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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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상한 상황을 겨우 모면하고 간 곳은 가구를 만드는 장소였다.
‘평범하네.’
“평범하군요.”
그레이스의 생각을 벤자민이 그대로 읊었다.
“공부하셨다더니, 각하도 여기에 온 적 없으신가요?”
“아뇨, 전에 와 본 적 있습니다. 부인께서 쓰실 물건의 제작 공정을 제가 모르면 안 되잖습니까.”
“……?”
“전에 불미스러운 일이 있었던 이후로, 한번 싹 다 확인해 본 적도 있습니다.”
‘대단하네…….’
벤자민이 말하는 불미스러운 일이란, 조약돌 폭파 사건에 대한 것일 터. 물론 그것이 마도구 연합에서 마련한 것은 맞지만 터진 계기는 그레이스였다.
벤자민이 아무리 확인해도 그는 문제점을 알아채지 못할 것이다.
“그런데, 와 보셨으면서 왜 처음 와 본 것처럼 말하세요?”
“그야 부인께서도 저와 같은 소감을 말할 것 같아 공감대를 형성하여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습니다.”
“…….”
그레이스는 벤자민을 지그시 올려다보다가 물었다.
“그러면 다른 사람에게 안내를 받는 쪽이 낫지 않아요?”
마도구 연합 건물 내부를 잘 안다고 말했으니, 저 소감이 이상하게 느껴졌다.
벤자민은 민망한 목소리로 답했다.
“부인께 안내해 보고도 싶어서 말입니다.”
“……아, 네.”
굳이 안내를 해 보고 싶어 미리 와 봤으면서, 이젠 또 공감대 형성을 하고 싶다는 이유로 모른 척한다니.
벤자민을 사랑하기는 했으나 그가 이상하게 느껴졌다.
“아, 아무튼 그때 이후 시간이 조금 지났으니 차이점이 있을 수도 있잖습니까. 그런데 없으니 그냥 평범하다고 한 것입니다.”
변명과도 같은 말이 벤자민의 입에서 줄줄 길게 나왔다.
그레이스가 그런 그에게 줄 수 있는 건 아주 짧은 대답뿐이었다.
“네, 그럴 수도 있죠…….”
벤자민의 민망하다는 말에 그레이스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그의 귀로 향했다. 그 말이 거짓은 아닌지 미묘하게 붉은색으로 달아올라 있었다.
‘이상하지만 귀여울지도…….’
그레이스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콩깍지가 장착된 채, 벤자민을 평가했다.
“아무튼 가구는 이게 다입니다. 가구 공방 장인들에게 기술을 배우고, 처음부터 직접 만들거나 들인 가구를 보강하는 식으로 만드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왜 직접 만드나요? 가구 장인을 아예 고용하면 안 되는 건가요?”
어차피 마도구사인 이상 장인이 만드는 것만큼의 질은 나오지 않을 것 같았다. 물론 그레이스가 쓰는 가구들은 꽤 좋은 편이었으나, 굳이 마도구사들이 가구를 만들 필요까지는 없었기 때문이다.
“쓰이는 재료가 마정석이라서 그런 거라고 하더군요.”
벤자민은 설명을 하다 말고 뒤에서 입 다물고 따라오던 마도구사에게 눈짓했다. 이 이후의 설명은 그에게 요구하는 것이다.
벤자민은 마도구에 대해 관심이 많았기에 남들에 비해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었으나 업으로 삼은 이만큼은 아니었다. 그의 허가가 떨어지자 마도구사가 급하게 둘의 옆으로 다가가 설명을 이어 나갔다.
“예, 예. 마님께 드리는 가구에는 전부 마력이 사라진 마정석이 쓰이고 있습니다. 제국에서 유일하다고 할 수 있지요. 가장 튼튼하고, 귀하며, 위험하지 않다는 것 또한 검증을 완료했습니다.”
‘진짜 위험하던데.’
그레이스는 절대 뱉지 못할 생각을 떠올리며 끄덕였다.
“마력이 사라진 마정석을 쓴다 하면 감히 버리는 것을 활용하는 게 아닌가, 하고 여기실 수 있으나 모든 마정석은 제국의 재산이며 이미 여러 차례 재활용을 위한 실험을 거치고 있으며…….”
“음, 그렇구나.”
그레이스는 이쯤 되면 무슨 소린지 모르겠는 말이 이어지리라 예감했다. 대충 집중하는 척하며 열심히 그를 보다가 줄줄 이어지는 설명이 끝나서야 말했다.
“그래서, 마감재는 여기서 같이 만드는 게 아닌가? 난 그것도 궁금하던데.”
“아아, 마감재요. 그것이 궁금하셨군요.”
마도구사는 고민하다가 잠시 기다리라고 말하고 혼자 문 안쪽으로 향했다.
“깊은 곳에 있나 봅니다.”
“각하도 거긴 안 가 보셨나요?”
“완성된 마감재와 원재료만 보았고, 제작 과정은 본 적 없습니다.”
“출입 금지 구역인가요?”
“솔직히 저라면 얼마든지 들어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만, 저는 썩 그걸 좋아하지 않아서요.”
“좋아하지 않는다고요? 왜요?”
“……음.”
그레이스의 질문에 벤자민은 대답을 하기 위해 잠시 말을 골랐다. 어떻게 해야 말을 좀 더 부드럽게 할 수 있는가 고민하는 것이다.
“마도구 연합에서 사용하는 마정석은 보통 마수의 뼈나 심장입니다. 가공되기 전의 것은 특히나 거대하죠.”
“…….”
“그것을 보기가 가끔은 껄끄러울 때가 있습니다. 뭐, 저 지하에 있는 것은 이미 다 사용된 후의 것이니 비교적 작은 것일 테지만요.”
벤자민의 말을 이해한 그레이스는 입을 달싹거리다가 다물었다. 뭐라 함부로 말할 수가 없었다.
벤자민이 북부의 공작이고, 그 공작령은 사실 허울과도 같은 땅이었다. 북부의 마수들이 제도로 내려오는 것을 막기 위한 방패일 뿐.
지금도 북부에서는 펠튼 공작가에 소속된 기사들이 싸우고 있을 것이다.
‘그러겠네…….’
아무리 제국 내에서 마수를 대하는 일에 능숙한 집단이라고 해도 부상자나 사망자가 없을 리가 없었다.
벤자민만 해도 마수를 대하는 데에 익숙해져 인기척을 금방 읽어 내곤 했다.
“아, 그래도 가공된 건 괜찮습니다. 펠튼 기사단도요. 제국에 이바지하는 좋은 일이잖습니까.”
“좋은 일이라고 해도, 힘든 일이 아닌 건 아니니까요.”
그레이스는 눈을 굴리다가 벤자민의 손을 살며시 잡았다.
“만약 성녀께서 북부로 올라가서 마수를 없앨 수 있다면, 각하께 좋은 일일까요?”
“하하, 그럴 수 있다면 더없이 좋겠네요. 성녀께서 마수를 상대했다는 기록은 없으니 가능할지는 모르겠지만요.”
생각해 보면, 북부에 있는 기사들을 진두지휘하는 건 벤자민의 역할일 것이다. 그런데도 그가 여기 있는 건 그레이스 탓 같았다.
‘내가 계속 상태가 좋지 않아서…….’
마음이 무거워졌다. 벤자민이 그레이스의 앞에서만 억지로 밝은 척하는 게 아닐까 미안해졌다.
“고, 공작 각하! 부인! 얼추 어지러운 건 정리되었으니, 들어오시지요!”
마도구사가 헐레벌떡 문을 열고 둘에게 소리쳤다. 문 너머는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이었다. 그럼에도 아래쪽으로 향하는 곳은 어둡지 않았다.
‘근데 뭘까 이 느낌은…….’
그레이스는 아래로 내려갈수록 묘한 기시감을 느꼈다. 어디선가 느껴 본 적 있는 감각이었다.
‘그 안개?’
원재료가 그것이라면, 비슷한 느낌이 들 수밖에 없기야 했지만 미묘하게 다르며 무엇보다 안개가 보이지 않았다. 혹시 가공되기 전이라 이런 차이가 있는 걸지도 모른다.
그레이스는 속으로 자신을 안심시켰다.
‘괜찮아. 혹시 몰라서 펜듈럼도 가져왔으니까, 굳이 여기서 힘을 쓰지 않아도 별일 없을 거야.’
“이쪽입니다.”
지하에는 꽤 넓은 공간이 마련되어 있었다. 평소라면 ‘지하에도 이렇게 넓은 공간이 있다니’ 하고 놀랐겠으나 그녀의 눈을 사로잡은 건 다른 것이다.
‘저게 왜 여기 있지?’
저 돌이 왜 여기 있는 건가.
그레이스가 지그시 그 돌을 바라보고 있을 때, 마도구사가 설명했다.
“공작 부인께서 보고 계신 것이 바로, 마력이 전부 소모된 마정석입니다.”
“……저것이?”
“예, 마력이 다 빠진 마정석은 평범한 돌 같지요. 다른 마정석과 달리 말입니다.”
그러면서 마도구사는 다른 방향을 가리켰다. 다른 마정석들이 있는 곳이었다. 다양한 색을 가진 각각의 투명한 돌은 다른 종류의 보석처럼 보이기도 했다.
“어떠한 이유인지는 모르겠지만, 마정석마다 색이 다릅니다. 하지만, 다 쓰고 나면 이렇게 평범한 미색으로 변하더군요.”
“……그거 신기하군.”
그레이스는 어색한 표정을 짓지 않기 위해 무던히도 애썼다. 그녀는 이것을 본 적 있었다. 아니, 애초에 그것은 이미 주머니에 있었다.
‘신성한 돌이잖아.’
이게 왜 여기에서 나오는가……? 그리고 저게 왜 마력이 빠진 마정석인가.
다른 사람 눈은 속여도 그레이스는 못 속인다.
‘이게 뭐가 어떻게 된 거지?’
“그리고 이 돌을 갈아 만든 마감재가 이것입니다.”
탁한 색의 액이 담긴 병이 그레이스의 앞에 내밀어졌다.
‘아무런 기운도 없어.’
분명 이 마감재가 발라진 가구들에게서 기분 나쁜 기운이 느껴졌는데, 정작 마주치니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럼 그게 내 착각이었다고? 하지만 그럴 리가 없잖아.’
벤자민이 직접 받아서 가져온 것이다. 중간에 누가 바꿔치기를 할 수도 없으니, 마도구 연합에서 만든 게 맞았다.
‘그런데 왜 여기서는 아무런 기운도 느껴지지 않는 걸까.’
“부인께서 관심이 많으신 듯합니다.”
“이걸 바르기만 하면 가구가 견고해진다는 게 신기해서요. 그래서 벽난로도 매번 불을 그렇게 떼는데 그을음 하나 없는 건가 봐요.”
사실 이게 아니었지만 대충 둘러댔다.
“아, 벽난로의 경우는 조금 다릅니다. 그것은 벽돌도 다 쓴 마정석 그 자체로 만들어졌으니 말입니다.”
그레이스는 마도구사의 설명에 별관에 있던 가구의 안개 농도를 떠올렸다.
‘아, 그래서…….’
그렇다면 결국 안개의 강함과 이것의 연관성은 확실했다. 왜 여기서는 아무 기운도 안 느껴지는 제쳐 두고 말이다.
“좋은 참고가 되었네요. 저를 위해 마음 써 주어서 고마워요.”
“무엇을요. 부인께서 부디 저희 마도구 연합의 가구를 써 주신다면 영광이겠습니다.”
‘마도구 연합에서도 계속 내가 가구를 쓰길 바라고 있어. 심사 허가는 둘째 치고 그냥 쓰기만 바란다는 건, 애초에 목적이 이쪽이란 건데.’
신전과 마도구 연합 모두 그레이스 펠튼이 죽기를 바란다. 그녀는 이 가정을 떠올리고 그다음 가정을 이어 갔다.
‘그렇다면 둘의 목표가 얼추 비슷하다는 거네.’
펠튼 공작가.
그레이스는 벤자민의 원작 행보를 떠올렸다. 그녀가 죽은 뒤로 미쳐 버려 모든 인망을 잃게 된 벤자민 펠튼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