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
7화
유령대는 무림에서도 최고로 손꼽히는 정예 무력단체로 알려져 있었다.
‘유령대가 있다면 당연히 염라서생의 수신호위 사령신위도 있을 터.’
상황이 안 좋았다.
더욱이 염라서생은 자신에게 적의를 품고 다가온 것이 아니었다. 비록 한 번뿐인 만남이었지만 5년 만의 재회에 그저 인사를 건네러 다가온 것이 분명했다.
그걸 모르는 사손들이 그저 염라서생이라는 별호에 지레 겁을 먹고 검을 뽑아든 것이었다.
혼자라면 모를까, 사손들까지 대동한 마당. 청명진인으로서는 최소한 검을 뽑는 상황만은 피하고 싶었다. 게다가 이렇게 우발적인 사고로 인해 피를 뿌리고 싶은 생각은 더더욱 없었다.
청명진인은 염라서생 허진을 쳐다봤다.
서서히 미소가 사라지는 염라서생을 보며 청명진인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아주 천천히 청명진인의 오른손은 검 쪽으로 내려가고 있었다.
그런 청명진인의 눈에 서서히 사라지던 염라서생 허진의 미소가 다시 돌아오는 것이 보였다.
‘응?’
염라서생 허진의 눈은 자신에게서 잠시 벗어나 마침 둘 사이에 서 있는 두 아이에게로 향했다가 다시 돌아왔다.
‘다행이다! 저 두 아이가 있어 최악의 사태는 막을 수 있다.’
청명진인은 검병으로 가던 손을 다시 되돌리며 내심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노한 목소리로 사손들을 꾸짖었다.
“이게 무슨 짓이냐! 어서 검을 거둬라.”
그 명에도 염라서생 허진과 자신을 번갈아보며 사손들이 머뭇거리자, 청명진인은 재차 호통을 쳤다.
“이 대사숙의 말이 들리지 않는 것이냐!”
그때서야 무당파 제자들은 긴장감을 더욱 증폭시키며 빼어 든 검을 거두었다.
“이거 미안하게 되었습니다. 사손들이 강호 초행이라 큰 실례를 범했습니다. 이 빈도, 허 대협께 사과의 말씀을 먼저 올립니다. 무량수불!”
청명진인은 도호를 외치며 포권을 지어 보였다.
“하하하하, 이거 저도 내심 ‘아차!’ 했습니다. 하마터면 애꿎은 두 아이가 휘말릴 뻔했으니까요.”
염라서생 허진이 청명진인의 사과를 웃으며 받아들이며 손을 젓자, 언제 그 자리에 있었냐는 듯 유령대는 어느새 사라지고 없었다.
“5년 만인가요? 아! 무당파 진무각주가 되셨다 들었습니다. 축하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오랜만이라 좀 더 정다운 담소라도 나눌까 했더니 이거 분위기가 이래서……, 다음으로 미루어야겠습니다.”
“이 빈도도 아쉽지만 그게 좋을 것 같습니다. 무량수불.”
“그럼 다음에 뵙지요.”
“무량수불.”
청명진인과 염라서생 허진은 서로 인사를 나눈 후 스쳐지나갔다.
염라서생 허진이 사라지고 얼마 후, 청명진인은 여전히 긴장감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열 명의 사손들을 향해 호통을 쳤다.
“어찌 이리 경거망동할 수 있는 것이냐!”
청명진인의 호통에 열 명의 무당파 제자들은 고개를 푹 떨어뜨렸다.
“못난 놈들. 에잉…… 쯧쯧.”
그들을 보며 혀를 찬 청명진인은 다시 입을 열었다.
“운이 좋은 줄 알아라. 저기 두 아이가 아니었다면 결코……, 응?”
청명진인은 우연히 자신과 염라서생 허진 사이에 끼어든 두 아이를 손가락으로 가리켰지만 아이들은 이미 대로에서 사라지고 없었다.
“무량수불.”
고마우면서도 미안했고 왠지 걱정스럽기까지 했다.
자신과 염라서생 허진 사이에서 휘몰아치는 기운에 필시 강한 충격을 받았을 것이 분명했다.
그렇기에 청명진인은 그 둘을 잠시 살피고 진탕된 내부를 바로잡아줄 생각을 가졌다.
그런데 그 두 아이의 모습은 이미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고 지금 이 상황에서 두 아이를 찾아 나설 수도 없었다.
‘인연이 여기까지인 게지.’
청명진인은 내심 미안한 마음을 머금으며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사손들을 다시 쳐다봤다.
* * *
“크으으으.”
마현은 고통스러운 가운데에서도 정신을 잃고 쓰러진 손정을 부축하여 힘겹게 대로를 벗어나 한적한 골목길 안으로 몸을 피했다.
골목길 한편에 따뜻한 볕이 드는 곳으로 손정을 눕힌 마현은 쓰러지듯 주저앉았다.
“헉헉, 크윽!”
마현은 심장에서 터질 듯 요동치는 마나로 인한 고통에 거친 숨을 내쉬었다.
무당파 도인을 보는 순간 어찌되었든 몸을 피했어야 했다. 적어도 마기를 가진 자를 봤을 때 이 세상에 마기가 있음을 확인만 하고 그 자리를 떴어야 했다.
빛의 마나를 가진 자와 어둠의 마나를 가진 자가 만나면 열에 아홉은 부딪힌다는 사실을 마현은 새까맣게 잊고 있었다. 어둠의 마나를 발견했다는 놀라움에 모든 것을 잊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넋을 잃고 우물쭈물하다가 청명진인과 염라서생 허진 둘 사이에서 폭사되는 살기와 투기에 끼어 손정은 정신을 잃고, 자신은 내부가 진탕되었다.
‘모두 내 잘못이다.’
마현은 하얗게 탈색된 얼굴로 정신을 잃은 손정을 내려다보며 자신을 탓했다.
‘서둘러야 한다.’
마현은 벽에 기댄 채 다리를 뻗고 최대한 몸을 편히 만든 후 심장 주위에서 거칠게 요동치는 마나를 진정시켜 나갔다.
그나마 심장에 쌓인 마나의 양이 적은 것이 다행이었다.
일각이 흐르고서야 마구 날뛰는 마나를 겨우 진정시킬 수 있었다.
서둘러 눈을 뜬 마현은 손정을 내려다보았다.
“으득, 으드드득!”
충격에 오한이 왔는지 손정은 정신을 잃은 상태에서도 이빨을 부딪치며 온몸을 떨고 있었다.
‘제발 이 방법이 통했으면…….’
마현은 기도하는 마음으로 오른손을 손정의 가슴 위로 올렸다.
아직 어둠의 마나를 흡수하지 않은 마현의 마나는 다행히 기초적인 원소인 불의 따뜻함, 물의 차가움, 바람의 날카로움, 땅의 부드러움 모두를 가지고 있었다. 그중 마현은 마나를 따뜻하게 만들어 손정의 심장으로 조심스럽게 밀어 넣었다.
반각도 채 되지 않아 마현의 얼굴은 핏기를 잃고 창백하게 변했다.
체내에 마나가 절대적으로 부족한데다가 무리하게 주위의 마나를 심장으로 끌어당겼다. 게다가 심장에 머물기도 전에 손정에게로 밀어 넣은 탓이다.
그 반발력으로 마현의 심장에 무리가 오기 시작했다.
심장을 바늘로 콕콕 찌르는 것처럼 고통이 찾아왔다. 하지만 마현은 피가 나도록 입술을 깨물면서도 끝까지 손정의 심장에 마나를 밀어 넣었다.
‘제발, 제발!’
과거 한창 마법서에 미쳐 탐독할 때, 원시 마법시대의 마법서 한 권을 우연히 읽은 적이 있었다.
거기에 마나의 충격으로 쓰러진 자의 심장으로 어둠이나 빛의 힘이 섞이지 않은 따뜻한 마나를 밀어 넣어주면 최악의 상황을 피할 수 있다고 적혀 있었다.
하지만 책에는 단순이 그렇게만 서술이 되어 있을 뿐 마나로 어떻게, 어디를 만져 줘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이 되어 있지 않았다.
그렇지만 지금의 마현이 손정을 구하기 위해서는 그것 말고 다른 방도는 없었다.
자칫하면 자신마저 잘못될 수도 있음을 알고 있었지만 마현은 처음으로 사귄 친구를 잃기 싫었다. 더욱이 손정은 판단력을 잃고 머뭇거린 자신의 잘못으로 이런 고통을 받고 있었다.
마현은 이를 악물고 최대한 마나를 끌어당겨 손정의 몸에 주입시켰다. 더불어 모자라는 마나는 자신의 심장에 있는 것까지 아낌없이 퍼부었다.
그러기를 한식경에 이르자 마현의 입술 사이로 가는 핏줄기가 흘러내렸다.
내상을 입은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정신마저 서서히 혼미해져갔다.
마현은 더욱 강하게 입술을 깨물었다. 입술에서 느껴지는 고통으로 혼미해져가는 정신을 붙들었다. 마현은 그렇게까지 하면서 끊임없이 손정의 심장으로 마나를 밀어 넣고 또 밀어 넣었다.
결국 한계는 있는 법이다.
마현은 피를 토하며 손정의 몸 위로 쓰러졌다.
그리고 얼마 후, 손정의 심장에서 마나 고유의 푸른빛이 맴돌더니 손정의 몸 전체로 퍼져갔다.
내부의 충격에 온몸을 바르르 떨던 손정의 몸은 안정을 찾아갔고, 창백했던 얼굴 역시 혈색이 돌기 시작했다.
만약 마현이 차기용역(借氣用力)의 수를 이용한 요상대법(療傷大法)에 대해 조금이나마 지식을 가지고 있었다면 절대로 이런 시도를 하지 않았을 것이다.
아니 시도를 할 엄두조차 가지지 못했을 것이다.
아무리 손정이 내력을 쌓지 않은 평범한 범인이고 마현이 능숙하게 마나를 다룰 줄 알았다 하더라도 말이다. 그만큼 마현은 인체에 흐르는 기혈과 경맥에 대해 무지했던 것이다.
그러나 하늘이 그런 마현의 마음을 알았을까, 아니면 수천 분의 일의 확률이 우연히 들어맞은 것일까.
천우신조로 손정은 별다른 후유증 없이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약간의 시간이 흐르자, 정신을 차린 손정은 가슴과 배를 짓누르는 무게감을 느끼며 고개를 들었다.
“혀, 현아!”
손정은 자신의 배 위에 피를 토하고 쓰러져 있는 마현을 보자 까무러치듯 놀라 자리에서 일어났다.
“현아! 현아!”
손정의 머릿속은 새하얗게 변했다.
오로지 마현을 살려야 한다는 생각만 떠올랐다. 그래서 손정은 쓰러진 마현을 등에 들쳐 업고는 정신없이 의원집으로 뛰어갔다.
의원들이 거지를 받아줄 리 없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아는 손정이었지만 지금 이 순간에는 그 정도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그의 머릿속에는 죽어가는 마현만이 있을 뿐이었다.
손정은 마현을 업은 채 발이 부르트도록 의원집이란 의원집은 모조리 훑었다. 세상의 인심이 다 그렇듯 마현을 받아주는 의원집은 어디에도 없었다.
* * *
용아객잔.
사천성 성도 내에서도 제법 이름이 알려진 고급 객잔이었다.
어둑한 밤이 깊어오자 객잔 안으로 고된 하루 일과를 마친 사람들이 술로 고단함을 달래기 위해 모여들기 시작했다.
한산했던 객잔 안이 서서히 시장바닥처럼 시끄럽게 변해갈 때쯤, 용아객잔 뒤에 마련된 별채에서 청명진인이 객잔 1층을 지나 밖으로 걸어 나왔다.
청명진인의 표정은 그리 좋지 않았다.
별채에서 엄한 목소리로 따끔히 훈계를 내린 후 청명진인은 사손들을 별채에 남겨놓고 홀로 밖으로 나온 것이다.
잔뜩 노기에 찬 자신과 여전히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풀이 죽어 있는 사손들이 함께 있는 것은 상당히 불편한 일이었다. 심한 꾸중을 들은 그들이 함부로 별채를 벗어날 수 없으니 자신이 별채에서 나왔다.
사손들을 꾸짖은 후 마음이 무거워진 청명진인은 바깥바람이라도 쐴까 싶어 밖으로 나온 후 목적지 없이 발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마냥 걸으니 이런저런 생각이 떠올랐다.
사손들에게 너무 심하게 꾸중한 것이 아닌가 싶기도 했다. 한편으론 거친 무림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오히려 지금 같은 강도 높은 훈계가 사손들에게 훗날 피와 살이 될 것이라 여겨지기도 했다.
사손들에 대한 생각은 어느새 염라서생 허진에게로 이어졌다.
5년 전 염라서생 허진을 만난 것은 그가 갓 마교 부교주로 취임했을 때였다.
5년이라는 시간은 자신을 완벽히 무당파 진무각주로 만들어 준 것처럼 염라서생 허진 역시 마교에서 확고부동한 부교주로 입지를 굳히게 한 듯했다.
특히 눈으로 처음 확인한 유령대의 신위는 생각 이상이었다.
특별한 주제 없이 계속되던 청명진인의 상념은 이윽고 오늘 보았던 두 거지 아이로 이어졌다.
‘그 아이들은 무사할까?’
자신과 아무런 연관도 없는 아이들이었지만 이상하게 마음이 쏠렸다.
‘분명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을 텐데……, 자칫 잘못 되지나 않았으면 좋으련만…….’
“무량수불!”
청명진인은 괜스레 무거워진 마음에 도호를 외치며 천존께 두 아이가 무사하기를 빌었다.
“으아아앙!”
그때, 발걸음을 옮기던 청명진인의 귀에 웬 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현아, 현아.”
아이는 누군가의 이름을 서럽게 부르며 울고 있었다.
“누가 현이 좀 살려주세요, 으아아앙.”
애타게 울고 있는 그 목소리에 청명진인은 울음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급히 발걸음을 옮겼다.
대로 한구석에서 한 아이가 제 또래의 아이를 끌어안고 울고 있었다. 아이는 처절한 목소리로 지나가는 사람들을 향해 친구를 살려달라고 울부짖고 있었다.
‘저 아이들은?’
가까이 다가간 청명진인은 두 아이를 보자 깜짝 놀랐다.
마음 한편에 계속 신경이 쓰였던 그 거지 아이들이었다.
그들은 바로 마현과 손정이었다.
손정은 마현을 안은 채 서럽게 울다가 청명진인을 보자 허겁지겁 달려와 다리에 매달리며 오열했다. 지나가는 행인들은 몰라도 도인이라면 다를 것이라 여긴 것이다.
“도인님, ……제발, 제발 현이 좀 살려주세요. 으아아앙.”
손정의 얼굴은 눈물로 뒤덮여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