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4
9화
마현은 가릉과 헤어진 후 지하 연무실로 내려갔다.
어느 정도 5서클과 단전을 자신의 것으로 만든 마현은 이제 데스나이트를 깨우려 했다.
마현은 마기를 끌어올렸다.
우우우웅―
묵빛 마기가 마현의 몸을 에워싸더니 손바닥에 그려진 마법진으로 흡수되었다. 마현은 그 마법진을 바닥으로 쏘아 날렸다.
투웅!
묵직한 기파와 함께 단단한 석실 바닥 네 군데가 동시에 들썩였다.
쿠르르르―
석실에 깔린 장판석들이 뒤집어지며 네 구의 해골이 서서히 몸을 일으켰다.
마현은 한쪽 벽에 등을 기대고 다시 세상으로 모습을 드러내는 네 기의 데스나이트를 쳐다봤다.
‘대단하군.’
그들이 뿜어대는 마기에 마현은 질식할 것 같은 위압감을 느꼈다. 하르센 대륙 어느 데스나이트에게서도, 그리고 기사들에게서도 느껴보지 못한 엄청난 기세였다.
-후우…….
가장 먼저 몸을 일으킨 데스나이트 하나가 깊은 숨을 토해냈다.
살과 피가 썩어 문드러져 흙으로 돌아간 데스나이트가 무슨 숨을 토해내겠는가. 굳이 묻지 않아도 그저 습관적인 탄식일 뿐이었다.
이어 일어난 나머지 데스나이트들 역시 가장 먼저 일어난 데스나이트와 별반 다르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그들이 일제히 마현을 향해 고개를 틀었다.
-며칠 사이 많이 성장했군.
얼핏 들으면 칭찬인 듯하지만 결코 칭찬이 아니었다. 다분히 비아냥의 어조가 깃들어 있었다.
마현은 벽에서 몸을 떼고 그들 앞으로 걸어갔다. 그것과 동시에 가장 늦게 몸을 일으킨 데스나이트 하나가 마현을 향해 달려들었다.
쐐애애액―
그 데스나이트의 손에는 시커먼 도 한 자루가 들려 있었다.
“블링…….”
어느 정도 예상했던 바. 마현은 당황하지 않고 블링크를 외치며 반대편으로 이동하려고 했다.
그런데 그때 다른 데스나이트가 둘 사이에 끼어들었다.
깡!
붉은 불꽃과 더불어 묵직한 타격음이 두 데스나이트 사이에서 터졌다. 끼어든 데스나이트는 검을 들고 있었다.
-비켜라!
도를 든 데스나이트가 짙은 사기를 뿜어내며 일갈했다.
-기다려라, 본좌 역시 그 마음을 모르는 바가 아니니.
-크크크, 감히 본좌 앞에서 ‘본좌’라 칭하다니……. 비키지 않는다면 어둠으로도 돌아가지 못하게 소멸시켜 버리겠다!
진득한 사기가 둘 사이에서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그 휘몰아치는 사기 사이에서 광소가 터져 나왔다.
-뭐야? 푸하하하! 감히 나, 파천검마 앞에서 본좌라 들먹이다니…… 어이가 없군.
-파천검마 예파흔?
도를 든 데스나이트, 즉 광풍도마가 파천검마를 향해 기광을 번쩍이며 되물었다.
-이제 본좌가 누구인지 알았나? 그렇다면 잠시 도를 치워라.
파천검마가 검으로 도를 살짝 내리며 어느 정도 목소리를 누그러트렸다.
-크하하하하!
그러자 광풍도마가 광소를 터뜨리며 두세 걸음 뒤로 물러났다.
-파천검마 선배시구려.
-본좌를 알아보았다면 이제 그만 도를……!
쐐애애액!
목소리를 누그러트리며 검을 내리던 파천검마를 향해 별안간 광풍도마가 도를 휘둘렀다.
카강!
다시 둘 사이에서 불꽃이 튀었다.
검과 도가 맞붙어 자그만 울림을 만들 때 광풍도마가 파천검마 앞으로 얼굴을 바짝 가져다댔다.
-본좌의 명성과 동수를 이루었던 아주 유명한 선배인데 어찌 모를까? 안 그래도 생전에 무지 궁금했었거든. 얼마나 대단하면 감히 본좌를 고작 파천검마 따위의 이름과 나란히 둘까 하고 말이야.
-이놈!
노기에 찬 호통이 파천검마에게서 터져 나왔다.
-그러니 누가 위인지 붙어보자고!
광풍도마가 훌쩍 뒤로 물러서며 다시 도를 휘둘렀다.
그때였다.
-그만하라.
소리는 매우 낮았으나 강한 힘이 느껴지는 누군가의 음성이 끼어들었다. 석실이 그 소리에 반응하며 웅웅 진동하더니 사방에서 먼지를 토해냈다.
-갈! 어떤 놈이 감히 본좌의 행사에 끼어드는 것이냐!
광풍도마가 파천검마를 향해 날리던 도를 틀어 음성이 들린 곳을 향해 망설임 없이 도강을 날렸다.
쑤아아아악!
-어린놈이 성격도 고약하구나!
목소리의 주인공은 크게 한 걸음 나아가며 주먹을 앞으로 내밀었다. 그러자 그의 주먹에서 묵빛 권강이 뻗어 나왔다.
콰과광!
도강과 권강이 부딪히자 큰 폭음이 터졌다.
-……혹, 개벽권마 맹우림 선배시오?
그 물음은 의외로 파천검마에게서 흘러나왔다.
-이런 썅!
그의 말에 광풍도마가 황당하다는 듯 육두문자를 내뱉으며, 마치 지금 이 상황이 자신과는 상관없다는 듯 벽에 기대 서 있는 나머지 데스나이트를 쳐다봤다.
-그럼 그쪽은 무적창마 지일산 선배?
손에 들린 창을 보며 광풍도마가 물었다.
그러자 그가 벽에서 몸을 떼며 고개를 끄덕였다.
-뭐 이런 놈이 다 있어?
광풍도마는 한때 절대자라는 칭호를 받았던 인물 치고는 성격이 상당히 괄괄한 편이었다. 그가 구석에서 실드를 치고 서 있는 마현을 쳐다보며 목소리를 높였다.
마현은 조용히 실드를 거두며 입을 열었다.
“이제 인사들은 다 나눈 것인가?”
-……것인가?
광풍도마가 기괴한 안광을 쏘아내며 반문했다.
-감히 네놈 주제에, 본좌를 안식에서 깨워? 기다려라, 내 잠시 후에 그 목을 따줄 테니.
그리고는 다른 세 데스나이트를 향해 도를 들었다.
-누구부터 덤빌 텐가?
-허어, 보아하니 가장 막내 같은데 말이 너무 거칠군.
광풍도마와 가장 먼저 부딪쳤던 파천검마가 안광을 내뿜으며 말했다.
-크크크, 막내? 선배 대접 받고 싶으면 본좌를 이겨야 할 것이다.
-정말 안 되겠군. 내 개벽권마 선배가 계셔 어지간하면 참으려 했건만……, 내 단단히 네놈의 버릇을 고쳐놓겠다!
-피차일반이다. 고작 수백 년, 수십 년 먼저 태어났다고 내 머리 위에 있었던 게 별로 마음에 안 들었거든.
광풍도마와 파천검마 사이에 다시 긴장감이 흐르며 서로의 사기가 공중에서 부딪치기 시작했다. 그런 둘 사이로 갑자기 날카로운 기운이 날아와 터졌다.
콰과광!
그 여파로 광풍도마와 파천검마 둘 모두 어쩔 수 없이 뒤로 몇 걸음 물러나야 했다.
폭발이 가시고 보인 것은 창을 곧게 뻗고 있는 무적창마였다.
-기다리기가 싫었던 모양이지? 네놈부터 죽여주랴?
광풍도마가 그를 향해 몸을 돌렸다.
-그전에 해결해야 할 일이 있을 것 같은데.
광풍도마에겐 관심 없다는 듯 무적창마가 마현을 가리키며 턱짓했다. 자연 세 데스나이트의 시선이 마현에게로 향했다.
그중 광풍도마가 투기를 발산하며 다시 말했다.
-아니, 저 꼬마는 본좌께서 가장 나중에 해결할 테다. 네놈들을 모두 눕힌 후에!
-말로는 안 통하는 놈이구나!
결국 참지 못한 파천검마가 광풍도마를 향해 검을 들었다.
무적창마가 잠시 그런 둘을 쳐다보더니 이내 개벽권마를 향해 시선을 옮겼다.
아무래도 그가 가장 연장자이고, 굳이 서열을 따진다면 가장 위였기에 모든 것을 맡긴다는 뜻을 보이고는 다시 물러나 벽에 기댔다.
그리곤 이내 자신과는 상관없다는 듯 시퍼런 안광을 지웠다. 아마도 눈을 감은 모양이었다.
-광풍도마라 그랬느냐, 아이야?
결국 개벽권마가 나서기로 한 것인지, 그가 파천검마의 검을 손으로 살짝 내리며 광풍도마를 향해 물었다.
-아이?
광풍도마가 어이가 없다는 듯 피식 실소를 흘렸다.
-이봐, 본좌도 살만큼 살다가 죽었어. 고작 몇 백 년 먼저 태어났다고 유세 부리지 마라!
-도저히 못 봐주겠구나!
개벽권마도 더 이상은 참을 수 없었는지 온화하던 목소리에 가시가 돋아났다.
-본좌가 바라던 바다! 덤벼! 누가 위인지 똑똑히 알려줄 테니까!
개벽권마가 주먹을 쥐는 것에 맞춰 광풍도마도 도를 들어올렸다.
그런 둘의 팽팽한 살기가 막 부딪히려 할 때.
“휴우…….”
석실 안에서 마현의 한숨이 무겁게 터져 나왔다.
머리가 지끈거리는지 손으로 주름이 가득한 이마를 문대며 앞으로 걸어 나왔다.
“나도 한계가 있다.”
데스나이트들의 시선이 일제히 마현에게로 쏠렸다.
“어쩔 수 없이 다음에 봐야겠다.”
그 순간 마현의 안색이 하얗게 변해갔다.
끊임없이 밀려오던 어둠의 기운이 빠르게 옅어지는 것을 데스나이트들도 느꼈다. 그리고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도.
푹!
-……!
가장 먼저 무적창마의 몸이 땅 아래로 푹 꺼졌다.
-당장 내 손으로 소멸시켜……!
-광풍도마, 이놈……!
-이런 썅, 시간이 뭐 이렇게 짧……!
동시에 나머지 데스나이트들 역시 땅 아래로 푹 꺼지듯 사라졌다.
“큭!”
데스나이트들이 모두 사라지자 고갈된 마기를 느끼며 마현의 몸이 휘청거렸다.
마현은 곧바로 바닥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고갈된 마기를 마라역천공으로 채워나갔다.
그러는 사이에도 주름진 두 눈 사이가 좀처럼 펴지지 않았다.
* * *
다음날, 마현은 데스나이트를 부르기 위한 네 개의 마법진을 손바닥 안에 다시 만들었다.
검은 빛을 토해내는 마법진을 보는 순간 마현의 미간에 선명한 세 개의 주름이 내천(川)자 모양으로 만들어졌다.
“휴우…….”
벌써부터 지끈거리는 두통을 느끼며 마현은 마법진을 지하 연무실 바닥에 내렸다.
구우우우―
쿠르르르―
지하 연무실에 기괴한 마찰음이 가득 차며 다시 네 기의 데스나이트가 모습을 드러냈다.
-크하하하하, 이제 누가 위인지 서열을 가리고 말테……!
광풍도마가 몸을 일으키자마자 광오한 웃음을 터트리며 투기를 발산했다.
하지만 그 투기와 웃음은 끝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쐐애애액!
묵빛 반월을 그리며 한 자루의 검과 한 줄기 검은 빛살의 창이 순식간에 광풍도마의 목으로 날아와 멈춰 섰기 때문이다.
쑤아앙!
-크크, 이제 본좌의 힘을 제대로 느낀 모양이구나! 오냐, 한꺼번에 덤벼라. 본좌가 다 상대해 줄 테……, 큭!
광풍도마가 가슴을 펴며 다시 광오한 웃음을 내뱉는 순간이었다.
우우웅!
후우우웅!
그의 목 앞에서 멈췄던 검과 창에서 강기가 만들어졌다. 그 강기는 단숨에 광풍도마의 목을 잘라 버릴 정도로 살기를 담고 있었다.
-닥쳐라, 이놈! 한 번만 더 주둥아리를 나불거린다면 이 자리에서 목을 따 소멸시켜 버리겠다!
광풍도마의 목에 검을 바싹 가져다댄 파천검마가 몸을 부르르 떨며 격앙된 목소리를 내뱉었다.
-이놈들, 한꺼번에 다 덤벼도 좋지만 정정당당하게 붙……!
그 기습 아닌 기습에 광풍도마가 악에 받친 목소리로 길길이 날뛰려하자 무적창마가 창을 조금 더 앞으로 내밀었다. 그러자 창강에 의해 미세하지만 광풍도마의 목뼈 부분이 살짝 베어졌다.
서슬 퍼런 살기를 내뿜으며 광풍도마가 무적창마를 노려봤다.
반면 무적창마는 그저 조용히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비록 아무런 말은 없었지만 한 번만 더 날뛰었다간 단번에 목을 베어 버리겠다는 무언의 협박이었다.
-끄응!
광풍도마는 어쩔 수 없다는 듯 불쾌한 신음을 터뜨리며 털썩 자리에 주저앉았다. 동공에서 피어나는 기광이 사라지는 것으로 보아 눈을 질끈 감은 듯했다.
-이제 대충 정리가 된 듯하군.
상황이 일단락되자 개벽권마가 마현을 향해 눈을 돌렸다.
-우리를 어떻게 불러낸 것이냐?
분명 자신들이 깨어난 방식은 상당히 이질적이었다. 혼을 부르는 소환술도 아니었고, 강시술도 아니었다. 이렇게 뼈만 남은 육체로 깨어날 수 있는 방법에 대해선 생전에 듣지도 못했고 보지도 못했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지 않나?”
마현은 중앙으로 걸어 나왔다.
-……?
“이런 말이 있더군.”
마현은 네 데스나이트를 한 번씩 둘러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
-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