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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막 공작의 못난이 부인 (123)화 (123/131)

123화

그저 가정일 뿐이었지만, 얼추 맞는 거 같아 소름이 돋았다.

‘증거가 필요하다는 게 문제네 이건. 갑자기 여기가 의심스럽다고 해도 어쩐지 벤자민은 믿을 거 같지만, 증거가 없어 제대로 잡지 못하면 그대로 놓치는 거잖아.’

애초에 펠튼 공작가의 가주인 벤자민이 무너진다고 해서, 바로 마도구 연합이 자기들 마음대로 행동할 수 있다는 것도 이상한 논리였다.

‘벤자민이 최대 후원자인 만큼, 많은 사안을 결정할 권리가 벤자민에게 있는걸. 펠튼 공작가와 마도구를 연결시켜 떠올리는 사람도 많고. 여길 이만큼 유지할 수 있던 게 그 덕분인데 벤자민이 사라지면 마도구 연합도 위험한 거 아니야?’

그들이 정말 펠튼 공작가를 무너트릴 생각이라면, 믿는 구석이 있을 것이다.

마감재에 대해 열심히 설명하던 마도구사는 슬슬 끝났다고 생각했는지, 벤자민에게 공손하게 다가갔다.

“그, 그보다 각하, 오신 김에 잠시 마도구 승인을 위해 확인 좀 해 주실 수 있으실까요?!”

“또?! 내가 오늘은 그럴 일 없도록 미리 방문하지 않았던가.”

벤자민은 영 내키지 않는 듯했다.

“오늘은 부인께서 건물 내부를 둘러보는 날이라, 이럴 일이 없도록 미리 전부 결재 승인을 해 놓았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죄, 죄송합니다. 그 뒤로 또 서류가 급히 밀려서 말입니다. 대신 제가 공작 부인을 편히 모시겠습니다. 약속드립니다.”

“…….”

“각하, 다녀오세요. 밀리면 그만큼 다들 기다려야 하잖아요.”

“이럴 때면 일이 정말 싫습니다.”

벤자민은 정말로 싫은 듯 한숨을 푹 내쉬고, 그레이스를 빤히 보다가 다녀오겠다며 떠났다. 계속 힐끔힐끔 뒤를 돌아보는 게 주인을 떠나는 강아지 같았다.

‘귀엽네…….’

그레이스는 그의 보좌관인 아벨이 들으면 기겁할 감상을 아무렇지 않게 했다.

“부인, 그러면 나머지는 제가 안내하도록 하겠습니다.”

“부탁하지.”

사실 이미 그레이스의 마음은 콩밭으로 떠나 있었다.

‘마도구 연합의 모든 마도구사가 똑같은 생각일까……?!’

그럼 이 마도구사도 같은 의견일까? 여기 있는 사람도? 그럼 진짜 만약, 신전과 담합을 했다면 그레이스에 대한 계획도 알고 있을까? 그레이스는 아찔했다.

‘내가 너무 또 음모론적 생각만 하고 있는 건가.’

하지만 꼭 불안한 예감은 맞기 마련이었기에 신경 쓰였다.

그 뒤로 마정석을 가공하는 과정이나, 몇 마도구를 만드는 과정을 구경했다. 설명도 몇 개 듣기는 했으나, 솔직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

비전공자를 배려하지 않고 혼자 신나서 떠드는 전공자의 설명이란, 어려웠다.

그러다가 마도구사가 작은 링을 그레이스에게 내밀었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게이트의 부품입니다. 이것이 게이트의 중심이 되지요.”

“작네.”

그레이스는 생각보다 작은 중심 부품을 내려다보았다.

“그렇죠? 그래서 한때는 게이트를 사용해 의료 도구를 만들고자 시도한 적도 있습니다. 전부 실패했다고 기록되어 있으니, 무의미한 시도였죠.”

“……? 그렇구나.”

대체 게이트를 어떻게 의료 물품으로 응용할 생각인지는 모르겠으나 그레이스는 대충 끄덕였다.

그보다 이 세계는 지문이나 그런 개념은 모호하면서 이런 건 또 이상하게 발전이 되었네.’

“펠튼 공작가에서는 신성력에만 의존한 치료를 경계해 다른 치료법을 강구하였거든요.”

“그 방법이 마도구로 치료 도구를 만드는 거였구나.”

“예, 뭐 전부 실패했습니다. 결국 자르테 공작님을 주축으로 한 약제사 연합만이 남은 걸 보면 알 수 있죠.”

그레이스는 딱히 부정할 말은 없었기에 입을 다물었다.

‘그래도 무의미하다고까지 할 말은 아니지 않나.’

“사실 게이트 자체도 문제가 있으니, 아직도 늘 마도구사들이 연구 중에 있습니다.”

이어지는 마도구사의 설명에 그레이스는 원작대로라면 일어나야 했을 게이트 폭주 사건을 떠올렸다.

“작년에 그 사건이 있었던 만큼 더…… 아.”

마도구사는 무언가를 말하다, 아차 싶은 얼굴로 제 입을 가렸다.

“그 사건?”

“아, 아니. 이건 부인께 절대 말하면 안 된다고…….”

“누가 그랬는데?”

물어보기는 했지만 누가 그랬을지는 알 거 같았다. 그들에게 명을 내릴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있겠는가. 그레이스의 질문에 마도구사의 얼굴이 파랗게 질려 갔다.

“그 사건이 뭔지 말하지 않으면 궁금한데, 각하가 돌아오면 여쭤봐야 하나…….”

“아, 안 됩니다!”

그레이스가 작지만 다 드릴 정도의 목소리로 중얼거리자 마도구사가 빽! 하고 소리쳤다.

“마,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러니까 각하께는 질문드리지 말아 주십시오!”

그는 황급히 주변을 둘러보다 그레이스에게 바짝 다가가 작은 목소리로 말을 이어 갔다.

“시, 실은 작년에 게이트 관리국에 크게 사고가 일어난 적이 있습니다. 관리국 건물이 통째로 무너지고 몇 개는 오작동을 일으켰죠. 그때 사상자의 수는 셀 수도 없었습니다.”

“…….”

“그때 문제가 있었다면 당시 소공작이시던 공작 각하께서는 공작령에서 마수를 토벌하고 계셨고…….”

그레이스는 심장이 불안하게 쿵쾅거렸다. 그다음 말이 예상되었기 때문이다. 그 사고에 선대 공작 부부가 휘말려 세상을 떠났다는 이야기가 들릴 것만 같았다.

그러나, 예상외의 말이 이어졌다.

“선대 공작 부부께서는 공작가를 비운 채 실종 상태였습니다.”

“……? 게이트 관리국에 계셨던 것이 아니고?”

“예, 그 뒤로 한참 동안 모습을 드러내지 않으셨죠. 불행 중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소공작이던 공작 각하께서 당시 게이트가 아니라 기차를 타고 제도로 향하고 계셨기에 비교적 빠르게 제도로 오셨습니다.”

“선대 공작 부부는 찾았고?”

“예, 북부로 향하는 길목에서 사망하신 채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게이트 사건의 피해자들을 위로하기 위하여 장례식도 제대로 치르지 못하셨죠.”

‘왜 하필 거기서 발견된 거지?’

“원인은 밝혀졌나?”

“각하를 뵈러 올라가는 중이었던 것으로 결론 지어졌습니다. 당시에 게이트를 사용하는 이가 많았기에 부러 마차와 기차를 사용한 것으로 추측되었고요.”

‘게이트에서 벌어진 사고는 피했지만, 결국 비슷한 날 사고로 사망이라…….’

그레이스는 거울의 방에서 들었던 말을 떠올렸다.

‘그래서 그렇게 안쓰러워한 건가.’

“각하께서는 급하게 공작위에 오르시고, 가장 먼저 한 것이 무너진 게이트 관리국의 자리에 희생자 위령비를 올리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서둘러 다시 게이트 관리국을 세웠죠.”

그레이스는 밖에서 본 그 기이한 탑을 떠올렸다. 그것이 바로 그 위령비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녀는 마도구사와의 대화에서 이상한 점을 두 가지 깨달았다.

첫째로 이 이야기에서 그레이스의 이야기가 쏙 빠져 있었다는 점.

둘째로…….

“그런데 당신, 내가 이 사건을 모른다는 걸 너무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군.”

“……!”

그레이스가 공작 부인이 된 지 2년째임에도, 마도구사는 그녀가 1년 전 사건을 모르는 것을 너무나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렇게 큰 사건을, 그것도 내 시부모에 대한 일을 모른다는 게 이상한 일 아닌가? 그런데 왜 내가 모른다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지?”

“그, 그것이…… 저는 아무것도 모릅니다. 그저 공작 각하께서 공작 부인 앞에서는 해당 사건에 대해 말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각하께서?”

“네, 네. 저는 그저 그걸 따를 뿐입니다.”

‘저 말이 진짜일까?’

벤자민이 위령비에 대해 일언반구도 하지 않았고, 그레이스에게 티를 내지 않았던 것을 생각해 보면 가능성이 아주 없는 이야기도 아니었다.

‘조금 전 설명에서 내 이야기가 빠진 걸 보면, 그것도 벤자민의 의도였을 가능성도 있고.’

그렇다면 이 부분은 캐물어 봤자 의미가 없을 것이다.

그레이스는 빠르게 판단했다.

“……알았네. 각하께는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는 걸 말하지 않을 테니 안심하고.”

“가, 감사합니다.”

물론 수틀리면 조금 흘릴 수는 있긴 하지만,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해 볼 일이었다.

“여하튼, 그때의 사고 이후 게이트의 안전을 목적으로 더욱 개발하고 있습니다. 그때와 비교하면 지금은 훨씬 견고하니 안심하셔도 좋습니다.”

“그, 그렇군.”

하긴 그때와 똑같으면 퍽이나 모두가 안심하고 사용하겠거니 싶었다. 그레이스는 떨떠름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다음 장소로 가실까요……?”

“아니, 이제 나는 조금 쉬고 싶은데 혹시 나도 출입할 수 있는 도서관 같은 곳이 있을까?”

더 이상 돌아다녀 봤자 의미가 없었다. 물어볼 것도 다 물어봤고, 슬슬 다리가 아팠다.

‘차라리 도서관에 갈 수 있으면 가서 뭐라도 뒤져 보는 게 나을 거 같아.’

그레이스는 이런 사심을 숨긴 채 물었다. 어차피 그레이스가 문외한인 건 모두가 아는 사실이니 출입이 그리 어렵지도 않을 것이다.

“몇 구역은 출입 금지이지만, 도서관 자체는 공작 부인께서 얼마든지 들어가실 수 있습니다.”

“그렇구나. 그럼 부탁하지.”

‘아무래도 그렇겠지.’

그레이스의 남편이 이 마도구 연합의 최고 권력자인데 그녀에게 감히 안 된다고 할 리가 없었다. 몇몇 구역은 마도구사 외에는 들어가면 안 된다고 했지만 그레이스는 너무나도 손쉽게 마도구 연합의 도서관에 들어갔다.

그레이스는 아무 두꺼운 책이나 한 권 뽑으며 그에게 말했다.

“나는 이걸 읽고 있을 테니 자네도 일이 있으면 하러 가게. 각하께 나는 여기 있을 거라 말하고.”

“그래도 괜찮겠습니까?”

“물론이지. 도서관 출입구는 펠튼 공작가의 기사가 지키고 있잖은가.”

마도구사는 걱정스러운 얼굴로 그레이스를 바라보다가도, 이내 벤자민에게 먼저 말하겠다며 자리를 비웠다.

두꺼운 책을 펼치는 시늉을 하던 그레이스는 그가 떠나자마자 책을 덮었다.

어차피 마도구사들은 전부 마도구를 개발하거나, 벤자민에게 심사를 받느라 도서관은 텅 빈 상태였다.

‘여기 어딘가에 마정석에 대한 자료가 있을 거야.’

그레이스의 시선은 바로 마도구사 외 출입 금지 구역으로 향했다.

저쪽은 전부 연구 결과에 대한 자료가 있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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