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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마법사 무림에 가다-16화 (16/351)

# 16

16화

탱탱했던 피부는 서서히 탄력을 잃어갔고, 이내 미라가 되어가는 노인처럼 그의 몸은 쭈글쭈글 변해갔다.

“크아아악!”

정견은 온몸이 난도질당해 갈가리 찢기고 갈라지는 고통에 비명을 질렀다.

정견이 평생 모은 마기와 내력, 즉 마력(魔力)이 한순간 마현의 몸으로 흡수되기 시작한 것이다.

아무리 내력을 끊고 강제로 회수하려 해도 거스를 수 없는 파도에 휩싸인 듯 정견의 모든 마력이 마현의 몸으로 흡수되었다.

정견의 생기가 가득 찼던 눈동자도 썩어가는 생선의 눈알처럼 칙칙하게 변했다.

“크아아아아아!”

고통에 가득 찬 정견의 비명소리가 듣기 좋은 음악처럼 들렸을까. 그에 화답하듯 마현의 입이 벌어지더니 마기를 가득 담은 마성을 터트렸다.

정견은 삶의 마지막이라 느끼며 힘없이 고개를 들었다.

마현이 뿜어대는 마기 역시 자신의 마기였고, 비명을 지르며 내뿜는 내력 역시 필생을 담아 완성시킨 자신의 내력이었다.

자신의 모든 것이라 할 수 있는 마력을 빼앗겼다.

그뿐만 아니라 자신의 몸에 채 흡수되지 못한 마환단의 기운마저 마현이 가지고 있던 기운과 합쳐지는 것이 느껴졌다.

비록 모든 것을 다 빼앗겼지만 실낱같은 아주 작은 마력이 정견과 마현을 이어주고 있었기 때문에 마현의 몸 안에서 벌어지는 상황을 느낄 수 있었던 것이다.

하나로 뭉친 거대한 마력은 마현의 심장을 향해 움직였다.

그것은 곧 심장 주위에 안착하고자 주위를 맴돌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정견이 심장을 감싸던 서클을 완전히 부숴 놓았기 때문이다.

결국 자리를 잡지 못해 방황하던 거대한 마력은 마현의 단전으로 내려와 자리를 잡았다.

거대한 마력은 처음에는 불편한 듯 이리저리 몸을 비틀며 안정하지 못하는 듯했지만, 이내 거대한 마력 속에 흡수된 정견의 마력이 이끄는 대로 편하게 자리를 잡아갔다.

그러자 마현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마기와 내력이 순간 극에 달했다.

“아무도 나를 죽이지 못한다! 내가 바로 카칸이기 때문이다!”

마현의 입에서 갑자기 괴이한 소리가 흘러나왔다.

도저히 알아들을 수 없는 이상한 언어였다.

게다가 목소리는 어린아이의 음성이라고 도저히 할 수 없을 정도로 굵고 거칠었다.

‘이렇게 끝이 나는 것인……!’

간신히 잡고 있던 의식이 점점 멀어지는 것을 느끼며 힘없이 고개를 떨어뜨리던 정견. 그는 어느 순간 다시 되살아나는 오른손을 보며 고개를 번쩍 치켜들었다.

미라처럼 쭈글쭈글하게 비쩍 말라 버린 오른손이 서서히 부풀어 오르며 다시 탱탱하게 변해갔다.

‘마, 마력이 되돌아온다!’

고개를 든 정견의 눈에 마현의 발이 보였다.

마현의 발은 바닥이 아닌, 허공에 1척(1尺; 30센티미터)가량 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정견은 어느새 오른팔이 위로 쭉 올라가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정견은 힘겹게 고개를 들어올렸다.

부르르르.

마현의 눈과 마주친 순간 정견은 공포감을 느끼며 온몸을 파르르 떨었다.

마현은 오연하게 허리를 편 채 팔짱을 끼고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 눈빛은 대호(大虎)가 쥐새끼를 내려다보며 하찮은 목숨을 연명하게 해주겠노라 말하는 듯한 바로 그 눈빛이었다.

그 가공할 눈빛에 정견의 몸은 벼락이라도 맞은 것처럼 부르르 떨렸다.

‘저, 저 눈빛은?’

본 적이 있다.

그것도 아주 선명하게 머릿속에 각인된 눈빛이었다.

절대자의 눈빛.

천하마저 눈을 깔고 오시하는, 태생적으로 천하를 군림하는 자의 눈빛이었다.

정견은 그 눈빛을 딱 한 번 본 적이 있었다.

바로 마교 교주인 철혈마제의 눈빛이 저렇게 위압적이었다.

‘어, 어떻게……. 교주님의 눈빛을 저 아이가…….’

충격이었다.

두려움과 동시에 정견의 머릿속은 온통 혼란스럽게 변했다.

절대자의 눈빛에 두려움을 느끼는 그 순간에도 정견은 자신을 내려다보는 마현의 눈동자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고 있음을 알아차렸다.

그리고 보았다.

아니 눈에 들어왔다.

마현의 입꼬리가 말려 올라가는 것을.

쏴아아아아!

그때 흡수되었던 기운이 한꺼번에 정견의 몸으로 되돌아왔다.

하지만 완벽히 돌아온 것은 원래 정견이 가지고 있던 내력뿐, 마환단의 마력은 돌아오지 않았다.

펑!

정견의 오른손과 마현의 기해혈 사이에서 강한 폭발이 일어났다. 그 충격에 정견은 뒤로 날아가 연무장 벽에 부딪히며 정신을 놓았다.

정견은 양손으로 머리를 감쌌다.

‘도대체 그 눈빛은 뭐란 말인가?’

결코 어린아이의 눈빛이 아니었다. 아니, 어른이고 아이를 떠나 아무나 가질 수 없는 눈빛이었다.

게다가 녀석은 자신의 마력까지 마음대로 다스렸다.

‘그 아이의 정체가 뭘까?’

정견은 머리를 감싸던 손을 내려 눈을 가렸다.

자신이 어린아이의 눈빛에 압도당한 것으로도 모자라, 비록 한순간이지만 공포심까지 느꼈다는 사실이 그를 비참하게 만들었다. 한동안 이 충격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 같았다.

* * *

입마관 마련생이 머무는 누각 5층에 교관 둘이 한 아이를 업고 올라왔다.

“총교관님 개인 연무장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평 교관이 내상을 입은 채 쓰러져 있질 않나, 총교관님은 제대로 말씀도 하지 않으시고 자신의 침실로 돌아가니 말이야.”

“맞아, 어째 평소와는 달라 보였어. 뭐라 그럴까. 떨고 있었다고 해야 하나?”

“예끼, 이 사람아. 총교관님이 어떤 분이신데.”

“하긴. 그럼 총교관님도 내상을 입으신 건가?”

“그나저나 이 아이, 오늘 새로이 입관한다는 그 마련생 맞지? 이 아이는 왜 그 자리에 있었던 거야? 그것도 정신을 잃은 채로.”

결국 답이 없는 공허한 대화만 나누며 마현을 침상에 눕혀놓고 두 교관은 다시 자신들의 숙소로 돌아갔다.

정신을 잃은 마현은 꿈을 꾸고 있었다.

광활한 하르센 대륙의 벌판.

대지를 흠뻑 적신 핏물.

바로 전장 한가운데 흑마법사 카칸이 홀로 서 있었다.

그 앞에 무릎을 꿇은 적장의 모습이 보였다.

숱한 상처에서 피를 흘리면서도 자신을 향해 여전히 투기를 거두지 못하는 모습에, 카칸은 입꼬리를 틀며 그 앞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승자의 눈빛으로 적장을 내려다보았다.

“큭!”

그 눈빛에 결국 적장은 고개를 떨어트렸다.

“크하하하하하!”

카칸은 그 모습에 고개를 번쩍 들어 마성을 터트렸다.

어둠의 기운을 가득 담은 마소(魔笑)는 전장을 쩌렁쩌렁 뒤흔들었다.

“같이 죽자!”

그때 모든 것을 포기한 줄 알았던 적장이 카칸의 배를 향해 두 팔을 뻗었다.

그 순간 엄청난 양의 마나가 카칸의 몸속으로 흘러들어왔다.

‘자폭?’

카칸은 일부러 마나를 불안정하게 만들어 스스로 폭주하게끔 만들려는 적장의 의도를 간파했다.

‘목숨까지 바쳐 이 전쟁을 이기려는 것인가?’

적장은 스스로의 목숨까지 버려가며 카칸과 함께 죽으려는 것이었다.

카칸은 자신의 몸 안에서 마구 날뛰는 적장의 마나를 느끼며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 적장이 자신과 눈이 마주치자 두려움을 느끼며 몸을 떠는 것이 보였다.

“아무도 나를 죽이지 못한다! 내가 바로 카칸이기 때문이다!”

카칸은 자신의 몸 안에서 마구 날뛰는 적장의 마나를 끌어 모아 한순간 잠재워 버렸다.

카칸은 손을 뻗어 적장의 머리 위에 손을 올렸다.

동시에 카칸의 눈에서 어둠의 마나가 폭사되었다. 그 마나는 이내 적장의 몸을 휘감았다.

“으아아악!”

적장은 머리를 양손으로 감싸며 비명을 질렀다.

비명은 서서히…… 잦아들었다.

주위의 전장도 서서히 작아졌다.

비명을 지르는 적장의 모습도 서서히 흐려지더니 사라졌다.

자신도 사라졌다.

그리고 남은 것은 암흑.

어둡다.

너무 어두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보고 싶다.

피가 마르지 않는 전장을.

다시 보고 싶다!

그러면 눈을 떠야 한다.

그 순간 정신을 잃고 침상에 누워 있던 마현이 눈을 부릅떴다.

“헉헉헉.”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은 마현은 창문 너머로 들어오는 달빛을 보며 깊은 숨을 내쉬었다.

“꿈이었구나.”

갈증을 느낀 마현은 탁자 위에 있을 물주전자를 찾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막 침상에서 몸을 일으킨 마현은 이내 달라진 주변 환경을 보자 허망함이 담긴 웃음을 피식 내뱉었다.

꿈에서 깨어난 마현은 이곳이 하르센 대륙이라고 잠시 착각했던 것이다.

마현은 여전히 실소를 머금은 채 머리를 숙이며 양손으로 얼굴에 가득 묻은 땀을 닦았다.

그러던 마현의 몸이 순간 굳어졌다.

‘서, 서클!’

꿈으로 뒤범벅되었던 기억이 점차 사라지며 다시 현실로 돌아온 마현은 오른손을 뻗어 왼쪽 가슴을 움켜잡았다.

순간, 항상 꽉 다물어져 있던 마현의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부, 부서졌다!’

그것을 믿을 수 없다는 듯 눈동자가 요동쳤다.

마현은 서둘러 몸을 살폈다.

그토록 원하던 어둠의 기운과 그 기운을 머금은 마나가 마현의 몸 안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하지만 아랫배에서 돌덩이처럼 꽉 뭉쳐져 있었다. 그보다 더 절망적인 것은 심장 주위가 완전히 부서져 더 이상 서클을 만들 수 없다는 것이었다. 마법사로서 가장 중요한 서클을 이제는 만들 수 없게 된 것이다.

“으아아아!”

마현은 고개를 젖히며 처절한 비명을 터트렸다.

쾅 쾅 쾅 쾅!

마현은 침상을 둘러싼 벽을 마구 주먹으로 쳤다.

“이 카칸이! 이 카칸이 더 이상 마법사가 될 수 없다는 것이냐!”

악에 받힌 목소리로 고함을 지르며 마현은 의자를 들어 침상을 후려갈겼다.

콰직!

의자는 산산조각 나며 그 파편들이 방 안 사방으로 비산했다. 그것도 성에 차지 않았던지 탁자를 들어 벽에 내던졌다. 나무로 만들어진 탁자는 힘없이 부서졌다.

마현은 미친 듯이 부서진 탁자를 다시 집어 들어 창문을 향해 내던졌다.

와장창창창!

창문이 깨어졌다.

쾅 쾅 쾅 쾅!

더 이상 부서트릴 것이 없어지자 주먹으로 다시 벽을 마구 후려쳤다.

이내 벽은 수십 개의 핏자국이 그려졌다.

“헉헉헉, 헉헉헉.”

지쳤는지 마현은 어깨마저 들썩이며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크크크크크.”

이내 슬픔이 담긴 웃음이 귀신의 울음처럼 음산하게 퍼져나갔다.

“크하하하하!”

마현은 다시 고개를 젖혀 광소를 터트렸다.

갑자기 실성한 것처럼 자지러지게 광소를 터트리던 마현은 거짓말처럼 뚝 웃음을 멈추고 양손으로 머리카락을 잡아당기며 몸을 벽에 내던지듯 기댔다.

그렇게 미친 듯이 웃음을 터트리다가 이제는 우는 것인가?

머리를 쥐어뜯으며 벽에 기댄 마현의 몸이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으아아아!”

마현은 별안간 소리를 지르며 주먹으로 다시 벽을 후려갈겼다.

그렇게 주먹이 피투성이가 된 마현은 지친 듯 허물어지며 주저앉았다. 마현은 무릎 사이에 얼굴을 파묻었다.

“나는 카칸이다!”

중얼거리듯 말을 내뱉었다.

“나는 카칸이다, 흑마법사 카칸!”

조금 더 커진 목소리가 마현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나는 포기하지 않아. 흑마법사의 길을!”

마현의 몸에서 희미하지만 마기가 조금씩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내 모든 것을 다시 잃더라도 흑마법사의 길은 포기하지 않아.”

마현은 스스로에게 다짐하듯 가만히 읊조렸다.

그러는 사이 마현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마기의 농도가 조금 더 짙어지고 있었다.

그때.

콰당!

문이 부서질 듯 거칠게 열리며 십여 명의 아이들이 우르르 몰려 들어왔다.

“야, 이 개새끼야! 지금 시간이 몇 시야?”

가장 앞에 선 아이가 목에 핏대를 세우며 소리를 질렀다.

아마 이 아이가 이들 중 가장 힘이 세고 은연중 대장 노릇을 하는 눈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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