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흑마법사 무림에 가다-50화 (50/351)

# 50

25화

“무영대의 거처는 어디지?”

-무영대의, 거처는, 없다.

“다른 대원들과의 연락 방법은?”

-다른 대원들이, 누구인지, 나는 모른다. 오로지 대주에게만, 명을, 받을 뿐이다.

철저한 점조직이었다.

더 이상 그에게서 얻을 정보가 없음을 깨달은 마현은 혼백과 이어지는 마기를 끊었다.

“그만 쉬어라.”

-이제 나는, 평안한, 평안한 잠을, 잘 수 있는…….

혼백은 마지막 말이 끝나기도 전에 뿌연 연기가 되어 아래로 푹 꺼지더니 이내 사방으로 흩어져 사라졌다.

“후후후.”

마현은 차갑게 웃으며 의자로 걸어가 앉았다.

“주군!”

가릉이 마현 앞으로 다가왔다.

“당장 교주님에게 대공자가 감히 교리를 어기고 사조직을 만들었음을 알려 일벌백계로 다스려야 합니다.”

가릉은 그답지 않게 잔뜩 흥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니다.”

“하오나…… 주군.”

“좋은 칼자루가 우리에게 왔는데 그걸 왜 버리나?”

“예?”

가릉은 마현의 말에 영문을 몰라 물었다.

“다음 무영대는 사로잡아야겠어. 궁금해지는걸? 대공자의 금제가 강한지 내 흑마법이 강한지 말이야, 크크크.”

마현은 팔을 올려 턱을 괴었다.

“대공자의 사조직이라……. 앞으로 어떻게 나올지 더 궁금하군.”

마현의 눈빛은 차갑게 반짝였다.

“가릉.”

“예, 주군.”

“시신은 마의당을 통해 처리하라. 어차피 대공자라면 그대가 나에게 붙었음을 눈치를 챘을 테니까. 차라리 드러내놓고 움직이는 게 편해.”

“알겠습니다.”

가릉은 허리를 숙여 명을 받들었다.

그러는 사이 창문으로 해가 밝아오고 있었다.

추도영 덕분에 밤을 꼬박 지새운 것이다.

“자네에게는 미안하군.”

“아니옵니다.”

“내 아직 힘이 없어 수하라고는 자네 하나뿐이다. 이런 일까지 시켜서 미안하다.”

가릉이 아무리 자신의 수하라지만 이미 나이가 백이십이 넘은 노인이었다.

그런 그에게 왕귀진과 그 동료들을 데리고 오는 시시콜콜한 일까지 맡겨야 했다.

“그런 말씀 마시옵소서.”

“그래서 내 자네에게 하나는 약속해 주지.”

“……?”

“자네를 역사상 가장 위대한 마의(魔醫)로 이름을 남기게 해주겠다.”

“주, 주군.”

“그렇게 부를 것 없다. 앞으로 더 부려먹겠다는 뜻이니까.”

“……주군.”

“나나 그대나 좀 더 편해지면 소환술의 원리를 가르쳐 주지. 내가 줄 수 있는 건 그것뿐이다.”

“……주군.”

가릉은 북받치는 목소리로 마현을 다시 한 번 부르며 머리를 깊숙이 숙였다.

그때 허진의 직속 무력단체인 유령대 제2부대주 구영이 안으로 들어왔다. 가릉은 흑풍각 안으로 들어오는 구영을 보자 마현에게 허리를 다시 숙였다.

“다녀오겠습니다.”

구영은 허진을 보필하다 보니 얼핏 마현과 가릉과의 관계를 눈치챘지만, 막상 허리를 숙이는 마교의 독불장군 가릉을 보자 놀라 눈을 부릅떴다.

밖으로 나가는 가릉을 향해 구영은 살짝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고는 마현 앞으로 다가왔다.

“부르셨습니까, 소주군.”

“이른 시간에 불러서 죄송합니다.”

마현은 구영을 다탁으로 안내한 후 시녀를 시켜 차를 가져오게 했다.

“조금 있으면 흑풍대로 삼을 이들이 올 것입니다.”

“그 부분은 주군께 이미 말씀을 들었습니다.”

구영은 품에서 책자 몇 권을 꺼내 마현 앞으로 내밀었다.

“흑풍대가 익힐 마공서들입니다. 혹 소주군께서 궁금해하실까봐 가져와 봤습니다.”

마현은 마공서들을 들어 간단하게만 살폈다.

아직 무공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없어 읽어본다고 해서 이게 상승 마공인지 아닌지 잘 파악할 수 없었다.

“이 마공서들은 상승 마공들입니까?”

“조금 애매합니다.”

“애매하다?”

“상승 마공에 넣기도 좀 그렇고, 그렇다고 질이 떨어지는 마공서도 아닙니다. 흑풍대가 앞으로 이걸 제대로 익힌다면 초절정마두까지는 오를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극마지경에는 오르지 못할 겁니다.”

“흠…….”

마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유령대에 비교하면요?”

마현의 질문에 구영은 잠시 망설이다가 입을 열었다.

“저희가 익힌 것보다 한 수 떨어지는 마공서들입니다.”

“그렇군요.”

“주군께서 이 마공서들과 저희들이 익힌 마공을 두고 고심하는 눈치였습니다. 제 생각에는 저희와 같은 마공을 가르칠 줄 알았는데 주군께서는 이걸 주셨습니다.”

구영 역시 고개를 갸웃거리는 것을 보면 허진의 생각을 완벽히 읽지는 못한 듯 보였다.

“다 생각이 있으셔서 그렇겠지요.”

마현은 마공서들을 구영에게 다시 내밀었다.

“어차피 상관없습니다. 그들은 마인이지만 무인이 아닌 사령검사들이 될 테니까…….”

“예?”

“아무것도 아닙니다.”

마현의 중얼거림을 잘 알아듣지 못한 구영이 되물었으나, 마현은 이내 옅은 웃음을 지으며 말을 끝내 버렸다.

“스승님께 말씀을 들었겠지만 일 년간 흑풍대를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소주군의 손발이 될 이들이면 저희와 한 식구나 마찬가지입니다. 이 구영이 최대한 성심을 다해 훈련을 시키겠습니다.”

“성심만 다해서는 안 됩니다.”

“네?”

“모두 죽어도 상관없습니다.”

“무슨 말씀이신지…….”

차가운 마현의 선언에 구영은 깜짝 놀랐다.

“지옥 같은 훈련을 부탁드리겠습니다. 저는 허수아비를 원하는 게 아닙니다. 야차 같은 놈들을 원합니다.”

마현의 말에 구영의 표정이 조금 굳어졌다.

“의외인가요?”

“조금 그렇습니다.”

“하지만 제가 살아남기만 바란다면 상관없지만…….”

마현은 차가운 미소를 흘렸다.

“뭐 여러모로 저는 다른 공자들에 비해 몇 걸음 뒤에 서 있는 거니까요.”

마현은 부드럽게 웃으며 말을 슬며시 돌렸다.

굳이 직설적으로 말을 하지 않았지만 구영은 지금 마현이 어떤 결심을 했는지 느낄 수 있었다.

“알겠습니다, 소주군에게 결코 실망이 되지 않게 훈련을 시켜 놓겠습니다.”

“그리 말씀을 해주시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아닙니다, 소주군은 주군의 하나뿐인 제자이십니다. 주군을 섬기는 수하로서 당연한 의무일 뿐입니다.”

그러는 사이 흑풍각 밖이 약간 소란스러워졌다.

그리고 곧 가릉이 안으로 들어왔다.

“주군, 데리고 왔습니다.”

“그래? 구 부대주, 잠시만 자리를 비켜 주시겠습니까?”

마현은 가릉에게 살짝 고개를 끄덕여 명한 후 고개를 돌려 구영을 쳐다봤다.

“알겠습니다. 그럼 저는 유령대 연무장으로 가 있겠습니다.”

구영은 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제가 그들을 데리고 그곳으로 가겠습니다.”

구영이 나가고 바로 서른 명의 사내들이 흑풍각 안으로 우르르 들어왔다.

흑풍각 안으로 들어와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보니 다들 상당히 긴장한 모양이었다. 그러면서도 과연 왕귀진이 했던 말이 사실인가 의심을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기대로 가득 찬 눈을 하고 있었다.

우왕좌왕하는 이들 사이에서 왕귀진이 앞으로 걸어 나왔다.

“믿을 만한 자들로 뽑아왔습니다.”

왕귀진은 어제 마현의 말을 들었지만 지금까지도 긴가민가한 눈빛이었다.

마현은 자리에서 일어나 그가 데리고 온 자들을 눈으로 훑었다.

“나를 위해 목숨도 버릴 수 있는 자들을 원한다.”

마현은 담소라도 나누는 것처럼 조용히 이야기했다. 하지만 그 소리에 흑풍각 안은 바늘이 떨어져도 들릴 정도로 고요해졌다.

“지, 진짜 사공자님께 목숨을 드리면…… 강해질 수 있습니까?”

덩치가 상당히 큰 사내가 긴장한 눈빛으로 말을 꺼냈다.

“상승 무공도 익힐 수 있는 겁니까요?”

“무시당하지 않게 강해질 수 있는 겁니까?”

말문이 터진 탓일까?

눈치를 보고 있던 사내들이 하나하나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

“나는 너희들을 내 직속 무력단체인 흑풍대로 만들까 한다.”

“꿀꺽.”

조용한 가운데 누군가의 목에서 마른침이 넘어갔다.

“과연 이 세상에 약한 수하를 두고 싶은 자가 있을까 싶은데…….”

흑풍대라는 단어가 마현의 입에서 튀어나오자 사내들의 분위기가 뜨거워졌다.

그들로서는 꿈에도 상상하지 못한 무대(武隊)였다.

마교의 무력단체가 아닌 개인 무력단체는 아무나 들어갈 수 없는 곳이다.

또한 그 대우가 일반 무대보다 더 좋았다. 그런 만큼 암투에 휘말려 죽을 확률도 더 높다.

“나에게 목숨을 준다면 나는 너희들을 강하게 만들어 줄 것이다.”

순간 사내들의 눈빛이 강렬하게 바뀌었다.

“하지만!”

이내 나온 마현의 목소리는 그 분위기를 차갑게 식혔다.

“흑풍대가 되는 순간 너희는 마인이되 무인의 길은 포기해야 한다.”

무인의 길을 포기해야 한다는 마현의 말에 다들 충격을 받은 듯 분위기가 갑자기 혼란스러워졌다.

당연히 강하게 만들어 준다는 말을 상승 마공을 준다는 이야기로 받아들였던 것이다.

“나는 강한 수하를 원하는 것이지 강한 무인을 원하는 게 아니다.”

마현의 말에 사내들의 눈에는 갈등이 스쳐지나갔다.

아무도 말을 꺼내지 않았다.

흑풍각 안에 마치 사람이 아무도 없는 것처럼 정막감만이 흘렀다.

“사공자님.”

그 정막을 깨트린 것은 왕귀진이었다.

“말하라.”

“무인이든 아니든 강하게 만들어 주실 겁니까?”

왕귀진의 눈에서는 열망이 느껴졌다.

“약속하지, 머지않은 미래에 아무도 너희들 앞에서 허리조차 못 펴게 만들어 주지. 그리고 나 외에는 누구에게도 허리를 숙이지도 않게 만들어 주겠다.”

마현의 선언에 왕귀진은 입술을 아프게 깨물었다.

흔들리는 눈빛을 보니 갈등을 하는 모양이었다. 아무리 강해지고 싶어도 평생을 무인으로 살아온 그였다. 무인의 자부심은 쉽게 놓을 수 있는 게 아니다.

하지만 무인보다 강해지고 싶다는 열망이 더 큰 법.

흔들리던 눈동자가 어느새 굳게 변해 있었다.

“무인이 아니라도 좋습니다. 사공자님의 말씀처럼 강해질 수만 있다면, 지금처럼 무시당하며 살지 않을 수만 있다면, 그 무엇이 되어도 좋습니다.”

말을 하는 내내 얼마나 주먹을 세게 말아 쥐었는지 그의 팔 전체가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쿵!

그러더니 왕귀진은 둔탁한 소리를 일으키며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흑웅귀 왕귀진, 사공자님께 목숨을 드리겠습니다.”

쿵!

왕귀진은 다시 한 번 머리를 바닥에 찧으며 둔탁한 소리를 만들었다.

“그래, 무인이면 어떻고 아니면 어때? 나는 강해질 거다. 그래서 나를 무시했던 놈들을 모두 내 앞에 무릎을 꿇게 만들 거야.”

거대한 덩치를 가진 사내가 왕귀진의 모습에 흥분했는지 거칠게 말을 내뱉으며 왕귀진 옆으로 걸어 나왔다.

“철용, 사공자님께 이 하찮은 목숨 드리겠습니다.”

쿵!

철용이라고 이름을 밝힌 덩치 큰 사내 역시 머리를 바닥에 찧으며 부복했다.

왕귀진과 철용의 말이 사내들의 마음을 움직인 것일까.

“나도 강해지고 싶다. 더 이상 무시 받으며, 천대 받으며 살고 싶지 않아. 비록 보잘것없는 목숨이지만 강한 힘만 주신다면 소인 기꺼이 이 목숨 사공자님께 바치겠습니다.”

쿵!

또 한 사내가 머리를 강하게 찧으며 엎드렸다.

그게 시작이었다.

쿵 쿵 쿵 쿵 쿵!

흑풍각 안에 서 있던 사내들이 일제히 마현 앞에 엎드렸다.

“이 순간 너희들의 목숨은 내 것이다.”

“충!”

동시에 한 단어가 사내들의 입에서 튀어나왔다.

“다시 한 번 약속하겠다. 그 목숨의 대가로 너희들을 강하게 만들어 주겠다.”

왕귀진이 고개를 들었다.

“주군.”

“말하라.”

“그렇다면 저희는 무인이 아닌 무엇이 되는 것입니까?”

왕귀진의 물음에 사내들, 이제는 흑풍대가 된 대원들이 하나같이 고개를 들어 마현을 쳐다봤다. 마현은 그런 그들을 향해 차가우면서도 진중한 목소리로 대답해 주었다.

“너희들은 사령검사가 될 것이다. 스켈레톤을 다스리는…… 사령검사!”

<3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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