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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막 공작의 못난이 부인 (61)화 (61/131)

61화

그레이스는 공포를 억누르며 제안했다.

“만약 안쪽에 누군가가 있다면, 그 사람들을 회유해서 마을 쪽으로 데려오는 게 좋겠어요. 어찌 되었든 죽은 땅에서 사는 건 장기적으로 좋지 않잖아요.”

죽은 땅에서 산다는 건 누군가의 눈을 피해 사는 이, 즉 좋지 않은 사정을 가졌다는 의미였다.

벤자민도 그 의미를 알았기에 그레이스의 제안에 잠시 망설였다.

‘하지만 정말 포악한 범죄자가 이런 곳에 숨었을 리가 없잖아.’

포악한 이도 피하는 곳이 오염 지대나 죽음 지대다. 그래서 범죄자들이 종종 북부의 펠튼 공작령으로 가 숨는다는 소설 속 묘사가 있곤 했다.

“……일단, 있다면 회유는 해 보겠지만 그럴 일은 없을 것 같군요.”

벤자민이 앞장섰다.

그레이스는 안으로 들어가며 벤자민이 안에 아무도 없다는 것에 묘한 확신을 가진 것을 느꼈다.

“어떻게 안에 아무도 없을 거라고 확신하세요? 있으면 위험할 수도 있잖아요.”

“만약 제가 저쪽에 숨어 있었으면 진작에 인기척을 느끼고 나와 리본 매듭을 풀거나 다른 곳으로 옮겨 놓았을 겁니다.”

“…….”

“보통 숨어지내는 생명들은 주변 상황에 대한 눈치가 빠르니 말입니다.”

“잘 아시네요.”

“아, 마수를 토벌하다 보니 이리되었네요.”

‘그러니까 지금 사람이랑 마수를 동급 취급한 거야?’

벤자민은 묘하게 수줍음을 담고 말했지만, 그레이스는 이러다 훗날 그가 마수와 사람을 헷갈려 하지 않을까 하고 조금 두려워했다.

그녀는 괜히 제 뒷덜미를 한 손으로 쓸어내렸다.

어느 순간 벤자민이 걸음을 멈췄다.

“왜 그러세요?”

“뭔가 낌새가…….”

벤자민은 목소리를 낮추며, 검을 빼 잡았다.

그레이스가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혹시 인기척이 느껴지나요?”

“아뇨. 무언가가 느껴지기는 합니다만, 이건 인기척이라기보다는…….”

벤자민은 확실하지 않은지 머뭇거리다가 이었다.

“마수의 기척과 흡사합니다.”

“마수요?”

“예, 마수를 자주 상대하는 이들만 눈치챌 정도로 미약하지만요.”

“그럼 위험한 거 아니에요?”

“아뇨. 그것과는 또 사뭇 다릅니다.”

그 또한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듯, 미간이 살짝 구겨졌다.

‘그보다 대체 뭐가 느껴진다는 거지?’

그레이스는 어둑한 숲 내부를 바라보았으나, 고요하기만 했다.

‘너무 긴장해서 그런지 속이 울렁거리는 거 빼곤 모르겠는데.’

아무래도 마수를 많이 상대해 본 이는 다르다는 걸까? 그레이스는 벤자민을 힐끗 올려다보았다.

“……광산?”

잠시 후, 벤자민의 입에서 나온 말은 두 글자 단어, 광산이었다.

그는 등불에 실루엣이 드러난 광산의 입구를 바라보았다. 앞에는 매듭이 묶인 줄이 처져 있었다.

“폐광산이라는 표식이 있군요.”

‘이게 폐광산이라는 표식이구나.’

“누군가가 들른 흔적도 있고요.”

“……?”

그레이스는 매듭을 신기하게 보다가 벤자민의 말에 획 고개를 돌렸다.

“안에 누가 있나요?”

“아뇨, 이건 바깥에서 만든 흔적입니다. 이곳을 숨기기 위한 것이네요.”

“그건 왜죠?”

“이 장소에 대해 그 누구도 호기심을 갖지 않길 바랐나 봅니다.”

벤자민은 광산 근처에 드리운 담쟁이를 손으로 걷었다. 일부는 손쉽게 떨어져 나가, 일부러 덧대어 놓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렇게 쉽게 떨어지니, 만약 안에 들어가기 전에 덩굴을 쌓아 두었으면 밑에 잔해가 있어야겠지만…….”

“없네요.”

“예, 뭐 다 죽은 식물이니 잘 떨어져 나가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요.”

그레이스는 덩굴이 흩어진 광산의 입구 쪽을 빤히 바라보았다.

“어?”

등불의 빛이 어둑한 내부를 살짝 비추자, 어둑한 건너편에서 무언가가 빛나는 게 보였다.

“무엇을 발견했습니까?”

“잠시만요, 저기 뭔가 빛나는 게 있어요.”

그레이스가 손가락으로 빛의 근원지를 가리켰다. 벤자민도 그것을 발견했는지 그레이스에게 기다리라 하고 안쪽으로 들어갔다.

그것을 주운 벤자민의 표정은 오묘해졌다.

“왜 그래요?”

나쁜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땡 잡은 것은 아닌…… 정확히 말하자면 ‘내가 아는 거랑 비슷한 것 같은데, 그건 아니고, 이건 대체 뭐지?’ 하는 표정이었다.

한참이나 그 자리에 서서 손에 쥔 것을 빤히 바라보던 그레이스는 답답해져 그에게 물었다.

“위험한 건가요?”

“아뇨, 아닙니다.”

그는 그제야 정신 차리며 그레이스에게 다가가, 손에 쥔 것을 보여 주었다.

“……이건?”

돌의 단면이었다.

‘아니, 돌이라기엔 보석?’

하지만 이곳은 폐광산인데? 그레이스가 빛 하나 들지 않아 어둑한 폐광산 내부를 기웃거렸다.

벤자민은 그녀의 시선을 막으려는 양 슬쩍 고개가 움직이는 방향대로 몸을 기울였다.

“보석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왜 그런 표정이셨어요?”

“제가 알고 있는 것과 약간 비슷한 느낌이 들어서 말입니다.”

‘알고 있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라면…….’

벤자민은 비슷하게 생긴 게 아니라, 비슷한 느낌이라고 표현했다.

‘마석?’

“혹시 마석인가요?”

“비슷하긴 한데, 아닌 것 같네요. 오묘합니다.”

마석은 마력을 품은 돌.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원인을 알 수 없었기에 마수 토벌 때 수확하거나 이따금 마석 광산이 발견되기를 바라는 수밖에 없었다.

‘그중에서도 마수에게서 얻는 마석이 최고 품질이니, 다른 마석보다 기운이 강할 거야.’

그렇기에 벤자민은 마석이나 마수의 기운에 민감할 수밖에 없었다.

단언컨대 그는 제국에서 마수를 가장 많이 상대한 이였고, 마도구사에 준할 만큼 마석을 많이 접할 수밖에 없었다.

펠튼 공작가는 이래 보여도 마도구사라는 개념이 생기기도 전에 그들을 지지하고 키운 가문이었다.

‘이렇게 보면 황제가 견제하는 것도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니네.’

그의 영향력을 무너트리고는 싶지만, 마도구 연합에서 빠질 수 없는 대후원자에, 최고급 마석을 수급할 수 있는 북부의 지배자였다.

둘은 다른 소속이라고 하지만, 사실상 마도구 연합이 펠튼 공작가의 소유라고 볼 수도 있었다.

그만큼 영향력이 거대했다.

‘마도구사나 마법사만큼은 아니지만, 그런 벤자민이 말하는 걸 보면 진짜 마석과 비슷한 계열인 것 같은데…….’

그보다 이 광산은 원래 폐광산이 아닌가? 그레이스의 미간이 살짝 깊게 파였다.

“이 광산에서 나온 걸까요?”

“그렇다고 볼 수 있겠죠. 아직 다듬어지지 않아 꽤 투박한 형태니까요.”

“그럼 여기는 마석 광산이에요?”

“음…….”

벤자민은 단언하기 어려웠는지 침음을 흘렸다.

“마석이기는 해도, 최하품보다도 못한 것 같습니다.”

“그러면 마도구에는 쓰이기 어려우려나요.”

“그러겠죠. 자세한 건 후에 전문가를 불러야겠지만요.”

그레이스는 조금 아쉬워졌다. 설령 확실하지 않다고 해도, 벤자민은 마도구에 능통했다.

그의 측정은 틀리더라도 오차 범위 내였을 것이다.

‘만약 정말 마석이었다면 광산을 팔아 아르델 백작령 사람들의 피해를 수복하고도 남을 텐데.’

아쉬운 마음에 벤자민의 손에 들린 마석을 빤히 내려다보던 그레이스는 무언가 이질감에 눈이 번쩍였다.

“……어?!”

“부, 부인?”

얼마나 놀랐는지, 그레이스는 갑작스레 손을 들어 벤자민이 등불을 들고 있는 손을 꽉 쥐었다.

그레이스가 손을 잡을 줄은 몰랐던 벤자민은 화들짝 놀라며 뻣뻣하게 굳었다.

“가, 갑자기 제 손은 왜…….”

“각하! 이것 좀 보세요!”

그레이스는 흥분을 숨기지 못하며 그가 들고 있는 등불을 이리저리 움직였다.

벤자민은 그녀가 하는 행동을 보다가, 의미를 깨닫고 눈이 살짝 커졌다.

“돌의 색이 변하는군요.”

“혹시 이런 보석도 있나요?”

“아뇨, 이런 건 처음 봅니다.”

“그쵸?!”

그레이스는 눈을 빛내며 그의 손에 들린 보석을 내려다보았다. 보석은 얼마큼 빛을 담느냐에 따라 색이 천차만별로 달라졌다.

‘오로라 같아.’

실제로 본 적은 한 번도 없지만, 밤하늘의 베일을 땅에 심으면 이런 모양이 아닐까 싶을 만큼 아름답게 번쩍였다.

“…….”

“정말 아름다워요.”

마석은 아니더라도, 이것은 이것대로 가치가 있다. 사람은 늘 아름다움을 추구하니까.

더군다나 이런 보석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으니, 이미 가치는 확증되었다.

‘그래, 내일 인원을 몇 명 차출해서 내부를 더 조사하게 한 다음 정말로 이 광산에서 채굴된 게 맞으면 계약을 맺자고 하는 거야.’

광산 입구는 누군가가 인위적으로 가려 둔 상태였다. 그것은 누군가가 숨기 위해서가 아니라 이 광산의 가치를 알고 숨겨 둔 것이 아닐까 추측할 수 있었다.

‘그게 확실해.’

그레이스는 이 돌의 아름다움을 보고 흥분하며 정체 모를 존재에 대해 추측했다.

하지만 신전이 광산을 기부받으며 그자의 계획은 어그러져 버렸다.

‘왜냐하면, 신전이 이 광산을 받고 뭘 발견했다는 기억은 없거든.’

이 광산은 신전이 기부를 받은 뒤 언급 한번 없이 그대로 사라진다. 하지만 이제 그레이스가 알았으니 알차게 이용해 먹을 예정이었다.

광산을 매입하거나, 아니면 채굴할 때마다 일정 금액을 내거나 수익을 일정 비율로 분배한다거나.

‘그럼 여기 있는 사람들도 좀 더 살기 좋아질 거야.’

만약 신전 측에서도 이런 원석을 발견했으면 이후 전개에 한 번쯤은 언급할 만큼 아름다웠다.

‘하지만 나오지 않았지. 설마 신전은 진짜 순수한 호의로 폐광산을 받고 나서 살펴보지도 않은 건가?’

그렇다면 자신이 발견해서 다행이다. 그레이스는 머릿속으로 계획을 퐁퐁 떠올리며 배시시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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