수 있으니까.”

마현의 말에 가릉은 자신이 알고 있는 금제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금제는 보통 두 가지로 나누어집니다. 정신적 금제를 가하는 방법이 그 하나이옵고, 다른 하나는 육체에 금제를 가하는 방법이 있사옵니다.”

가릉은 고개를 돌려 바닥에 쓰러져 있는 무영대주를 잠시 쳐다보다 자리에서 일어나 무영대주의 완맥을 잡았다.

“크으!”

잠시 후 정신을 잃은 무영대주가 고통에 찬 비명을 나직이 터트렸다. 그러자 가릉은 재빨리 완맥에서 손을 뗐다. 무언가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가릉은 다시 자리로 돌아와 앉았다.

예전 스스로 목숨을 끊어 버린 무영대를 보아 정신적 금제임을 어느 정도 짐작은 하고 있었지만 혹시나 싶어 직접 확인해 본 것이다.

“일단 저자는 정신적 금제에 걸려 있습니다.”

“…….”

“육체적 금제는 잠시 뒤로 미루고 저자에 관한 부분만 설명을 올리겠습니다.”

“그리 하라.”

마현의 허락에 가릉은 정신적 금제 위주로 설명해나갔다.

“정신적 금제는 고독 등을 이용하는 육체적 금제보다 훨씬 시전하기가 어렵습니다. 그 이유는 단순히 고독 등을 피시전자의 몸에 주입시켜 그걸 담보삼아 조정하는 방식이 아니라 직접 정신에 금제를 가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렇게 정신에 금제를 가한다고 해서 끝이 나는 것이 아니라 그 부분과 유기적으로 맞물리는 그 어떤 기폭제 같은 것을 머리의 혈도 부분에 심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단순히 보자면 저자가 대공자에 대해 자의적이든 타의적이든 변심을 머릿속에 떠올린다면 머리에 위치한 기혈 중 한 혈도가 펑, 터진다는 소리군.”

“쉽게 설명하자면 그렇습니다.”

“만약 저자가 어떤 상황이든 의식적으로 대공자를 변심한다는 생각을 가지지 않는다면 죽을 일은 없겠군. 맞는가?”

“이론적으로는 그렇습니다.”

한일자 모양으로 굳게 닫혀 있던 마현의 입술이 시원하게 말려 올라갔다.

“그럼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군.”

“예?”

너무나도 쉽게 단정을 내리며 미소를 짓는 마현의 모습에 가릉은 놀라 입을 방끗 벌렸다.

하지만 이내 그 입을 다물었다. 이제껏 마현이 보여준 놀라운 능력으로 보아 이미 방법을 찾은 것이 분명했다.

“주군, 철용입니다.”

그때 철용이 안으로 들어왔다.

그의 옆구리에 비단에 곱게 쌓인 상자가 눈에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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