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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마법사 무림에 가다-58화 (58/351)

# 58

8화

“수신호위도 네 손으로 키우고 싶은 것이냐?”

흐려진 마현의 목소리에 허진은 적지 않은 실망감을 내비쳤다.

“그게 아니오라……, 이미 수신호위를 뽑았습니다.”

결국 마현은 수신호위에 대해 말할 수밖에 없었다.

“벌써?”

“미리 말씀을 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스승님.”

“이미 뽑았다면 어쩔 수 없구나.”

섭섭함이 묻어나오는 목소리였다. 그러면서도 궁금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조금이라도 그런 낌새를 눈치채지 못했고, 아무리 생각해 봐도 마현이 수신호위를 받아들였을 시간도 없었다. 또한 딱히 흑풍대 이외에 접촉한 이들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 스승이 한번 볼 수 있겠느냐?”

“……그게.”

“보여주기 싫은 게냐?”

“아, 아닙니다. 다만…….”

“다만?”

“휴우…….”

마현은 한숨을 푹 내쉬고는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보여드리겠습니다.”

마현은 마기를 끌어올리며 흑사신들을 소환했다.

드르르륵.

마현이 앉아 있는 의자 주위로 땅이 갈라지며 네 명의 그림자가 튀어나왔다.

“주인, 왜 불렀……, 어라? 여기는 처음 보는 곳이네.”

흑도가 부마전을 둘러보다 마현 앞에 앉아 있는 허진을 보았다.

“주인, 이 아해는 누구야? 주인 수하?”

흑도는 마현 옆에 비어 있는 빈 의자로 걸어가 털썩 주저앉았다.

“흑도! 이분은 나의 스…….”

마현이 무겁게 호통을 치려했지만 중간에 잘려 버렸다.

“오, 세네. 수장, 수장. 확실히 센 놈이지?”

“흑도!”

마현이 마기를 폭사시키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어라? 왜 그래, 주인?”

흑도는 천진하게 눈을 깜박이며 마현을 올려다보았다.

“이분은 나의 스승님이시다. 예를 갖춰라.”

“주인 스승?”

흑도는 눈을 몇 번 더 깜빡이고는 고개를 돌려 흑권을 쳐다보았다. 흑권은 이미 그런 흑도를 보며 혀를 나직하게 차며 고개를 젓고 있었다.

“끄응! 알았어.”

흑도는 뒷머리를 긁적이더니 허진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본좌는 흑도다. 앞으로 잘 부탁한다, 아해야.”

“본좌는 흑권일세.”

“본좌는 흑검이다.”

“흑창.”

“하아…….”

결국 할 말을 잃은 마현은 고개를 푹 떨어뜨렸다.

* * *

정막만이 흐르는 부마전.

거대한 대전 안에 허진과 마현만이 침묵한 채 마주 앉아 있었다.

“흠…….”

허진은 오랜 침묵 끝에 나직한 음성을 내뱉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허……, 참…….”

허진은 고개를 들어 천장을 바라보며 믿을 수 없다는 듯 탄식을 연이어 내뱉었다. 그리고는 다시 고개를 내려 마현을 쳐다보았다.

“가 당주가 강시술을 연구한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걸 네가 완성시켜 버릴 줄이야…….”

“그저 운이 좋았을 뿐입니다, 스승님.”

“흑사신들이 그분들일 줄이야. 허어…….”

허진은 흑사신들의 정체를 마현을 통해 알게 되었다.

“본교에서 알면 발칵 뒤집어지겠군.”

“하지만 아무도 알지 못할 것입니다. 새로운 이름으로 살아갈 테니까요.”

마현의 말에 허진은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원리는 모르지만 어떤 과정을 통해 흑사신이 만들어진 것인지 자세히 설명을 들은 탓이다.

“그 네 분…….”

“흑사신이라 부르셔도 됩니다, 스승님.”

“험, 험. 그래도…… 어찌…….”

허진은 마현과 달리 마교에서 태어나 그 넷의 영웅담을 듣고 자라난 뼛속까지 마인이었다. 그렇기에 마현의 말에 선뜻 고개를 끄덕이지 못했다.

“흑풍대도 흑풍대지만 흑사신, 험험.”

허진은 여전히 흑사신에 관해서는 어색한 마음이 들었는지 헛기침을 내뱉은 후 다시 말을 이었다.

“흑사신만으로도 어지간한 중소문파는 압도할 만한 무력을 손에 넣었구나.”

흑사신의 엄청난 무위를 떠올리자 허진은 심장이 마구 뛰는 것을 느꼈다.

“이제 날개를 달았으니 비상하는 일만 남았구나.”

허진은 마현을 보며 대견스러운 마음에 흐뭇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반쪽짜리 날개일 뿐입니다, 스승님.”

허진의 말에 마현은 쓴웃음을 지었다.

“반쪽짜리 날개?”

“흑사신은 제 수신호위이기는 하나 제 수하는 아닙니다.”

“……?”

마현과 흑사신 사이의 정확한 관계를 모르는 허진은 당연히 궁금해하는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이 제자의 힘이 아직 약해 흑사신들을 제 수신호위로 삼기는 했으나 주종관계는 아닙니다.”

“……?”

“제가 그들에게 새로운 생명을 주는 대가로 그들은 오로지 이 제자의 생명만 지켜줄 뿐입니다.”

“하아…….”

그들의 모호한 관계가 대략적으로 이해가 된 허진의 입에서 아쉬움이 담긴 한숨이 흘러나왔다. 그만큼 허진에게 마현과 흑사신의 관계가 아쉬움으로 다가온 것이다.

“애석하지만 어쩔 수 없지. 너무 과한 욕심은 화를 부르는 법이니까.”

“다룰 수 없는 검은 적을 베기 전에 자신을 상하게 만든다고 들었습니다.”

마현은 무공을 공부하면서 습득한 지식 중 한 구절을 인용했다.

“네 말이 맞다.”

허진은 마현을 보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이제 움직일 생각이냐?”

“당분간은 이대로 조용히 있을 생각입니다.”

마현의 말에 허진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직 준비가 덜 된 것이냐?”

“아닙니다.”

“그런데, 왜?”

“이런 싸움은 먼저 움직인 자가 지는 법입니다. 오히려 제가 천천히, 그리고 느긋한 모습을 보인다면 분명 상대는 초조함을 느끼게 될 것이고, 먼저 움직일 것입니다. 급한 건 제가 아닙니다.”

마현은 세 명의 공자, 그중 대공자를 떠올리며 차갑게 미소를 지었다.

* * *

마현의 생활은 그 전과 별반 달라지지 않았다.

갑자기 성장을 멈춘 서클 단전을 확장하기 위해 하루의 대부분을 보냈다.

단지 한 가지 달라진 것은, 전처럼 무공에만 매진하는 것이 아니라 무공과 마법을 병행하는 것에도 힘을 쏟았다는 점이다.

서로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비교하고 대조도 해가면서 단전과 서클에 대한 이해를 높여나갔다. 그렇다 보니 대부분의 시간을 자신의 침소나 집무실에서 지냈다.

명상에 빠졌던 마현이 눈을 뜬 시각은 어둠이 짙게 깔리기 시작한 초저녁이었다.

마현은 침소에서 나와 흑풍대원들이 머무는 막사로 향했다. 흑풍각과 흑풍대 막사 사이에 만들어진 대연무장은 이미 짙은 사기로 가득 차 있었다. 그 넓은 대연무장이 좁아 보일 정도로 수많은 그림자들이 바글바글했다.

투각, 투각, 팍 팍 팍!

투박한 소리로 가득 찬 대연무장.

하얀 인영(人影)들이 뒤엉킨 그곳은 마치 아수라장을 연상케 했다.

마현은 잠시 팔짱을 끼고 대연무장을 지켜보았다.

흑풍대원들이 네크로 나이트, 그러니깐 사령검사로 다시 태어난 지 어느덧 반년이 지났다. 마현은 하루도 빼놓지 않고 매일매일 밤이 되면 흑풍대의 대연무장으로 나와 그들의 수련을 지켜보았다.

정말 흑풍대원들은 괄목상대(刮目相對)가 어떤 것인지 보여주고 있었다. 하루하루가 다르게 스켈레톤을 다루는 그들의 능력은 갈수록 일취월장(日就月將)했다.

불과 반년 전만 해도 흑풍대원들은 스켈레톤을 한 기 이상 다루기에도 벅차했다.

하지만 천천히 그 수를 늘려가더니 이제는 한 번에 열 기 모두를 소환하고도 능숙하게 백병전을 치루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진정한 사령검사로 다시 태어나고 있는 것이었다.

서른 명이지만 삼백 서른의 흑풍대로.

마현은 조용히 그 훈련을 지켜보다 자신의 거처로 다시 발걸음을 돌렸다. 막 집무실로 들어가려는 그때 한 시녀가 뛰어왔다.

“무슨 일이냐?”

“부교주님께서 찾으십니다.”

“스승님께서?”

“예.”

마현은 허진이 자신을 찾는다는 말에 시녀를 따라 부마전으로 향했다.

“스승님, 찾으셨습니까?”

“어서 오너라.”

마현은 허진에게 인사한 후 맞은편 빈 의자에 가 앉았다. 허진은 미리 준비해둔 차를 내밀며 인자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한 달 후 교주님의 환갑 잔치가 열릴 것이다.”

마현은 깜짝 놀랐다.

그가 보기에 교주는 기껏해야 사십대 중후반쯤으로 보였다. 그런데 난데없이 환갑 잔치라니. 하긴 생각해 보면 스승인 허진 역시 오십이 넘었으니 그다지 놀랄 일도 아니다.

하지만 머리로 이해하는 것과 눈으로 보는 것의 괴리감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일반 무림인들이라면 그다지 놀랄 일도 아니겠지만 마현에게는 여전히 낯설고 이질적인 경험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마법사들이나 소드마스터들 역시 일반인들에 비해 수명이 길긴 하지만, 지금처럼 실제 나이와 외형의 차이가 괴리감을 줄만큼 그다지 크지 않았다.

자세한 이유는 몰라도 아마 무공이 양생술에서 기원이 되어 발전한 것이 아닌가 짐작만 할 따름이었다.

“점심때만 해도 그 이야기를 듣지 못했습니다.”

“오늘 오후에 결정되었다.”

“굳이 이렇게 말씀을 주시는 것을 보니 성대하게 치러질 모양이군요.”

마현의 짐작이 맞은 듯 허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교주님 성격상 이제껏 조촐하게 치뤄왔지만 이번만은 다르지 않겠느냐.”

“무슨 뜻이신지…….”

마현은 허진의 말에 뭔가 숨은 뜻이 있을 거라 여겨졌다.

“무림은 오랜 시간 평화로웠다. 이번 기회에 본교의 힘을 외부에 과시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대충 무슨 뜻인지 이해가 되었다. 하지만 숨은 뜻이 그게 아니라는 것을 느꼈다.

“정파 쪽과 북해빙궁, 남해태양궁, 그리고 남만야수궁을 초대할 생각이다. 아마 각 세력에서 주요 인물들이 초대 받아 올 것이다.”

생각보다 규모가 엄청나게 크다.

“오늘 오후에 결정된 것치고는 너무 세세한 것까지 결정된 것 같습니다.”

약간의 의아함을 가지며 마현은 허진을 쳐다보았다.

“당연하지.”

허진은 뜻을 알 수 없는 웃음을 지으며 이미 식어 버린 차를 들어 목을 축였다.

“이 스승이 주도했으니까…….”

허진은 탁자 위에 찻잔을 내려놓으며 마현을 쳐다보았다.

“……?”

“그날은 교주님의 환갑 잔치이기도 하지만 네가 본교 사공자라는 신분으로 무림에 화려하게 등장하는 날이기도 하다.”

“……!”

마현의 눈동자가 살짝 커졌다.

그런 마현을 보며 허진은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 * *

추도영은 무영대가 보내온 서류들을 찬찬히 살펴보고 있었다. 그 보고서들은 사공찬과 도종극의 행적을 비롯해 그 둘을 지지하는 파벌들의 동향에 대한 것들까지 상세하게 담겨 있었다. 그리고 끝으로 짤막하게 마현과 허진에 관한 것도 쓰여 있었다.

“흠…….”

추도영은 무영대의 보고서를 촛불에 태우며 나직한 침음성을 내뱉었다.

여느 때와 별반 다름없는 보고서였다.

추도영은 재가 되어 사라지는 보고서를 보며 눈살을 더욱 찌푸렸다. 갑작스럽게 눈이 부셔서가 아니었다.

바로 마현 때문이었다. 마치 손에 박힌 자그만 가시처럼 잊을 만하면 따끔거리는 것이 신경을 긁는다.

‘육 개월이야……, 육 개월…….’

보고서에 의하면 일단 허진을 통한 무공 수련은 벌써 육 개월 전에 끝났다. 허진의 독문무공을 모두 전수받았다는 뜻이다. 또한 그 시기에 맞춰 흑풍대에 대한 훈련을 끝내고 정식으로 흑풍대를 창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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