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
20화
“그래서 말입니다.”
“……?”
“저 아이에게 관심을 조금 더 기울일까 합니다.”
“관심을?”
“예, 아무래도 마음에 계속 걸려서……, 다른 교관들에게 들은 건데 그때 충격이 컸던 모양입니다.”
평지달은 가부좌를 튼 상태에서 초마심법에 들어간 마현을 쳐다봤다. 그의 시선에 정견의 시선 역시 따라 움직였다.
“크흠!”
정견은 마현을 보자 다시 꺼림칙한 표정을 지으며 목울대를 돋우어 헛기침을 내뱉었다.
“그거야 자네 재량이니 알아서 하게. 크흠, 흠흠!”
그는 마현의 눈빛이 한 번 떠오르자 쉽게 떨칠 수 없는 모양인지 낯을 잔뜩 찌푸렸다.
그 모습에 평지달은 자신이 정견의 심기라도 건드린 것이 아닌가 싶어 긴장했다.
원래 규칙상 교관은 마련생 어느 누구에게도 특별대우를 해주어서는 안 되게 되어 있었다.
“수고하게.”
냉랭한 목소리를 남기고 정견은 몸을 홱 돌렸다.
‘휴우…….’
평지달은 괜히 말을 꺼냈나 싶어 한숨을 푹 내쉬었다.
자칫 상사인 정견에게 찍힌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마음에 내내 걸렸던 마현을 조금이나마 가까이에서 도울 수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그다지 무겁지는 않았다.
평지달은 이미 멀어져 가는 정견을 향해 고개를 숙인 후 다시 아이들이 있는 곳으로 몸을 돌렸다.
혹 문제가 있는 아이들은 없나 살피고 있던 평지달의 눈에 어느새 눈을 뜨고 조용히 손을 드는 마현이 보였다.
다른 아이들은 이미 삼매지경에 빠져 미약한 숨소리 하나 들리지 않는 가운데 마현은 초마심법에 집중하지 못하는 듯했다. 평지달은 괜히 자신의 잘못인 것처럼 여겨져 조용히 다가갔다.
혹 다른 아이들에게 방해가 되지 않을까 조용히 속삭이듯 말을 건넸다.
“아직 단전을 완전히 네 것으로 만들지 못한 것이냐?”
“아닙니다.”
마현은 고개를 저었다.
“그런데, 왜?”
“예상 외로 쌓이는 축기가 너무 적은 것 같습니다.”
마현의 말에 평지달은 조금 놀란 눈치였다. 그 말을 전부 다 믿는 것은 아니지만 마현을 보는 눈빛이 달라졌다. 나름대로 고전할까봐 걱정했는데 이미 단전을 제 것으로 만들었다고 하니 마음이 놓였다.
한편 괜한 걱정을 했다는 생각과 함께 자신을 향해 언짢은 표정을 하고 간 정견이 떠올라 쓴웃음을 지었다.
직접 마력을 넣어 마현의 내부를 좀 더 정확히 살펴보고 싶었다. 그러나 지금 비록 내상을 다스렸다고는 하지만 그렇게까지 운용이 자유롭지는 못한 상태였다.
대신 평지달은 마현이 축기를 느낀다고 한 말을 믿고 차근히 설명해나갔다.
“네가 익힌 입마심법과 초마심법은 축기를 목적으로 만든 내공심법이 아니다. 그건 좀 더 튼튼한 기초를 만들기 위한 심법이다.”
“그럼 초마심법으로는 마기 역시 만들 수 없는 것입니까?”
“그래.”
평지달은 마환단의 영향으로 다른 아이들과 달리 마기를 접했다고 단순히 생각했다.
평지달의 말에 마현이 살짝 눈살을 찌푸렸다.
“너무 조급하게 생각하지 말거라. 이미 너는 다른 아이들보다 한 걸음 빠르니까. 그리고 한 달 동안 수련 시간 이외에도 꾸준히 초마심법을 운용해 완전히 네 것으로 만들어두어라.”
“그럼 한 달 후에는?”
“한 달 후에는 제대로 된 심법이 전수될 거다. 물론 그것 역시 기초 심법이기는 하지만 네가 생각하는 마기를 축기할 수 있는 심법이니까.”
“……기초 심법입니까?”
마현의 목소리에는 실망감이 묻어 있었다.
“네 이름이 마현이라고 했지?”
“그렇습니다.”
“그래, 현아. 너는 입교하면서 바로 입마관으로 들어왔다지?”
“그렇습니다.”
“여기는 입마관이다. 즉, 마인이 되기 위해 입관하는 곳이다. 마련생으로 지내는 기간은 일 년. 그 일 년 동안 누구보다도 뛰어난 마인으로 성장할 수 있는 기초를 다지는 곳이다.”
“…….”
“즉, 입마관이 끝이 아니라는 소리다. 너무 조급하게만 생각하지 말거라. 너는 이제 마인을 떠나 무인으로서 처음 발을 디딘 갓난아이다. 처음부터 뛸 생각하지 말고 천천히 기고, 또 기다 보면 걷게 되고, 걷다 보면 자연스럽게 뛸 수 있게 된다. 1년이라는 시간이 긴듯 하지만 그리 긴 시간이 아니다. 그러니 입마관에서 가르치는 것 모두 허투루 배우지 말고 열심히 수련하면 네가 생각하는 마공을 익힐 수 있을 거다. 알았지?”
평지달은 마현을 보며 장황한 훈계가 섞인 설명을 해주었다.
그의 눈에 마현이 조급해 보인 모양이었다. 마현이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에 평지달은 나름 흐뭇한 표정을 지어 보이며 어깨를 가볍게 툭툭 친 후 자리에서 일어났다.
평지달이 다른 아이들을 보러 자리를 떠나자 마현은 조용히 눈을 감았다.
‘내가 조급하게 보였다고?’
그 말이 떠오르자 마현은 피식 웃었다.
어쩌면 그에게 조급하게 보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긴 했다. 하지만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을 굳이 한다면, 아니다!
마현에게 있어 걸어야 하는 길은 이미 반듯하게 닦여져 있었다.
이미 한 번 걸었던 길이다.
그 길을 다시 걸을 뿐이다.
다만 심장이란 이동수단이 아닌 단전이라는 이동수단으로 갈아탔다는 것이 문제라면 문제일 수 있다. 하지만 그런 문제가 마현의 길을 완전히 가로막지는 못한다.
물론 익숙지 않은 이동수단이라 간간히 위험에 처해지기는 하겠지만 그만한 위험이 자신의 발걸음을 멈추게 하지는 못할 거라고 생각했다.
‘마나나 내력이나 용어의 차이만 있을 뿐, 근본적인 차이는 없다. 어차피 그 기운으로 마법을 마법수식으로 발현시키는 것은 똑같다!’
마현은 아이들을 둘러보는 평지달을 잠시 쳐다봤다.
‘그리고 착각한 게 있습니다. 나 역시 마인이지만 무림인으로 첫걸음을 내딛은 게 아닙니다. 나는 흑마법사로서 다시 첫 걸음을 내딛은 것입니다.’
마현은 다시 눈을 감고 초마심법에 빠져들었다.
한 달이라는 시간은 생각보다 빨리 지나갔다.
마현은 잠자는 시간까지 아껴가며 초마심법에 매달렸다.
그 시간 동안 평지달의 말 중 하나는 들어맞았다.
바로 단전의 충실도였다.
초마심법으로 인해 확실히 마현의 단전과 단전을 둘러싼 서클이 더욱 탄탄해졌다.
물론 축기되는 양이 너무 적어 여전히 2서클 초반에 머물고 있었지만 마현은 낙담하지 않았다.
한 가지 놀라운 사실도 알게 되었다.
서클을 이루는 마력의 양이 심장 주위의 서클일 때보다 2배 이상 필요한 만큼, 마법을 시전할 수 있는 횟수가 늘어난다는 것은 어느 정도 예상을 했었다. 그런데 문제는 2배 이상의 ‘양’이 아니라 바로 ‘농도’에 있었다.
이 세상의 마나, 즉 기의 농도는 하르센 대륙보다 더 짙다.
짙은 기의 농도는 마법의 위력에서 차이가 난다.
아직 2서클 마법사여서 당장 정확한 차이를 알 수 없겠지만 대략 전보다 1.5배 정도, 아니 어쩌면 그 이상 더 강하지 않을까 짐작할 따름이었다.
그리고 한 달이라는 시간 동안 교관 평지달과 많이 친해졌다.
물론 친해졌다는 느낌은 평지달의 것일 뿐 마현은 별다른 흥미를 가지지 않았다. 그와 가까워진 것이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그를 통해 이 세계에 대해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그가 가진 지식은 손정이 가진 지식과는 차원이 달랐다.
무림이라는 곳은 순수 검사(劍士)들의 세상이었다.
황제가 다스리는 땅 안에 순수 검사들의 세상인 무림이 있으며, 현재 중원 무림은 마교와 정파인 오파일방이나 육대세가가 양분하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 이 두 세력과 견줄 수 있는 세외 3대 세력이 있으니 북쪽의 북해빙궁(北海氷宮), 남쪽의 남해태양궁(南海太陽宮), 그리고 서남쪽의 남만야수궁(南蠻野獸宮)이 존재한다고 했다.
그 외 무림의 생리라든가 전반적인 정보들에 대해 들었다.
마현은 말을 돌려 마법사의 존재에 대해서도 알아보았다.
그를 통해 알아낸 수확 중 가장 큰 것이 바로 이 세상에 마법사라는 존재가 확실하게 없다는 것이었다.
‘흑마법사들이 그렇듯 마인들 역시 기괴한 수를 많이 쓴다고 하니 내가 흑마법을 펼쳐도 큰 무리는 없겠군.’
마현은 두 팔을 번쩍 벌리고는 천천히 하늘을 향해 들어올렸다.
‘마법사가 없는 세상이라……, 재미있겠군.’
* * *
거대한 대연무장에 천 명의 마련생이 자리를 잡고 앉아 있었다.
한 달이 지난 지금 모두들 가장 기본적인 입마심법과 초마심법을 익힌 후 실질적인 심법인 ‘마용심법(魔用心法)’을 전수받았다.
마용심법을 전수받고 난 후에는 오전에 대연무장에 모여 수련을 해야만 했다. 그리고 오후에는 각자 흩어져 무공의 가장 기초적인 부분들을 수련했다.
이런 일정은 한 달 동안 이어진다.
그 이후 심법 수련은 각자의 몫으로 돌아가고 오후의 수련이 오전으로 당겨지며, 오후에는 개인적인 수련 시간이 주어진다.
그렇게 행하는 이유는 비록 가장 기초적인 심법 수련이라고 해도 위험이 따르기 마련이다. 한 달이라는 기간 동안 교관들이 최대한 올바른 길로 인도를 하기 위함이었다.
마용심법을 익힌 후 확실히 단전에 축기되는 기의 양은 많아졌다.
더불어 미약하지만 마기 역시 만들어졌다. 하지만 기초적인 심법이어서 그런지 쌓이는 양은 아직은 미미했다.
다른 이들에게는 어떨지 몰라도 마현에게 있어서는 너무나 느린 축기였다.
워낙 느린 축기여서 조금 답답함이 없지 않았지만 조급한 마음이 든다고 무리해서는 절대 안 된다는 것을 마현은 알고 있었다.
과거 심장에 마나를 쌓을 때에도 조금이라도 빨리 서클을 늘리려는 마음에 무리하다 폐인이 되거나 죽는 경우를 많이 봐왔다.
‘느려도 안전하게, 그리고 차근차근!’
그렇게 인내를 거듭하며 마용심법을 익혀 2서클에 완벽하게 올라갔다.
다만 마력이 딸려 2서클의 마법을 온전히 사용하지는 못하지만 그건 시간이 해결해 줄 문제였다. 두 번째 고리인 2서클에 충분한 마력을 채우면 완전한 2서클의 마법사가 된다는 소리였다.
그렇다고 하지만 마용심법은 2서클을 마력으로 가득 채우기에는 너무나도 부족한 심법이었다.
더불어 과연 마공의 내공심법이 맞는가 싶을 정도로 축적되는 마기 역시 너무 미미했다.
비록 3서클에 올라가기 전까지 흑마법을 사용할 수 없다고는 하지만 이 심법으로 3서클에 올라간다 해도 가진 마기의 양이 너무 적었다. 과연 흑마법을 펼칠 수 있을까 의문이 들 정도였다.
굳이 필수의 유무를 따진다면 마기, 어둠의 기운이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니다.
마법사라는 게 신의 권능이 있어야만 걸을 수 있는 길은 아니기 때문이다.
흑마법사나 백마법사나 공통적으로 사용하는 마법들이 있다. 이것을 공통마법이라 부르는데 마나를 주축으로 이뤄지는 마법들이다.
예를 들어 라이트나 알람 마법, 혹은 공격계 마법 중에서도 파이어볼 같은 것이 있다.
하지만 마법사들이 신의 권능을 받아들이는 이유는 더 큰 위력을 발휘하기 위해서다.
앞서 말한 파이어볼을 백마법사나 흑마법사 둘 다 사용할 수 있다지만 거기에 어둠의 기운을 섞느냐, 빛의 기운을 섞느냐에 따라 그 성질과 파괴력이 달라진다.
흑마법사의 파이어볼은 더욱 강한 파괴력을 가지게 되는 반면 백마법사들은 오히려 파괴력이 줄어든다.
그렇다면 모두 흑마법을 지향하지 왜 백마법을 지향하겠는가 싶지만, 백마법사들은 빛의 기운을 가짐으로 그들 특유의 빛의 마법을 사용할 수 있게 된다.
백마법사들의 자랑이자 하나의 상징과도 같은 치료 마법 등이 그 예다.
반면 흑마법사들은 어둠의 마법을 가지게 된다.
그 대표적인 것이 공포와 저주에 관련된 마법들이다. 간혹 사신 키디악의 권능을 받아들인 몇몇 흑마법사들은 네크로맨서(Necromancer)의 길을 걷기도 한다.
마현은 그저 그런 마법사의 길을 걷는 것이 아니었다.
확고한 흑마법사의 길을 걷고 있는 것이었다.
흑마법사의 길에 마나만큼 중요한 것은 어둠의 기운 즉, 마기였다.
바로 여기서 마현에게 문제가 생긴 것이었다.
과거 어둠의 신의 권능을 이용해 어둠의 기운을 받아들일 때에는 그저 계약에 의해 어둠의 기운을 부족함 없이 사용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