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1
6화
“으아아아아!”
마의당에서도 고위층만을 위한 별관에서 느닷없는 비명이 터져 나왔다. 환자들만 모인 곳이라 비명 소리가 뭔 대수냐 하겠지만 별관에서 터져 나온 소리는 고통에 차 지르는 그런 비명이 아니었다.
“쯧쯧쯧.”
별관으로 들어서는 한 노인이 눈살을 찌푸리며 혀를 찼다.
바로 마의당을 책임지고 있는 당주 의독노조 가릉이었다.
가릉은 한껏 못마땅한 표정으로 별관 안 어느 방으로 들어갔다. 병자들이 머무는 방이라고 하기에는 상당히 화려하게 꾸며진 의방(醫房) 안은 온통 엉망진창이었다. 그 중앙에 다리에 단단한 부목을 한 사공찬이 서 있었다.
“이놈!”
가릉은 안으로 들어서며 노기가 가득 찬 일갈을 터트렸다.
그 목소리에 사공찬은 움찔하더니 가릉을 보고는 씩씩거리며 침상으로 쩔뚝거리며 돌아가 누웠다.
“여기가 네놈 방 안이라도 되느냐!”
가릉은 몇 가지 기물이 부서지고 엉망이 된 방을 살피며 더욱 얼굴을 찌푸렸다. 가릉은 발로 바닥에 어지럽혀진 물건들을 밀며 사공찬이 누워 있는 침상으로 다가갔다.
“이 모습을 교주님이 보시면 어지간히도 좋아하시겠구나.”
가릉은 침상 곁에 쓰러진 의자를 바로 세우며 자리에 앉았다.
그 말에 사공찬은 벽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못난 놈 같으니라고……, 쯧쯧.”
노기가 가득 찼던 가릉의 표정은 안쓰럽고 가여운 빛으로 순간 바뀌었다.
“바로 눕거라.”
사공찬의 얼굴은 여전히 벽을 향하고 있었지만 순순히 몸을 바로 눕혔다.
가릉은 사공찬의 다리를 감싼 부목을 푼 후 다리 이곳저곳을 살폈다. 그리고는 사공찬의 완맥을 잡아 진맥했다.
‘흠…….’
가릉은 입 밖으로 소리를 내지 않았지만 나직한 침음성을 머금었다.
“조금 따끔해도 참아라.”
가릉은 사공찬의 몸 안으로 내력을 넣어 몸 구석구석까지 샅샅이 살폈다.
연륜으로 만들어진 주름이 더 깊게 파이는 것과는 달리 가릉의 눈동자는 흥미로움에 반짝거렸다.
‘기이하다……, 기이해.’
마교에서 기이하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이가 바로 가릉이었다. 그런 가릉이 기이하다고 하는 것이 무엇일까.
‘내 사라진 강시술의 복원을 위해 온갖 기이한 사술은 모두 접해 보았고, 더 이상 신기한 사술은 없다고 여겼건만…….’
가릉은 마치 기생충처럼 몸 곳곳에 박혀 사공찬의 기운을 흩트리는 마기를 느꼈다. 그 마기들은 피아(彼我) 구분도 없이 아귀처럼 닥치는 대로 기운들을 마구 집어삼키고 있었다. 그 마기를 살피는 가릉의 기운 역시 조금씩 사라졌다.
흥미로운 눈빛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가릉은 기분 나쁜 표정으로 내력을 거두었다.
“고개를 돌려 보거라.”
가릉의 말에 사공찬은 눈을 질끔 감으며 고개를 돌렸다.
‘문제는 무릎이 부서진 것보다 이건데…….’
하루가 더 지났건만 사공찬의 상처는 쉬이 아물지 않았다. 또한 강기에 베였다고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상처는 참혹했다.
‘역시 기이한 마기 때문이야. 이 마기가 상처를 낫지 않게 하고 있어.’
의독노조 가릉이 누구인가?
마교에서 가장 뛰어난 마의였다.
얼굴에 난 상처쯤이야 하루 이틀이면 말끔히 낫게 할 수 있었다.
가릉은 사공찬의 뺨에 난 상처와 부러진 다리를 치료한 후 자리에서 일어났다.
“얼굴에 난 상처는 지우지 못할 것 같다. 그리고 오늘처럼 난리만 피우지 않는다면 보름이면 완치될 거다.”
말을 마치고 돌아서던 가릉이 다시 사공찬을 내려다보았다.
“내 다시 말하겠다만 또 이 난리를 치면 당장 내쫓을 테니 그리 알아라.”
가릉은 단단히 일러둔 후 의방을 빠져나왔다.
‘그 아이의 이름이 마현이라고 했지, 아마?’
가릉은 사공소의 수신호위인 십혈수마의 십혈이 사공찬과 함께 데리고 온 마현의 얼굴을 떠올렸다.
별로 중한 아이가 아니라고 판단해 대수롭지 않게 한 번 쳐다보았을 뿐이었다.
‘며칠 내로 한 번 봐야겠어. 이제 이 나이에 호기심이란 게 없을 줄 알았는데 말이야, 끌끌끌.’
가릉은 수염 몇 가닥을 손가락으로 비비며 자신의 거처로 발걸음을 옮겼다.
* * *
이른 아침이라고 생각했는데 방문을 나서니 해가 중천이었다.
“주군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마현이 방을 나서자 하얀 피풍의를 입은 중년의 사내가 다가왔다. 옷을 보니 허진의 직속 무력단체인 유령대 대원이었다. 다만 다른 유령대와 달리 얼굴을 드러내놓고 있었고, 미묘하게 옷 모양이 달랐다. 어렴풋이 유령대를 이끄는 수장이 아닐까 하는 짐작이 들었다.
그런 생각을 읽은 것일까.
그는 마현을 향해 허리를 숙이며 자신의 신분을 밝혔다.
“유령대 제2부대, 부대주 구영입니다.”
“마현입니다.”
“소주군, 말씀을 편히 하십시오.”
“아닙니다. 구영 부대주께서는 스승님의 수하이지 제 수하가 아닙니다. 그런데 제게 무슨 볼일이라도……?”
“주군께서 소주군이 나오시면 모시고 오라는 명을 내리셨습니다. 저를 따라오시지요.”
마현은 구영을 따라 허진의 거처인 부마전(副魔殿) 내 집무실로 들어섰다.
“마령단은 온전히 흡수한 것 같구나.”
마현의 달라진 기도를 느끼며 허진은 의자에서 일어났다.
“모든 것이 스승님의 은덕 때문이옵니다.”
마현은 허리를 깊숙이 숙여 감사의 뜻을 전했다.
“이리로 앉아라.”
허진은 창문 쪽에 놓인 다탁(茶卓)으로 마현을 데리고 가 함께 자리했다.
“얻은 것은 있느냐?”
“이제 막 제 것으로 만든 터라 잘은 모르겠습니다.”
“하긴 내 질문이 조금 성급했던 것 같구나.”
마현의 대답에 허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점심시간이 다 되었으니 식사나 함께 하자구나.”
허진의 말에 따라 마현은 그와 함께 점심을 먹었다.
점심을 먹는 내내 젓가락의 탁음만 들릴 뿐 특별한 이야기가 오가지는 않았다.
이제 두 사람이 사제의 연으로 맺어졌다고 해도 아직은 어색했다. 특별한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았기에 오고갈 이야깃거리가 없었던 것이다. 물론 억지로 대화를 이어가도 되지만 둘 다 입이 무거운 편이라 식사 시간은 마치 홀로 하는 것처럼 조용했다.
식사가 끝나고 허진은 젓가락을 내려놓으며 입을 열었다.
“네 거처는 부마전 안에 만들어 놓았다.”
“…….”
“이 스승이 부교주 자리에 오르기 전에 지내던 곳이다. 뒤뜰과 지하에 제법 넓은 개인 연무장도 있으니 불편하지는 않을 게다.”
“신경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일단 적응도 해야 하니 이삼 일 정도 푹 쉬거라. 그리고 교주님을 찾아가 인사를 드리자구나.”
사공소 이야기가 나오자 마현이 잠시 눈썹 사이를 좁혔다.
“스승님.”
“왜 그러냐?”
“혹 저 때문에 곤란하신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그날 오로지 사공찬을 향한 복수심에 사로잡혀 사공소에 대한 생각은 하지 못하고 허진에게 제자로 받아 달라 말했었다.
“교주님 때문에 그런 것이냐?”
“그렇습니다.”
“괜찮다. 그리고 그런 건 네가 신경 쓸 일이 아니다.”
“죄송합니다, 스승님.”
“당분간 유령대 제2부대주를 붙여줄 테니 좀 더 본교에 익숙해지도록 하고. 그만 물러가거라.”
허진이 무뚝뚝하게 말하고 자리에서 일어나자 마현 역시 따라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제자는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마현이 막 몸을 돌려 밖으로 나가려는데 허진의 목소리가 들렸다.
“현아.”
“예, 스승님.”
마현은 나가려다 몸을 돌렸다.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앞으로 점심 정도는 함께 먹자구나.”
“알겠습니다, 스승님.”
“그래, 나가보거라.”
마현은 허리를 숙여 인사한 후 밖으로 나갔다.
마현은 의식하지 못했지만 그의 입가에 자그만 미소가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허진이 준비해 놓은 거처는 마현의 마음에 쏙 들었다.
특히 마현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은 돌로 지어진 지하 연무실이었다. 생각보다 크지 않은 거처에 비해 지하 연무실은 상당히 넓었다.
또한 지을 때부터 세심한 신경을 썼는지 지하 석실임에도 불구하고 공기가 아주 깨끗했다.
모든 무림인이 그렇겠지만, 마현 역시 자신의 마법 수련을 누구에게도 보이고 싶지 않았다.
더불어 마음에 든 것이 있었는데 그건 바로 벽곡단이었다.
하르센 대륙 시절 마탑에서 수련할 때 항상 고민거리가 바로 음식이었다. 대부분 육포나 말린 과일 같은 것을 먹었는데 육포는 열량이 높아 좋았지만 먹고 난 후 텁텁함이 느껴졌고, 말린 과일은 뭔가 허전했다.
거기에 비해 벽곡단은 깔끔하면서도 상당한 열량이 있어 체력을 유지하는 데도 큰 문제가 없었다.
삼 일 동안 마현은 점심만 제외하고는 벽곡단으로 끼니를 때우며 이 지하 연무실에서 모든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삼 일이라는 시간은 화살처럼 빨리 지나갔다.
마현은 시녀의 시중을 받아 검은 비단으로 만들어진 무복으로 갈아입고 있었다.
좀 더 화려한 색의 무복이 처음에 전해졌지만 마현은 검은색 비단으로 다시 주문했다. 화려한 색이 자신에게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깔끔하게 차려입은 마현은 허진과 함께 마주전으로 향했다.
“부교주 허진과 그의 제자 마현, 알현을 청하옵니다.”
마주전 문이 활짝 열렸다.
마현은 허진을 따라 마주전에 들어섰다.
마주전 중앙에 사공소가 앉아 있었고, 그가 앉은 단상 아래로 대략 50여 명의 인물들이 2열로 쭉 서 있었다. 그들의 시선이 일제히 마현에게로 쏠렸다.
“안으로 들자구나.”
허진의 말에 마현은 그를 따라 안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흠…….’
마주전 안으로 들어서자 문 밖에서 보던 것과 달리 내부는 마치 광장처럼 넓었다. 단순히 크다고 해서 마현이 속으로 감탄한 것은 아니었다.
딱히 화려하지는 않지만 대전 내부의 분위기는 사람을 압도하는 무언가가 있었다.
보통 사람은 대전이 너무나도 웅장해 그 안에 들어서는 것만으로 몸이 위축될 것이 분명하다. 마현의 머릿속에 잠든 하르센 대륙의 웬만한 왕궁과도 그 규모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였다.
허진은 마현을 이끌고 사공소 앞으로 걸어 나갔다.
“신이 조금 늦었나이다.”
평소 둘이 있을 때와는 달리 허진은 사공소를 향해 극존칭을 쓰며 허리를 깊게 숙였다.
마현 역시 그런 허진을 따라 허리를 숙였다.
“괜찮다. 원래 주인공은 조금 늦게 나타나는 법이지.”
“그렇게 보아주셔서 그저 황공할 따름이옵니다.”
사공소와 허진이 대화를 나눌 때에도 대전에 모인 마교 수뇌부들의 시선은 그 둘이 아닌 마현에게로 쏠려 있었다.
요즘 마교 내에서 가장 큰 풍문을 몰고 다니는 아이였다.
부교주 허진의 제자 자리를 거부했다고 했고, 더불어 교주 사공소의 제자 자리도 거부했었다. 그런데 오늘 부교주의 제자로 마주전에 온 것이다.
“부교주는 자리에 앉게.”
사공소의 말에 허진은 단상 바로 아래 비어 있는 의자로 걸어가 앉았다. 대전에 놓인 유일한 의자 두 개 중 비어 있는 의자 하나가 마저 주인을 찾은 것이다.
마현은 허진의 눈짓에 사공소를 향해 몇 걸음 더 걸어가 섰다.
정면 화려한 단상 위에 사공소가 앉아 있었고, 단상 아래 허진이 앉아 있었다. 허진 옆으로 비교적 젊은 사내 셋이 보였다. 그중 중앙에 서 있는 자는 마현도 잘 아는 사내였다.
바로 독혈마군 사공찬이었다.
아직 몸이 완쾌되지 않았는지 다리에는 보기에도 두툼한 부목을 하고 있었고, 그의 뺨에는 선명한 상처가 아물어가고 있었다. 마현이 대전에 들어설 때부터 사공찬은 살벌한 눈빛으로 노려보고 있었다.
마현은 사공찬을 보자 차갑게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