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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마법사 무림에 가다-23화 (23/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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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화

악의명이 앉아 있는 서탁 앞에서 정견은 부릅뜬 눈으로 입술을 깨물었다. 그는 몸을 떨며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눈빛으로 악의명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리 알게.”

“도대체 누가 그런 명을 내린 것입니까?”

꽉 짓눌린 목소리로 정견이 물었다.

“휴우…….”

악의명은 그런 정견의 모습에 깊은 한숨을 내쉬며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말할 수 없네.”

“납득할 수 없습니다. 도대체 누가 그런 명을 내렸습니까? 교주님이나 부교주님이라도 되시는 분이랍니까?”

작금의 심정을 어느 정도 이해하기에 정견의 태도를 그냥 봐주던 악의명이 결국 얼굴을 굳히며 호통을 쳤다.

“하라면 하지, 뭔 말이 그리 많나? 지금 내 말을 거부하는 것인가?”

“하지만 관주님.”

“왜!”

악의명은 신경질적으로 소리쳤다.

“아무리 상부 어느 분의 지시라 하더라도 그냥 아무 일 없다는 듯이 넘어갈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도대체 뭘 바라는 건가?”

“최소 근신처분이라도 내려야겠습니다. 그렇지 하지 않는다면…….”

“휴우, 알았네. 그 정도라면 위에서도 어느 정도 이해는 해주겠지.”

결국 악의명이 완고한 정견의 태도에 한 발자국 뒤로 물러나 주었다.

“그럼 물러가겠습니다.”

허리를 숙였다가 몸을 돌리는 정견을 악의명이 다시 불러 세웠다.

“정 총교관! 자네 그 아이에게 무슨 감정이라도 있는 것 같아 노파심에 말하네만!”

정견의 몸이 굳어지며 발걸음이 멈췄다.

“그냥 입마관이 끝날 때까지 그 아이를 건들지 말게. 이건 상사로서 명이네. 아예 그 아이 근처도 가지 마.”

“…….”

정견은 몸을 떨뿐 대답하지 않았다.

“알았냐고 묻지 않나.”

“……알겠습니다.”

“그래, 그만 나가봐!”

악의명은 고개를 끄덕이며 손짓으로 축객령을 내렸다.

쾅!

거칠게 문을 닫으며 정견이 나가자 악의명은 다시 한숨을 푹 내쉬었다.

‘설마 부교주님일 줄이야.’

악의명은 지끈거리는 두통을 느끼며 손으로 이마를 문질렀다.

* * *

마련생 마현.

불량한 수업 태도로 인해 근신 10일에 처함.

총교관 정견.

모두가 수련에 참가한 오전.

자박자박.

저벅저벅.

쥐죽은 듯 조용한 숙소 5층 복도로 두 개의 발자국 소리가 적막감을 깨트렸다.

그들은 마현과 평지달이었다.

마현은 근신을 받아 10일간 자신의 방에서 한 발자국도 나오지 못하는 징계를 받았다.

“어쩌자고 그런 것이냐?”

“…….”

“현아, 기본공이라 네 눈에 차지 않은 것 같다만, 자고로 무공이란 기본이 튼실해야만 후에 상승 무공을 익힐 수 있단다.”

평지달은 최대한 부드럽게 말을 이었다.

“내가 보기에 너는 다른 아이들보다 자질이 뛰어나다. 그런 아이가 고작 입마관만 졸업해서 그저 그런 삼류 마인으로 살아간다면 교관인 나로서는 보기 안쓰러울 것 같다. 졸업 시험에서 우수한 성적으로 통과해 본격적인 마공을 익히는 마승관(魔承關)으로 올라가야 하지 않겠느냐?”

앞으로 내딛던 마현의 발걸음이 멈췄다.

“마승관에 오르면 더욱 뛰어난 상승 마공심법을 익힐 수 있습니까?”

마현이 마승관에 대해 관심을 갖자 평지달은 어쩌면 마음을 다시 다잡을 수 있을 것이라 판단하며 더욱 자세히, 그리고 부드럽게 마승관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

“일단 마승관은 입마관을 졸업한다고 아무나 들어갈 수 있는 곳이 아니란다.”

그렇게 평지달은 운을 떼며 말을 시작했다.

“입마관 졸업식 날 졸업시험을 본다. 그 시험에서 상위 1할, 즉 백 명만이 마승관으로 들어갈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진단다.”

“그렇습니까?”

마현이 관심을 보이자 평지달은 더욱 기운을 얻어 입가에 미소까지 머금으며 말을 이어나갔다.

“그렇게 마승관에 들어가면 정말 네가 생각하는 마공들을 입맛대로 배울 수 있단다.”

“하지만 지금처럼 규정된 수업을 받아야겠지요?”

마현의 말에 평지달이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다.”

그 말에 마현은 고개를 들어 평지달을 쳐다봤다.

“물론 강의는 있다. 원하면 강의를 들어도 되고, 마승관에 있는 수많은 무공서 중 하나를 택해 스스로 익혀도 된다. 물론 홀로 익힌다고 해서 누군가에게 가르침을 받을 수 없는 것도 아니다. 항상 마승관 교관들에게 배울 수 있는 문이 활짝 열려 있어 시간만 허락한다면 아무 때나 찾아가 가르침을 받을 수 있단다.”

“흐음.”

마현은 마승관에 들어가면 홀로 수련할 수 있다는 말에 상당한 관심을 보였다.

“그 마승관에 가면 최고의 마공심법을 익힐 수 있습니까?”

평지달은 옅은 한숨을 내쉬었다.

“현아, 무공에 있어 내공심법만이 중요한 것은 아니란다. 물론 가장 기본이 되기에 중요하기도 하지만 내력을 뒷받침해 줄 수 있는 무공들 역시 중요하다.”

“저는 최고의 마공심법을 익힐 수 있는지 물었습니다, 평 교관님.”

평지달은 속으로 다시 한 번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마현이 마승관에 대해 관심을 가졌다는 것에 위안을 삼았다.

마승관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필히 입마관에서 가르치는 기본 무공들을 완전히 습득해야만 갈 수 있기 때문이다.

“마승관에 들어가면 상당한 마공을 배우고 익힐 수 있다.”

“최고의 마공은 익힐 수 없는 것입니까?”

“마승관에서 더욱 노력해 마룡관에 들어간다면 상승 마공을 익힐 수 있단다.”

마현의 눈언저리가 굳어졌다.

결국 최고의 심법을 익히기까지 상당한 단계를 거쳐야 한다는 소리다.

“그럼 마룡관에 들어가면 최고의 마공을 익힐 수는 있습니까?”

“최고의 마공? 하하하하하!”

평지달은 마현의 말뜻을 알아차리고는 호탕하게 웃었다.

“교주님이나 부교주님이 익힌 그 정도의 마공을 말하는 것이냐?”

평지달은 마현을 쳐다보며 당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습니다.”

“녀석.”

그래도 그런 꿈을 가졌다는 것이 보기 좋았는지 평지달은 이내 반색을 했다.

“마룡관에 들어가도 그 두 분 같은 상승의 마공은 배우지 못한다. 그분들의 제자가 되지 않는 이상은 말이다.”

평지달의 말에 마현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결국 두 분의 제자가 되지 않는 한 일반 마인들은 그 같은 마공을 익힐 수 없다는 것입니까?”

“아쉽지만 그렇단다.”

마현은 허진의 얼굴을 떠올렸다.

하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누군가의 제자가 되고 싶지는 않았다.

결국 그보다 못한 내공심법에 만족하던가 아니면 다른 길을 찾아야 했다.

아쉬워하는 마현의 모습에 평지달은 입을 열었다.

“그렇게 아쉬워할 필요도 없다. 천하에 교주님과 부교주님 같은 무공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니까.”

그 말에 마현이 눈을 빛내며 다시 평지달을 쳐다봤다.

“물론 지금은 사장이 되었다만 한때 당시 선대 마교 교주님 이상으로 무명(武名)을 날리신 분들도 있다. 단지 그분들이 후인들을 남기지 않아 사장이 되었다만……. 혹시 아느냐? 네가 기연으로 그분들의 후인이 될지도.”

평지달은 농담을 반 섞어 용기를 북돋아 주려 했다.

“교주님에 버금가는?”

“왜 관심이 가느냐?”

“자세히 말씀을 해주실 수 있으십니까?”

“하긴 교인이 된 지 얼마 안 되었으니 모르겠군. 교내에 마웅총(魔雄塚)이란 데가 있다. 네 분의 마도 영웅께서 묻힌 곳이지. 마인들의 성지라고나 할까?”

마현의 눈동자에서 마기가 맴돌다 사라졌다.

“그 네 마도 영웅들이 그곳에 묻혔습니까?”

“묻혔다. 그러니 마웅총이 아니겠느냐.”

마현은 주먹을 움켜쥐며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마승관에 들어가야겠군. 그들을 깨워서.’

* * *

탁.

두꺼운 책자가 바닥에 떨어졌다.

마현이 받은 징벌은 근신 10일 뿐만이 아니었다.

입마관에서 배워야 할 모든 것들이 적힌 무공서들을 필히 암기해야 하는 벌까지 함께 내려졌던 것이다.

5일째가 되던 날 마현은 무공서들을 모두 읽고 암기했다.

그렇게 마지막 책까지 모두 읽은 마현은 무심한 표정으로 서책들이 쌓여 있는 곳으로 손에 들고 있던 서책을 살짝 던져 올렸다.

‘내 생각이 맞았어. 제법 좋은 내용들이 많았지만 하르센 대륙의 기사들이 익히는 것들과 큰 차이가 없어.’

물론 상승 무공으로 가면 더 뛰어난 부분들이 분명 있겠지만 마현에게 있어 그다지 관심을 가질 이유가 없었다. 어쩔 수 없이 벌로 인해 외우기는 했지만 자신의 예상을 확인하는 것만으로 만족해야 했다.

마현은 방 중앙에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입마관의 남은 생활은 오로지 내공 수련에 집중한다.’

마용심법으로 단전을 깨웠다.

‘졸업식까지 어떤 일이 있어도 3서클에 올라선다. 반드시! 그리고 나의 첫 흑마법은 데스나이트 소환이다!’

* * *

이른 새벽.

어두웠던 하늘이 차츰 밝아졌다.

밤새 어둠을 밝히던 횃불이 하나 둘씩 꺼졌다.

“하암!”

길게 하품을 하며 횃불을 끈 교관은 늘어지게 기지개를 펴며 굳은 몸을 풀었다.

“거 참!”

밤새 대연무장을 지켰던 교관은 대연무장 중앙을 쳐다보며 기가 질린다는 표정으로 입을 다셨다.

이슬이 내려 축축해진 대연무장 중앙에 한 아이가 가부좌를 튼 채 앉아 있었다. 바로 마현이었다.

이미 마현은 입마관 교관들 사이에서 아주 유명한 아이가 되어 있었다.

수업 거부로 인해 징계를 한 번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오로지 마용심법에만 몰두하는 모습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그나마 형식적으로 오전 수업에 참관은 했지만 그 시간마저도 구석에서 홀로 마용심법을 익혔다.

생각 같아서는 따끔하게 더 벌을 주고 싶었지만, 상부에서 ‘내버려두라’는 명까지 내려와 그저 교관들은 못마땅하게 생각하면서도 그냥 놔둘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식사 시간만 제외하고 오전 수업 시간에도 마용심법, 그 후에도 대연무장에서 오직 마용심법만을 익히는 아이였다. 대략 자정이 되기 전 한 시진 정도 사라졌다 다시 모습을 드러내는 것을 보면 그래도 잠을 자기는 하는 모양이었다.

“밤새 평안했는가?”

마현을 쳐다보는 교관은 교대를 나온 다른 동료 교관의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평안은 무슨……. 이제 여름이 다 지나가려는 모양이야. 새벽이 제법 쌀쌀해졌어.”

교관은 조금은 과장되게 몸을 떨어 보였다.

“그나저나 저 아이도 대단해. 일 년 동안 지치지도 않나봐.”

동료 교관은 그 시간까지 대연무장을 홀로 지키며 마용심법을 익히는 마현을 보며 혀를 내둘렀다.

하지만 그 말을 들은 교관의 눈에서는 비웃음이 떠올랐다.

“그러면 뭐 하나? 죽어라 내공심법만 익히는 걸.”

“크크크, 그렇긴 하지만 그래도 일 년 동안 죽어라 내공심법만 익혔으니 또래에 비하면 제법 많은 마력을 모았을 거야.”

“마력은 무슨. 고작 마용심법을 가지고 모아봐야 얼마나 모은다고. 차라리 기초 무공을 닦아서 이번 졸업시험 때 좋은 성적을 거둬 마승관(魔承關)에 들어가거나, 아니면 좋은 스승을 만나 더 좋은 상승 마공심법을 전수받으면 저 정도는 금방 따라잡을 수 있어. 한 마디로 미련하고 무식하다는 뜻이지. 그저 마력만 많으면 되는 줄 알고.”

마현을 바라보며 던지는 그의 말에는 노골적인 비아냥거림이 가득 담겨 있었다.

징계를 받고도 변함없는 모습에 마현과 친하다는 평지달 교관이 몇 날 며칠을 쫓아다니며 다시 설득하려 했지만 아무 소용없었다. 소귀에 경이라도 읊는 냥 모든 말들을 무시하고 오로지 마용심법만을 익히는 것이었다.

그러니 교관들이 마현을 향해 그런 비아냥거림을 날리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아마 저 아이는 입마관 역사상 최하의 점수로 졸업하게 될 거야.”

“나도 동감일세.”

“윗선에서 그냥 놔두라는 명령이 내려와 혹시나 조금은 기대를 했었는데 말이야.”

“누가 아니래.”

두 교관이 마현에게서 시선을 떼고 잡담을 주고받을 때 마현은 조용히 눈을 떴다.

번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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