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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마법사 무림에 가다-10화 (10/351)

# 10

10화

마현은 손정을 쳐다보며 밝게 웃어주었다.

그 미소에 손정도, 청명진인도 웃었다.

하지만 마현의 입에서 흘러나온 대답은 뜻밖이었다.

“정아, 축하한다.”

뜻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손정은 마현과 함께 웃었지만 청명진인은 마현의 말뜻을 제대로 이해한 터라 표정이 조금 굳어졌다.

“결국 소원 성취하는구나.”

“현이 너도 함께 갈 거잖아.”

손정의 말에 마현은 고개를 저었다.

“나는 갈 수 없어.”

그 말에 밝게 웃던 손정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무, 무슨 말이야?”

그런 손정을 보며 마현은 더욱 밝게 웃었다. 그리고 말했다.

“네 소원은 무림인이지만 나는 아니잖아.”

그제야 손정은 예전 마현과 나눈 대화가 떠올랐다.

“그럼 전에 말했던…….”

“그래. 나는 내 꿈을 좇아야지.”

마현은 자리에서 일어나 청명진인을 향해 몸을 돌렸다.

여전히 거부감이 느껴졌지만 마현은 최대한 공손하게 허리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아, 아니다.”

청명진인은 설마 마현이 자신의 제안을 거절할 줄은 몰랐다. 그렇기에 대답 역시 바로 나오지 않았다.

“그리고 정이를 잘 부탁드립니다.”

“흠…….”

청명진인은 그런 마현을 보며 나직한 침음성을 흘렸고, 고개를 돌려 어느새 울먹이는 손정을 쳐다봤다.

“휴우, 그렇구나. 너와의 인연은 여기까지인 모양이구나. 그래, 정이는 내가 잘 보살피며 가르치마. 이제 되었느냐?”

청명진인의 확실한 대답을 들은 마현은 아무 말없이 허리를 푹 숙였다.

굳이 대답을 듣지 않아도 청명진인은 마현의 마음을 알 수 있었다.

“혀, 현아.”

손정은 어느새 마현을 따라 일어나 있었다.

“정말 우리 헤어지는 거야?”

“어. 그래 헤어지는 거야.”

마현은 웃으면서 밝게 대답했다.

“어디로 갈 건데? 언제 갈 건데?”

손정은 울먹이는 목소리로 거듭 물었다.

“헤어지는 건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고 했다.”

“그, 그럼 지금?”

손정은 놀란 목소리로 되물었다. 하지만 마현이 그냥 웃고만 있자 다시 입을 열었다.

“어디로 갈 건데?”

그 질문에 마현은 한 사내를 떠올렸다.

‘염라서생 허진.’

어제 대로에서 청명진인이 마기를 가진 사내를 보며 그렇게 불렀다. 하지만 이 자리에서 입에 담지 않았다.

무슨 사연인지는 몰라도 그와 청명진인은 사이가 그리 좋지 못함을 그때 그 일로 알고 있었던 까닭이다.

“이제 내 꿈이 있는 곳으로…….”

그냥 두루뭉술하게 대답했다.

“너무 걱정하지 마! 그리고 울지도 마!”

마현은 손정의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어차피 너는 무당파에 있을 거잖아. 네가 보고 싶으면 무당파로 가면 되잖아.”

“그래, 정아. 그만 울어라.”

결국 울음을 그치지 못하는 손정을 보며 청명진인마저 일어나 그를 달랬다.

“꼬, 꼭 올 거지? 흑흑흑. 나 보러 올 거지?”

“그래, 꼭 나도 내 꿈을 이루고 나서 너를 보러 가마.”

마현은 몸을 돌리려다 다시 손정을 향해 한 걸음 다가가 그를 꼭 안았다.

“으아아앙.”

손정은 마현을 마주 끌어안으며 결국 목놓아 울기 시작했다. 마현은 그런 손정의 등을 토닥거렸다.

어느새 마현의 눈망울에도 작은 눈물이 맺혀 있었다.

마현은 손정이 보지 못하게 소매로 눈물을 먼저 훔친 후 떨어졌다.

“그럼 갈게.”

마현은 목놓아 우는 손정에게 작별인사를 건네고 청명진인을 향해 몸을 돌렸다.

“너무 걱정하지 말거라. 그리고 나중에 꼭 무당파로 놀러 와야 한다. 알았지?”

마현은 그런 청명진인을 향해 허리를 꾸벅 숙이고는 방문을 향해 걸어 나갔다.

방문을 연 마현은 손정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정아.”

“으, 응?”

“우리 친구 맞지?”

마현의 물음에 손정은 눈물을 닦으며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어. 넌 내 목숨보다 소중한 친구야.”

그 대답에 마현은 웃었다.

“나도.”

그렇게 마지막 말을 손정에게 던지고 방을 나가 방문을 닫았다.

“하아!”

마현의 입에서 가슴 시린 한숨이 흘러나왔다.

뜨거운 숨결과 함께 눈앞이 뿌옇게 흐려졌다.

‘내가 눈물이라니……, 오래 살고 볼 일이군.’

슬픔이 담긴 웃음을 피식 흘리고는 마현은 별채를 떠났다.

그는 이미 어디로 갈지 정해둔 상태였다.

용아객잔을 막 나선 마현은 두 팔을 하늘을 향해 번쩍 치켜들었다.

“으아아아아아!”

아무 의미 없는 함성을 시원하게 질렀다.

그냥 그렇게 하고 싶었다.

그 함성이 울려 퍼지자 그나마 울적했던 마음이 조금 시원해진 것 같았다.

* * *

무당파 청명진인과 염라서생 허진이 마주친 대로(大路), 그 자리에 마현은 서 있었다.

“휴우…….”

일단 그를 만나고 싶은 생각에 이곳으로 왔지만 어디서, 어떻게 그를 찾아야 할지 막막하기만 했다.

그렇다고 허진이 다시 이곳을 지나가기를 빌며 기다리는 것도 우스웠다. 그가 자주 이곳을 지나다니면 다행이지만 아닐 수도 있었다.

일단 근처의 상점이나 노점상을 돌며 그에 대해 물어봤다. 하지만 무림인의 일이라 그런지 모두 함구하고 알려주지 않았다. 그나마 말을 해주지 않는 이들은 양반이었다. 어떤 이들은 주먹을 휘두르며 쫓아내기도 했다.

그렇게 반시진 동안 주위 상점들과 노점상을 모조리 돌아다니며 물어보았지만 얻은 것은 하나도 없었다.

기운이 빠져 대로변 건물 벽에 기대며 풀썩 주저앉았다.

꼬르륵.

마현의 답답한 마음을 모르는 배가 밥을 달라고 요란하게 아우성쳤다.

‘그러고 보니 어제 오후부터 아무것도 먹지 못했군.’

허기를 달래야 했다. 이제껏 손정을 따라다니며 배운 구걸을 떠올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일단 먹어야 사니까.’

자리에서 일어난 마현은 대로로 나섰다.

그때, 막 구걸에 나서려는 마현의 눈이 순간 반짝였다.

‘어둠의 기운?’

마현은 그 기운을 느끼자 고개를 들어 어둠의 기운을 가진 자를 찾았다.

‘찾았다!’

뒷골목 불량배같이 험악한 인상을 가진 사내가 마현 곁을 스쳐지나갔다. 약하지만 분명 어둠의 마나가 느껴졌다.

어쩌면 그자를 통해 염라서생 허진을 볼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무작정 사내를 따라나섰다.

그 사내는 대로를 걷다가 인적이 한적한 골목길로 들어갔다.

자칫 놓칠 수 있다는 생각에 마현은 걸음을 바삐 놀려 골목길로 들어섰다.

그 순간.

콱!

우악스러운 손이 마현의 목을 움켜쥐었다.

“컥!”

마현은 뒤를 쫓던 사내의 손에 목이 잡힌 채 공중으로 들어올려졌다.

그 사내는 주위를 살피더니 마현을 데리고 골목길 으슥한 곳으로 끌고 갔다.

“네놈은 누구냐?”

사내의 눈에서는 살기가 뿜어져 나왔다.

“컥컥, 컥컥컥.”

마현은 숨을 제대로 쉬지 못해 연신 짧은 기침을 토했다.

사내는 마현이 목이 잡혀 제대로 이야기하지 못한다는 것을 깨닫고는 구석으로 집어던졌다.

마현은 힘없이 날아가 벽에 부딪히며 땅바닥으로 쓰러졌다.

사내는 그런 마현 앞으로 다가와 발로 가슴을 짓눌렀다.

“개방의 제자냐?”

마현은 엄청난 힘으로 가슴을 짓누르는 사내를 올려다보며 고개를 저었다.

사내는 눈을 돌려 마현의 허리춤을 유심히 살폈다. 개방도의 독문 표식인 매듭이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안심하지 않고 마현의 몸을 살기 어린 눈빛으로 샅샅이 훑었다.

“무공을 익히지는 않았군. 왜 나를 미행한 것이지?”

마현이 무공을 익히지 않았다는 것을 안 사내는 어느 정도 경각심을 푸는 눈치였다. 하지만 눈빛과 목소리에는 여전히 살기가 맴돌았다.

마현이 선뜻 입을 열지 않자 사내는 더욱 짙은 살기를 내뿜었다.

“바른대로 말하지 않으면 이 자리에서 네놈을 비틀어 죽여 버리겠다.”

“호, 혹……. 크으으.”

마현은 가슴에서 느껴지는 고통으로 인해 말을 제대로 잇지 못했다.

그 모습에 사내는 발에 약간 힘을 뺐다.

“헉헉.”

고통이 조금 덜해지자 마현은 숨을 잠시 고른 후 입을 열었다.

“혹 당신을 따라가면 염라서생 허진이라는 자를 볼 수 있을까 해서……, 크악!”

염라서생 허진이라는 이름이 마현의 입에서 흘러나오자 지금까지와 달리 엄청난 마기와 함께 살기가 더욱 짙어졌다. 사내는 발을 치우고 마현의 목을 다시 잡고 일으켰다.

“다시 한 번 묻겠다. 왜 나를 따라왔지?”

“컥컥, 조금 전 마, 말한 대로요. 크으으…….”

마현은 숨이 막혔지만 간신이 대답했다.

“무림인이 아닌 네놈이 어찌 그분을 찾는 것이냐!”

사내의 질문에 마현은 대답할 수 없었다. 딱히 그 질문에 대답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사내는 목이 졸려 서서히 정신을 잃어가는 마현을 보자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주변을 힐끗 살핀 그는 빠르게 마현의 수혈(睡穴)을 짚었다.

비록 무림인은 아닌 것 같지만 수상한 놈이라 이 자리에서 죽여 깨끗이 정리하고 싶었다. 하지만 놈의 입에서 부교주인 염라서생 허진의 이름이 흘러나왔다. 그 이름이 나온 이상 함부로 죽일 수는 없었다.

‘일단 총타(總舵; 각 성 분타를 관리하는 총분타)로 데려가 좀 더 조사해 보고 죽여도 늦지 않을 것이다.’

사내는 정신을 잃은 마현을 어깨에 둘러메고 사천성 성도 인근에 위치한 마교 사천총타로 몸을 날렸다.

사천성 성도 중앙에 위치한 성주(城主)의 관청을 중심으로 북쪽 끝에는 사천당문의 대장원이, 남쪽 끝에는 마교 사천총타가 있었다.

사천당문과 마교 사천총타는 자연스럽게 성주의 관청을 경계 삼아 서로의 세력을 확고하게 굳혀나가고 있었다.

흑웅귀(黑熊鬼) 왕귀진은 마현을 둘러메고 인적이 드문 곳을 골라 빠르게 사천총타로 향했다. 비록 사천성 남부가 마교의 세력권이라고 해도 그 세력권 안에 무림인만 사는 게 아니었다.

그렇기에 정신을 잃은 마현을 어깨에 메고 가는 모습이 남의 눈에 띄어 좋을 것이 하나도 없었다.

막 마교 사천총타 앞으로 다가온 왕귀진은 좀처럼 밖으로 나오지 않는 총타주 독수검혼(毒手劍魂) 호태악을 보자 의아함에 눈을 치떴다.

가까이 다가가니 총타주 호태악뿐만 아니라 사천총타 고위급 인사들이 모조리 정문으로 나와 있었다.

‘본교에서 감찰이라도 나왔나?’

그러고 보니 처음 보는 중년 사내가 눈에 들어왔다.

본교에서 나온 감찰사라고 보기에 중년 사내의 인상은 너무 부드러웠다. 그동안 종종 보아오던, 차가운 한기를 풀풀 날리는 감찰사들하고는 분위기가 확연히 달랐다.

‘그냥 중요한 손님인가?’

흑웅귀 왕귀진은 별호에서 보이는 것처럼 곰처럼 싸움에는 일가견이 있어도 조금 아둔한 구석이 있었다.

만일 그가 눈치가 빠른 자였다면 총타주를 비롯한 사천총타 고위급 인사들이 그저 중요한 손님이라고 판단한 그 중년 사내를 향해 연신 허리를 굽실거리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을 것이다.

그랬다면 왕귀진은 정문을 피해 뒷문으로 들어갔을 것이다. 하지만 왕귀진은 평소 하던 대로 편하게 총타 정문으로 마현을 메고 걸어 들어갔다.

그리고 총타주를 본 김에 수상한 거지 아이에 대해 보고를 올릴 생각까지 했다.

왕귀진은 총타주 호태악 앞에 서 있는 중년 사내와 가까워지자 그의 얼굴을 좀 더 자세히 볼 수 있었다.

푸른 비단 학사의에 먹물 냄새가 가득한 섭선이 보였다.

‘세상 불공평하네. 누구는 비단 옷에 섭선이고, 누구는 싸구려 무명 흑의고.’

왕귀진은 그냥 어느 부잣집 문사라 판단하며 속으로 투덜거렸다.

그렇기에 왕귀진은 정말 아무 생각 없이 총타주 호태악을 소리쳐 불렀다.

“총타주님. 수상한 놈이 있어 잡아왔습니다요.”

왕귀진은 어깨에 둘러멘 마현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씨익 웃었다.

“아 글쎄 이놈이…….”

왕귀진은 호태악을 비롯한 고위급 인사들의 안색이 하얗게 질리는 것을 보지 못하고 우렁찬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나를 미행하더니 다짜고짜 본교 부교주님의 이름을 대는 것이 아닙니까! 그냥 그 자리에서 죽이려다가 부교주님 이름이 나온 게 걸려 데리고 왔습니다요. 총타 내 옥에 넣어놓을 테니까 나중에 조사 한번 해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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