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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막 공작의 못난이 부인 (126)화 (126/131)
  • 126화

    “폭정이라니?”

    “……모르실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이건 마도구 연합에 의해 은폐되고 있는 사실이니까요.”

    그는 씁쓸한 얼굴로 중얼거리며 그레이스가 무언가 더 묻기 전에 설명을 시작했다.

    “마도구 연합은 심사를 통과한 마도구사만 소속될 수 있습니다. 본디 이 법은 자격이 없는 마도구사가 만든 물품의 유통을 제한하기 위해 만들어졌죠.”

    마도구 연합에 포함되지 않은 마도구사들 또한 마도구를 만들어 판매할 수는 있었으나 신뢰도에서부터 압도적인 차이가 있었다. 그렇다고 하여 마도구 연합의 인증이 없는 물품이라고 저렴한 게 아니었다.

    결국 마정석이 들어가야 하며, 연구에도 막대한 비용이 들어가니까.

    마도구사들이 연합에 가입하는 이유 역시 그 때문이다. 가장 비싼 최고급 마정석을 지원받을 수 있었고, 연구 비용의 대다수는 펠튼 공작가에서 대신 내주었다. 마도구 연합이 운용하는 자금의 대다수가 펠튼 공작가에서 오는 것이었으니, 벤자민이 마도구 연합에서 누릴 수 있는 것이 많은 것도 당연했다.

    “하지만 오늘날의 마도구 연합은 이 제도를 악용하고 있습니다.”

    “……!”

    그 말에 그레이스는 마도구사들이 어떠한 방식으로 폭정을 저질렀는지 바로 짐작이 갔다.

    ‘……직물 공방이랑 비슷한 사건이야.’

    다만 직물 공방의 경우, 제도와 그 부근에만 영향을 끼친 일이었다면 이것은 온 제국을 겨냥한 독점 사태였다.

    “마도구 연합 내의 심사에 비리가 있었겠네.”

    “예, 공작 부인의 짐작대로입니다. 연합은 더 이상 진짜 자격이 있는 마도구사를 채용하지 않습니다.”

    그레이스는 이 진실을 마주하며 떨떠름해졌다. 이 사람이 거짓을 고했을 가능성에 대해서도 떠올려야 한다는 사실이 속이 쓰렸다.

    “왜 하필 나에게 말하는 거지?”

    “클레타 양에게 공작 부인에 대해 들었습니다. 부인께서는 다른 이들에게 외면받던 이들을 아무런 대가 없이 도와주지 않으셨습니까?”

    “…….”

    “그리고, 그 대가로 부인께서는 짧은 추문에 휩쓸렸죠. 만약 부인께서 저희의 일을 펠튼 공작 각하께 전해 주시고 도와주신다면, 제가 알고 있는 정보를 드리겠습니다.”

    그레이스는 솔직히 이자가 가져오는 정보가 자신에게 얼마나 도움이 될지에 대해선 기대하지 않았다.

    하지만 만약 그의 말이 진실이라면, 응당 그들을 도와야 했다. 대가와는 별개로 그것이 옳은 일이었다.

    “그 추문의 계기, 화재 사고에서 사망한 이가 어째서 공작 부인을 겨냥한 말을 했는지 저는 알고 있습니다.”

    “……!”

    그러나 이자가 알고 있는 정보는 기대하지도 않았던, 아주 놀라운 이야기였다.

    “……그걸 자네가 어떻게 아는 거지?”

    “마도구 연합에서는 규제라는 이름하에 연합 외 마도구사들을 핍박해, 제도 내에서는 인증받지 못한 물건을 판매하지 못하게 합니다. 하지만 소속되지 않은 마도구사들이 마도구 연합의 인증을 받으려면 매우 큰 금액이 듭니다. 그래서 저희는 주로 뒷골목에서 물건을 팔곤 하지요.”

    “그자가 뒷골목에 있었던 건가?”

    “예, 그리고 저는 마도구를 판매하던 중 그를 만났으며 이제까지 공작 부인과 그와의 연관을 몰랐지만 클레타 양을 만나 알게 되었습니다.”

    마도구사는 침통한 얼굴로 그레이스를 올려다보았다.

    “이런 것으로 공작 부인과 거래를 하려 들어 죄송합니다. 하지만 그만큼 저희에게는 간절한 문제였기에…….”

    그레이스는 다시 그를 찬찬히 살펴보았다. 겉에 걸치고 있는 로브는 마도구 연합의 것이었기에 새것 같았으나, 그 외의 것은 전부 낡고 헤져 있었다. 손톱 끝은 갈라지고 지저분했으며 얼굴은 퍼석했다.

    ‘내가 이렇게 혼자 판단해도 되는 걸까?’

    지금 당장 마음대로 판단하고 행동해도 될지 겁이 났으나 그녀는 바로 마음을 잡고 몸을 숙여 그와 눈을 마주쳤다.

    “그대 말고도 더 있나? 이 일에 가담한 마도구사들이 말이야.”

    “……! 네, 있습니다! 전부 뒷골목의 한 건물에 거주 중입니다.”

    “찾아가는 방법은?”

    그레이스가 묻자, 그는 품에서 화살표가 없는 나침반을 꺼내어 그녀에게 건넸다.

    “여기 있는 버튼을 누르시면, 나침반이 가야 할 길을 알려 줄 겁니다.”

    이제껏 본 적 없는 신기한 도구에 그레이스는 신기해하며 받아 들었다.

    “이것도 그대들이 만든 건가?”

    “네, 하급 마정석을 사용해 몇 번 사용하지 못하지만요.”

    ‘이게 제국에 보급되면 정말 좋을 텐데.’

    따지고 보면 지정 네비게이션 아닌가. 그레이스는 만지작거리다가 안주머니에 넣었다. 그녀는 주변을 보다가 앞에 있는 그를 보고 무언가 깨달았다.

    “그러고 보니, 여기까지 어떻게 들어왔지?”

    “아, 저희는 마도구 연합에 있는 통로를 꿰차고 있습니다. 내부 가구를 자주 바꾸니, 그를 통해 잠입한 적도 있죠. 어디에 마도구가 장치되어 있는지 알고 있고요.”

    ‘……연합 보안 완전 허접한데…….’

    “하지만 이렇게 들어오기 위해서 많은 계획이 필요했습니다. 밖에 있는 제 동료들이 도와주었기에 가능했죠.”

    “그렇다는 건…….”

    그레이스는 힐끗, 숨겨진 책장 쪽을 바라보았다.

    “혹시 지금 한 가지 도와줄 수 있겠는가?”

    ⋆★⋆

    벤자민은 약간의 부피감이 있는 상자를 옆에 둔 채 밀린 일을 끝마쳤다.

    ‘부인께서 마음에 들어 하시면 좋겠군.’

    그는 상자 속 내용물을 확인하고, 뿌듯한 표정을 숨기지 않았다. 이것을 완벽하게 마음에 들게 만들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렸는가.

    지난번 일정에는 이 물건을 확인하는 일도 포함되어 있었다. 벤자민은 하루빨리 그레이스에게 이것을 ‘직접’ 들려주고 싶었다.

    그녀가 이것을 받으면 기뻐할 거란 확신이 있었으며, 그 모습을 가장 먼저 보고 싶었던 탓이다.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소요되었군.’

    “부인께서는 어쩌고 계시지?”

    벤자민은 그레이스에 대해서 자주 생각했다. 일을 하는 중에도 뜨문뜨문 그녀를 떠올리곤 했으나, 빨리 끝내려면 일에 집중하는 게 옳았기에 이제야 그녀에 대한 주제를 꺼냈다.

    “지금 도서관에 계신다고 합니다.”

    그의 근처에 있던 마도구사가 빠르게 대답했다.

    “도서관?”

    이때까지만 해도 벤자민은 책에 파묻혀 있을 그레이스를 상상하며 퍽 기분이 좋은 상태였다. 그레이스의 취미 중 하나가 독서라는 것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녀가 별관에 칩거하며 한 발짝도 나오지 않던 때, 벤자민은 그레이스의 서재 가구는 건들지 않았지만 혹여나 책을 다 읽어 버려 지루함이라도 느낄까 새 서적은 간간이 들여보내곤 했다.

    ‘여기서마저 책을 찾으시는군. 하기야 부인께서는 나만큼 마도구에 관심이 있진 않으시니까.’

    그래도 여긴 거의 다 마도구에 관한 책이었다. 벤자민은 그레이스가 읽다가 모르는 부분이 있으면 자신에게 물어보았으면 좋겠다…… 쯤의 소박한 소망을 마음에 품었다.

    ‘물론 마도구사와 함께 있으니, 그가 다 설명해 주겠다만.’

    이건 좀 아쉬운 일이었다. 이렇게 설명해 주다 보면 공통 관심사가 나올 테고, 그러다 보면 그레이스가 간간이 보이는 거리감을 메울 수 있을 테니 말이다.

    “그럼 가 봐야겠군, 일은 다 끝났으니.”

    벤자민은 고민도 하지 않고 그녀에게 줄 선물을 챙기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나 그가 문밖을 나서자 조금 전까지 좋았던 기분이 흔들렸다.

    “그대는 내 부인을 안내하던 마도구사가 아닌가?”

    분명 그레이스의 옆에 있었고, 지금도 있어야 하는 이가 문 앞을 지나가다 벤자민과 마주쳤다.

    보통 무슨 일이 있으면 다른 사람을 대신 붙이는 게 정상이었으나, 만약 그러했으면 벤자민에게 보고가 들어왔을 터였다.

    그러나 그가 전해 들은 소식은 단 하나도 없었다. 그 의미는 벤자민이 알면 그리 유쾌해하지 않을 대우를 그레이스가 받고 있다는 의미였다.

    “지금 부인을 안내하고 있는 마도구사가 있는가?”

    “그, 그것이.”

    “대답하게.”

    벤자민은 온화한 얼굴로 말하였으나, 그의 분위기는 심상치 않았다. 그레이스가 괜찮다고 해도, 그녀를 떠나는 건 용납하지 못할 일이었다.

    펠튼 기사단이 몇 있다고 해도, 마도구 연합 내 도서관은 본디 많은 이들의 출입이 제한되어 있었다.

    그들의 논리대로라면 기사단원은 문밖에서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즉, 그레이스의 주변에는 아무도 없다. 그 사실을 벤자민은 순식간에 파악했다.

    “……해이해졌군.”

    그 모든 것이 내부를 자세히 살펴보기 위한 그레이스의 계획이었음을 모르는 벤자민은 그저 그녀가 ‘타인을 과하게 신경 쓰는 상냥한 성정’이었기 때문에 이런 일이 벌어졌다고 결론지었다.

    물론 벤자민은 그런 그레이스도 사랑스럽다고 생각했으나, 그레이스는 지위에 비해 과하게 친절했다. 그는 사랑하는 부인이 조금은 이기적이어도 좋을 것 같았다.

    “그대의 행동에 대한 것은 나중에 이야기하고…….”

    서둘러 부인에게 가 봐야겠군.

    그 말까지는 이어지지 않았다. 커다란 폭발음이 그의 소리와 온 신경을 잡아먹었기 때문이다.

    “저, 저쪽은……!”

    “도서관 방향입니다!”

    벤자민은 얼굴이 파랗게 질린 채 우두커니 서, 도서관 쪽을 바라보았다.

    그레이스가 도서관에 있다.

    당장 달려가 그녀가 안전한지 아닌지, 그것부터 확인해야 한다. 생각하기도 전에 몸이 먼저 달려가야만 했다.

    그러나 그는 우두커니 서서 폭발음이 들린 방향을 바라보기만 했다. 온몸이 보이지 않는 힘에 속박된 듯 움직이지를 못했다.

    그는 아무런 소리도 내뱉지 못하는 입을 달싹이다가, 몇 초가 지나서야 도서관 방향으로 달려갔다.

    이제까지 한 번도 드러낸 적 없는 적나라한 공포가 벤자민의 얼굴에 실려 있었다.

    “코, 콜록.”

    “…….”

    뭉게뭉게 연기가 나는 도서관 문 쪽에서 그레이스가 기사들의 보호 아래 나오고 있었다.

    조금 꾀죄죄해진 것 빼고는 멀쩡해, 상처 하나 보이지 않았으나, 벤자민은 그녀를 보며 눈이 흔들렸다.

    그레이스가 그런 그를 발견했다.

    “각하?”

    “…….”

    벤자민은 무슨 말을 하지도, 그녀에게 다가가지도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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