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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마법사 무림에 가다-63화 (63/351)

# 63

13화

“무슨 뜻이신지…….”

“뭐 나야 설 언니가 도도한 것은 모르겠지만…….”

야율선은 느릿느릿 말을 내뱉으며 귀를 팠다.

그런 모습은 자연스럽게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어쨌든 도도한 설 언니가 누군가와 동행하는 것을 한 번도 못 봤는데, 마 공자님은 재주가 좋으신 모양이에요.”

순간 분위기가 싸늘하게 변했다.

“아, 그러고 보니 마 공자와 설 소저가 함께 왔지?”

남녀 사이의 미묘한 감정들을 잘 모르는 도인 학방이 눈치 없이 야율선의 말을 거들었다.

“그리고…… 너무우 하신다아.”

야율선은 야릇하게 콧소리를 내며 장난기 가득한 눈동자를 반짝거렸다.

“설 언니는 몇 번이나 마 공자님과 눈을 마주치려고 그러는데…… 왜, 마 공자님은 저 도도하고 아름다우신 설 언니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고, 허여멀건 사내하고만 정답게 이야기를 나누실까?”

그 말에 분위기는 더욱 차가워졌다.

마현 역시 그런 분위기를 못 느낄 정도로 둔하지 않았다.

특히 설린 옆에 앉아 있는 추도영의 눈빛은 그 분위기보다 더욱 차가웠다. 자리가 자리인지라 비록 그런 감정이 밖으로 표출되지는 않았지만 주변 공기는 이미 냉랭하게 변해 있었다.

마현과 설린의 눈은 마주칠 수밖에 없었다.

순간 침묵이 왔고, 정적이 무겁게 내려앉았다.

그들은 잠시 서로의 눈을 마주보았다.

마현은 난감했다.

어차피 남들이랑 쉽사리 친해질 수 없다면 조용히 자리를 지키다가 갈 생각이었다.

그런데 야율선의 그 한 마디로 한순간 이 자리에 동석해 있는 남성들의 적이 되어 버렸다. 어떻게 조리 있게 말을 하면 이 오해를 풀 수 있을까 고민에 빠졌다.

그 부분에 대해 설린은 마현과 달리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그다지 의식하고 있지 않았다. 아마 자꾸 신경이 쓰이는 남자이다 보니 무의식적으로 그럴 수도 있을 것이라 여겼다. 설린에게는 그게 다였다.

그런데 야율선의 말을 듣자 자신이 또 무시당했다는 생각이 들면서 울컥하는 감정이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그러자 그냥 잊고 말았던 조금 전의 일, 마현이 자신을 보고 피식 실소를 터트리며 무시했던 일까지 떠올랐다.

왜인지는 모른다. 그냥 마음 한편에서 마현이 곤란해 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고 속삭였다. 그래서 설린은 입을 열었다.

“제가 동행 하자고 부탁을 드렸어요.”

따그랑!

야율선은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술잔을 들었는데, 그 말을 듣고 놀라 그만 탁자 위로 술잔을 떨어트렸다.

술이 탁자 위로 쏟아졌고, 술잔이 저만치 굴러가 접시와 부딪쳤다.

야율선은 그냥 농담으로 툭 던진 말이었다.

아직 어리기는 하지만 자신도 예쁜데, 나름 몸매도 훌륭한데 다들 설린만 보자 심통이 나서 시선을 자신에게 모으고 싶어 그냥 한 농담이었다. 설린은 도도한 것이 아니라 감정이 메마른 여인인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어, 언니 농담이지?”

누구보다 놀란 야율선이 설린을 향해 말까지 더듬으며 물었다.

“선아, 너는 내가 농담하는 거 봤니?”

설린은 야율선을 쳐다보며 반문했다.

“아, 아니.”

야율선은 고개를 저었다.

“그럼 지금은?”

“그, 그럼 진짜야?”

설린은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은 채 애매모호하게 그냥 고개를 돌렸다. 그 애매모호함은 곧 긍정과도 같았다.

“호호, 호호호호.”

야율선은 어색한 웃음을 터트렸다.

농담으로 시작한 건데 결국 자신이 화기애애하던 자리를 망쳐 버렸다는 낭패감에 그저 무안한 웃음만 터트릴 뿐이었다.

당황하는 마현을 보며 설린은 요 몇 년간 짓지 않았던 웃음을 지어 보였다.

하지만 마음은 달랐다. 마현보다 오히려 그녀가 더 당황하고 있었다.

‘내가 왜 이러지?’

항상 자신의 마음은 잔잔했다.

약간씩 마음의 물결에 파동이 생기기는 했지만 거대한 바다에 자그만 돌멩이가 던져진 것처럼 그리 큰 감정의 변화는 있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은 마음이 복잡했다.

마치 잔잔하던 호수에 사나운 돌개바람이 불어와 물보라를 만든 것처럼.

설린의 그 미소에 마현의 얼굴은 눈에 띌 정도로 딱딱하게 굳어졌다. 마현의 눈동자가 차갑게 식었다.

‘……이게 아닌데.’

안 그래도 당황한 설린의 마음이 싸늘한 마현의 눈동자를 접하자 더욱 복잡해지고 심란해졌다.

그녀는 그저 마현의 당황하는 모습을 보고 싶었을 뿐이었다.

『나한테 무슨 악감정이라도 있나?』

마현의 목소리가 매직마우스를 통해 전달되자 설린의 몸이 움찔거렸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 울컥 화가 목을 타고 올라왔다. 이제껏 살면서 이런 대접을 받아본 적이 없는 그녀였다. 설린 역시 전음으로 항의했다.

『왜 나한테 반말이죠?』

『그럼 이 상황에 내가 말이라도 높여야 하나?』

마현의 냉랭한 반문에 설린은 살짝 입술을 깨물었다.

『하세요. 말을 높이세요.』

『적반하장도 유분수이지. 우습군.』

설린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지금은 덮겠다. 하지만 오늘 자정 다시 이곳으로 와라. 나는 네가 무슨 생각으로 그랬는지 들어야겠다.』

마현의 목소리는 차갑기 그지없었다.

『내가 왜 와야 하죠?』

마현은 설린의 말에 기가 막혔다.

『그래서 안 오겠다는 건가?』

마현이 거칠게 윽박지르자, 결국 참지 못하고 설린이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먼저 실례하겠어요.”

그녀답지 않게 흥분된 음성을 차갑게 뱉으며 설린이 호여정을 급히 내려가 버렸다. 마지막으로 그녀가 마현을 향해 눈을 흘기며 전음을 보냈다.

『백 년을 기다려 보세요, 내가 가나.』

『기다리겠다. 와라!』

『흥!』

설린은 냉소하며 호여정을 훌쩍 떠나가 버렸다.

“하아.”

마현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뭐야? 임자가 있었던 거야? 괜히 입맛만 다셨네.”

야율황기가 걸걸한 목소리로 투덜거리며 입맛을 쩍쩍 다셨다. 그러자 야율선이 팔꿈치로 옆구리를 쿡 찔렀다.

싸늘한 분위기를 깨달은 야율황기는 무안한 듯 입맛만 몇 번 더 다셨다.

“오늘은 이만 헤어지는 게 어떻겠소? 보아하니 다들 술 마실 분위기는 아닌 것 같은데…….”

양곽원이 그리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사공자라고 했소?”

양곽원은 마현을 내려다보며 물었다.

“그렇습니다.”

다들 편히 말을 놓기로 했지만 마현은 말을 높이는 게 편했다.

“저 얼음장 같은 소저를 저렇게 뒤흔들다니…… 보기와는 다르오. 언제 한 번 그 기술 좀 배웁시다. 하하하하.”

양곽원은 다른 이들에 비해 설린에 대한 관심이 그다지 크지 않았기에 훌훌 털어버리는 모습이었다.

그렇다고 아쉬운 마음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어릴 적부터 얼음장 같은 그녀를 몇 번 보며 자란 탓에 다른 이들보다는 쉽게 마음을 털어버릴 수가 있었다.

“오빠, 우리도 가자.”

야율선은 야율황기의 팔을 잡고 일어났다.

“다들 죄송해요. 저 때문에 분위기를 망쳐서…….”

“이 아까운 음식들은 어쩌고…….”

“오빠!”

“알았어, 알았다고. 에고고…… 아까워라.”

동생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일어났지만 야율황기는 진심으로 눈앞의 음식들이 아까웠다.

“이야기는 다음에 하는 게 좋겠군.”

학방도 그렇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모두 떠나고 호여정에는 마교의 공자들만 남았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사공찬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저 주인으로서 예를 지키기 위해 좀 더 오래 앉아 있었을 뿐, 더 이상 이곳에 있을 필요는 없었다.

퍼석!

추도영의 손에서 술잔이 깨진 것은 그때였다.

술로 뒤범벅이 된 손아귀를 힘껏 말아 쥐며 그가 마현을 향해 숨이 막힐 것만 같은 짙은 살기를 내뿜었다.

“낄낄낄.”

도종극은 그 상황이 재미가 있었던지 술을 한 모금 마시며 음산한 웃음을 내뱉었다.

사공찬도 피식, 차갑게 웃었다.

그 둘은 진작부터 추도영이 설린에게 정성을 쏟고 있음을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그가 왜 저렇게 열을 내는지도 알았다.

“대사형답지 않구려. 고작 여자에 기대려 하다니…….”

사공찬은 그런 추도영을 꼬나보며 빈정거렸다.

“뭐야?”

추도영의 불같은 시선이 사공찬에게 향했지만 사공찬은 상관없다는 듯 마현을 보며 말했다.

“네 행동이 마음에 든다만 나와 생사를 결판내기 전까지는 죽지 마라. 네 목숨을 가져갈 사람은 나니까.”

“훗!”

마현은 피식 웃으며 술을 한 잔 들이켰다.

“다들 내 목숨에 관심이 많은 모양이군.”

마현의 도발적인 말에 추도영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그렇게 보채지 않아도 돼.”

마현의 말이 계속됐다.

“나 역시 너희들의 목숨에 관심이 아주 많으니까.”

그 말을 끝으로 마현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마현을 노려보는 추도영의 눈빛에 살기가 더욱 짙어졌다. 음산하게 낄낄거리던 도종극 역시 웃음이 싹 사라진 얼굴이었다.

“푸하하하.”

사공찬은 그런 마현의 모습에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그럼 먼저 실례하지.”

마현은 성큼성큼 호여정을 내려가 버렸다.

“후훗.”

사공찬은 입가에 더욱 짙은 미소를 지으며 멀리 걸어가는 마현의 뒷모습을 쳐다보았다.

“나도 가야겠군.”

그렇게 중얼거린 사공찬은 치욕감에 몸을 바들바들 떠는 추도영과 딱딱하게 얼굴을 굳힌 도종극을 내려다보았다.

“다들 완벽히 적이 된 건가? 이제부터 목 간수들 잘 하시라고.”

그리곤 사공찬 역시 호여정을 떠났다.

추도영은 마현과 사공찬이 내려간 호여정 입구를 살기가 가득한 눈으로 쳐다보며 입술을 자근자근 씹어댔다.

* * *

“아가씨?”

한한파파는 조심스럽게 설린을 불렀다.

하지만 설린은 한한파파의 말을 듣지 못했는지 엄지손톱을 자근자근 씹으며 방 안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그런 그녀의 표정은 시시각각 변하고 있었다.

때로는 인상을 찡그리고, 때로는 미안해하는 표정까지 순간순간 얼굴색이 변했다.

그 모습에 한한파파의 눈은 동그랗게 떠졌다.

이렇게 설린이 감정을 드러내는 것이 얼마만인가 싶었다. 아주 어릴 때를 제외하고, 그동안 내내 석녀처럼 감정을 내비치지 않았었다.

‘흑풍마군 마현 사공자라고 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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