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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마법사 무림에 가다-51화 (51/351)

# 51

1화

뜨거운 햇살이 내비치는 어느 여름 날.

맴― 맴― 맴―

매미가 목청을 높여 시끄럽게 울고 있었다.

그늘 하나 만들어지지 않는 연무장 한가운데.

뜨거운 땡볕에 의해 달아오른 연무장의 장판석은 후끈한 열기를 토해내고 있었다. 그 뜨거운 열기조차 무색하게 할 만큼 뜨거운 기운을 내뿜는 한 사내가 있었다.

키는 대략 5척 반(170cm).

날카로움과 부드러움을 동시에 가진 묘한 얼굴.

조금은 마른 듯 보이지만 단단한 근육을 가진 사내는 냉정하면서도 차가운 눈동자로 연무장 바닥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흠…….”

나직하게 목소리를 내뱉은 사내의 목소리는 참으로 듣기 좋은 중저음이었다. 그렇게 한참이나 바닥을 내려다보던 사내는 고개를 들어 뜨거운 햇살을 올려다보았다.

장석판을 달구는 뜨거운 햇살 때문이었을까.

사내의 눈이 찌푸려지며 눈가에 주름이 살짝 잡혔다.

‘이 여름만 지나면 벌써 일 년인가?’

뜨거운 햇살을 올려다보는 이는 다름 아닌 마현이었다.

가을을 넘어 겨울이 지나가고, 봄이 왔다. 그리고 다시 시간이 흐르며 계절은 어느덧 여름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그 일 년이 안 되는 시간 동안 마현은 소년의 모습에서 완전히 탈피하여 누가 보아도 사내다움이 느껴지는 20대 중반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노화 마법을 그만 해도 되겠군.’

이제 완벽히 성인의 몸을 갖추었음을 느낀 마현은 내일부터는 더 이상 노화 저주 마법을 펼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마현은 잠시 머리를 식힌 후 고개를 내려 다시 연무장 장판석을 내려다봤다.

장판석 위에는 검은 발자국 수십 개가 그려져 있었다. 그 발자국은 허진의 독문무공인 마라공에 들어 있는 보법 마라환영보(魔羅幻影步)의 요결(要訣)이었다.

그렇게 마현이 마라환영보의 요결대로 찍힌 발자국을 내려다볼 때 허진이 조용히 연무장 안으로 들어왔다. 마현은 마라환영보에 집중한 탓인지 허진의 등장을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허진은 자신이 왔음을 알리지 않고 조용히 마현을 쳐다봤다.

마현은 참으로 겪으면 겪을수록 신기한 아이였다.

보법이란 원래 행함에 있어 그 밑바탕이 되는 구결을 익힌 후 직접 몸으로 발걸음의 순서를 익혀야 한다. 첫걸음부터 시작해서 서서히 걸음 수를 늘려 결국 보법 마지막 발자국까지 몸으로 익히고 느껴야 한다.

그런데 마현은 달랐다.

어떻게 익히는지는 몰라도 그는 눈으로, 그리고 머리로 먼저 외웠다.

마현은 그렇게 허진이 자신을 쳐다보는지도 모르고 마라환영보에 집중했다. 마현의 눈은 마라환영보의 순서대로 찍힌 발자국을 따라 움직이며 허진이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연신 중얼거렸다.

“보법 역시 블링크와 다르지 않다. 보법 역시 시작점은 나. 나의 시작점을 상대좌표 X · Y · Z를 0 · 0 · 0으로 기준으로 해 X는 횡보(橫步), Y는 종보(縱步), Z는 승보(昇步)로 삼았을 때……, 마라환영보의 첫걸음은 0 · 1 · 0. 그 후 변화는 1 · 1 · 0, 1 · 3 · 0, 0 · 3 · 0…….”

마현은 연신 중얼거리며 마라환영보의 발자국을 상대좌표에 대입시켜 외워나갔다. 그렇게 반시진이 지났다.

아무리 마현이 흑마법사이고 그 어떤 것들을 외우는 데 남들보다 탁월한 재능이 있다고 해도 마라환영보의 기본형만 해도 발자국이 수십 개다.

반시진에 걸쳐 마라환영보의 기본형을 완전히 상대좌표에 대입시켜 수식화한 다음 그걸 외웠다.

마현의 입꼬리가 살짝 말려 올라갔다.

‘실전에서는 이렇게 사용할 수 없겠지만…….’

마현이 조용히 눈을 감았다.

검은 세상이 눈앞에 펼쳐졌다.

아무것도 없는 오로지 검은 세상. 그 바닥에 바둑판처럼 하얀 선들이 그려졌다.

띵!

자신이 서 있는 바로 앞 칸에 하얀 점이 반짝였다.

띵 띵 띵 띵 띵―

그 옆으로 하얀 점이 반짝이더니 이어 수십 개의 점들이 순차적으로 하얀 빛을 만들었다. 그 빛들은 어느 한 점을 중심으로 둥글게 에워 감싸갔다.

유일하게 점이 찍히지 않은 지점.

그 지점에 회색빛 그림자가 만들어졌다. 그 그림자는 마현이 상상 속에서 불러낸 가상의 적이었다.

“블링크!”

마현의 입이 살짝 벌어지며 캐스팅 어가 흘러나왔다.

허진은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파밧!

마현의 몸이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파바바밧! 파밧!

마현은 머릿속으로 그려진, 그리고 순차적으로 모습을 드러낸 하얀 빛을 블링크를 이용해 밟아나갔다.

“허어…….”

허진이 저도 모르게 감탄사를 내뱉었다. 마현이 현재 마라환영보를 완벽히 이형환위로만 밟고 있는 탓이다.

만약 허진이 마라환영보의 순서와 구결을 몰랐다면 열이면 열 마현의 모습을 놓쳤을 것이 분명했다. 순수하게 보법을 밟는다면 일각이 조금 덜 걸렸을 것인데 마현은 마라환영보의 기본형을 그 반의 반만에 완벽하게 찍었다.

‘저 보법이 완성된다면 이 세상 누구도 현이의 그림자조차 밟지 못할 것이야…….’

허진은 사제관계를 떠나 순수하게 무인으로서 마현의 모습에 감탄사를 터트렸다.

“후우…….”

그러는 사이 마현은 조용히 숨을 내뱉었다.

머리로 외운 것을 몸으로 다시 외운 것이었다. 정확히 몇 번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십여 번 반복해 되풀이한다면 기본공은 자연스럽게 익힐 수 있을 것이라 여겼다.

“훗.”

그런 생각을 머금은 마현은 나직한 실소를 터트렸다.

단 한 번의 보법으로 단전 서클의 마력 절반 이상을 사용한 것이다.

마현은 조용히 눈을 떴다.

“스승님.”

마현의 눈에 빙그레 웃고 있는 허진의 모습이 보였다. 마현은 수건으로 얼굴에 난 땀을 닦으며 허진에게 걸어갔다.

“마라환영보를 알려준 지 하루도 안 지났거늘…….”

“실전에 쓰기에는 무리가 있습니다.”

“무리?”

“이 보법 하나로 마력이 절반 이상 소모되었습니다.”

“허어…….”

허진의 목소리에 아쉬움이 가득 묻어났다.

“광마보와는 다르구나.”

십여 발자국으로 이루어진 마교의 가장 기본 보법 중 하나인 광마보는 마현의 입장에서 그다지 부담이 가지 않았다. 하지만 너무나도 단순해 블링크로만 광마보를 밟는다면 무림의 고수에게는 어렵지 않게 뒤를 잡힐 것이 분명했다.

그만큼 광마보는 기본에 충실한 보법이었고, 널리 알려진 보법이었다.

“그래서 마라환영보는 힘들더라도 순수하게 보법으로 익혀야 할 것 같습니다. 그 후 제 마법과 합쳐 볼 생각입니다.”

“그래서 광마보를 그렇게 열심히 수련했구나.”

허진은 마현을 기특하다는 눈으로 쳐다봤다.

그리고 블링크로만 완벽히 성공해낸 광마보와는 달리 마라환영보는 왜 어렵게 처음부터 순수 무인이 수련하는 것처럼 보법을 하나씩 밟아가며 연습한 것인지 이해가 되었다.

“이삼 일 내로 마라환영보의 오의는 익힐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 후 보법으로 다시 수련해야 하니 스승님께서 다시 수고를 해주셔야겠습니다.”

“녀석, 당연한 거 아니냐.”

허진은 빙그레 웃으면서도 내려쬐는 뜨거운 땡볕에 눈가를 살짝 찌푸렸다.

“햇살이 따갑구나, 그늘로 가자.”

허진은 뜨거운 볕을 피해 연무장 한편에 커다란 그늘을 만드는 나무 아래로 걸어갔다. 나무 아래로 걸어간 허진은 마현의 몸을 눈으로 살피며 물었다.

“단전은 차도가 있느냐?”

어느새 훌쩍 커 버린 마현을 보며 허진은 9개월 전 그가 했던 고민을 떠올렸다. 아직 다 자라지 않은 몸으로 인해 더 이상 단전이 성장하지 못한다는 그 고민을.

“여전히 차도가 없습니다.”

“그래?”

마현의 표정이 조금 어두워졌다.

“아마 몸이 갑자기 커 신체의 균형이 조금 흐트러진 것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마현은 의도적으로 자신의 몸을 성장시킨 사실은 숨겼다. 허진에게 쓸데없는 걱정을 끼치고 싶지 않은 까닭이었다. 허진은 고개를 끄덕이며 마현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이 스승이 다시 한 번 네 몸을 살펴도 되겠느냐?”

마현은 순순히 손을 내밀었다. 허진은 마현의 완맥을 잡으며 눈을 감았다. 그리고 마력을 일으켜 마현의 몸으로 흘러 넣었다.

“흠…….”

허진은 마현의 서클 단전과 거기서 뻗어간 기혈들을 세세히 살폈다. 더불어 흐트러진 신체의 균형 역시 살펴보았다.

마현의 말대로 균형이 조금 흐트러졌지만 서클 단전이 성장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또한 가릉이 매일 바치는 영약의 기운으로 인해 그나마 흐트러진 균형도 조금씩 제자리를 찾아가고 있었다.

‘결국 그 문제가 아닌 것 같은데…….’

허진은 마력을 거두며 눈을 떴다.

“어떻습니까, 스승님?”

마현은 허진의 표정으로 보아 자신의 몸에서 뭔가를 알아차렸음을 느꼈다. 애써 담담하게 물었지만 얼굴에는 다급함이 묻어 있었다.

“글쎄다……, 이 스승이 마법을 모르니 정확히 말을 해줄 수 없다만…… 이 스승의 생각에는 네 몸도 문제지만 다른 문제도 숨어 있는 듯 보인다.”

허진이 마현의 몸을 살펴보니 몸이 주는 제약은 이미 벗어난 지 오래였다.

“조금 이야기가 길어질 듯하니 앉아서 이야기하자.”

허진은 마현을 데리고 서탁으로 걸어가 마주보고 앉았다. 허진을 바라보는 마현의 눈동자는 조금 초조해 보였다. 그런 마음을 알았는지 허진은 뜸을 들이지 않고 곧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이 스승이 듣기로 원래 마법의 중심이 단전이 아닌 심장이라고 했지?”

“그렇습니다, 스승님.”

“아마 그게 문제인 것 같다.”

“무슨 말씀이신지…….”

“마법은 오랜 시간 동안 심장을 중심으로 발전한 학문이다. 지금 너의 중심은 심장이 아닌 바로 단전이다.”

“……!”

마현의 눈동자가 놀라움으로 동그랗게 떠졌다. 순간 머릿속을 스치는 것이 있었던 것이다. 허진은 그런 마현의 변화를 알아차렸지만 자신의 생각을 이어서 밝혔다.

“지금 너의 중심이 되고 있는 단전의 주체는 여러 과정을 거쳤지만 마라역천공이다. 오랜 시간 무공에 맞춰 다듬어지고 만들어졌다. 그것은 마공을 위한 내공심법이며 그로 인해 만들어지고 완성된 단전이지 마법을 위해 만들어진 단전이 아니라는 소리다.”

“…….”

허진의 설명을 듣는 마현의 눈동자가 착 가라앉았다.

“즉, 너의 심장을 중심으로 한 마법의 깨달음이 지금의 서클 단전의 성장을 방해하는 것이 아닌가, 이 스승은 조심스럽게 예상을 해본다.”

“……역시 그 문제인가요?”

마현은 허진에게 묻는 듯했지만 실은 독백과도 같은 말이었다.

순수하게 마법을 펼칠 때는 몰랐지만 9개월 동안 무공을 새로이 익히면서 미묘하게나마 느낀 것이 있었다. 서클 단전의 반응이 마법보다 무공에 더 자연스럽고 부드러웠던 것이다.

그렇게 마법과 무공이 자연스럽게 비교가 되면서 무공에 비해 마법이 조금은 부자연스럽다는 것을 느꼈었다. 그 차이가 워낙 미세해서 그냥 흘려보냈지만 지금 허진의 말을 들으니 자신이 큰 것을 놓쳤다는 것을 비로소 깨달은 것이다.

“결국 더 큰 단전을 가지기 위해서는 무공을 더욱 깊게 파야겠군요.”

“내 생각에 그건 아니라고 본다.”

마현의 말에 허진은 고개를 저었다.

“지금처럼만 해도 충분하지 않을까 싶다.”

“……지금처럼.”

“그래, 지금처럼. 너의 말대로 너는 마법사이지 무인이 아니지 않느냐? 지금처럼 무공을 익히되 무인으로 익히려 하지 말고, 순수하게 학자처럼 공부하는 마음가짐으로 배운다면 길이 열릴 것이라 생각된다. 마법 역시 무공처럼 오랜 시간 갈고 다듬어진 공부가 아니더냐. 분명 두 공부 사이에 교차점이 있을 것이다. 지금부터 너는 그 교차점을 찾는데 신경을 쓰면 될 것 같구나.”

한순간 밀려왔던 답답함이 허진의 자상한 충고로 인해 시원하게 날아갔다. 그리고 앞으로 어느 것에 좀 더 신경을 써야 할지도 더욱 명확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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