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4화
‘보통 이런 곳은 그냥 금지 구역이라고 표기만 하지 않을 거 같은데.’
만약 그랬더라면 그레이스를 두고 자리를 비우진 않았을 것이다. ‘관계자 외 출입 금지’라고 적힌 표시판이 붙은 문 외에 그 어떤 보안 장치도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면 외부인을 탐지하는 기능이 있는 마도구가 설치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보통 사람은 마도구의 눈을 피해서 들어갈 방법이 없긴 하지만…….’
그레이스는 막 활용하기 시작한 신성력이 있었다. 마도구를 아주 조금만 망가트리거나, 인식을 어그러트릴 방법이 없을까 하며 손을 쥐락펴락했다.
‘하지만 이 방법을 쓰려면 일단 마도구가 어디 있는지를 알아야 하는데.’
그걸 찾기 위해 주변을 살펴보아도 눈에 띄는 건 없었다.
“그냥 무작정 쓰기도 애매한데, 어쩐담…….”
그레이스가 한숨을 폭 내쉬었다. 신성력을 무작정 방출시키자니 양을 조절하는 것이 미숙하여 밖의 물건들도 망가트릴 것 같았기 때문이다.
만약 외부에 있는 마도구가 망가진다면, 그레이스의 위신이 걱정된 이들이 뛰어 들어올 터였다.
‘그러면 조사를 못 하니까 안 돼.’
하지만, 그러면 어떻게? 하고 고민하던 중 그녀는 자신의 주머니에 있던 펜듈럼의 존재를 떠올렸다.
‘혹시?’
펜듈럼은 굳이 신성력을 사용하지 않아도 계속 미약한 빛을 뿜어냈다.
그레이스는 혹시 이 빛을 통해 어떻게 마도구를 추적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을 갖고 챙겨 온 것을 꺼냈다.
펜듈럼에서는 여전히 은은한 하늘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자세히 살피지 않으면 처음 보았을 때와의 차이점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레이스가 펜듈럼을 들고 몇 걸음을 떼어 보니 바로 차이를 알아챌 수 있었다.
‘그때랑 비슷해.’
은은한 빛은 미약하게 파동을 일으켰다. 어떠한 존재를 감지했다는 의미였다.
일전에 아리아에게 펜듈럼을 받았을 적, 그것 또한 특정 가구가 있는 공간에 반응했었다. 그리고 그 가구는 전부 소모된 마정석을 이용해 만든 마감재를 바른 것들이었다.
즉, 지금 이 빛이 반응을 한다면 그 마감재가 존재하거나 마정석과 관련된 물건이 있다는 의미였다.
‘그렇지만 여긴 검은 안개는 보이지 않아. 마감재랑은 상관없을 거야.’
지하에서 본 마감재는 그런 불온한 낌새가 느껴지지 않아 자신의 추측을 100퍼센트 확신할 수 없었으나 일단 심증을 증명하는 게 우선이었다.
그레이스는 가까이 갈수록 빛이 요동치는 방향으로 향했다.
“……?”
그리고 그 빛은 문고리에서 최고조에 달했다.
‘문고리 자체에 감지 장치가 되어 있는 거구나.’
어떤 원리인지 그레이스는 설명을 들어도 이해하지 못하겠으나, 등록되지 않은 자가 문고리를 잡으면 어떻게든 알림이 가는 형태인 것 같았다.
‘알림, 혹은 기절……, 또는 둘 다려나.’
상식적으로 문을 열려면 문고리를 잡아야 하니 당연한 것이다. 그레이스가 문을 가볍게 손으로 두들겨 보니 견고함이 느껴졌다.
어지간한 힘으로는 부숴서 열 수도 없는 재질이었다.
‘미는 문이니 경첩도 안쪽에 있어 해체할 수도 없겠네.’
보통 사람이라면 그래야 했을 것이다. 마도구사라고 해도 이런 류는 해제하기 어려운 법이었으나, 그레이스는 신성력을 갖고 있었다.
신성력을 가진 사람은 전부 신전의 밑으로 들어가며, 사제로서 이름이 기록된다. 그렇기 때문에 사제가 마도구 연합을 불가피하게 방문하게 될 경우에는 마도구사 몇 명이 방문한 사제의 곁을 지켰다.
‘아주 살짝만, 잠깐만 망가트릴 순 없나?’
그레이스가 원하는 바를 이루려면 신성력을 능숙하게 다룰 뿐 아니라, 마도구의 원리도 제대로 이해하고 있어야 했다.
그녀가 우연으로 딱, 원하는 만큼 이루어지길 바라는 것은 기적에 가까웠다.
파직!
그레이스가 펜듈럼을 문고리 가까이에 가져다 대자, 파열음과 함께 펜듈럼이 뿜어내던 은은한 하늘색 빛이 사라졌다.
“어, 어라.”
그녀는 펜듈럼의 힘을 사용할 생각은 없었기에 당혹스러운 얼굴로 아무런 빛도 뿜어내지 않는 것을 바라보았다. 다행스럽게도 아리아에게서 받은 것처럼 금이 가지는 않았다.
‘이걸 어쩐담…….’
앞으로 별관에 있는 기분 나쁜 안개를 없앨 때까지 알차게 사용해 먹으려고 했는데, 빛이 사라져 버리다니…… 다음에 신전을 방문했을 때 하나 몰래 가져올 순 없으려나, 하며 그레이스는 문고리를 빤히 바라보았다.
‘이거, 이제 작동 안 하는 거 맞을까?’
그레이스는 조마조마한 채로, 신성력을 조금 끌어올려 문고리에 쏟아 보았다. 어떠한 반발력도 문고리를 통해 느껴지지 않았다.
펜듈럼에 담긴 힘으로 인해 아예 망가진 것 같았다.
“……뭐, 들키진 않겠지.”
완벽하진 않아도 목적은 달성했다. 그레이스가 문을 열자 어떠한 마법 작용도 일어나지 않았다.
안쪽에는 수많은 책장과 시중에서 구할 수 없는 책과 서류가 있었다. 그레이스는 생각보다 거대한 내부에 작게 감탄했다.
독서가 취미 중 하나였던 만큼, 공작가에서도 본 적 없는 책을 보니 심장이 뛰기도 했으나 본 목적을 잊지 않기로 했다.
‘그래, 맞아. 마정석, 그거에 대해 빨리 찾아보자.’
아무리 외부인의 출입은 금지해도 자신들끼리 공유하는 지식인만큼 전부 찾기 쉽게 정리되어 있었다.
도서관 내부를 둘러보며 이미 마도구사들이 책을 어떻게 정리하는지 얼추 감을 잡은 그레이스는 손쉽게 마정석에 대한 책이 있는 구역에 도착했다.
“마정석의 역사, 마정석 실험 1, 마정석 실험 1-2…….”
몇 개를 훑어보던 그녀의 시선을 한 책이 붙잡았다.
“찾았다.”
마정석의 재활용 실험.
‘이 공간은 주로 실험 일지를 보관하는 곳 같네.’
하긴 이 모든 게 전부 기밀일 것이다. 성공하건 실패하건 말이다. 그레이스는 고개를 끄덕이며 책을 펼쳐 보았다.
‘뭔 소린지 모르겠고, 이것도 모르겠고. 다음도…… 진짜 모르겠네.’
하지만 아무래도 연구가들이 기록한 것이라 그런지, 문외한인 그레이스가 이해할 수 없는 용어가 많았다. 제3식 마도회로라거나, 앨버트 마법식 3차방정을 대입한 파이프 연결 등.
‘벤자민한테 물어보면 다 알 거 같은데, 새삼 대단한 사람이네.’
진짜 마도구사도 아니면서 이런 것을 알고 있다는 건 여간 관심이 있다는 것이 아니니 말이다.
이걸 다 훑어도 쓸 만하거나 이해할 수 있는 정보가 나올지 반신반의하며 계속 페이지를 넘기던 손이 멈췄다.
“어……!”
그녀가 그나마 이해할 수 있는 내용이었고, 마침 딱 그레이스가 필요했던 정보였다.
‘차, 찾았다!’
마정석. 그것은 자연에서도 발견되는 물질이었다. 보석과 비슷한 모양새를 가졌음에도 신묘한 힘을 가지고 있으며, 마물에게서도 취득할 수 있다.
그리고 후에, 펠튼 공작령에서 매번 대치하던 마수들에게서 얻는 마정석이 그 무엇보다 순도가 높은 최고 품질임이 밝혀졌다.
‘하지만 마수를 생포해 연구한 결과, 살아 있을 때의 마수에게서는 마력이 느껴지지만 마정석을 이루는 요소는 존재하지 않음이 밝혀졌다…….’
그레이스는 과연 살아 있는 마수로 어떻게 실험을 했을지는 자세히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평범한 줄 알았던 광산에서도 마정석이 발견되었고, 각 구역에 대한 공통점을 연구한 결과 북부와 비슷한 환경을 갖고 있을수록 고품질의 마정석이 나타났다.’
북부, 그들이 말하는 곳은 펠튼 공작령일 것이다. 그곳은 터전을 잡기에 썩 좋은 곳이 아니었다.
오죽하면 초대 펠튼 공작이 그 땅을 터전으로 삼은 것이 희생이며 업적이었음이 역사서에 기록되어 있겠는가.
‘그러고 보니 그 보석도 오염된 숲 안에 있었지.’
그레이스는 자신과 같은 이름으로 지어진 보석을 떠올렸다. 오묘하고 아름다운 이채를 뽐내던 보석은 벤자민의 말에 따르면 일종의 마정석이라고 하였다.
‘마정석으로서의 기능은 못 하지만 같은 성질을 가지고 있다고 했어.’
마정석이 보석처럼 보이는 이유는 안에 고인 마력 때문이므로, 마력이 다 빠져나가면 본래의 형질로 변한다. 그러나 마수의 심장으로 만들어진 마정석은 마력이 절대 완전히 소모되지 않으며, 모든 마수의 심장이 마정석이 되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이 원인은 아직 발견되지 않았으며, 마수의 뼈를 기조로 마정석 재활용 실험을 시작했다.’
그 뒤로는 또 이해할 수 없는 말이 한가득 담겨 있었다. 그러나 한 가지, 그녀를 섬찟하게 만드는 지점이 있었다.
‘내가 지금 갖고 있는 펜듈럼 속 신성한 돌이 마정석과 관련이 있다는 건…….’
미묘한 흰색인지 미색의 돌, 이것은 혹시 돌이 아니라 뼈인 게 아닌가? 그레이스는 주머니에 있는 것을 멀리 던져 버리고 싶었지만 꾹 참았다.
‘그보다 신성한 돌이 마정석과 같은 원리라면 대체 왜 다르게 불리는 거지?’
그리고 신성한 돌에 맹세하면 왜 그 맹세를 반드시 지켜야 하는가? 그레이스는 고민에 빠졌으나 이에 대한 해답은 이 서재에는 없을 터였다.
“봐도 뭐 이해할 수 없는 설명만 많으니 계륵이네 계륵.”
그레이스가 한숨을 폭 내쉬며 책을 끼워 넣으려는 순간, 그녀의 눈에 이상한 게 보였다.
책이 있던 자리 뒤에 밸브가 하나 있었다.
책장과 같은 색상이었기에 관심을 갖지 않으면 보이지 않을 만큼 존재감이 옅었다. 평소라면 고민했을 터였지만, 그레이스는 뭐에 홀리기라도 한 듯, 그 밸브를 잡아 돌렸다.
쿠궁-…….
그러자 작은 진동과 함께 벽에 보이지 않던 문이 드러나며, 달칵 열렸다.
“……?”
그 너머에는 이 서재와 달리 몇 개의 간소한 책장만 있는 것 같았다. 그레이스는 멍하니 책을 들고 문 쪽을 바라보다가, 들고 있던 것을 제자리에 꽂아 두고 안쪽으로 들어갔다.
‘책이 아니라 서류…….’
전부 연구 일지라는 건가? 꽤 오랜 시간 이어져 온 것인지 낡은 종이도 보였다.
“아, 게이트를 사용한 의료 도구 개발 시험.”
십여 년 전 문서의 제목을 읽으며 마도구사가 해 줬던 설명이 떠올랐다.
‘이런 시험, 연구 일지는 안쪽에 숨겨 두는 걸까?’
일단 연구 기록이니 보관은 하되, 세상에 알려지면 안 되는 것들. 그레이스는 방금 발견한 것을 펼쳐 보는 대신, 다른 것을 찾아보았다.
그러자 그녀의 눈에 한 가지 제목이 들어왔다.
“인공 마정석 제작 실험?”
한 번도 거론된 적 없는 주제였다. 마정석은 절대로 인간이 만들 수 없는 것으로 알고 있으며, 그렇기에 마정석의 재활용에 대한 실험이 발전하는 추세였다.
그레이스는 손을 뻗어 그 서류를 펼쳤다.
혹시 인공 마정석과 마정석 재활용의 실험에 무슨 연관이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 탓이었다.
그러나 몇 페이지를 넘겨 보니 그곳에는 매우 의외의 이름이 적혀 있었으며, 그녀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아르델 백작령.”
‘인공 마정석을 제작할 장소로 아르델 백작령이 채택되었다.’
서부 오염 사태의 시작, 아르델 백작령.
그 이름이 이곳에 적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