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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마법사 무림에 가다-27화 (27/351)

# 27

2화

네 구의 해골은 주위를 살피다가 자신들을 깨운 주체인 마현을 보자 뻥 뚫린 동공에서 귀기 어린 시퍼런 안광을 번뜩이며 봉분 위로 몸을 완전히 일으켰다.

-그댄가? 나의 평안한 잠을 깨운 자가?

마현을 쳐다보는 해골들의 눈에서 시퍼런 안광이 줄기차게 뿜어져 나왔다. 이어 살기 가득한 음침한 음성이 그들에게서 흘러나왔다.

-애송이 주제에 감히 영면에 든 나를 깨우다니……!

역시나 예상했던 대로 그들은 살기를 내뿜으며 노기 어린 귀성을 터트렸다. 그리고 그들의 손에 들린 병기가 서서히 올라갔다.

“미안하지만 인사는 다음으로 미뤄야……, 컥!”

그때 마현은 피를 토하며 앞으로 쓰러졌다.

그러자 바로 네 구의 해골은 검은 연기가 되어 봉분 안으로 꺼지듯 사라졌다. 봉분 또한 언제 갈라졌냐는 듯 깨끗한 모습으로 복원되어 있었다.

‘다시 깊은 어둠 속으로 돌아가 이 세상을 미친 듯이 그리워하고 있어라. 그 그리움이 커질수록 내가 살아남을 수 있으니까…….’

마현은 서서히 의식을 잃으며 눈을 감았다.

* * *

활짝 열린 창문으로 제법 쌀쌀한 바람이 불어와 방 안을 휘저었다.

어두운 방 안.

달빛만을 벗 삼아 허진이 홀로 술잔을 들고 있었다. 좀처럼 술을 즐기지 않는 그이지만 오늘만큼은 절로 술 생각이 난다.

술잔을 한입에 털어 넣으며 허진이 세차게 고개를 저었다. 마현에 대한 생각이 자꾸만 떠오른 탓이다.

“휴우!”

긴 한숨을 내쉬며 허진은 다시 술잔을 채웠다. 마현을 놓친 것도 놓친 것이지만 교주 사공소에 대한 원망이 생겨났다.

비록 허물없이 지내는 사이라고는 하지만 엄연히 교주 사공소는 주군이요, 허진 자신은 신하다. 그렇게 마음을 다잡아보지만 원망의 마음은 그리 쉽게 사그라지지 않았다. 그럴수록 얼굴은 더욱 어두워졌고 술병은 어느새 비어가고 있었다.

끼익.

오로지 달빛만이 가득한 조용한 방 안에 이질적인 소리가 들린 것은 그때였다.

“오늘 밤은 혼자 있고 싶다 하였다.”

허진은 고개도 들지 않은 채 무심한 어조로 내뱉었다.

“날세.”

그러나 이내 문을 넘어오는 익숙한 음성에 허진은 놀라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어두운 그늘에서 달빛 아래로 천천히 걸어와 모습을 드러낸 이는 사공소였다.

“오셨습니까.”

허진은 허리를 깊숙이 숙이며 방 안에 놓인 초 가까이 다가갔다.

어두운 방을 촛불로 밝히기 위함이었다.

“됐네. 달밤 아래 술 한잔 얻어먹을 수 있겠는가?”

“물론이지요.”

허진은 허리를 다시 숙인 후 고개를 들어 하녀를 불렀다.

“가서 술상을 다시 내오거라.”

허진이 홀로 마시던 술상은 이내 치워지고 금세 새 술상이 차려졌다.

허진은 공손히 사공소의 잔에 술을 따랐다.

사공소는 그 잔을 받아 단숨에 마시고는 허진에게 내밀었다. 허진은 다시 그 술잔을 받아들었고, 사공소가 술을 따랐다. 그리고 허진이 마셨다.

그렇게 몇 순배가 아무 말없이 돌았다.

“미안하다는 말은 안 하겠네.”

사공소가 술잔을 내려놓으며 둘 사이에 만들어진 침묵을 먼저 깨트렸다.

“…….”

허진은 어떤 대답도 하지 않고 묵묵히 술잔을 들었다.

“많이 상심한 모양이군.”

허진은 사공소의 말에 입으로 가져가려던 술잔을 잠시 바라보았다.

“아닙니다.”

그 모습에 사공소는 술잔을 들었다.

“같이 한잔 하지.”

사공소의 말에 허진이 술잔을 다시 살짝 들어올렸다가 마셨다.

“조금 돌이켜보니 본좌가 너무한 감이 없지 않아. 아무리 내가 독단적으로 교를 이끌어간다고 해도 적어도 부교주 자네만큼은 생각해 줘야 했는데…….”

“그 말씀만으로도 감사할 따름입니다.”

“그런 말을 듣자고 온 게 아니야.”

사공소는 허진을 보며 고개를 저었다.

“그렇다 한들 본좌의 말을 철회할 수 없다는 것은 부교주, 자네도 잘 알고 있겠지?”

“예.”

“그래서 말이야, 내 한 가지 제안을 하지.”

“……?”

허진은 사공소의 말에 고개를 들었다.

“자네와 본좌 사이에 굳이 앙금을 남길 필요가 없지 않나. 해서 비공식적으로 그 아이를 불러 결정하게 했으면 싶네.”

“무슨 말씀이신지…….”

“그 아이가 누구를 스승으로 모실지 결정하게 하는 거지. 본좌든지 자네든지.”

“그렇게 되면 교주님의 권위가…….”

“괜찮아.”

“네?”

“그러니 먼저 비공식적으로 물어보자는 거 아닌가?”

“내 제자가 되겠다면 그냥 거두면 될 것이고, 자네 제자가 되겠다면 먼저 사제지간을 맺은 것을 몰랐다, 그러면 될 것 아닌가?”

“그래도…….”

평소 허진이라면 말도 안 된다고 딱 잘라 거절했을 것이다. 하지만 평생 처음으로 욕심을 가졌던 아이였고, 일 년이나 참으면서 지켜본 아이였다.

원래라면 응당 양보했어야 하지만 지금 허진은 그렇게 못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평소 그답지 않게 말이 길어지고 있었다.

“자네 제자가 된다고 해도 본좌 역시 양보할 수 없는 게 있네.”

“……?”

“자네 제자가 되어도 난 그 아이를 본교 후계자의 승계를 얻을 자격이 주어지는 공자 자리에 앉힐 것이네.”

그 말에 허진의 눈동자가 급격히 커졌다.

“교, 교주님.”

“그리 되면 어차피 내 제자가 되지 않아도 그리 큰 문제가 되지 않아.”

사공소가 담담하게 말했지만 허진은 고개가 숙여질 수밖에 없었다.

“그 누구라도 능력이 되면 나의 모든 것을 승계하게 될 테니까.”

“……교주님.”

허진은 사공소를 불렀다.

“한잔 주지 않겠나?”

사공소는 술잔을 들어 좌우로 흔들었다.

* * *

구구구, 구구―

올빼미 소리를 들으며 마현은 감았던 두 눈을 떴다.

마기를 담은 마력이 두 눈에서 번쩍 뿜어졌다가 사라졌다.

“후우…….”

뜨거운 입김이 마현의 입에서 길게 흘러나왔다.

‘생각 외로 충격이 컸어.’

마현은 단전을 손으로 쓰다듬었다.

‘마기의 고갈이 이처럼 강한 충격을 줄지는 몰랐군.’

지금껏 흑마법을 펼치면서 어둠의 기운이 부족했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마인들이야 원래부터 내력과 마기에 대한 구분이 따로 존재하지 않지만, 마현은 엄연히 두 기운을 달리 사용한다.

새로운 경험이 신선한 반면, 앞으로 더욱 주의를 기울어야 함을 느끼는 순간이었다.

마현은 손바닥을 뒤집어 보았다.

우우우웅―

마기를 주입하자 손바닥에서 자그만 마법진이 문신처럼 피어나며 검은 빛을 뿜어냈다.

그 마법진을 보며 마현은 가볍게 미소를 지었다.

검은 빛을 뿜어내는 마법진과 깊고 깊은 어둠의 공명을 느낀 것이다. 마현은 마기를 끊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나저나 생각보다 모인 마기의 양이 적어.’

마현은 미간을 찌푸리며 생각했다.

마용심법으로 인해 단전과 서클에는 마력이 가득 차 있었다. 하지만 마현에게는 그저 부족하게만 느껴질 뿐이었다.

‘어둠의 기운을 사용함으로써 어쩔 수 없이 맺어야 하는 계약에서 벗어난 것에 비하면 이 정도 한계는 가벼운 일일지도…….’

그렇게 마음을 달랬지만 한편으로 신과의 계약을 통해 부족함 없이 어둠의 기운을 사용했던 때가 생각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마현은 그냥 의미 없이 흘러나오는 씁쓸함을 입안에서 되씹으며 마웅총을 나왔다.

‘아무 때나 입관할 수 있다고 했으니…….’

마현은 마승관으로 향했다.

늦은 밤인 탓에 가는 동안 관문에서 제법 검문을 받았지만 마승관생을 뜻하는 패(牌)가 있어 어렵지 않게 마승관으로 향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의 발걸음은 마승관을 얼마 두지 않은 곳에서 멈춰야만 했다.

20대 중반쯤 되어 보이는 한 사내가 마현이 걷고 있는 길 한가운데를 가로막고 서 있었던 것이다. 마현은 잠시 그 사내를 쳐다봤지만 이내 관심을 지우고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그런데 막 지나치려는 순간, 사내는 검을 뽑으며 마현의 앞을 가로막았다.

“네놈이 마현이라는 놈이냐?”

사내는 두 눈에 시퍼런 살기를 머금고 있었다.

마현은 그 사내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눈이 서로 마주치자 사내가 마현의 목 앞으로 다시 검을 들이밀었다.

“네놈이 마현이라는 놈이냐고 물었다.”

목소리는 무척이나 차가웠고 짙은 살기가 담겨 있었다.

마현은 사내가 든 검을 손가락으로 밀며 대답했다.

“상대의 이름을 물을 때는 먼저 자신의 이름부터 밝히는 것이 순서 아닌가?”

마현의 말에 사내가 낮게 소리쳤다.

“제대로 찾았군.”

순간 사내는 검을 뒤로 빼는가 싶더니, 마현의 목을 향해 거침없이 휘둘렀다.

쐐애애액!

어느 정도 자신에 대한 반감을 읽었던 터라 마현은 두 팔을 들어 얼굴과 목을 감쌌다.

“암 바클러(Arm buckler)!”

얼굴과 목을 감싼 두 팔에서 원형의 자그만 막이 만들어졌다. 암 바클러는 실드보다는 하위 개념의 방어막이다. 일반 병사들이 쥐는 원형 방패에서 힌트를 얻어 만든 이 방어 마법은, 전장에서 병사들과 근접거리에서 부딪혔을 때 속성으로 펼쳐 몸을 보호하기 위해 만들었다.

카강!

마현의 암 바클러와 사내의 검 사이에서 푸른 불꽃이 피어올랐다.

“큭!”

마현은 그 충격으로 뒤로 세 걸음 물러났다.

“입마관 졸업생 치고 제법이구나.”

음성은 처음과 다를 바 없었지만 사내의 눈동자는 조금 커져 있었다. 고작 입마관을 졸업한 마현이 두 팔로 호신강기를 맺어 자신의 검을 막을 줄은 상상조차 하지 못한 까닭이다.

“네놈은 누구냐?”

마현은 서클에서 마력을 끌어올리며 차갑게 물었다.

“어차피 오늘 죽을 놈이니 알려주지. 본인은 독혈마군 사공찬이다.”

“독혈마군 사공찬?”

별호와 이름은 들어본 적 있으나 교내 일에 그리 큰 관심이 없던 마현으로서는 생소한 이름이나 마찬가지였다.

“이제 네놈이 죽을 이유를 알겠지?”

사공찬은 검을 허공에 한 번 내려긋고는 마현을 향해 다시 검을 들었다.

“혹 교주님의 아들인가?”

“아들? 크크크크, 아들이라……. 성을 물려받았으니 아들인 건 맞겠군.”

사공찬의 목소리에는 알 수 없는 좌절감이 깊게 배어 있었다.

모든 것을 알 순 없었지만 그것으로 마현은 최소한 그가 왜 자신에게 이런 적대감을 표출하는지는 짐작할 수 있었다.

그것은 감히 올려다볼 수 없을 정도로 너무나도 강한 아버지 아래 태어나 반드시 강하게 커야 하는 아들, 하지만 아무리 강해지려 노력해 보지만 언제나 무심한 눈빛 아니면 못마땅해하는 아버지의 눈길에 좌절하는 아들의 모습이었다.

그 마음이 변질되어 자신에게 왔음을 알아차렸다.

어려서 부모를 잃고 천애 고아로 외롭게 살아온 마현에게 있어 사공찬의 모습은 그저 치기 어린 투정,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제자 건이라면 그냥 가라. 교주님 제자가 될 생각은 조금도 없으니까.”

“교에 들어와 입마관 생활이 전부라고 듣긴 했지만, 정말 본교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는군. 네놈이 하기 싫다고 해서 그만 둘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교주님의 제자가 되지 않는 방법은 딱 한 가지, 네놈이 죽는 것뿐이다.”

사공찬은 여전히 냉기가 뚝뚝 떨어지는 목소리를 내뱉고는 눈에서 살기를 폭사시켰다.

마현을 죽일 생각을 가진 것이 분명했다.

“그래서 넌 오늘 죽는다!”

후우우웅!

사공찬의 검에서 시퍼런 강기가 피어올랐다.

‘오러 블레이드?’

마현의 눈동자가 급격히 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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