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8
3화
사공찬의 몸에서 풍겨오는 기운에 상당한 능력을 가진 검사라고 짐작은 했지만 설마 오러 블레이드까지 뿜어낼 수 있는 소드마스터일 줄은 몰랐다.
사공찬의 오러 블레이드, 즉 검강을 접한 마현은 등에서 식은땀이 주룩 흘러내리는 것을 느꼈다.
‘위험하다!’
상대가 소드마스터라면 고작 3서클에 오른 자신으로서는 상대가 되지 않는다.
다들 소드마스터의 무서움이 오러 블레이드라고 하지만 마법사는 다른 것에 무서움을 느낀다. 바로 마나를 동반해 지치지도 않고 쉴 틈 없이 몰아치는 그들의 빠른 움직임이야말로 마법사들에게는 오러 블레이드보다 더 무서운 것이었다.
마현은 그 즉시 세 개의 모든 서클에서 마력을 개방해 끌어올렸다.
파밧!
사공찬이 땅을 박차며 몸을 날렸다.
순식간에 마현에게 다가서며 검을 휘둘렀다.
생각 이상으로 사공찬의 움직임은 빨랐다. 앞으로 달려와 섰다고 생각하는 순간 사공찬의 신형이 급격히 좌측으로 비틀리며 검이 마현의 옆구리를 베어왔다.
“블링크!”
서클에서 뿜어져 나온 내력이 온몸을 휘감았다.
사각!
몸이 사라지기 일보 직전, 사공찬의 검 끝이 아슬아슬하게 마현의 옷자락을 베었다.
완벽히 상대를 베었다고 생각한 순간 마현의 몸이 사공찬의 눈앞에서 사라졌다.
부우웅―
사공찬의 검은 마현의 피 몇 방울만 머금은 채 허공을 갈랐다.
“큭!”
마현의 짧은 신음이 조금 떨어진 곳에서 들려왔다.
사공찬은 놀라움으로 눈동자를 치켜뜨는 것과 동시에 검을 회수하며 몸을 틀었다. 대략 1장 정도 떨어진 거리에 마현이 서 있었다. 왼쪽 옆구리를 잡고 있는 마현의 손가락 사이로 붉은 피가 흐르고 있었다.
‘이제 갓 입마관을 졸업한 녀석이 내 검을 피해?’
자신의 눈으로도 좇지 못한 마현의 움직임에 사공찬은 순간 머릿속이 혼란스러웠다.
그러나 그것은 곧 독기로 바뀌었다.
‘벌써 아버지의 입김이 묻었단 소리인가? 단지 입마관 소동은 눈속임이고?’
항상 그래왔다.
그토록 아버지의 눈에 들기 위해 노력했건만, 자신의 자리라고 생각했던 대공자 자리에 느닷없이 추도영을 앉혔다. 그때까지만 해도 좋은 경쟁자를 심어주기 위함이라 여기며 더욱 매진했다. 그리고 자신이 이공자 자리에 올랐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사공찬은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모든 이가 그를 이공자 자리에 추천했는데 그의 아버지인 사공소가 반대를 하고 나선 것이다.
결국 여러 소란을 거쳐 받아들이긴 했으나 이공자 자리에 오르던 날 자신을 바라보던 무심한 눈빛을 사공찬은 아직도 생생히 기억한다.
이를 악물고 더욱 매진에 매진을 거듭했다. 하지만 자신의 아버지는 또다시 도종극을 삼공자로 받아들였다. 그리고 이제는 더 이상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다시금 제자를 들이시려 한다.
빠드득!
사공찬은 이를 갈며 다시 검을 억세게 움켜잡았다.
“이제는 더 이상 이대로 지켜보지 않을 것이다!”
두 눈은 마현을 보고 있지만 울분에 찬 메아리는 아버지인 사공소를 향하고 있었다.
“반드시 네놈을 죽인다!”
사공찬은 눈동자 가득 핏발을 세우며 마현을 향해 다시 몸을 날렸다.
마현은 거침없이 살기를 내뿜는 사공찬을 쳐다보며 입술을 앙다물었다. 기세를 보건대 자신을 죽이려 작정했음이 분명하다.
3서클에 오르면 제대로 된 공격 마법을 펼칠 수 있다지만 소드마스터를 상대하기에는 그 위력이 너무나도 약했다. 그렇다고 해서 그저 손 놓고 있을 수만은 없는 법.
‘장기전으로 가야 그나마 승산이 있다.’
그렇게 결심한 마현은 최대한 뒤로 물러나며 세 개의 서클에서 마력을 끌어올렸다. 그리고 사공찬을 향해 피 묻은 손을 앞으로 내밀었다.
“피지컬 퍼티그(Physical fatigue)!”
마현은 급격한 체력하강으로 피로감과 무기력감을 유발시키는 저주계열의 흑마법인 ‘육체적 피로’를 시전했다.
마기가 담긴 내력이 허공으로 흩어지더니 달려오는 사공찬의 몸으로 흡수되었다. 그러자 미약하지만 부르르 몸을 떠는 사공찬의 모습이 보였다.
“슬로우(Slow)!”
마현은 동시에 몸을 느리게 만드는 슬로우 마법을 사공찬의 몸에 걸었다.
“흡!”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달려오던 사공찬의 몸이 갑자기 느려졌다. 그런 움직임을 사공찬 역시 깨달았는지 발을 멈추고 마현을 노려보았다.
“기이한 사술을 익힌 것인가?”
잠시 몸을 이리저리 움직이던 사공찬이 마현을 향해 싸늘하게 웃었다.
“하압!”
사공찬이 기합을 터트리며 몸에서 마력을 뿜어내자, 마치 항아리가 깨어지는 듯한 소리와 함께 내기의 파장이 만들어졌다.
쩌엉!
‘기합만으로 슬로우 마법을?’
간혹 소드마스터가 전투 중 마나에 무아지경으로 빠지면 마법사가 몸에 직접 시전하는 마법을 튕겨내거나 깨트리곤 했다. 그 모습이 사공찬에게서 보이자 마현은 한껏 인상을 쓰며 다시 마력을 끌어올렸다.
마현은 이곳 세상의 검사들이 하르센 대륙에 비해 마나를 운용하는 능력이 더욱 발전했음을 깨달았다.
‘적어도 5서클이었다면 이처럼 쉽사리 깨어지지 않았을 텐데……. 그렇다 한들 꼭 높은 서클만이 강한 힘을 만들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마현은 눈을 가늘게 뜨며 뒤로 물러나 거리를 만들었다.
‘큭!’
순간 옆구리의 상처가 욱신 아려왔다. 손을 내려 상처 부위를 만져보니 피로 인해 축축함이 느껴졌다.
“프리즈(Freeze)!”
바로 차가운 냉기가 만들어져 상처로 스며들었다.
흑마법사는 상처를 치료하는 치료계열의 마법을 사용할 수 없다. 그렇기에 마현은 상처가 벌어져 더 많은 피를 흘리지 않게 상처 부위를 차갑게 얼려 버렸다.
상처가 순식간에 얼어붙는 고통으로 인해 마현의 미간에 주름이 깊게 잡혔다.
그 순간에도 사공찬은 검을 들고 마현을 향해 달려들고 있었다.
마현은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사공찬의 검강을 보며 가장 기초적인 공격 마법인 마나 미사일(Mana missile)을 준비했다. 그 이유는 2서클의 암 바클러나, 3서클의 실드로 오러 블레이드를 막을 수 없다는 사실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막을 수 없다면 나에게 못 날아오게 만들면 그뿐!’
“마나 미사일!”
마현은 내력, 즉 강기로 응집된 마나 미사일을 사공찬의 얼굴을 향해 날렸다.
슈웅―
갑자기 날아온 강기 덩어리에 사공찬이 잠시 놀란 듯 보였지만 이내 침착하게 검을 틀어 마나 미사일을 베었다.
퍼벙!
‘가, 가볍다!’
사공찬은 검에서 느껴지는 무게감이 너무나도 가볍다는 것을 느끼고 눈을 크게 떴다.
‘허초!’
그 사이 마현은 뒤로 물러나지 않고 재빨리 3서클 공격 마법 중 가장 위력이 강한 에로우 마법계열 중 윈드 에로우를 만들었다.
“윈드 에로우(Wind arrow)!”
쑤앙―
자신의 얼굴을 향해 날아오는 새하얀 화살을 보며 사공찬은 재빨리 뒤로 보법을 밟으며 몸을 틀었다.
사각!
하지만 완전히 피하지는 못한 듯 뺨에 긴 상처가 나며 붉은 피가 흘러내렸다.
“이, 이놈!”
“운드 애그러베이션(Wound aggravation)!”
사공찬이 격노해 일갈을 터트릴 때, 마현의 마기가 어느 순간 사공찬의 상처에 스며들었다.
푸학!
그러자 상처가 더욱 크게 벌어지며 시뻘건 피가 터지듯 뿜어져 나왔다. 운드 애그러베이션, ‘상처악화 마법’ 때문이었다.
상처악화 마법으로 인해 터진 피로 사공찬의 얼굴 반쪽과 상체가 피로 흠뻑 젖었다.
* * *
사공찬이 상처악화 마법에 당해 많은 피를 쏟는 틈을 이용해 마현은 그에게서 떨어질 수 있었다.
“블링크!”
일단 반대편으로 이동해 어느 정도의 거리를 벌린 마현 역시 그리 썩 좋지 않았다.
장기전을 생각했는데 마력이 너무 부족했다.
3서클.
견습마법사인 1서클과 보조마법사인 2서클을 지나 사실상 이제 마법사로서의 첫걸음을 내딛은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리고 그 한계가 바로 드러났다.
겨우 몇 수 되지 않은 공방을 나눴음에도 어느새 단전과 서클의 마력은 절반 가까이 허비된 상황이었다.
그래도 하르센 대륙에 있을 때보다 서클을 이루는 마력의 양이 많아져 좀 더 장기전으로 끌고 갈 수 있을 것이라 여겼는데 생각만큼은 아니었다. 위력이 강해진 만큼 허비되는 마나의 양도 커진 것이다.
마현은 입술을 깨물며 다시 마력을 끌어올렸다.
온몸을 피로 적신 야차 같은 모습으로 사공찬이 다가오고 있었다.
“블링크!”
마현은 다시 반대편으로 이동했다.
“파이어……, 헙!”
완벽히 사공찬을 피해 반대편으로 이동했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사공찬은 마현이 모습을 드러낸 방향으로 어느새 다가서고 있었던 것이다.
“어떤 사술로 내 눈을 피한 것인지 모르겠지만 한 번 이상 통하지 않는다!”
사공찬은 검에 다시 검강을 일으키며 마현의 몸을 양단하려는 듯 수직으로 내리그었다.
피할 시간 여유조차 없었다.
‘최선의 방어는 선제 공격!’
“파이어 에로우!”
마현은 모든 마력을 쥐어짜내 다섯 발의 파이어 에로우를 만든 후 한 발을 뒤로 감추며 네 발을 날렸다.
펑 펑 펑 펑!
네 발의 파이어 에로우는 허무할 정도로 사공찬의 검에 쉽게 막히며 산산이 흩어졌다.
“죽어라!”
쐐애애액!
사공찬이 오른발을 크게 구르며 마현의 머리 위로 검을 내리그었다.
그때 마현이 튕기듯 몸을 뒤쪽으로 날리며 숨겨놓은 마지막 파이어 에로우 한 발을 사공찬의 오른발을 향해 날렸다.
쑤아앙!
쾅!
파이어 에로우는 정확히 사공찬의 무릎에 꽂혀 폭발했다.
“큭!”
사공찬의 입에서 외마디 비명이 흘러나왔다. 하지만 마현을 향해 내려찍는 검은 멈추지 않았다.
서걱!
마현의 가슴이 위에서 아래로 길게 베이며 피가 뿜어져 나왔다. 마현은 피를 쏟으며 그대로 뒤로 나뒹굴었다.
“크으으…….”
마현은 피가 흐르는 가슴을 움켜쥐고 몸을 반쯤 일으킨 후 재빨리 고개를 들었다.
반 장가량 떨어진 곳에 한쪽 무릎을 꿇은 채 다리를 부르르 떨고 있는 사공찬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무방비 상태로 파이어 에로우를 정통으로 맞아서 그런지 제법 큰 충격을 받은 듯 보였다.
마현은 피가 나도록 입술을 깨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마현의 두 다리도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단전과 서클의 마력이 모두 고갈된 것이다.
‘1서클만, 1서클만 더 높았더라면!’
마현은 주먹을 말아 쥐며 바르르 떨리는 눈동자로 사공찬을 쳐다봤다. 그 눈은 살심으로 가득 차 있었다.
깡!
그런 마현의 눈에 검으로 땅바닥을 찍으며 일어나는 사공찬의 모습이 보였다. 검에 몸을 의지하는 것으로 보아 오른쪽 다리가 부러진 모양이다.
사공찬의 눈 역시 살심으로 가득 차 있었다.
마지막 그 한 수로 한쪽 다리를 못 쓰게 된 사공찬도 쉽게 움직이지 못하는 듯 입술을 자근자근 씹으며 마현을 노려보고 있었다.
“그만!”
그때 팽배한 살기로 가득 차 있는 둘 사이에 그림자 하나가 뛰어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