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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마법사 무림에 가다-17화 (17/351)

# 17

17화

“이 새끼 죽고 싶어?”

그 아이는 엉망이 된 마현의 방을 눈으로 확인하고는 이내 눈살을 찌푸렸다.

“미친 새끼가 아주 지랄을 떨었구먼.”

그 아이는 구석에서 온몸을 떨고 있는 마현을 보며 협박조로 비아냥거렸다.

“나가!”

마현의 목소리는 낮았지만 그의 방으로 들어온 아이들의 귀에 선명하게 들렸다.

“뭐?”

그 말에 기가 차다는 듯 대장 아이가 눈에 쌍심지를 켰다.

“이 새끼, 조용히 말로 해서 들을 것이지. 오늘 죽고 싶어 환장을 했구나?”

대장 아이는 바닥을 뒹굴고 있는 깨진 탁자의 다리 하나를 집어 들었다.

“크크크크.”

그러자 마현이 몸을 떨며 음산한 웃음을 터트렸다.

“어쭈, 이 새끼 봐라!”

대장 아이는 몽둥이를 손바닥으로 탁탁 치며 앞으로 한 걸음 내딛었다.

마현은 두 다리 사이에 파묻고 있던 무표정한 얼굴을 들어올렸다.

“죽고 싶지 않으면 나가라!”

음산한 목소리.

그때 마현의 눈동자에서 마기가 폭발하듯 뿜어져 나왔다. 순식간에 방 안은 마현의 눈동자에서 폭사된 마기로 가득 찼다.

“으으으으.”

“으아아아!”

아이들은 그 마기에 휩싸이자 공포를 느끼며 몸을 바들바들 떨었다.

그런 아이들을 보며 마현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자 웅크린 채 아이들을 노려보던 마기 역시 몸을 일으켰다.

“으아아아!”

“사, 사람 살려!”

아이들은 공포를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마현의 방을 도망치듯 우르르 빠져나갔다.

덜컹.

이내 문이 닫혔다.

“크하하하하하하!”

마성이 담긴 웃음소리가 방 안에서 터져 나왔다.

“나는 마현이기 전에 흑마법사다! 나는 결코 흑마법사의 길을 포기하지 않겠다!”

* * *

이른 아침, 모든 아이들이 수련장으로 떠난 입마관 숙소는 매우 조용했다.

입마관 숙소 5층 가장 구석에 있는 마현의 방 앞.

정견이 그 방 앞에 서서 방문 고리를 한참 동안이나 내려다보고 있었다. 문고리를 향해 손을 뻗던 정견이 잠시 멈칫했다. 손가락을 옴지락거리며 잠시 망설이는 눈치였다.

마현의 눈빛이 떠오른 것이었다.

그 눈빛이 떠오르자 한순간 몸이 경직되었다.

잠시 망설이는 그때, 입마관 교관 하나가 5층으로 올라왔다.

“총교관님.”

“무슨 일인가?”

“평 교관에게 어제 입관한 마련생에게 이 책들을 전해달라고 부탁을 받았습니다.”

그 교관이 들고 있는 십여 권의 책들은 한 달 반 전 마련생들이 입마관에 입관하고 나서 교육을 받았던 내용들이 담긴 책자였다.

“평 교관의 몸은 좀 괜찮나?”

“생각 외로 중한 내상이라 며칠 정도 더 요양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래?”

“그런데, 총교관님. 도대체 어제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

교관은 별 의미 없이 물었지만 받아들이는 정견의 몸은 본능적으로 굳어졌다.

“가 봐!”

정견은 조금은 거칠게 교관의 손에서 책들을 빼앗다시피 받아들고는 고개를 홱 돌려 버렸다.

평소 냉철한 정견과는 어딘가 다른 모습이었다.

순간 교관은 당황했다. 하지만 정견은 자신의 직속상관, 명을 받들 수밖에 없었다.

“아, 알겠습니다.”

교관은 정견을 향해 허리를 숙이고는 몸을 돌렸다.

교관이 돌아가자 정견은 손에 든 책들을 내려다보았다.

‘분명 내가 잘못 본 것이 틀림없어.’

그렇게 스스로에게 암시하며 자신을 눈빛만으로 짓눌러 버린 마현의 눈빛을 애써 털어냈다. 그리고 책들을 옆구리에 끼며 다시 마현의 방문 고리에 손을 얹었다.

“후우우, 우우!”

길게 숨을 내뱉었지만 가슴은 답답했다.

마른침을 애써 꿀꺽 삼키고는 방문을 열었다.

2평 남짓한 자그만 방이 한눈에 들어왔다.

부숴진 나무 파편들이 방 안을 굴러다니고 있었다.

굳이 유추하지 않아도 책상과 의자가 부서지면서 만든 파편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나마 침상만큼은 제 형태를 유지하고 있었지만 군데군데 부숴져 있어 제 역할을 하기에는 이미 틀린 모습이었다.

그리고 눈에 들어온 것은 벽면에 가득 찍힌 검붉은 주먹 자국이었다.

비릿한 혈향이 나는 것으로 보아 피가 나도록 맨주먹으로 벽을 두들긴 것이 분명했다.

조금 시선을 밑으로 내리니 그 아래 마현이 무릎 사이에 고개를 파묻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모르긴 해도 어제 강제로 단전을 만든 후 충격을 받은 모양이었다. 상당한 충격이 있을 것이라 예상은 했지만 마현의 반응은 생각 이상이었다.

정견은 그만큼 마현이라는 아이의 심지가 약하다고 판단했다.

그런 마현을 직접 눈으로 보자 정견은 쓴웃음을 지었다.

‘이런 아이가 눈빛만으로 나를 주눅 들게 할 리 없지.’

딸깍.

정견은 엉망이 된 마현의 방을 둘러보며 방문을 닫았다.

‘아마 내 마력을 가져간 것 역시 사실이 아닐 것이고.’

뒤늦게 달려온 교관들의 말에 의하면 자신이 한참 동안 정신을 잃었다고 했다. 그 사이 악몽이라도 꾼 모양인지 연신 신음을 하며 식은땀을 주르르 흘렸다고 했다.

정견은 자신의 머릿속에 각인된 어제의 상황이 현실이 아닌, 자신이 정신을 잃은 상태에서 꾼 악몽이라 치부했다. 아니 그렇게 자신을 계속 세뇌하다시피 암시를 주고 있었다.

정견은 그나마 제 형태를 유지하고 있는 침상 위에 책들을 올려놓았다.

“충격이 크겠지만, 마인이라면 그만한 충격쯤은 이겨내야 한다.”

정견은 여전히 몸을 웅크리고 있는 마현을 향해 냉정하게 말을 내뱉고는 몸을 돌렸다.

“왜?”

돌아서는 정견의 귀에 작지만 마현의 목소리가 들렸다.

“왜?”

그 목소리에 정견은 눈살을 찌푸리며 고개를 돌렸다.

마현이 흐느적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왜! 왜! 왜! 나의 서클을 부쉈지?”

전혀 의미를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주절대며 다가오는 모습에 정견의 얼굴은 더욱 차갑게 변했다.

“그만! 강제로 단전을 만든 충격은 이해한다만, 더 이상은 용납하지 못한다!”

정견의 목소리는 한층 더 살벌해졌다.

“왜 나의 서클을 부쉈냔 말이다!”

마현은 악이 받힌 목소리를 정견의 얼굴 바로 앞에 내뱉었다.

정견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손을 뻗어 마현의 목을 움켜잡았다.

“어리광도 거기까지다!”

“컥, 컥컥!”

마현은 숨이 막힌 듯 연신 거친 숨을 토했다.

쾅!

정견은 마현을 그대로 벽에 집어던졌다.

쿠당탕탕탕.

벽에 날아가 부딪힌 마현은 힘없이 땅바닥에 뒹굴었다.

상당한 충격을 받았는지 다시 일어나는 마현의 몸은 눈에 띄게 후들거렸다.

힘들게 일어난 마현은 벽에 기댄 채 정견을 노려보았다.

“나는 흑마법사다! 네놈이 내 몸을 이렇게 만들었어도……!”

마현은 다시 정견 앞으로 달려들며 소리쳤다.

“나는 흑마법사다!”

순간 마현의 눈동자가 바뀌었다.

마현의 강렬한 의지가 단단하게 웅크린 채 움직이지 않던 단전을 아주 살짝이지만 흔들었다.

흔들린 단전에서 뻗어 나온 마기가 마현의 눈에서 뿜어져 나왔다.

“이 세상 어느 누구도 나의 흑마법사의 길을 막지 못한다.”

그 눈빛에 냉소를 짓고 있던 정견의 표정이 굳어졌다.

어제 본 것처럼 한순간 위압감을 느낄 정도까지는 아니었지만, 그만 그 눈빛에 마음이 흔들렸다.

정견은 자신도 모르게 먼저 고개를 돌려 그 눈빛을 피했다.

“사, 사흘 후다. 그때까지 저기 책들을 모조리 외운 후 대연무장으로 나오너라.”

정견은 끝내 마현의 눈을 보지 못한 채 서둘러 방을 빠져나왔다. 집무실로 돌아가는 내내 정견의 머릿속은 혼란스러웠다.

“후우, 후우, 후우…….”

정견이 나간 문을 마현은 거친 숨을 몰아쉬며 노려보고 있었다.

급격하게 흥분한 탓인지 거친 숨은 좀처럼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하지만 아무도 없는 방. 시간이 흐르면서 마현은 어느 정도 안정을 찾을 수 있었다.

차츰 안정을 되찾으면서 마현의 머리는 다시 차가워져갔다.

아무리 큰 충격이었다고는 하지만 꼬박 하루 동안 미쳐서 날뛰었다. 몸과 머리가 지칠 대로 지치자 마현은 다시 이성을 찾을 수 있게 되었다.

다시 몸을 돌리던 마현은 순간 동작을 멈추었다.

‘부, 분명!’

그의 눈동자가 파르르 떨렸다.

그러면서 자신의 양손을 들어 쳐다봤다.

‘어둠의 기운이 담긴 마나가 움직였어.’

마현은 바들바들 떨리는 양손을 내려 아랫배에 가져다 댔다. 여전히 딱딱한 바위처럼 꿈쩍도 하지 않았지만, 분명 마력이 미약하게나마 움직인 사실을 기억해냈다.

‘아무리 내가 흥분했어도 착각일 리 없어!’

어느새 마현의 얼굴은 흥분으로 인해 붉게 상기되어 있었다.

‘마력을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은 곧 흑마법사의 길을 걸을 수 있다는 소리!’

마현은 손을 들어 심장을 움켜잡았다.

처참하게 부서진 서클의 잔해가 느껴졌다.

다시 손을 내려 단전이 느껴지는 아랫배를 잡았다.

‘꼭 심장이 아니어도 흑마법만 펼칠 수 있다면 나는 상관없다! 흑마법만 펼칠 수 있다면!’

마현은 애써 흥분을 가라앉히며 주위를 살폈다.

편히 앉아서 단전이라는 곳에 갇힌 어둠의 기운에 담긴 마나를 움직여 보고 싶었다.

마현은 그나마 온전한 모습을 갖춘 침상으로 다가갔다.

군데군데 부서지고 움푹 파인 곳이 많아 앉을 곳조차 찾기 힘들었다. 마현이 간신히 앉을 수 있는 자리는 정견이 책을 올려놓은 곳뿐이었다.

마현은 책을 바닥으로 밀치고 자리를 만들었다.

후두둑, 두둑.

책이 바닥으로 떨어지며 어지럽게 흩어졌다.

마현은 그 책들에게 시선조차 주지 않고 침상에 편하게 앉으며 눈을 감았다.

최대한 정신을 집중해 단전을 건드려 보았다.

역시나 단전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쉽지 않은 일이라 이미 각오했다!’

마현은 주위의 모든 상황을 잊은 채 오로지 단전에만 신경을 집중했다. 시간이 흐르고 또 흘러도 단전은 여전히 움직이지 않았다.

‘방법이 틀린 것인가?’

문득 마현은 단전이 흔들린 상황을 떠올렸다.

‘분노인가?’

마현은 정견을 향해 분노를 표출했을 때 단전이 움직였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마현은 애써 가라앉힌 분노를 다시 떠올렸다.

스승과 다름없는 여섯 백마법사에게 죽음 아닌 죽음을 맞이하게 된 상황, 서클이 부서진 상황 등……. 여전히 생각만 하면 분노가 끓어오르는 극한의 상황을 모조리 떠올렸다.

하지만 단전은 여전히 움직이지 않았다.

“휴우…….”

결국 마현은 긴 한숨을 내쉬며 눈을 떴다.

마현은 잠시 마음을 비운 후 다시 눈을 감았다.

초심으로 돌아가 자신이 처음 마나를 어떻게 느꼈으며, 서클을 어떻게 만들었는지 기억하는 동시에 마나를 다스리는 마나 컨트롤(Mana control)을 다시 하나하나 떠올리며 되짚어보았다.

과거 마법사가 되겠다고 애를 쓰던 때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마나를 느끼기까지 시간이 왜 그렇게 길었을까.

조금씩 느껴지는 마나를 심장에 쌓기란 또 얼마나 어려웠나. 심장에 쌓인 마나는 왜 그렇게 잘 움직이지 않았는지. 처음 심장 주위에 1서클을 만들었을 때 그 기쁨이란…….

“……!”

마현의 감긴 눈이 꿈틀거렸다.

‘마, 마나 컨트롤!’

심장의 마나를 움직이기 위해서는 거기에 걸맞은 마나 컨트롤이 필요하다. 물론 학파마다, 그리고 마법사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분명 심장의 마나를 움직이기 위해서는 마나 컨트롤이 필요하다.

마현은 눈을 번쩍 뜨며 고개를 숙여 아랫배를 쳐다봤다.

‘그래서 움직이지 않았던가?’

단전과 심장은 다르다.

“크하하하!”

마현은 웃음을 터트렸다.

‘그랬던 건가?’

단전에 잠든 마나가 움직이지 않았던 이유는 너무나도 단순했다. 단전을 움직일 수 있는 컨트롤을 이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결국 단전을 사용할 수 있는 단전 컨트롤이라고 해야 하나? 어쨌든 그걸 익혀야 한다는 소리인데…….’

마현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일단 흑마법사가 되기 위한 실마리는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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