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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막 공작의 못난이 부인 (130)화 (130/131)
  • 130화

    앤드류는 옆에 분리된 방으로 그레이스와 벤자민을 데려갔다. 남들이 다 듣기에는 비밀스러운 이야기였던 탓이다.

    그리고 바로 본론을 시작했다.

    “그자는 이 뒷골목 가게의 단골손님이었습니다. 여기 물건은 마도구 연합에 등록되어 있지 않으니, 들키지 않을 거라 생각한 거겠죠. 사실 그 외에도 질이 좋지 않은 짓을 하기에 저희 사이에서도 유명했습니다.”

    그래서 물건을 팔고 싶진 않았지만, 몇 없는 손님을 놓치면 정말 먹고살기 힘들었고 판매 거부를 하면 불법 마도구를 판다며 신고당하기도 했다며 앤드류가 덧붙였다.

    “연합의 인증이 없다고 불법인 건 아니잖아요?”

    “인증이 없는 경우에는 안전성 검증도 되어 있지 않기에 불법이라고 꼬투리 잡히기 쉽습니다, 부인.”

    그레이스의 질문에 벤자민이 답하고 앤드류가 맞는다며 끄덕였다.

    “저희는 마도구만으로는 벌이가 시원찮아 여러 잡화를 팔거나 잡일을 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사내가 대화 차단 마도구…… 그러니까 일정 범위 외의 사람은 대화가 들리지 않도록 차단해 주는 도구를 구매해 갔고, 얼마 뒤 원장이 염색약을 사 가더군요.”

    “그건 그저 우연 아닌가요?”

    “그 대화 차단 마도구를 어디서, 왜 사용했는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

    “이쪽은 워낙 으슥해 질 낮은 사람이 많이 오갑니다. 그래서 그만큼 질 나쁜 주점도 있고요. 그 원장이란 작자는 대화 차단 마도구를 구매한 사내와 이야기를 나눈 다음 염색약을 사 갔습니다.”

    하지만 그걸로는 정확히 무슨 대화를 나누었는지 알 수 없었다. 이 정도 단서밖에 얻지 못했나, 하고 그레이스가 아쉬워하는 찰나 앤드류가 품에서 피라미드 모양의 물건을 꺼냈다.

    “이게 그때 사용된 대화 차단 마도구입니다.”

    ‘이게 왜 여기서 나오지?’

    그레이스가 어이없어 속으로 딴지를 건 것을 앤드류가 읽기라고 한 듯 말했다.

    “이 물건을 구매한 자는 이것이 그의 손에 있다가 들키면 위험하다고 생각했는지 저에게 처분을 맡기더군요. 사실 직접 망가트리고 버리면 됐을 텐데…… 아무튼, 사실 그 과정에서 이 도구의 치명적인 결함을 발견했습니다. 사실 이게 일정 범위 안의 소리가 퍼지는 것을 차단하는 게 아니라 그 범위 안의 모든 소리를 기기 내로 흡수한다는 사실이 밝혀졌지요.”

    “그거 진짜 치명적인 결함인 거 같은데.”

    ‘아무튼 그 덕에 단서를 얻은 건가?’

    “이미 그 결함을 안 뒤라서 처분하려고 했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화재 사고가 터져서 말이죠. 어쩐지 찜찜해 처분하지도, 듣지도 못하다가 클레타를 만나 공작 부인에 대해 듣고, 내용물을 들어 보았습니다.”

    앤드류는 제 손에 올려진 것을 그레이스에게 내밀었다.

    “공작 부인이 반드시 들어야 하는 것입니다. 위의 뾰족한 부분을 3초간 누르시면 됩니다.”

    “…….”

    그레이스는 뾰족한 면을 내려다보았다. 어째 찔리면 깊고 깊은 잠에 빠지게 하는 물레의 바늘보다 위협적으로 보였다.

    ‘뭐, 내가 그런 미녀도 아니니까 괜찮겠지.’

    이건 물레 바늘도 아니고.

    그레이스는 속으로 자조적인 농담을 치며 마음을 다잡고 꾹, 마도구를 눌렀다.

    마도구는 우웅거리다가 여러 소음을 뱉어 내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그 사이에서 두 사람의 목소리가 작게 들려왔다.

    “그래요, 이 모든 것은 펠튼 공작 부인이 꾸민 것입니다.”

    “그 여자가? 헹! 그 인간이 무능하고 멍청하다는 건 온 제국민이 다 알고 있다고!”

    “그런 사람도 어쩌지 못해서 제자리로 돌아가지 못하는 사람이 누구죠?”

    “…….”

    “당신은 린덴 자작령에서 태어난 사람이 아닙니까? 펠튼 공작 부인은 당신이 모두의 신임을 잃고 망해 초라하게 죽기를 바랐습니다. 그녀는 공작 부인의 자리에 앉은 뒤, 자신의 배경과 관련된 모든 걸 증오했거든요.”

    사내가 이게 증거라고 말함과 동시에 종이가 부스럭거리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무슨 소리야?’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듣자 그레이스의 눈동자가 이리저리 흔들렸다.

    “이렇게 많은 린덴 자작령 출신의 사람이 제도에서 사고를 당해 타지로 떠나지 않았습니까? 겨우 성공하여 출세한 이들을 눈 뜨고 보기 싫은 거죠. 그녀는 그저 운이 좋아서 성공한 사람이니까요.”

    “내가 여기까지 오느라 얼마나 노력했는데, 그 여자는 무능하기만 한 주제에 그저 귀족이란 이유로 공작 부인의 자리에 앉았으면서.”

    “네, 이제까지 당신이 무너진 것도 전부 펠튼 공작가의 배경을 힘입은 그레이스 펠튼이 계획한 것이었습니다. 제가 돕겠습니다.”

    짤랑.

    묵직한 돈주머니가 식탁에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그녀에게 복수합시다.”

    그리고 그 목소리는 저음질로 들었음에도 소름 끼치게도 상냥하고 사근사근해 그레이스도 홀릴 것만 같았다.

    “…….”

    벤자민은 앤드류의 손에 있는 마도구를 채 가, 꽉 쥐었다. 소리는 뚝 끊겼다. 이미 필요한 건 다 들었지만.

    “이건 마음 같아서는 부수고 싶지만, 그래서는 안 되겠지요.”

    “네…… 죄송해요.”

    “부인, 왜 사과하십니까?”

    그레이스는 혼란스러웠다. 그보다 이 목소리, 어디서 들은 거 같은데 어디였지? 온갖 생각들이 복잡하게 뒤엉켰다.

    그러다가 방금 앤드류가 한 말이 떠올랐다.

    “……!”

    ‘직접 망가트리고 버리면 됐을 텐데…….’ 그는 분명 그렇게 말했다. 마도구는 꽤 단단한 물건이라 물리적인 힘으로는 잘 망가지지 않는 게 많았다.

    “혹시 누군지 아는 건가?”

    어쩌면 그저 이 마도구의 마감이 조잡해 물리적인 힘으로 망가트릴 수 있다는 의미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레이스는 ‘혹시’라는 마음을 담아 물었다.

    “정확히는 모릅니다만, 신전의 행사 때 보았던 사제였습니다. 꽤 큰 행사여서 기억합니다. 머리 색은 바꿨을 수도 있어서 도움은 안 되겠지만요.”

    ‘역시…….’

    고아원 화재 사건은 신전의 짓이었다. 그레이스에게 추문을 불러일으키기 위해서 말이다. 그 과정에서 원장이 죽은 것도 그들의 계획인지 아닌지 모르겠으나, 다른 이들도 크게 다치거나 사망할 수 있었다.

    “사제라고?”

    하지만 벤자민은 이 사실을 전혀 몰랐기에 서늘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러니까, 일개 사제가 지금 감히 나의 부인을 음해하려고 한 것인가?”

    그리고 서늘한 목소리는 점점 분노를 담기 시작했다. 마도구를 쥐고 있는 손에 점점 힘이 들어갔다.

    “그래, 그러고 보니 파르머 백작도 신실한 신자였지…….”

    벤자민은 무언가 혼자 납득한 듯 중얼거렸다. 그러면서 어이없다는 듯 ‘꼬리 자르기인가?’ 하고 중얼거렸다.

    “그런 미친 작자들이 있는지도 모르고 나는 이제까지 그들에게…… 그것도 모르고, 부인에게 같이 가자고 하고, 또…….”

    “가, 각하!”

    벤자민이 계속 혼자 중얼거리는 것을 그레이스가 급하게 멈췄다. 벤자민은 깊게 상처받은 죄인의 눈으로 그레이스를 바라보았다.

    “각하, 일단 돌아가요.”

    “부인께서는…… 알고 계셨습니까?”

    “일단 돌아가서요. 돌아가서 말씀드릴게요.”

    벤자민은 입술을 꾹 말아 물었다가 끄덕였다. 그레이스는 결국 몇 가지를 그에게 고할 수밖에 없음을 느꼈다.

    방을 나서며 그레이스가 앤드류에게 물었다.

    “그러고 보니 머리 색은 그렇다 쳐도, 눈 색은 바꾸지 못했을 텐데 무엇인지 기억하나?”

    그레이스의 질문에 앤드류가 고민하다가 끄덕였다.

    “망토 후드를 꾹 눌러써 헷갈립니다만, 연보라 아니면 하늘색이었습니다.”

    ⋆★⋆

    마차에 탄 뒤, 벤자민은 아무 말 않고 그레이스가 설명하길 기다렸다. 그레이스는 어디부터 말해야 할지 고민했다.

    “내가 무슨 말을 해도 믿어 주실 수 있나요?”

    “네, 부인께서 해가 서쪽에 뜬다고 하면 그것도 믿습니다.”

    그건 안 믿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도, 그레이스는 그의 진심을 확실히 느꼈다.

    “사실, 각하도 아시겠지만 제가 결혼하고 나서 1년간의 기억과 그 이전의 기억이 드문드문 없어요.”

    벤자민은 역시나 알고 있었는지 전혀 놀라지도, 놀란 것을 숨기는 표정도 아니었다.

    “처음에는 제가 그저 잘못되었다고 생각했어요.”

    “부인의 잘못이 아닙니다!”

    “네, 이제는 아닌 거 알아요.”

    사실 빙의한 부작용이라고도 생각했지만, 이건 말하지 못하는 문제였다.

    “뭘 해도 내 잘못 같고, 살 가치가 없는 거 같고…… 힘들고,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죽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죠. 난 이 모든 감정이 제 속에서 우러나는 거라고 생각했어요. 사실 어쩌면 일부는 진짜 제 감정이겠죠.”

    그 모든 게 정말 타인에 의한 것은 아닐 거라고, 그레이스는 생각했다. 원래 그레이스는 그 당시에 우울했고, 그것을 그들이 부추겨 키우는 방법을 알게 된 것이다.

    모든 사람은 누구나 내면에 우울의 씨앗을 가지고 있으니까 말이다.

    “그런데 그 감정들을 신전에서 부추긴다는 사실을 어쩌다 보니 알게 되어서요.”

    “…….”

    ‘마도구 연합이 관련 있다는 걸 말해야 하나…….’

    하지만 그러면 가구에 대한 이야기를 해야 하고, 벤자민 성격상 싹 다 치워 버릴 것이다. 그레이스의 기억을 되찾으려면 기분 나쁜 안개에 휩싸인 가구를 없애는 게 제일이었다.

    ‘하지만 내가 기억을 찾는 걸 원치 않는 거 같단 말이지.’

    역시 비밀로 하자. 그레이스가 다짐할 때쯤, 그녀의 앞에 있는 사내의 몸이 떨리는 게 보였다.

    “그러면…….”

    벤자민의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 매달려 있었다.

    “그러면, 제가 부인께 늘 챙겨 드린 약도 문제가 있던 것 아닙니까?”

    “어…… 조, 조금은요? 그래도 큰 문제는 아니었어요. 그냥 설탕으로 만든 가짜 약이었어요!”

    아주 큰 문제였지만, 그레이스는 이걸 사실대로 말하면 돌이킬 수 없을 것만 같았다.

    벤자민은 입을 꾹 다물고 그레이스를 보다가 상체를 푹 숙이고 양손으로 제 얼굴을 가렸다.

    그레이스가 그런 벤자민을 바라보다가 조심스레 통통한 손으로 그의 머리를 다독였다.

    “부인은…… 당신께서는 너무, 친절합니다.”

    “아니에요.”

    “맞습니다.”

    그러니까 이런 멍청한 저에게도 이리 상냥하지 않습니까. 그는 물기 어린 목소리 사이로 말을 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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