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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마법사 무림에 가다-14화 (14/351)

# 14

14화

령유는 마현에게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제 발걸음만 내딛었다. 마현은 묵묵히 령유를 따라 도시 중앙에 우뚝 세워진 성으로 이어진 대로를 따라 걸었다.

시끌벅적한 상점들과 소소한 노점들.

그리고 하나라도 더 팔려고 목청을 높이는 사람들과 그 사이에서 뛰어노는 아이들.

이곳이 과연 천산 안이 맞는가 싶을 정도로 도시의 풍경은 활기에 넘치고 있었다.

그렇게 령유의 뒤를 쫓아 간 대로 끝에는 육중한 성문이 있었다.

성문 바로 위에는 ‘마교(魔敎)’라는 글씨가 새겨진 편액이 걸려 있었고 성문 좌우 벽에는 ‘천하 제일 마교’와 ‘천세 천세 천천세’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었다.

‘하르센 대륙 어지간한 왕국의 왕궁보다 더 웅장하다. 직접 보지는 않았지만 웅장함만으로만 따진다면 이 제국의 황성도 이보다는 못할 것 같아.’

마현은 자꾸만 벌어지는 입을 의식적으로 꽉 다물며 령유의 뒤를 따라 마성(魔城) 안으로 들어갔다.

* * *

자박 자박 자박.

염라서생 허진의 발소리가 각도(閣道)의 정막을 깨트렸다.

그 발소리는 각도 끝에 위치한 마주전(魔主殿) 앞에서 멈추었다.

“아뢰라.”

허진은 마주전의 관문인 마주문 앞에서 경계를 서고 있는 수마대(守魔隊) 마인을 향해 입을 열었다.

“교주님, 부교주 허진이 뵙기를 청합니다.”

그 소리는 마주문을 넘어 대전 안까지 퍼져나갔다.

“들라하라.”

근엄한 목소리가 들리자 수마대 마인은 마주전으로 통하는 문을 열었다.

허진은 그 문을 넘어 대전 중앙에 위치한 용좌(龍座)로 향했다.

용좌 위에는 용포(龍袍)를 입은 사내가 앉아 있었다. 단지 황제의 구룡포와 다른 점이 있다면 붉은 색 비단에 아홉 마리 용이 아닌 아수라가 수놓아져 있다는 점이다.

“잘 다녀왔는가, 부교주?”

허리를 숙이는 허진을 천하마저 오시(傲視)하는 눈빛으로 내려다보는 사내는 당금 마교의 주인인 교주 철혈마제(鐵血魔帝) 사공소였다.

“덕분에 편히 외유를 마치고 돌아왔습니다.”

“편히 놀다 왔다니 본좌의 마음이 가벼워지는군, 그래. 안 그래도 따분했는데 마침 잘 왔어.”

사공소는 용좌에서 일어나 단 아래로 내려왔다.

“담소를 나누기에는 딱딱한 마주전보다 마휴당(魔休堂)이 낫겠지?”

사공소는 허진을 데리고 마주전 뒤에 세워진 침전(寢殿)이자 사적인 공간인 마휴당으로 향했다.

마휴당 내에 마련된 자그만 다실(茶室)에서 두 사내는 마주보고 앉았다.

“내 재미난 소식을 들었네만.”

“무슨 말씀이신지…….”

둘은 서로를 대하는 표정이나 말에서 격식을 크게 갖추지 않았다.

마교 교주이자 마인들의 절대자로 군림하는 사공소가 유일하게 허물없이 대하는 이가 바로 허진이었다.

그래서 사공소는 허진에게 편히 말했고, 허진 역시 사공소를 격의 없이 대했다. 교주와 부교주라는 신분에서 벗어나 순수하게 둘 사이를 본다면 마치 사이좋은 의형제처럼 보일 정도였다.

“올 때 한 아이를 데리고 왔다고?”

사공소의 말에 허진은 피식, 쓰게 웃으며 앞에 놓인 차를 들어 한 모금 목을 축였다.

“평생 제자 안 키울 것같이 그러더니……, 이제 제자 하나 키우는 것인가?”

“도대체 교주님 귀에 안 들어가는 것은 무엇입니까?”

“내 귀야 천리통이 아닌가? 하하하.”

허진의 약을 올리듯 시원하게 웃은 사공소는 정색을 하며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런데 왜 혼자 왔나? 나에게도 보여주기 아까운 녀석인가?”

그 말에 허진은 다시 쓴웃음을 보였다.

“…….”

“으음?”

사공소는 그런 허진의 웃음을 보자 궁금한 눈빛을 띠었다.

“거절당했습니다.”

“거절? 뭐를 말인가?”

“…….”

사공소의 말에 허진은 바로 대답하지 못하고 잠시 뜸을 들이다 어색하게 말을 꺼냈다.

“제 제자가 되기 싫다더군요.”

허진의 말에 사공소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자네 제자가 되기를 거부했다는 말인가?”

허진은 쓴웃음을 다시 보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부교주인 자네를?”

“예.”

“크하하하하하!”

사공소는 민망한 듯 미간을 찌푸리는 허진을 보며 크게 웃음보를 터트렸다.

“천하의 염라서생 허진을 찬 아이라……, 내 한 번 보고 싶어지는군.”

“그리 재미있으십니까?”

허진은 사공소를 빤히 쳐다봤다.

“혹 부교주라 그런 게 아닌가?”

“무슨 말씀이신지…….”

“그럼 내 제자로 삼아볼까? 어차피 부교주, 자네의 눈에 들었으면 자질이야 안 봐도 뻔하겠고. 설마 그 아이가 교주 제자 자리까지 차지는 않겠지?”

사공소는 싱글벙글 웃으며 말했다.

“진심이십니까?”

“왜, 진심 같나?”

사공소는 허진을 놀리는 재미가 쏠쏠했던지 연신 말을 꼬았다.

“행여 그러지는 마십시오.”

허진은 딱 부러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이거 잘하다 하극상이라도 벌이겠군 그래.”

“설마 제가 그러겠습니까.”

“알았네, 알았어. 그럼 그냥 한 번 보는 것은 괜찮겠지?”

“교주님!”

사공소는 근 한 달 만에 허진과 편한 대화를 나누게 되어 조금 농을 과하게 했지만 허진이 마음에 들어 한다는 아이를 한 번 보고 싶다는 생각은 진심이었다.

‘어떤 놈일까? 얼음장 같은 허 부교주의 마음을 녹인 녀석이.’

사공소는 빙그레 웃으며 식은 차를 들어 목을 축였다.

* * *

마교에서 마인이 되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다.

첫 번째는 흑도방파 출신으로 이미 무공을 익힌 자나 나이가 많은 자가 마교로 투신하는 것이고, 두 번째는 어린 나이에 마교 입마관을 통해 수련을 쌓은 후 마인이 되는 것이다.

내원 소속 입마관 관주 귀환도(鬼幻刀) 악의명은 낯을 구긴 채 내원을 총괄하는 내총관의 명령서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이것 참…….”

악의명은 명령서를 책상 위로 던지며 한숨을 푹 쉬었다.

“도대체 입마관 입관식이 끝난 지 벌써 한 달 반이나 되었는데 이제 와서 마련생 하나를 입관시키라니.”

입마관은 일 년에 한 번, 뜨거운 여름이 지나가고 기일을 잡아 정확히 천 명의 아이들을 선발해 입관시킨다.

올해도 어김없이 천 명의 아이들이 선발되어 벌써 한 달 반 전 입관식을 거친 후 현재 입마관에서 수련을 쌓고 있었다. 항상 천 명씩 선발하여 뽑다보니 입마관의 체계나 공간, 장비들이 딱 천 명에 맞춰져 있었다.

악의명은 지끈거리는 머리를 손으로 매만지며 낯을 더욱 찌푸렸다.

똑똑.

그때 관주실 밖에서 인기척이 들려왔다.

“누구냐?”

“정견입니다.”

“들어오게, 정 총교관.”

안으로 들어서는 사내는 입마관 교관들의 책임자인 총교관 흑검자(黑劍子) 정견이었다. 뺨에 길게 난 검상이 유달리 돋보이는 냉철하게 생긴 사내였다.

“부르셨습니까?”

“대략 소식은 들었겠지?”

“네.”

정견의 대답은 간단하고 명료했다.

“자네는 좋겠군.”

“……?”

정견은 그저 고개를 들어 악의명을 쳐다볼 뿐이었다.

“자네는 항상 고민 없이 명령을 받아들이지 않나. 오늘따라 부러워 보여 잠시 투덜댄 것뿐이네.”

“…….”

“항상 자네와 이야기를 하면 목각인형하고 이야기하는 것 같아. 그건 그렇고…….”

정견은 언제나 그가 말하는 것을 듣고 필요한 경우에만 짧게 대답을 하는 편이었다. 그런 모습에 악의명은 혼자 투덜대다가 곧 재미가 없어졌는지 이내 사무적인 이야기로 화제를 돌렸다.

“그 아이의 자리를 마련할 수 있겠나?”

“마침 어제 한 아이가 계단에서 굴러 다리가 부러졌습니다.”

“오, 그래?”

오만상을 찌푸리던 악의명은 얼굴을 활짝 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늘 오전에 퇴관시켰습니다.”

“하아, 다행이군. 다행이야.”

악의명은 다시 의자에 털썩 주저앉으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다행히 한 아이가 퇴관을 하는 바람에 입마관에서도 부담 없이 아이를 받을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럼 그 아이는 퇴관한 아이의 자리에 넣으면 되고……, 수련 지도는 어떻게 되어가고 있나?”

“약 8할 정도가 단전을 만들었고, 이삼 일 안으로 모두 단전을 완성할 것 같습니다.”

“흠…….”

악의명은 정견의 말에 묵직한 침음성을 토하며 주먹으로 서탁을 툭툭 내려쳤다.

“정 총교관, 무슨 좋은 방법 없을까? 그 아이 하나 때문에 수련 일정을 바꿀 수는 없는 노릇이 아닌가? 그렇다고 그 아이가 다른 수련생들을 따라갈 때까지 누군가가 따로 붙어 수련을 시킨다는 것도 말이 안 되고.”

그렇게 골머리를 앓는 소리를 할 때 다시 방문 밖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관주님. 평 교관입니다.”

관주실 문이 열리고 쌍수쾌검(雙手快劒) 평지달이 한 아이를 데리고 안으로 들어왔다.

평지달과 함께 들어온 아이는 마현이었다.

악의명과 정견은 동시에 고개를 돌려 마현이라는 아이를 쳐다봤다.

악의명은 잔뜩 낯을 찌푸린 채 마현의 얼굴을 쳐다봤고, 정견은 마현의 몸 구석구석을 샅샅이 훑어봤다.

“그 아이냐?”

“그렇습니다, 관주님.”

“알았다.”

악의명이 손을 흔들어 축객령을 내리자 평지달은 마현을 데리고 관주실을 나갔다.

평지달과 마현이 나가고 다시 고개를 돌린 정견은 잠시 생각에 빠진 듯하더니 악의명을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제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무엇을 말인가?”

앞뒤 말을 모두 자른 정견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 악의명이 물었다.

“사흘 후, 그 아이를 포함한 모든 마련생들이 본격적인 수련에 들어가게 만들겠습니다.”

“정말인가? 어떻게?”

“보고는 나중에 올리겠습니다.”

상사에게 올리는 말투는 아니었지만 악의명은 오히려 그런 정견의 모습이 듬직해 보였다. 정견은 자신이 내뱉은 말은 무슨 일이 있어도 지키는 자였다. 이보다 더 든든한 수하는 없었다.

“더 이상 하실 말씀이 없으시다면 물러가겠습니다.”

정견은 허리를 숙인 후 관주실을 빠져나갔다.

* * *

마현이 본 쌍수쾌검 평지달의 첫인상은 포근한 이웃집 아저씨 같았다. 물론 몸에서 은은히 풍겨오는 마기를 제외한다면 말이다.

“며칠이 될지 모르겠지만 당분간 너를 맡을 평지달이다.”

평지달은 마현과 함께 입마관으로 들어서며 자신의 이름부터 밝혔다.

“마현입니다.”

“마현이라……, 이름은 영락없는 마인이군.”

평지달이 마현을 데리고 간 곳은 거대한 5층 누각이었다.

“여기가 숙소다.”

평지달은 마현을 데리고 5층으로 올라가 가장 구석에 위치한 방으로 안내했다.

방은 대략 3평이 안 되어 보였고, 안에는 나무로 만든 침상 하나와 자그만 탁자 하나만 놓여 있었다.

“앞으로 네가 사용할 방이다.”

마현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느 문파를 가도 이처럼 독방을 주는 곳은 없을 것이다. 고된 수련 생활 중에 잠만이라도 편히 자라는 뜻으로 내어준 곳이니 열심히 수련하거라.”

비록 사무적인 딱딱한 어투였지만 목소리는 생각보다 부드러웠다.

가장 먼저 방을 보여준 후 평지달은 식당과 연무장 등 입마관 곳곳을 돌아다니며 안내해 주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간 곳은 총교관실이었다.

조금 전 관주실에서 보았던 얼음장같이 차가운 사내가 앉아 있었다.

“인사하거라, 입마관 총교관님이신 흑검자 정견님이시다.”

평지달의 소개에 마현은 허리를 숙였다.

“마현입니다.”

“됐다, 인사는 나중에 하기로 하고.”

정견은 자리에서 일어나 마현과 평지달 앞으로 걸어왔다.

“둘 다 따라와.”

정견은 곧바로 마현과 평지달을 데리고 총교관실을 나갔다. 그가 둘을 데리고 간 곳은 정견의 개인 연무장이었다.

“무슨 이유로, 누구의 입김으로 지금 입마관에 입관했는지 나는 모른다. 내가 아는 것은 네가 입관식을 늦게 치룬 한 명의 마련생일 뿐이라는 것이다. 또한 다른 동기들보다 수련에 뒤쳐졌다는 것이다. 무슨 소리인지 알겠나?”

“예.”

“입마관에서 너 하나를 위해 다른 마련생들의 수련 일정을 늦출 수 없다. 또한 너에게 그들과 달리 개인 교관을 붙여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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