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흑마법사 무림에 가다-9화 (9/351)

# 9

9화

고통스럽게 일그러져있던 마현의 표정이 부드럽게 변하며 평온을 되찾았다.

그러는 사이 옆방에서 자고 있던 청명진인이 마나의 요동에 잠시 잠에서 깨어났지만 워낙 미미한 파동이라 잘못 느낀 것이라 판단하고 다시 잠이 들었다.

그렇게 다시 고요한 밤이 지속되었고, 이윽고 아침이 왔다.

마현은 마치 편안한 잠에서 깨어난 듯한 기분으로 정신을 차렸다.

눈을 뜨니 거지촌 움막이 아닌 깨끗하고 고급스런 천장이 눈에 들어왔다.

‘이곳이 어디지?’

잠시 의문이 생겼던 마현은 번쩍 어제의 일을 떠올렸다.

습관적으로 손을 왼쪽 가슴에 올렸다.

‘분명 어제 나는 심장이 망가졌을 텐데…….’

심장 언저리, 옷을 움켜잡은 마현은 정신을 잃고 쓰러진 손정을 떠올렸다.

‘정이는?’

마현은 급히 고개를 돌려 손정을 찾았다.

“휴우…….”

손정은 의자에 앉은 불편한 자세로 자신이 누워 있는 침상에 엎드려 자고 있었다.

마현은 허리를 숙여 손정의 얼굴을 살피고 숨결을 확인했다.

‘다, 다행이다.’

마현은 안도감을 느끼며 벽에 기대앉았다.

“후후후.”

마현은 손을 내려다보았다.

처음으로 누군가를 치료한 것이다.

흑마법사로 길러진 마현은 어둠의 마나의 특성상 누군가를 치료해 줄 수 없었다. 치료에 관한 마법은 백마법사들 고유의 능력이었다.

‘치료라……, 그리 나쁘지만은 않군.’

마현은 한참 동안 친구를 치료한 손을 내려다보았다.

손정이 무사하다는 것에서 안도감을 느끼자 잠시 잊어버리고 있던 불안전한 서클을 다시 떠올렸다.

마현은 조용히 눈을 감고 마나를 모아 심장 주위를 관조(觀照)했다.

‘어떻게 서클이 만들어졌지?’

완성이 되지는 않았지만 기초는 탄탄하게 자리 잡혀 있었다.

이것은 마나가 부족해 생기는 현상 중 하나였다.

‘이해할 수 없다. 분명 정이의 말에 의하면 이 세상에는 마법사가 없는 것이 확실한데……, 아니야 어쩌면 정이가 잘못 알고 있는지도 모른다.

마현은 수많은 가정들을 떠올렸지만 뚜렷한 답을 찾을 수가 없었다.

‘결국 정이가 깨어나면 물어보는 수밖에 없겠군.’

마현이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즈음,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손정이 눈을 비비며 일어났다.

손정은 마현이 침상에 앉아 있는 것을 보고는 눈을 크게 뜨며 침상 위로 올라왔다.

“괜찮아?”

손정은 마현의 몸 여기저기를 눈으로 살피며 걱정이 가득 담긴 목소리로 물었다.

“괜찮아.”

마현의 편안한 목소리에 손정은 침상에 털썩 주저앉으며 안도의 한숨을 크게 쉬었다.

“다행이다.”

마현을 보며 히죽 웃는 손정의 눈이 촉촉이 젖어들었다. 그것을 보여주기 부끄러워서인지 손정은 몰래 소매로 눈가를 훔치며 다시 밝게 웃어 보였다.

“그런데 어떻게 된 거야? 또 여기는 어디고?”

마현의 말에 손정은 어제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막 울고 있는데, 그때 본 무당파 도인 한 분이 우릴 보고 너랑 나랑 여기로 데리고 와 너를 치료해 주었어.”

무당파 도인이라는 말에 마현은 저도 모르게 인상을 찌푸렸다.

“왜 어디가 안 좋아?”

그 표정을 본 손정이 말을 멈추고 마현 곁으로 바싹 다가왔다.

“아니야, 괜찮아.”

“정말 아픈 거 아니지?”

“어. 그래서?”

마현이 몇 번 안심을 시키자 손정은 다시 말을 이었다.

“너를 살핀 무당파 도인 한 분이, 아! 이름이 청명진인이래. 그 청명진인께서 의원처럼 너를 진맥하고 나서 약을 먹였어.”

손정은 자신이 눈으로 본 것을 그저 아는 상식과 결합해 설명해 주었다.

“약?”

“어. 내상약.”

“……?”

“나도 어제 들었는데 내상약이라는 게 음……, 에……. 하여튼 몸 안이 안 좋을 때 치료해 주는 거래.”

손정은 자신도 이해하지 못하는 말로 설명하는 것이 무안했던지 혀를 낼름 내밀고 헤헤 웃었다.

‘포션과 같은 종류인 모양이군. 하지만 그걸로 심장 주위에 서클이 만들어졌다는 건 이해가 되지 않는데?’

마현은 혹시나 손정이 말하지 않은 것이 있나 싶어 다른 것은 없냐고 물었다.

“맞아! 내상약을 먹일 때 다른 약도 먹였어. 그거 엄청 좋은 약인 것 같더라. 껍질을 까자마자 되게 좋은 냄새가 방 안에 가득 찼어. 내가 생각하기에 천년 묵은 산삼보다 더 좋은 약인 것 같았어. 뭐 다 먹인 건 아니고 아주 조금 떼서 내상약과 함께 먹였지만.”

그것이 조금 불만이었던 모양인지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손정의 말을 다 이해할 수 없었지만 앞뒤 정황이나 상황 등을 고려해 어느 정도 추측할 수 있었다.

‘결국 포션과 함께 마나가 집약된 약을 먹였다는 소리인 것 같은데……. 이 세상 인간들은 드래곤하트와 같은 마나 집약체를 약으로 만들 수도 있다는 것인가?’

마법사들은 드래곤하트와 같은 순수한 마나 덩어리를 만들고자 수천 년 노력했지만 마현이 아는 바로는 지금까지 성공한 마법사는 없었다.

하르센 대륙에서 순수하게 마나로 만들어진 것은 오로지 드래곤하트뿐이었다.

물론 그 드래곤하트 역시 들어만 봤지 보지는 못했다. 드래곤을 찾아가 죽이고 배를 가를 수 있는 인간은 없었으니까. 아니 인간이 아니더라도 그렇게 할 수 있는 종족은 없었다.

다만 수천 년 역사상 우연히 두세 번 정도 갓 죽음을 맞이한 드래곤의 시체에서 드래곤하트를 구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은 있었다.

결국 짐작만 할 뿐 정확히 알 수 있는 것은 없었다.

그 정도로 만족하며 소소한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하자 방문 밖에서 인기척이 들려왔다. 그리고 얼마 후 방문이 열리며 청명진인과 함께 열 명의 무당파 제자들이 우르르 안으로 들어왔다.

마현은 그들에게서 느껴지는 항마의 기운에 거부감을 느끼며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

* * *

이른 아침 무당파 제자들은 잠에서 깨자마자 둥글게 모여 소리 낮춰 소곤거렸다.

“어제 봤어?”

“뭐?”

“대사숙께서 어젯밤에, 왜 대로에서 봤던 거지들, 그 두 아이를 데리고 왔던데.”

“왜 데리고 오셨는데?”

“한 아이가 축 늘어져 있던 게 어디 아파 보이더라. 아마 그래서 데려온 게 아닐까?”

“하긴. 사실 어제 그 두 아이가 아니었으면 큰일 날 뻔했어.”

“으으으.”

어제의 기억이 떠올랐는지 무당파 제자들은 일제히 몸을 떨었다.

“스승님이 강호에서는 함부로 검을 뽑지 말라고 그랬는데, 그것을 이제는 알 것 같다. 정말 어제 일만 생각하면 오금이 다 저린다.”

그 말에 모두들 동감을 하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두 거지 아이와 어제 일을 가지고 이야기를 나누던 무당파 제자들은 시간이 한참 되었다는 것을 깨닫고 서둘러 의관을 차려입고 밖으로 나갔다.

청명진인에게 아침 문후를 드리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서둘러 방에서 나온 무당파 제자들의 얼굴은 일제히 일그러졌다.

벌써 청명진인이 별채 마당에 나와 밝아오는 조양(朝陽)을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랫사람으로서 지켜야 할 아침 인사가 이미 틀어져 버린 것이었다.

어제 일까지 겹치며 또 호통이 떨어지지 않을까 전전긍긍하며 무당파 제자들은 청명진인 곁으로 다가갔다.

“밤새 평안하셨습니까, 대사숙님.”

“그래, 밤새 편했느냐?”

잔뜩 긴장하고 아침 인사를 건넸는데 의외로 청명진인의 목소리는 아주 부드러웠다.

마치 어제 아무 일이 없었던 것처럼, 아니 어젯밤 좋은 일이라도 있었던 것처럼 보였다.

“대사숙님, 어젯밤 좋은 일이라도 있으셨습니까?”

송천이 눈치를 살피며 어렵사리 입을 열었다.

“하하하, 그렇게 보이느냐?”

좀처럼 적응할 수 없는 청명진인의 모습에 송천은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사손에겐 그렇게 보입니다, 대사숙님.”

“그렇게 보인단 말이지? 하하, 하하하하.”

청명진인은 손으로 얼굴과 수염을 쓰다듬고는 다시 기분 좋은 웃음을 터트렸다.

이처럼 호탕하게 웃는 청명진인의 얼굴을 보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사문에서는 항상 차갑게 느껴질 만큼 근엄한 얼굴만 보여 왔던 것이다.

청명진인이 무척 기분이 좋아 보이자 송천은 조금 더 기운을 내 다시 물었다.

“좋은 일 있으면 저희 사손들에게도 알려주실 수 없으신가요? 대사숙님.”

청명진인은 그 질문에 고개를 돌려 사손들을 쳐다봤다.

“어제 저녁 두 아이를 데리고 왔다.”

“네.”

“그 두 아이를 제자로 삼을까 한다.”

“……네, 네?”

공손히 대답하던 무당파 제자들이 일제히 큰 목소리로 반문했다.

“제, 제자요?”

“그 거, 거지 아이들을요?”

무당파 제자들은 너무 놀라 입을 좀처럼 다물지 못했다.

“지금쯤 일어났으려나?”

청명진인은 뒷짐을 지며 마현과 손정이 있는 객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러자 무당파 제자들은 일제히 서로 시선을 교환하더니 청명진인의 뒤를 우르르 따라갔다. 그리고 예가 아닌 것을 알았지만 청명진인을 따라 두 아이가 머무는 객실로 함께 몰려 들어갔다.

그만큼 청명진인의 제자 발언은 상당히 충격이었던 것이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둘 다 이미 정신을 차렸는지 침상 위에서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청명진인이 그 아이들에게 다가갈 때 함께 들어왔던 무당파 제자들은 우르르 벽 쪽에 모여 반짝이는 눈으로 두 거지 아이들을 살폈다.

한꺼번에 많은 사람들이 들어오자 손정은 화들짝 놀라 침상에서 내려와 굳은 몸으로 섰고, 마현은 은은하게 느껴지는 항마 기운에 거부감을 느끼며 얼굴을 찌푸렸다.

청명진인은 한꺼번에 많은 이들이 몰려와 불편해서 그런 거라 생각하며 고개를 돌렸다.

“인사는 나중에 나눠도 되니 모두 물러가거라. 아이들이 불편해 보이는구나.”

그 말에 무당파 제자들은 방문을 나가기 직전까지 손정과 마현의 얼굴을 쳐다봤다.

그들이 들어왔을 때처럼 우르르 빠져나가자 방 안은 금세 적막에 휩싸였다.

청명진인이 의자에 앉자 마현은 침상에서 내려왔다.

거부감이 드는 것은 드는 것이고, 자신을 치료해 준 감사의 인사는 해야 한다고 마음먹었다.

“치료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마현은 너무 깊숙이도 아니고 그렇다고 얕지도 않게 허리를 반쯤 숙였다.

“그래 몸은 괜찮으냐?”

“덕분에 많이 좋아졌습니다.”

“다행이구나. 자자, 그리 서 있지 말고 가까이 다가와 앉거라.”

청명진인은 손정과 마현이 여전히 서 있는 것을 보고는 손짓했다.

손정이 청명진인 곁에 앉자 마현은 그 옆으로 다가가 앉았다. 조금이라도 청명진인과 떨어지고 싶은 마음에서였다.

청명진인은 여전히 딱딱한 얼굴로 눈을 피하는 마현을 보며 빙그레 웃음을 지어 보였다.

‘숫기가 없는 녀석이구나.’

하나가 예쁘면 모두가 예쁘다고 했다.

지금 청명진인이 딱 그 짝이었다.

제자로 받아들여야겠다는 생각을 굳히자 마현의 그런 행동도 그다지 밉지 않았다.

“그래 이름이 어떻게 되느냐?”

제자의 이름을 모른 데서야 말이 되겠는가 싶어 청명진인은 마현의 이름부터 물어보았다.

“마현입니다.”

“……마현?”

이름에서 마(魔) 자를 들은 순간 청명진인은 이마를 찌푸렸다.

“험험.”

어색한 기침을 내뱉으며 다시 마현을 쳐다봤다.

이름이야 부모가 물려주는 것이니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 그리고 자신의 제자가 되면 별도의 도명을 받으니 상관없었다.

“정아, 현이에게 이야기는 꺼내 보았느냐?”

“……아직.”

“그래?”

고개를 끄덕인 청명진인은 마현의 눈을 들여다보며 물었다.

“현이라고 했느냐?”

“예.”

“빈도는 청명이라고 한다.”

“…….”

마현은 불편함에 일일이 대답을 하지 않았다.

“빈도가 정이를, 그러니까 네 친구 손정을 제자로 맞을까 한다.”

그 말에 마현은 불편함도 잊고 고개를 번쩍 들어 청명진인을 쳐다보더니 이내 고개를 돌려 손정을 쳐다봤다.

“그런데 정이가 너와 함께 가면 제자가 되겠다는구나.”

그 소리에 손정은 마현을 향해 히죽 웃었다.

‘나 잘했지?’라는 표정이 담겨 있었다.

“나 역시 너만 좋다면 제자로 받아들이고 싶은데……, 네 생각은 어떠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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