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
15화
정견은 마현의 눈을, 마현은 정견의 눈을 서로 쳐다보고 있었다.
누구 하나 눈동자를 돌릴 법한데, 그들은 여전히 서로의 눈을 응시한 채 대화를 나눴다.
“그렇다고 해서 뒤늦게 마련생으로 들어온 너를 방치할 생각도 없다. 이번이 처음이자 마지막 특별대우가 될 것이다.”
“감사합니다.”
고개를 살짝 숙이는 순간, 그 둘의 눈이 처음으로 떨어졌다.
“가부좌를 틀고 앉아라.”
정견의 말에 마현은 자리에 앉지 않고 그냥 빤히 쳐다만 봤다.
“가부좌가 어떤 것입니까?”
“흠…….”
마현의 말에 잠시 신음한 정견은 평지달을 향해 신호를 보냈다.
“나를 따라 앉아라.”
평지달은 마현 옆으로 다가와 천천히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저렇게 앉을 수도 있나?’
그런 생각이 들 정도로 힘들어 보였지만 평지달이 그렇게 앉았으니 앉을 수 있다는 소리다. 마현은 평지달을 따라 가부좌를 틀고 앉으려 했지만 생각처럼 잘 되지 않았다.
이에 평지달은 자리에서 일어나 마현이 가부좌를 트는 것을 도와주었다.
“큭!”
다리가 꼬이고 힘줄이 당겨지자 상당한 고통이 뒤따랐다.
“익숙해져야 할 거다.”
평지달은 목소리를 낮춰 자상하게 말하며 마현의 다리를 찢듯이 들어올려 가부좌를 완성시켰다.
상당한 고통이 느껴졌지만 마현은 아무런 신음도 내뱉지 않았다. 다만 고통을 참아서 그런지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강제로 가부좌를 틀고 앉은 마현을 내려다보며 정견은 품에서 자그만 구슬을 하나 꺼냈다. 자세히 살피니 구슬이 아니라 한지에 싸여진 환약이었다.
“헙!”
그 환약을 본 평지달은 저도 모르게 헛바람을 들이마셨다.
정견은 그런 평지달을 잠시 쳐다봤지만 이내 시선을 거두었다.
“이건 마환단(魔丸丹)이라는 거다.”
마환단을 쳐다보며 평지달은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복용하면 자그마치 십 년의 마기를 담은 내력을 일시에 올릴 수 있는 단약이었다. 마환단이 여타 영약과 비교를 하면 격이 떨어진다고 할 수는 있으나 그렇다고 쉽게 구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마인들에게는 엄청난 영약인 것이다.
마현은 정견의 얼굴에서 마환단으로 시선을 옮겼다.
희미하지만 어둠의 향이 흘러나오는 것을 느꼈다.
‘적지 않은 어둠의 기운을 가진 약이다.’
이내 손정으로부터 들은 이야기가 생각났다. 청명진인이 굉장히 좋은 영약을 자신에게 먹였다고 했다.
그 말에 어렴풋이 드래곤하트와 같은 마나를 담은 약이 있을 것이라 추측했지만 이렇게 직접 눈으로 접하기는 처음이었다.
가슴 속에서 흥미가 솟구쳤다.
하지만 마현은 흥미를 일단 접어야 했다.
“평 교관. 저 아이 뒤에 앉아.”
“……?”
“이 아이에게 마환단을 먹일 생각이다.”
그 말에 평지달은 다시 헛바람을 토해냈다. 그러거나 말거나 정견은 계속 말을 이었다.
“이 아이가 마환단을 먹는 순간 평 교관, 자네가 강제로 단전을 만들어 줘야 한다. 알겠나?”
“아, 알겠습니다.”
평지달의 대답을 들은 정견은 고개를 돌려 마현을 쳐다봤다.
마현의 시선이 마환단에 있음을 알아차린 정견은 환단을 싼 껍질을 까며 말을 이었다.
“물론 다 주는 것은 아니다. 대충 눈치를 챘겠지만 이 마환단은 나에게도 소중한 것이다.”
정견은 마현 바로 앞으로 걸어가 가부좌를 틀고 마주보며 앉았다.
“이걸 이렇게 먹을 줄은 몰랐군. 평 교관.”
“예.”
“마환단을 꺼내 이 아이에게 먹이는 순간 바로 단전을 만들어라. 나 역시 운기조식에 들어가야 하니 그 일을 할 수 있는 건 평 교관, 자네뿐이다. 기초조차 갖추지 않은 아이이니 그리 어렵지는 않을 것이다.”
“아, 알겠습니다.”
정견은 다시 마현을 향해 시선을 내렸다.
‘자, 잠깐!’
마현은 정견과 평지달의 말을 들으며 뭔가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가는 것을 느꼈다.
분명 마환단의 일부를 자신에게 먹인다고 했다.
그것까지는 좋았다.
얼마만큼 큰 효과를 가져다줄지는 미지수였지만 마환단에서 느껴지는 마기와 마나는 분명 자신에게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근데 단전이라니? 단전이 뭐지?’
마현은 분명 들었다.
단전이 무엇인지 모르지만 단전을 만들어 주라고 했다.
불안함은 서서히 커져만 갔다.
“고통이 따를 것이다. 하지만 정신을 바싹 차려라. 잘못하면 너는 평생 폐인으로 살아야 한다.”
“…….”
마현은 복잡한 마음에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하지만 평 교관의 말을 잘 따르면 큰 문제는 없을 것이다.”
정견은 마현의 표정이 변했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마환단 껍질을 완전히 벗긴 후 약 4분의 1 정도를 떼서 마현의 입에 넣었다.
“시작하라.”
정견은 평지달에게 명을 내리고는 곧바로 자신 역시 나머지 마환단을 삼켰다.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흘러가는 상황에 잠시 정신을 놓친 사이 마현은 마환단을 먹고야 말았다.
싸한 약향(藥香)이 입안에 맴돌기가 무섭게 스르르 액체로 변하더니 목구멍을 타고 넘어갔다.
“어떤 일이 있어도 신음을 토해선 안 된다! 그리고 내가 주입하는 기운을 거스르지 마라. 알았나?”
‘기운? 주입? 뭐가 도대체 어떻게 흘러가는 거지?’
마현은 고개를 돌리려 했다.
“죽고 싶나? 움직이지 마라! 정신 똑바로 차려!”
불같은 평지달의 호통에 마현은 바싹 정신을 차리며 눈을 감았다.
순식간에 몸이 뜨거워지며 어둠의 기운이 섞인 마나가 몸 안으로 가득 차는 느낌이 들었다.
그 순간.
“흑!”
꽉 다문 입술 사이로 고통에 찬 신음이 비집고 흘러나왔다.
평지달의 손이 마현의 등에 닿는 순간 이질적인 어둠의 기운을 가진 마나가 몸속으로 들어왔다.
평지달의 마기였다.
그 마기는 마현의 몸을 휘저으며 몸으로 흡수되는 마환단의 기운을 끌어당겨 한곳으로 모은 후 에워쌌다.
평지달은 더욱 정신을 집중했다.
‘이제 마환단의 기운을 단전에 몰아넣은 후 강제로 안착시키기만 하면 된다.’
그 후 평지달이 자신의 기운을 다시 회수하면 모든 일이 끝난다.
그렇게 된다면 마환단의 기운은 단전에 무사히 안착하게 될 것이고 비록 강제적이기는 하지만 단전은 형성된다. 차후 마현이 심법수련으로 서서히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나가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평지달은 조심스럽게 마환단의 기운을 마현의 단전 방향으로 끌어당겼다. 처음에는 낯선 기운에 반항하듯 날뛰었지만 더욱 강한 평지달의 기운에 기가 꺾이더니 순순히 단전 방향으로 끌려왔다.
쿵!
그렇게 단전으로 거의 다 끌려왔을 때쯤 마환단의 기운이 더 이상 끌려오지 않고 딱 멈췄다.
평지달이 더욱 강한 힘으로 마환단의 기운을 잡아당겨 봤지만 뿌리라도 내린 것처럼 요지부동이었다. 그렇게 딱 멈췄던 마환단의 기운이 난데없이 단전이 있는 아래가 아닌 위를 향해 꿈틀거리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뭐, 뭐지?’
평지달은 이내 마환단이 스스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심장 쪽에서 강한 힘이 뻗어와 마환단을 잡아당기고 있음을 알아차렸다.
식은땀이 등골을 타고 주르르 흘러내렸다.
자칫 잘못하면 마현은 물론 자신까지 큰 내상을 입게 될 수 있는 상황이었다.
평지달은 이를 악물고 마현의 몸에 더욱 강한 기운을 주입시켰다.
그러자 심장 쪽으로 끌려가던 마환단의 기운이 다시 멈췄다. 심장에서 당기는 힘과 평지달이 잡아당기는 힘이 평행을 이룬 것이다.
“크으으으!”
그러는 사이 마현의 입에서는 지독한 고통의 신음소리가 끊임없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평지달의 입에서도 같은 소리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평지달이 아무리 애를 쓰고 용을 써 봐도 겨우 마환단의 기운을 잡아두는 것이 한계였다.
이대로 서서히 지쳐 주도권을 빼앗기게 된다면 자신은 물론 마현의 안전 역시 보장하지 못하는 상황으로 치닫게 될 것이다.
평지달은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내상을 각오하더라도…….’
평지달은 자신의 마기를 푸는 것과 동시에 다급하게 소리쳤다.
“총교관님! 크악!”
평지달의 입에서 피가 분수처럼 뿜어져 나왔다.
흐르는 피를 닦을 사이도 없이 평지달은 다시 풀었던 기운을 조였다. 하지만 내상을 입은 터라 그의 기운은 현격히 줄어 들었다.
그렇게 힘의 균형이 깨어지고 마환단의 기운은 평지달의 마기까지 끌어당기며 마현의 심장 쪽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으으으으!”
“크으으!”
마현과 평지달이 동시에 신음했다.
일주천도 제대로 하지 못한 상태에서 정견은 눈을 뜰 수밖에 없었다. 평지달의 목소리에서 다급함을 느꼈기 때문이다.
정견은 눈을 뜨자마자 마현과 평지달을 살폈다.
‘뭔가 잘못되었다!’
마현의 얼굴과 옷 사이로 드러난 피부는 날뛰는 기운들로 인해 울룩불룩 솟아올랐다 가라앉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그러는 사이 마현은 지독한 고통에 휩싸여 있었다.
통제에서 벗어나고자 몸부림치는 마환단의 기운, 평지달의 마기, 그리고 이미 제어할 수 없는 상태로 폭주하기 시작한 심장 주위에 만들어 놓은 서클까지.
비슷하지만 서로 다른 세 기운이 몸 안에서 마구 날뛰기 시작하자 마현의 고통은 극에 달했다. 마현은 이미 반쯤 정신을 놓은 상태나 마찬가지였다.
지독한 고통에 그저 정신 하나만 부여잡은 채 이 상황을 견디고 있을 뿐이었다.
정견은 곧바로 마현의 기해혈 위로 손을 뻗었다.
일단 평지달의 기운이 있는 쪽으로 다가가 평지달의 기운을 옆으로 밀어내고는 그 자리에 자신의 기운을 밀어 넣었다. 덕분에 자유롭게 된 평지달은 마기를 회수할 수 있었다.
“컥!”
마기를 회수한 평지달은 피를 토하며 옆으로 쓰러졌다.
정견은 평지달을 대신해 마환단의 기운을 잡은 후 마현의 몸을 살폈다.
‘심장!’
심장 쪽에서 근원을 알 수 없는 기운이 느껴졌다. 그 알 수 없는 기운은 마환단의 기운을 흡수하려 하고 있었다. 이미 오래전부터 마현의 몸에 안착되어 있었던 듯, 마치 이곳은 자신의 영역이라며 주장하는 듯했다.
‘부숴야 한다!’
심장 쪽에 기생하는 기운이 강하게 뭉쳐 심장 주위의 기혈을 틀어막은 것도 모자라 비틀어놓고 있었다.
정견은 자신의 모든 기운을 마현의 몸 안으로 밀어 넣었다.
그러자 마현의 몸 곳곳이 금방이라도 터질 듯 크게 부풀어 올랐다 다시 꺼지기를 반복했다.
『정신 차려라! 정신을 놓거나 비명을 지르는 순간 너는 죽는다!』
정견은 전음으로 일갈을 터트렸다.
마현이 힘겹게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보는 순간 정견은 모든 기운을 마현의 심장을 향해 밀어 넣었다.
쿵 쿵 쿵!
마현의 심장 부근에서 마치 폭죽이 터지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단숨에 부숴 버린다!’
정견은 기형적으로 기생하는 기운을 둘러싼 후 한순간 강한 힘으로 압박했다.
찌직 찌지직!
흡사 두터운 비단천이 찢어지는 듯한 소리가 나더니 곧 유리가 깨지는 듯한 소리가 마현의 몸을 타고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차장창창창!
그 순간 감겨 있던 마현의 눈이 부릅떠졌다.
부들부들 떨리는 마현의 눈에서는 짙은 살기와 마기가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 * *
침실로 돌아온 정견은 힘겨운 모습으로 침상에 쓰러지듯 누웠다.
얼굴에는 짙은 피로감이 잔뜩 배어 있었다.
정견은 오른손을 들어 얼굴 앞으로 가져다댔다.
부들부들.
마치 풍이라도 온 것처럼 정견의 오른손은 매우 거칠게 떨리고 있었다.
오른손을 쳐다보던 정견의 눈동자는 서서히 초점을 잃어갔다. 그의 눈동자는 점차 두려움으로 물들며 기억에 잠겼다.
정견이 마현의 심장 주위의 마나를 부숴 버리는 순간.
“으아아아악!”
마현의 비명은 악마의 귀성처럼 음산하게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정견의 개인 연무장 안은 금세 마기로 가득 찼다.
“으득, 으드득!”
정견은 벼락이라도 맞은 것처럼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