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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마법사 무림에 가다-42화 (42/351)

# 42

17화

“더 이상의 비무는 필요 없겠군.”

마현은 고개를 끄덕이지는 않았지만 속으로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충고 하나 해도 되겠는가?”

흑권의 말에 마현은 고개를 들었다.

“그대의 지식에서 본좌는 흑마법사의 자부심과 자긍심을 느꼈네. 본좌뿐만 아니라 여기 있는 흑사신들 역시 자신만의 무공에 대한 자부심이 가득하지. 하지만 말이야…… 그대처럼 외골수는 아니네.”

흑권은 마현에게서 등을 돌리고 양손을 동그랗게 말며 앞으로 내밀었다.

후우웅―

가지런히 모은 양손에서 사기가 모이더니 강기로만 이뤄진 검이 만들어졌다.

쐐애애액!

흑권의 움직임이 마현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마현의 눈에 보이는 것은 오로지 사기로 만들어진 검뿐이었다. 검은 그림자가 지하 연무실을 가득 채울 때쯤 흑권은 사기로 만든 검을 흩트리며 자세를 반듯하게 세웠다.

“이걸 왜 보여주는지 알겠는가?”

“…….”

마현이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자 흑권은 다시 입을 열었다.

“적을 알아야 적을 이길 수 있네. 하루 빨리 진정한 우리의 주군이 되게. 이런 어정쩡한 관계를 언제까지 지속할 수는 없지 않은가?”

“……적을 알아야 적을 이길 수 있다…… 라…….”

“어차피 선택은 그대 몫이네.”

마현은 자리에 앉아 조용히 생각에 잠겼다.

흑도가 무슨 말을 하려 했지만 흑권이 조용히 그를 말렸다. 흑사신들은 마현을 위해 침묵을 지켰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그들은 강제로 귀환되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마현은 깊은 생각에 잠겨 있었다.

* * *

흑마법사라는 자부심이 커지자 어느새 마음 한구석에 자만심이 차 있었다.

‘만류귀종(萬流歸宗)이라…….’

마현은 흑도의 이형환위를 떠올렸다.

결국 몇 날 며칠을 고심한 끝에 마현은 부마전을 찾았다. 지금 그가 기댈 수 있는 이는 허진밖에 없었다.

마현은 지금 몸속에서 흐르는 기분 나쁜 마기를 느꼈다. 자신의 마기이면서도 자신의 몸을 늙게 만드는 저주의 기운에 슬며시 낯을 찌푸렸다.

물론 지금 그 마법이 몸을 노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성장시키는 것이기는 하지만 기분이 나쁜 것만은 사실이었다.

일 년 동안 이 기운을 느끼며 살아야 한다는 생각에 마현은 더욱 인상을 썼다.

‘어차피 일 년이라는 시간 동안 할 수 있는 게 없다.’

그 시간 동안 마법의 초점을 무인들에게 맞추려고 했다. 하지만 흑사신들을 통해 그 일이 어불성설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단편적으로 흑사신들의 무공만 견식했지만 이 세상의 무공은 하르센 대륙 기사들의 검술과는 차원이 다르다.

좋든 싫든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했다.

‘새로운 학문이라 생각하자. 무엇이든지 받아들이고 연구하는 게 바로 마법사가 아닌가?’

마현은 크게 숨을 들이마시며 부마전 안으로 들어갔다.

“며칠 사이 부쩍 말랐구나.”

며칠 동안인지 정확히 알 수 없었지만 마현은 허진과 점심을 먹지 않았다.

“힘이 드느냐?”

허진은 손수 차를 내오며 무척 어두운 표정의 마현을 보며 걱정 어린 눈빛을 보냈다.

“스승님.”

마현은 허진을 향해 고개를 들었다.

“그래, 왜? 이 스승이 도울 거라도 생긴 모양이구나.”

허진은 수척해진 모습으로 자신을 찾아온 마현을 쳐다보며 속으로 뭔가 일이 잘 안 풀리는 모양이라고 생각했다. 하긴 마현의 나이 이제 열일곱이었다.

그 또래에 비하면 어른스러운 면도 있고, 고집도 있어 나름 지켜보고 있는 중이었다. 하지만 지하 연무실에만 틀어박혀 있을 뿐 정확히 무엇을 하는지는 도통 알 수가 없었다.

“무공을 공부하고 싶습니다.”

허진의 눈이 화등잔처럼 크게 떠졌다. 허진은 지금 꿈을 꾸는 것이 아닌가 싶었지만, 아니었다. 분명 마현은 굳은 눈빛으로 자신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토록 바라던 말을 들었는데 허진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그저 마현의 얼굴을 쳐다봤다.

“지금 이 스승의 무공을 익히고 싶다고 했느냐?”

허진의 목소리는 가늘게 떨렸다.

“그 전에 비무를 통해 제 힘을 봐 주십시오.”

목소리도 표정도 진지했다.

“무슨 의도인지는 모르겠지만 다 생각이 있어서 말을 꺼낸 것이겠지? 좋다, 일단 이 스승이 너의 힘을 봐 주겠다.”

허진은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무래도 남들 눈에 띄어서 좋을 것이 없으니 이 스승의 개인 연무장으로 가자구나.”

마현은 허진을 따라 부마전 뒤편에 만들어진 연무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연무장을 중심으로 허진과 마현이 나란히 마주보고 섰다.

“안 그래도 너의 능력이 궁금하던 차였다.”

허진은 몸에서 마기를 뿜어내며 두 팔을 옆으로 벌렸다.

“남들은 이 스승의 독문무공을 천수마라검(千手魔羅劍)이라고 알지만 진정한 독문무공은 마라독혈수공(魔羅毒血手功)이다.”

“이 제자의 독문무공은 흑마법입니다.”

“흑마법?”

생소한 단어에 허진은 눈을 반짝였다.

“그게 너의 길이냐?”

“스승님께는 송구하오나 그렇습니다.”

“좋다. 제자가 홀로 이룬 흑마법이라는 것을 스승인 내가 오늘 견식해 보겠다.”

스스슥.

허진의 발이 연무장 장판석 위를 긁으며 넓게 벌어졌다. 동시에 허진의 몸이 아래로 내려가며 전체적인 무게 중심이 하체로 이동했다.

“먼저 오너라.”

“후우…….”

마현은 숨을 크게 내쉬며 서클에서 마력을 끌어올렸다. 마현은 착 가라않은 눈으로 허진을 쳐다봤다.

“가겠습니다, 스승님.”

마현은 양손을 가슴으로 모으며 마력을 끌어 모았다.

“소울러 라이트(Solar light)!”

마현의 손에서 마력이 맴돌다가 푹 사라졌다.

허진은 마현의 손으로 모이는 마력에 눈빛을 반짝이다가 기운이 이내 힘없이 흩어지자 실망하는 듯했다.

그때였다.

번쩍―!

허진의 눈앞에서 보는 것만으로도 눈이 시릴 정도로 강렬한 빛이 터졌다.

“큭!”

너무나 강렬한 빛을 본 탓인지 허진은 순간 시력을 잃어버렸다. 그러는 사이 옆구리를 향해 날카로운 기운이 날아오는 것이 느껴졌다.

허진은 아예 눈을 감아 버리고 감각을 최대한 끌어올렸다.

쑤아아앙!

‘창?’

감각에 걸린 그 무엇은 마치 투창처럼 느껴졌다.

이상했지만 허진은 팔을 틀어 손에 수강을 만들어 옆구리로 날아오는 투창을 움켜잡았다.

콰광!

그러자 그 창은 폭발하며 불덩이가 되어 허진의 오른팔을 집어삼켰다. 불길에 뜨거움이 느껴졌다. 허진은 몸을 회전하며 오른팔을 집어삼킨 불덩이를 쳐냈다.

동시에 뒤로 물러나 마현과 거리를 두었다.

잃어버렸던 시력이 돌아오자 허진은 눈을 내려 오른팔을 쳐다봤다. 소매는 이미 타 버려 형체도 보이지 않았고, 드러난 맨살은 그을음으로 인해 검게 변해 있었다.

“흠…….”

허진은 나직한 침음성을 머금으며 고개를 들어 마현을 쳐다봤다. 가볍게 생각했는데 마현의 능력은 허진의 생각을 훌쩍 뛰어넘고 있었다.

‘화끈거리는 투창의 정체가 저것이었나?’

시력이 돌아오자 그 사이 마현이 만들어 놓은 파이어 재벌린이 보였다. 허진은 좀 더 마현의 능력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할 필요성을 느끼며 앞으로 몸을 날렸다.

쑤아아앙!

허진은 가슴을 향해 날아오는 화창(火槍)을 왼손으로 흘리듯 쳐내며 마현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그러자 마현의 입에서 의미를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이 들렸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마현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허진은 재빨리 몸을 틀며 고개를 돌렸다.

조금 떨어진 곳에 마현이 서 있었다.

‘이건?’

마현이 입마관 졸업식 마지막 시험에서 보여준 능력이었다.

허진은 마력을 극으로 끌어올리며 보법을 밟았다. 허진의 형상이 길게 늘어지는 듯하더니 신기루처럼 시야에서 갑자기 팍 사라졌다. 그리고 허진이 모습을 드러낸 곳은 마현 바로 앞이었다.

‘이, 이형환위?’

흑도가 보여준 것처럼 깨끗하지는 않지만 분명 이형환위가 틀림없었다. 마현은 다시 블링크로 반대편으로 이동했다. 마현이 사라진 것과 동시에 허진의 몸 역시 길게 늘어지더니 다시 마현 바로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마현은 더 이상 블링크로 도망갈 수 없음을 깨달았다. 마현은 허진이 디디는 땅바닥을 향해 마력을 뿌렸다.

“디그 다운(Dig down)!”

푸화아악―

허진의 발아래 바닥이 아래로 푹 꺼져 내려갔다.

“헙!”

동시에 허진의 입에서도 헛바람이 터졌다.

마현은 플라이 마법을 시전하며 허공으로 몸을 띄웠다. 그리고 구덩이를 향해 마력을 쏟아 부었다.

“하늘의 힘을 빌리노라, 라이트닝 체인(Lightning chain)!”

마현은 자신이 할 수 있는 최강의 공격 마법을 시전했다.

파지직, 파파지직!

마현의 손에서 몇 줄기 번개가 번쩍이더니 구덩이에 떨어졌다.

콰과과광!

구덩이 안에서 번개와 번개가 부딪히며 폭발했다. 그 여파로 구덩이가 만들어진 주위 땅거죽이 들썩거렸다. 하지만 마현의 표정은 딱딱하게 굳어졌다.

구덩이 안에는 라이트닝 체인으로 만들어진 검은 그을음만 있을 뿐 아무것도 없었다.

“자칫 제자의 손에 죽을 뻔했군.”

마현은 등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깜짝 놀랐다. 그로 인해 플라이 마법을 펼치고 있는 마력에 틈이 생겨 몸이 휘청거렸다. 마현은 재빨리 플라이 마법을 새로 펼치며 뒤로 몸을 돌렸다.

마현과 조금 떨어진 연무장 구석에 허진이 서 있었다.

허진이 입고 있는 옷 군데군데가 조금 타고 그을음이 묻어 있었지만 그게 다였다.

마현은 허진을 쳐다보며 조용히 땅으로 내려왔다.

“더 해보겠느냐?”

마현은 고개를 저었다.

“스승님의 표정을 보니 더 해봐야 소용없을 것 같습니다.”

“휴우……, 오랜만에 움직여서 그런지 덥구나.”

허진은 잔뜩 어두워진 마현의 표정에 조금은 과장되게 손바닥으로 부채질하며 연무장 구석에 놓인 탁자로 걸어갔다.

“앉아라.”

무거워진 감정 때문일까. 의자로 걸어가는 마현의 발걸음 역시 무거웠다.

“스승님이 보시기에 마법이 어떻습니까?”

“어떤 대답을 원하느냐?”

“객관적인 대답을 원합니다.”

허진은 팔짱을 끼며 마현을 쳐다봤다.

“네가 만약 적이라면…… 두 수, 길어야 세 수면 너는 죽었다.”

그 말이 충격이었는지 마현의 볼이 꿈틀거렸다.

‘그런가?’

그러고 보니 흑도 역시 세 수가 안 되어 자신의 목에 도를 들이밀었었다.

“네 능력에 비해 움직임이 너무 단순하다. 그리고 안력이 약하다. 아마 이게 현재 네가 가진 가장 큰 약점일 것이다.”

“휴우…….”

마현은 허진의 말을 듣자 나직이 한숨을 내쉬었다.

“마법이라고 했느냐?”

“예.”

“이 스승이 보기에 아주 훌륭한 무공이었다.”

허진은 낙담하는 마현을 보며 빙그레 미소를 지어 보였다.

“무공을 배우고 싶다고 하기에 이 스승은 네게 내 모든 것을 가르치려고 했다. 그런데 네가 홀로 이룬 성취가 생각 이상이더구나.”

마현은 허진의 말에 고개를 들었다.

“너의 부족한 부분을 이 스승이 채워 주겠다.”

“스, 스승님.”

또다시 허진이 한 발 양보한 것이다.

“그 전에 그 마법이라는 것을 좀 더 봐야겠다. 오늘은 이야기가 길어지겠구나.”

허진은 고개를 들어 하늘을 쳐다봤다.

어느새 해는 저물어가고 있었다.

“밤을 지새워야 할 것 같으니 저녁을 먹는 것이 어떠냐?”

허진은 마현을 보며 부드럽게 웃음을 지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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