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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마법사 무림에 가다-38화 (38/351)

# 38

13화

마현은 가릉이 연구목적으로 이용하는 지하 석실로 내려왔다.

가릉은 곁눈질로 마현이 석실로 내려온 것을 확인했지만 인사를 건네지는 않았다. 가릉은 마현이 들어오는 것만 확인을 하고는 다시 시선을 돌려 하던 일을 계속했다.

마현 역시 그런 가릉을 탓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발소리마저 죽이며 조심스럽게 그의 작업대 앞으로 걸어갔다.

가릉의 작업대에는 한 구의 강시가 누워 있었다.

아무리 전투와 싸움에 미친 흑마법사라고 해도 마법사는 마법사다. 흥미로운 것을 보면 쉽사리 눈을 떼지 못했다. 마현은 가릉의 손길에서 한시도 눈을 떼지 않았다.

가릉은 소도에 강기를 담아 강시의 몸을 해체하고 있었다.

그 일은 마현이 보기에도 혀를 내두를 만큼 아주 정밀하고 손이 많이 가는 작업이었다.

“휴우…….”

그렇게 한 시진 정도 흐르자 가릉은 굵은 땀방울을 소매로 훔치며 허리를 쭈욱 폈다.

강시의 몸이 완전히 해체가 된 것이다.

“이걸 흑사신들의 몸 위에 덮어씌울 건가?”

“그럴 생각입니다.”

“흠……!”

마현은 고개를 끄덕이며 손을 뻗어 부위별로 조각난 강시의 피부와 근육들을 살폈다.

“상당한 사기를 담고 있군 그래.”

“처음에 그저 외투를 입듯 피부를 덮는 정도로만 작업을 할 생각이었는데 의외로 흑사신의 사기와 강시의 사기가 잘 어울리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조금 더 욕심을 부려 흑사신들에게 온전한 신체를 주고자 합니다.”

“강철에 뒤지지 않는 온전한 신체라……. 그들을 한층 더 강하게 해주겠어.”

마현은 흡족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직접 눈으로 접한 가릉의 강시술은 가히 상상 이상이었다. 시신의 피부를 그저 단단하게 만들었을 뿐이라는 예상을 깨고, 강시의 피부뿐만이 아니라 근육까지 단단하면서도 상당히 부드럽게 만들었다.

이런 육체라면 데스나이트에게 갑옷을 입히는 것보다 훨씬 더 좋은 결과를 가져올 것이 분명했다.

“그럼 흑권 어르신부터 부르겠습니다, 주군.”

가릉은 흑사신을 일일이 어르신이라는 호칭으로 불렀다. 아마 흑도 때문일 것이라 생각했지만 마현은 그런 호칭을 굳이 문제 삼지 않았다.

데스나이트이기는 하지만 그들은 온전한 과거의 기억과 이성을 가지고 깨어났다. 무엇보다 이제 살아 있는 인간과 별반 다름없는 신체까지 가지게 된 것이다.

아니 보통 인간보다 우수한 신체를 가지게 된다. 비록 자신에게 소환되는 존재이나 조금이나마 인간처럼 살아가리라고 여겼기 때문에 가릉의 태도는 사실 문제될 것이 없었다.

가릉은 품에서 마현이 준 종이들 중 한 장을 꺼내들었다. 그리고 한 번의 망설임 없이 찢었다.

촤아악!

바닥에서 검은 빛이 뿜어져 나오고 흑권이 모습을 드러냈다.

흑권은 작업대 위의 갈가리 찢어진 강시의 시신을 보자 기분이 나쁜지 안광이 뿌옇게 흐려졌다.

죽기 직전까지 평생 마공만 익혀온 그였다. 당연히 무인이자 마인으로서의 자긍심이 높았을 것이다. 그러니 정통 마공이 아닌 사술의 일종인 강시술에 대한 거부감을 미약하게나마 가지고 있었던 모양이다.

“흑권, 지금 그 모습이 웃기다고 생각하지 않나?”

마현은 그런 흑권의 마음을 느끼자 살짝 비웃음을 흘리며 질책했다.

-무엇이 말인가?

“네 눈빛.”

-……?

“네가 방금도 경시한 그 사술로 인해 너는 다시 세상을 볼 수 있는 것이다.”

마현의 말에 흑권의 눈빛이 조금 흔들리더니 이내 나오지도 않는 헛웃음을 음성으로 토해냈다.

-훗, 생각해 보니 그렇군.

“가릉.”

“예, 주군.”

“시작해.”

마현은 가릉이 좀 더 편히 작업할 수 있도록 뒤로 물러나 주었다. 가릉은 옆으로 치워둔 빈 작업대를 잡아당겨 강시가 해체된 작업대 옆으로 붙였다.

“누우시지요, 흑권 어르신.”

흑권은 가릉의 말에 따라 반듯하게 몸을 눕혔다.

“시술을 하는 도중에도 움직이시면 안 되지만, 끝나도 한동안 움직이시면 안 됩니다.”

“그건 걱정하지 마라. 시술이 끝나면 바로 어둠으로 돌려보내면 되니까.”

가릉은 마현의 목소리를 들은 후 고개를 숙이고 흑권을 쳐다봤다.

-알았다.

가릉은 해체된 강시의 조각들을 조심스럽게 들어 흑권의 하얀 뼈에 붙이기 시작했다.

가릉의 작업은 하루가 넘게 걸려 끝이 났다.

정확히 시간만 따진다면 반나절이 안 되겠지만 마현의 마력이 그 시간을 견뎌 주지 못해 귀환과 소환을 반복한 탓에 생각보다 작업 시간이 길어진 것이다.

“후우…….”

흑권에게 강시의 피부와 근육으로 완벽한 신체를 입힌 후 가릉은 가늘게 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작업은 아직 끝난 것이 아니었다.

흑권의 몸 이곳저곳을 손으로 주무르며 완벽히 일체가 되었는지 가릉은 꼼꼼하게 살폈다. 간혹 자연스럽지 못한 곳을 발견하면 안마를 하듯이 완벽하게 흑권의 뼈와 강시의 신체를 밀착시켰다.

“끝났습니다.”

가릉은 굵은 땀방울을 소매로 닦으며 마현을 향해 말했다.

“흑권. 좋은 꿈 꾸어라.”

마현이 손을 젓자 흑권의 몸이 땅 아래로 풀썩 사라졌다.

갈증이 났던지 가릉은 구석에 놓인 물잔을 들어 물을 벌컥벌컥 마셨다. 물잔을 내려놓은 가릉은 오랜 작업으로 근육이 경직된 손을 움켜쥐었다 폈다 반복했다.

“소원 성취한 심정이 어떤가?”

“세상을 다 얻은 듯 즐거울 줄 알았습니다. 그게 아니더라도 적어도 이 가슴을 짓누르던 한이 시원하게 사라질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가릉은 고개를 들어 마현을 쳐다봤다.

“그냥 무덤덤합니다.”

한동안 말없이 마현을 쳐다보던 가릉의 눈에서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렸다. 그런데도 가릉의 표정은 아주 담담했다.

“어라? 왜 눈물이…….”

가릉은 땀에 흠뻑 젖은 소매를 들어 주름진 뺨에 흐르는 눈물을 닦았다. 그런데 눈이 고장이라도 난 것인지 그의 눈물은 그치지 않고 계속 흘러내렸다.

“주군, 늙어서 이제 몸도 말을 안 듣는 모양입니다.”

“가끔 머리는 정직하지 못할 때가 있는 법이지. 그러나 몸은 정직한 법이다.”

“……그렇습니까? 이 노신이 보기에 가끔 주군에게서 오랜 연륜이 느껴집니다.”

“……그런가?”

마현은 의미 없는 웃음을 피식 흘렸다.

“주군, 이 노신의 절을 받으십시오.”

그러더니 넙죽 마현에게 큰절을 올렸다.

“비록 반쪽일지라도 이 노신의 오랜 한을 풀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제 이 늙은 몸 곧 죽어도 여한이 없습니다.”

가릉이 엎드린 바닥 위로 눈물자국이 조금씩 커져갔다.

“됐다, 일어나라. 긴히 의논할 일이 있다.”

가릉은 소매로 눈가를 닦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저 의당만 지켜온 이 늙은이에게 의논하실 일이라니요, 가당치 않습니다.”

가릉은 퉁퉁 부은 눈을 크게 뜨며 마현을 쳐다봤다.

“가릉.”

“……?”

가릉을 내려다보는 마현의 눈빛은 차가웠다.

“그건 내가 판단한다.”

마현의 말에 가릉은 넙죽 땅바닥에 엎드렸다.

“소신 잠시 정신이 나가 주제를 파악하지 못했나이다.”

마현은 그런 가릉을 내려다본 후 나머지 다섯 구의 시신이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딱딱한 분위기에서 제대로 이야기가 진행되지 않을 것 같아 마현은 말을 돌렸다.

“흑도가 원하는 대로 이 신체를 줄 것인가?”

그 말에 가릉은 재빨리 자리에서 일어나 마현 곁으로 다가왔다.

“워낙 강경하게 원하셔서…….”

“하긴 내가 봐도 흑도와 이 강시의 신체는 차이가 많이 나는군. 가능은 한가?”

“여러 방도를 구하고 있습니다.”

“쉽지 않은 모양이지?”

“노신이 부족한 관계로…….”

“그게 어디 그대의 탓인가? 이왕이면 흑도가 원하는 신체를 얻었으면 좋겠군.”

마현은 그러면서도 흑도를 떠올리자 머리가 아픈지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그리고는 구석에 놓인 탁자로 걸어가 비어 있는 의자에 털썩 앉았다.

“앉으라.”

마현의 말에 가릉이 조심스럽게 앞에 앉았다.

“내 듣기로 교내 비전 영약은 그대 손에 의해 만들어진다고 들었다.”

“그렇습니다.”

“마환단과 마령단은 접해 봐서 안다만, 혹 다른 것들도 있나?”

“마환단과 마령단 중간급으로 해서 마심단(魔心丹)이 있사옵니다.”

“마심단?”

“마환단과 마령단 사이에 반 갑자의 내력을 가진 마심단이 있사옵니다.”

‘마심단이라…….’

마현은 흡족한 듯 미소를 지었다.

마령단은 이미 허진을 통해 교내에서도 굉장히 귀한 영약이라는 것을 들어 알고 있었다.

거기에 비해 제법 많이 배포돼 있는 마환단은 어딘가 모르게 조금 부족하게 느껴졌다. 그런 마현에게 마심단은 그가 딱 원하던 영약이었다.

“서른 알을 만들어라.”

“예?”

마현의 말에 가릉은 깜짝 놀라 고개를 번쩍 들어올렸다.

“바, 방금…… 마심단을 제조하시라는 말씀이십니까?”

“그렇다.”

“하오나 교주님의 허락 없이는…….”

“가릉!”

애써 부드럽게 풀었던 마현의 목소리가 다시 얼음장처럼 차가워졌다.

“내가 그대를 잘못 보았군.”

“주, 주군.”

마현의 질책에 가릉은 당황한 듯 말을 더듬었다.

그런 가릉을 마현은 아무 말없이 차갑게 응시할 뿐이었다.

“……주, 주군의 명을 받들겠나이다.”

가릉은 잠시 고민하는 눈치더니 이내 한숨을 내쉬며 마현에게 허리를 숙였다.

“하오나 주군.”

“뭔가?”

“재료는 노신의 재량 밖이옵니다.”

마현은 가릉의 말에 잠시 미간을 찌푸렸다.

‘어쩔 수 없이 스승님께 손을 벌려야겠군.’

“재료는 내가 구해 주겠다.”

“……그런데 주군.”

가릉이 망설이는 듯한 목소리로 마현을 불렀다.

“불충한 질문인지는 아오나, 어디에 쓰시려고 하시는지 감히 노신이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가릉의 질문에 마현은 살기를 담은 눈동자로 싸늘하게 내뱉었다.

“사냥 준비다!”

* * *

마현은 흑사신을 전적으로 가릉에게 맡기고 자신은 지하 연무실 안에서 홀로 내력 증진을 위한 심법 수련에 심취해 있었다.

가능한 빨리 힘을 키워야 하는 이유도 있었거니와 아무래도 자신이 옆에 있으면 가릉이 불편해하는 것 같아 일부러 자리를 피한 것이다. 그렇게 해야 좀 더 가릉이 일에 집중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단전의 크기와 내력 증진을 위한 심법 수련에 재미를 키워갈 때쯤 마현은 벽에 부딪혔다.

끈임 없이 성장만 할 줄 알았던 단전이 어느 사이 성장을 멈춘 것이다.

벌써 일주일째였다.

“하아…….”

마현은 깊은 숨을 터트리며 눈을 떴다.

‘무엇이 문제이지?’

마현은 여전히 눈을 감은 채 생각에 잠겨 있었다.

‘깨달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이미 7서클로 가는 깨달음의 벽은 허물었으니까……. 아니 내가 너무 쉽게 생각하고 있는 것인가?’

얼굴이 서서히 심각하게 변해갔다.

‘엄연히 심장과 단전은 다르다. 그렇다면 필요한 깨달음도 다른 것인가?’

심각함은 어느새 답답함이 되어 마현의 가슴을 무겁게 짓눌렀다.

‘적어도 대공자 추도영은 사공찬보다 실력이 위다. 그를 상대하려면 5서클도 버거울 것이 분명해.’

마현은 눈을 뜨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무래도 스승님과 의논을 해봐야겠어.’

마현은 지하 연무실에서 나와 허진의 집무실로 발걸음을 바삐 놀렸다.

아직 해가 지지는 않았지만 부마전 안은 상당히 어두웠다. 그래서인지 집무실 곳곳에 촛불이 켜져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밝다 해도 마현의 눈에는 어둡긴 마찬가지.

‘조만간 라이트 마법이 걸린 아티팩트라도 선물로 드려야겠군.’

라이트 마법이 걸린 마법무구야 마현 정도면 쉽게 만들 수 있는 물건이었다. 다만 상당한 시간과 정성을 들여야 하는, 조금은 번거로운 작업일 뿐이었다.

“이 시간에 어인 일이냐?”

허진은 읽고 있던 서책을 덮었다.

“스승님의 가르침이 필요해서 이렇게 찾아왔습니다.”

“가르침?”

허진은 마현의 말에 의외라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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