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흑막 공작의 못난이 부인 (96)화 (96/131)
  • 96화

    그레이스는 다이어트 강도를 더 높여야 하나, 싶어 입 안이 바짝 말랐다.

    그때 한 여성이 말했다.

    “그러고 보니 체중 감량에 좋은 약이 하나 있어요.”

    “어머, 진짜요? 저도 필요한데.”

    “저도요, 저도요.”

    소후작 부인은 약이라는 말에 얼굴에 걱정이 한가득했다.

    “약이면 몸에 안 좋지 않을까 싶은데.”

    “걱정 마세요! 이 약이 제가 소개받은 건데, 진짜 부작용이 없다고 하더라고요.”

    ‘수상해…….’

    그레이스는 여기서 대놓고 반대해 봤자 반발심만 살 거라 생각해 일단 입을 다물었다.

    ‘부작용이 없는 약이 있을 리가 없잖아.’

    몸에 좋은 약도 계속 먹으면 간에 무리가 가기 마련이다. 그레이스는 잠시 이 세계가 지구가 아니라 다른 법칙이 적용되나 하고 고민했으나, 그건 아니라고 판단했다.

    ‘마법이 존재하고, 발전의 속도가 다를 뿐이지 어느 정도 비슷해. 사람 사는 건 똑같으니까.’

    그리고 사람의 욕망 또한 똑같았다. 그레이스는 침을 꼴깍 삼켰다.

    “저도 이번에 겨우 받았어요. 엄청 인기 있다더라고요.”

    “어머 설마, 그곳인가요?”

    “네, ‘그곳’이랍니다!”

    다들 ‘그곳’이라면서 까르르 웃었다. 그레이스는 ‘그곳’이 어딘지 몰라 멍청한 얼굴로 앉아 있었다.

    “저, 실례지만 그곳이 어디인가요?”

    “어머, 부인께서는 모르시나요? 온갖 미용용품을 파는 상단이랍니다. ‘세이렌의 노래’에서도 취급하지 않는 것을 팔아요.”

    “‘영원의 꽃’이라고 불리는 곳인데, 정말 은밀하게 운영되어 상단 건물도 없답니다. 하지만 하나하나 정말 특출 나 모든 레이디들이 그곳의 상인을 마주하고 싶어 하죠.”

    ‘진짜 처음 듣는 곳인데?’

    그레이스는 머리를 열심히 쥐어짜 보았지만 원작에서는 ‘영원의 꽃’에 관한 이야기는 하나도 나오지 않았다. 저 정도로 모두가 선망하는 거대한 단체라면, 나올 법도 한데 말이다.

    ‘아니 이 소설은 빙의하고 보니까 뭔 나오지 않았던 설정이 이렇게 많아.’

    “공작 부인께도 소개시켜 드릴까요? 원래 이게 바로 얻을 수 있는 게 아닌데, 펠튼 공작가라면 바로 얻을 수 있을 거예요.”

    “그, 그렇군요.”

    그 뒤로도 ‘영원의 꽃’에 관한 이야기로 많은 대화가 오갔다. 이번 파티 준비를 위해 거기서 많은 용품을 구비해 두었다며 자랑하는 이야기가 쭉 이어졌다.

    그러다 문득, 그레이스의 귀에 낯익은 주제가 들어왔다.

    “이 크림을 꾸준히 바르면 성녀님처럼 새하얀 피부를 가질 수 있다고 하더라고요.”

    “어머 저도 구매했는데, 전 효과를 좀 봤어요.”

    “저에게는 효과가 딱히 없었어요. 안 맞나 봐요.”

    “…….”

    아무 말 없이 대화에 집중해서 듣고 있자, 소후작 부인은 그녀가 대화에 끼지 못한다고 생각한 건지 조심스레 말을 걸어왔다.

    “부인, 부인께서도 하나 써 보시는 게 어떨까요? 저에게도 몇 가지 있는데 그중에 피부에 좋은 게 있답니다.”

    그레이스의 주근깨는 화장을 했음에도 미약하게 보였다. 그것이 신경 쓰이면서도 결례가 아닐까 소후작 부인이 조심스레 속삭였다.

    “물론 저는 매력적이라고 생각하지만 혹시 모르니 한번 써 보시겠어요?”

    “…….”

    “그 상단의 대표 상품 중 하나예요.”

    그레이스는 거절하려다가 대표 상품이라는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뭔가 보면 알 수 있는 게 있겠지.’

    기억 못 하는 원작 요소라거나, 진짜 원작에 나오지 않은 거라면 후에 찾아낼 수 있는 정보라거나.

    시레니에게 물어보기라도 해야겠다며, 그레이스는 소후작 부인이 가져온 크림을 곧장 셀리에게 넘겼다.

    ‘그러고 보니 이 상품에 대해 말할 때 성녀에 대해 계속 말했었지……?’

    그레이스는 제 팔목을 문지르며 시선을 이리저리 굴리다 입을 달싹였다. 그녀가 이 자리에 온 이유는 앞으로의 전개에 이들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아리아가 원작과 다른 행보를 걷게 해야 한다. 이건 아리아에게도 필요했지만, 본심을 말하자면 그레이스가 더욱 당당하게 나아가기 위함이었다.

    ‘아리아에게 더 많은 친구가 생긴다면 굳이 벤자민과의 이벤트만 발생하지 않을 테고, 그럼 내가 이상한 의심을 할 만한 상황이 생기지도 않을 거야.’

    현재의 벤자민이 아리아에게 이상한 감정이 없다는 건 그레이스도 안다. 하지만 ‘혹시’라는 게 있었다.

    그레이스는 원작 속 벤자민의 유언을 떠올렸다. 아리아에게 말한 그 마지막 대사는 상당히 속을 쓰리게 만들었다.

    ‘그럼 일단은…….’

    어느새 ‘영원의 꽃’ 상단에 대한 이야기가 성녀인 아리아의 아름다움에 대한 주제로 넘어갔다.

    아리아는 이 세계관 최고 미인이었고 그만큼 선망의 대상이었다. 작중에서도 그녀의 외모를 찬양하는 엑스트라가 거듭 나왔다.

    또한, 아리아는 그레이스가 직접 마주한 바에 의하면 사교계의 입지가 좁다 못해 친우 관계가 없었다.

    현재로서는 성녀라는 타이틀과 아름다운 미모로 인해 다들 아리아를 부러워했다. 아름다운 걸 싫어하는 이는 별로 없으니까.

    ‘하지만 이번 파티로 인해 벌어질 그 사건이라면, 달라질 수 있지.’

    이번에 열릴 파티는 서부 오염을 완전히 회복하고, 제국이 건재함을 알리는 파티다. 하지만 그와 더불어, 직물 공방의 파업에 대한 입장 또한 간접적으로 밝히는 행사가 진행되었다.

    그것이 바로 온 가문의 영애들이 참가한 자수 경연 대회. 이번 파티를 위해 다들 가문에서 소유하고 있던 원단, 혹은 작은 공방에서 천을 구매해 자수 실력을 뽐냈다.

    물론 겉으로 보이는 취지일 뿐이었다. 레이디들을 대상으로 한 대회는 몇 종류 없었으니, 이번 기회에 한 자리 만든 것이다.

    ‘보통 그런 자리를 만드는 게 황후인데, 현 황실에 황후가 없어서 더 그렇지.’

    슬슬 이에 관해 공문이 내려올 시기였고 그레이스가 그걸 안다고 해서 이상할 건 없었다. 그 펠튼 공작 부인이었으니 말이다.

    일단 그 갈등의 씨앗부터 바싹 말려 죽여야 한다.

    “그러고 보니 말이에요.”

    그레이스가 조심스러운 제스쳐와 함께 머뭇거리며 입을 열자 모두 주목했다.

    “아직 다른 곳에 알려지지 않은 소식이라 말씀드리기 조심스럽지만, 새롭게 사귄 친우분들이라 알려 드리고 싶어서요.”

    펠튼 공작 부인은 무능하다 소문났지만, 실제로 본 그레이스는 그리 무능하고 못난 이미지도 아니었을뿐더러 펠튼 공작가에서 먼저 접하는 소식이 무엇인지 그 자리에 있는 이들은 몹시도 궁금했다.

    그중 몇몇 이들은 펠튼 공작가에서 이번에 새로운 원석을 발견했다는 소식을 얼핏 듣기도 했다.

    ‘혹시 원석 이야기인가?’

    ‘그걸 이야기할 거면 소후작 부인의 선물로 가져왔을 텐데.’

    ‘어쩌면 마도구 이야기일지도.’

    하여간 알려지지 않은 소식이라는 것은 꽤 즐거운 이야기일 터였다. 사교계의 가십거리를 은근히 좋아하는 이들은 그레이스가 말하기를 기다렸다.

    “황실에서 열리는 연회에서 자수를 뽐내는 자리를 마련할 거라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확실하지는 않지만요.”

    “어머나!”

    그 말에 몇몇 이들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사교 파티장은 화려하디화려했지만, 늘 주축이 되는 건 남성이었다. 아무리 사교계의 꽃이라고 불린들 업적의 중심에는 남성이 있었다. 그러기에 누군가는 고작 자수 경연이라고 해도 기뻐하는 태도를 보였다.

    “얼른 천을 구해야겠어요.”

    “저도요. 고급 천이 좋겠네요. 그러고 보니 그 공방이…….”

    이런 정보는 빨리 접하는 자가 유리했다. 자수는 시간이 많이 드는 노동인 만큼, 급조하면 그만큼 티가 났다. 조금 전까지 아름다움에 대해 논하던 이들이 금세 어떤 무늬를 수놓을지에 대해 조잘거렸다.

    그레이스가 이들에게 자수 대회에 대해 말한 것은 그저 도와주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원작대로라면 이 사람들이 대회에서 드래곤을 수놓아도 아리아가 이기거든.’

    아리아의 자수 실력은 그다지 뛰어나지 않다. 많은 교육을 받은 레이디들과 달리 그녀는 시골 구석 영지 출신의 평민이었고, 성녀가 된 후에도 그러한 공부를 한 적이 없었다. 그러기에 가까이서 보지 않아도 그녀의 자수는 형편없었다.

    그러나 그 대회의 수상자는 아리아였다. 이유는 다른 사람들에게는 없는 ‘진심’이었다.

    ‘아니, 여기 있는 사람들은 뭐 마음이 없나.’

    뛰어난 솜씨와 기술을 뽐내는 이들도 누군가에게 보여 주기 위해 열심히 했을 텐데, 그것을 무시당하자 당연히 아리아를 좋게 볼 리가 없다.

    물론 이런 부분은 원작에서 노골적으로 묘사되지 않았다. 아리아의 주변에는 늘 아리아를 좋아하는 사람으로 가득했기 때문이다.

    그레이스가 독자가 아니라 세계 속 일원이 되어 보니 다른 이의 심정을 파악할 수 있었다.

    ‘이건 아무리 실력이 좋아도 결국 편파 판정이 원인이야. 그러니까, 애초부터 평가 외의 존재로 만들어 버리는 게 낫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아리아를 이 파벌에 끌어들이면 그레이스는 그만큼 존재감을 지울 수 있다.

    ‘지금은 너무 존재감이 크단 말이지.’

    아리아가 여기에 들어오면 그만큼 입지가 생기고, 그레이스는 성녀인 아리아가 새로운 멤버가 된 만큼 이목이 나뉘게 된다.

    성녀는 이제까지 사교계에서 누군가와 교류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아리아를 연결시켜 준 사람이 나니까 좋은 인상을 남길 수 있을 거야.’

    다만 이 계획을 위해서는 그렇게 많은 사람이 필요하지 않았다. 오히려 많은 사람이 있으면 여러 감정과 생각이 피어오르고, 소문이 퍼질 수 있었다.

    ‘그럼 역시 그 도움을 구할 만한 대상은 소후작 부인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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