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흑막 공작의 못난이 부인 (66)화 (66/131)

66화

“사실, 선발대로서 이곳에 왔을 때 저는 숲 내부에 파견대를 보낸 적 있습니다. 각하께서도 아시죠?”

“네, 그 사실은 저뿐 아니라 다른 이들도 알고 있습니다.”

그러다 광산을 발견했다.

아직 광산에 대한 정보는 후발대와 공유하지 않았지만, 숲에 대한 보고는 그레이스의 이름을 필두로 올린 바가 있다.

광산의 가치가 확실해졌으니, 매각 절차 중 다른 사람이 수저를 얹지 못하게끔 벤자민이 선수를 친 것이다.

“숲을 조사할 때 저는 파견대에게 일정 거리마다 리본을 묶게끔 부탁했어요.”

그레이스는 그리 말하며 수거해 온 붉은 리본을 꺼내 보여 주었다.

“그리고 이 리본에는 야광도료, 이번에 마도구 협회에서 보내온 새로운 발명품이 묻어 있습니다.”

“……아, 그건…….”

벤자민은 흥미로운 눈으로 그레이스를 바라보았다.

“네, 각하께서도 아시다시피 이 야광도료는 잘 묻어난다는 단점이 있죠.”

“말씀 중 죄송하지만 그 리본과 이번 도난 사태가 어떤 연관이 있습니까?”

“이 야광도료는 내가 이곳에 와서 리본에 발랐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잉크병을 쏟았지.”

그레이스는 그리 말하며 짐이 쌓여 있는 곳을 손으로 가리켰다.

“바로 저곳에 말이지.”

“……!”

“만약 다른 사람이 저 자리에 이 물건을 올려 두었으면, 아무리 조심스럽게 두었더라도 손에 묻었을 터. 어두운 곳으로 가 확인해 보지.”

저 목걸이는 고가의 보석이었다.

훔친 이가 제정신이었으면 내려 둘 때 조심스럽게 행동했을 것이다.

그러니 손이 당연히 짐에 닿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방금 그레이스가 말한 건 거짓말이었다.

‘하지만 지들이 어떻게 알겠어?’

야광도료의 특징은 전부 진짜였지만, 쏟은 적은 없었다. 그레이스는 모여 있는 사람들을 훑어보았다.

‘만약 범인이 여기 있다면 당장 손을 씻으려 하거나 장갑을 벗으려고 하겠지.’

그레이스의 눈이 가늘어졌다.

보통 범인은 자신의 범행 현장을 보러 온다고 하지 않던가? 그 심리는 이해할 수 없지만, 더 솔직히 말하자면 이해할 생각도 없지만 지금 믿을 건 그뿐이었다.

“……!”

그때 한 사제가 손을 뒤로 슬금슬금 물리며 무리에서 빠져나가려는 모습이 포착되었다.

미리 그레이스가 신호를 보내 둔 로젤리아가 그 사제를 붙잡았다.

“이상 행동은 금지입니다.”

“……놓, 놓으십시오! 아무리 펠튼 기사단이더라도 신을 모시는 자를 이리 함부로 핍박할 수는 없습니다!”

‘완전 대놓고 자기가 범인이라는 듯이 반응하네.’

책에서 저런 반응 많이 봤다.

범인들이 잡히면 꼭 목소리부터 높이며 무작정 결백을 어필하고…….

“증거 있습니까?!”

‘증거를 내놓으라고 외치고는 했지.’

소설을 읽을 때마다 저런 멘트를 외치는 범인을 보면, 왜 저렇게 똑같은 말을 다들 할까…… 하고 의문을 가지던 때가 있었다.

그리고 그레이스는 오늘날, 그 사유를 깨달았다.

‘이런 상황에 놓이면 누구나 다 똑같구나.’

오히려 이렇게 되니 마음이 이상하게 차분해졌다. 그녀의 뒤에 단단하게 자리 잡고 서 있는 벤자민의 존재 덕일 수도 있었다.

“그럼 검사해 보십시오! 내 손에 그 야광도료인지 뭔지가 묻어 있지 않으면, 보상을 하셔야 할 겁니다!”

로젤리아에게 팔뚝 한쪽이 잡혀 있는 사제는 핏대까지 세운 채 그레이스를 쏘아보며 바락바락 소리쳤다.

정말 억울해서 언성을 높이는 정도를 넘어선 모습이었고, 이것은 확실히 위협이었다.

‘그레이스가 만만한 위치이기는 한가 보다…….’

한낱 사제가 이렇게까지 언성을 높이며 위협하려고 드는 걸 보면 말이다. 실제로 효과가 있었는지, 그나마 차분해졌던 심장이 다시금 쿵쿵 뛰기 시작하며 생각을 방해했다.

‘침착하자. 저렇게 당당할 수 있는 이유가 뭘까? 진짜 범인이 아니라서?’

그건 아닐 것이다. 그는 내내 손을 뒤로 숨긴 채였고, 로젤리아에게 잡혔을 때 아차 싶은 표정을 지었다.

‘지금도 약간 불안해 보여.’

이 몸에 들어오기 전부터 평생 사람의 눈치를 살피며 살아온 인생이었다. 저 사람의 표정이 떳떳한지 아닌지쯤은 알 수 있었다.

사제복의 카라에 붙어 있는 배지를 보니 최하급 사제는 아니었다.

‘신성력이 아주 조금은 있다는 의미지.’

신성력을 쓰려면 맨손으로 오염 대상에 접촉해야 한다. 오염 대상보다 신성력이 약할 경우에는 사제가 다치는 경우도 비일비재했다. 그것이 성녀를 추앙하는 이유였다.

‘성녀는 신성력의 강도뿐 아니라, 오염 지대를 직접 만지지 않아도 정화할 수 있기도 하니까.’

그레이스는 예전에 본 황금빛 알갱이를 떠올렸다. 아리아가 정화를 위해 직접 접촉한 것은 딱 한 명, 저주에 걸린 남자 주인공 실베스터뿐이었다.

아무튼, 그런 사유로 사제들은 활동할 때 장갑을 끼지 않는다. 끼면 오히려 눈에 띄기에 누군가는 기억하기 마련이었다.

‘몰래 이곳에 물건을 두려면 재빠르게 행동해야 하는데, 그 찰나를 위해 장갑을 꼈을 거 같지 않아. 그러면 저렇게 당당할 수 있는 이유는…….’

손을 씻었군.

이런 결론에 다다랐다.

‘교대 시간에 간식이 나왔었지? 그럼 그때 손을 씻었겠지.’

사제들은 본업 때문에 늘 청결에 신경 쓰는 편이었다. 그들은 여건이 될 때마다 습관처럼 손을 씻었다.

“……부인.”

그레이스의 뒤에 서 있는 벤자민 또한, 낌새를 눈치챈 듯했다. 그가 조금 불안한 목소리로 그녀를 불렀다.

‘하지만 실제로는 쏟은 적도 없으니, 상관없지 뭐.’

오히려 손을 씻었으면 잉크가 묻어나지 않아도 그레이스가 거짓말을 한 게 아닌 게 된다.

그레이스가 샐리에게 말했다.

“샐리, 거기에서 파우더를 가져와 주겠니?”

“네? 네! 알겠습니다, 마님.”

샐리는 그레이스의 명령에 그 어떤 질문도 하지 않고 파우더를 가져왔다. 그레이스는 쥐고 있던 리본을 샐리에게 주고, 파우더를 가져갔다.

“경, 그 보석함을 잠시 보도록 하지.”

“…….”

“깨트리지 않을 것이네. 만약 그렇다면 펠튼 공작가의 명예를 걸고 전부 보상할 것이고.”

그녀는 기사에게서 느껴지는 위압감에 시선을 내리깐 채 조곤조곤 말했다.

그레이스를 내려다보던 신전 기사는 들고 있던 보석함을 건넸다. 보석함을 조금 매만지던 그레이스는 그것을 벤자민의 손에 올려 두었다.

“부인……?”

“잠시 들고 계셔 주시겠어요?”

그다음, 결백을 주장하는 사제에게 물었다.

“이 보석함을 그대는 단 한 번도 만진 적이 없는가?”

“당연합니다! 제가 어찌 성녀님의 것을 욕심내며, 또한 그것을 귀부인의 처소에 가져다 두겠습니까?”

“한 치의 거짓도 없고?”

“신의 자식으로서 부끄러울 일은 하지 않습니다.”

보통 소설 속 범인은 꼭 이렇게 한번 기회를 주는 것처럼 물어봐도 끝까지 우기고는 했다.

‘이 사람도 결국 다를 바는 없네.’

그레이스는 작게 한숨을 쉬며 파우더 함을 열었다.

“당신이 그리 말했네.”

“……?”

그녀는 파우더를 듬뿍 묻힌 브러쉬를 보석함에 톡톡톡 묻히기 시작했다.

“부인?”

벤자민은 아리송한 목소리로 작게 그레이스를 불렀다.

‘이 세계에는 지문 감식 같은 게 없으니까.’

만약 있다면 범인은 더 철저하게 움직였을 터다.

톡톡톡 하얀 가루를 묻히자 깨끗해 보였던 보석함에는 몇 가지 흔적이 덕지덕지 묻어나왔다. 누군가의 지문이었다.

‘신전 기사나 벤자민 둘 다 장갑을 끼고 있으니 지문은 묻지 않았을 테고.’

그렇다면 여기에 묻어 있는 지문은 그레이스와 범인의 것뿐일 터.

‘어쩌면 아리아의 것까지?’

자르테 공작의 선물을 샐리가 광이 날 때까지 닦아 보관했다. 아리아 측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게 행동했다면 지문은 딱 두 사람 것만 남아 있을 가능성이 컸다.

“사람의 손가락 끝을 유심히 보면 무늬가 있네. 이걸 지문이라고 부르는데, 이건 사람마다 모양이 다 다르지. 여기에 찍힌 지문과 자네의 지문을 대조할 생각이네. 서로 일치한다면, 범인이겠지.”

“……!”

“그런 억지가!”

“억지인지 아닌지는 대조해 보면 알겠지.”

그레이스는 벤자민이 걸치고 있는 짧은 망토를 보석함 위로 드리웠다. 그러자, 아래쪽에 야광도료가 약간 묻어 있었는지 반짝였다.

“그대는 일을 하는 과정에서 손을 씻어, 야광도료가 발견되지 않을 수 있네. 하지만 여기에는 확실히 묻어 있지 않는가?”

‘물론 이건 아까 내가 리본 만진 손으로 만져서 묻은 거지만.’

아직도 도료가 묻어나 천만다행이었다.

“영 의심스러우면 다른 사람의 손끝 무늬도 대조하면 될 일이지. 그러고 나서도 당신이 범인인 것이 확실해진다면 이 일은 신전에 확실히 항의할 것이네.”

“……읏!”

역시나 로젤리아에게 잡힌 이가 범인이 맞았는지, 그레이스의 말에 어떤 반박도 하지 못하고 입을 다물었다.

생각보다 일사천리로 해결되는 일에 주변이 술렁거렸다. 하지만 이는 혐오가 아니라 의외, 그리고 놀라움의 감정이 담긴 소란이었다.

“……?”

그 소란스러운 인파 너머로 한 사람이 걸음을 멈추었다.

“왜 그래?”

“…….”

금빛의 눈동자가 깜빡이며, 그레이스를 담았다.

“저 사람…….”

실베스터가 아리아를 불러도, 아리아는 요지부동한 채 그레이스를 바라보기만 했다. 마치 눈빛으로 그녀를 하릴없이 부르는 듯했다.

이내, 못난 여인이 고개를 들어 이 세상에서 가장 고귀한 여성과 마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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