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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막 공작의 못난이 부인 (15)화 (15/131)

15화

클레타는 자신을 두고 무언가가 진행되는 것을 느꼈다.

그녀는 눈동자를 되록되록 굴리며 둘을 바라보았다.

“리, 린덴 씨? 그래서 이게 무슨 일인가요?”

“아, 죄송해요. 일단 던의 허락부터 받았어야 했는데.”

그레이스는 가장 중요한 클레타의 허가를 받아야 했기에, 눈썹을 팔자로 늘이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비누요. 제가 다 팔 수 있게 도와드려도 될까요?”

“…….”

완전 사기꾼 같은 발언이었다.

클레타가 후에 밝힌, 그레이스에 대한 첫인상이었다.

⋆★⋆

그레이스의 추측대로 고아원은 재정난인 상태였다.

빼먹으려야 빼먹을 돈이 없었다.

클레타는 그 사실을 알았고, 그레이스가 그걸 알아보지 못했을 리가 없었다고 생각했다. 처음에는 고리대금업자가 아닐까 생각했지만, 그들이 접근하는 수법과는 사뭇 달랐다.

‘보통 그런 사람들은 일단 뭘 담보로 받으려고 하니까…….’

그래서 한번 밑져야 본전으로 그녀의 제안을 수락했다.

어차피 팔리면 좋고 안 팔리면 말고였다. 이번에 팔고 있던 비누도 고아원에 있던 돈을 들고 사라진 원장이 억지로 떠넘긴 평범한 비누를 재가공한 거였다.

‘그래서 린덴 씨가 시키는 대로 비누를 다시 녹여서 기다리고 있는 중인데…….’

아이들을 고아원 마당에서 놀게 시킨 클레타는 부엌 쪽에서 비누를 녹이며 그레이스를 기다렸다.

얼마나 기다렸을까. 우당탕, 무겁고 빠른 걸음 소리가 들렸다.

“……허, 헉! 기, 기다렸죠.”

“부인, 천천히 가십시오. 그러다 쓰러집니다.”

그레이스가 헥헥 숨을 몰아쉬며 나타났다. 그녀가 쓴 가면이 삐딱해져 있었다.

벤자민은 그녀의 가면을 조심스럽게 제대로 씌워 주었다.

그레이스는 커다란 바구니를 두 개 들고 있었다. 벤자민의 시선은 계속 바구니에 고정되어 있었는데, 그레이스가 끝까지 자신이 들겠다고 버틴 고집에 진 탓이었다.

클레타 또한 그레이스가 들고 있는 커다란 바구니를 바라보았다.

“그건?”

클레타의 질문에 그레이스가 턱턱 바구니를 테이블에 올려 두었다.

“하나는 비누를 만들 도구랑 포장 도구고요, 또 다른 하나는 아이들한테 주기 위한 사탕이요.”

“네?”

“제가 더 이상 먹지 않는 사탕이 많거든요.”

이건 거짓말이 아니었다. 사탕은 비교적 보존 기간이 길었기에, 별관 내에는 사탕을 그득 담은 유리병이 몇 개 진열되어 있었다.

물론 그레이스는 사용인들에게 물어보고 가져왔다. 그들은 그걸 왜 물어보고 가져가냐며 마음껏 가져가라고, 아니 아예 다 가져가라며 그레이스의 품에 안겨 주었다.

물론 그레이스는 커다란 병 하나면 됐다.

“제가 아이들을 좋아해서요.”

“아, 그렇군요.”

하지만 아이를 좋아해서 그렇다는 것치고는 사탕의 양이 꽤 많았다. 클레타의 목소리에서 뉘앙스를 깨달은 그레이스는 멋쩍게 말을 이었다.

“사탕이 꽤 많죠? 지금 나눠 줘도 괜찮을 텐데…….”

그레이스가 사탕을 보며 고개를 작게 중얼거렸다. 하지만 비누도 만들어야 하는데, 그레이스가 어쩌지 하며 속으로 난처해하자 벤자민이 알아채고 말했다.

“그럼 제가 아이들에게 나누어 줄까요?”

“그래도 괜찮겠어요?”

“네, 아이를 돌봐 본 적이 있으니 괜찮습니다. 비누 만드는 동안 이쪽으로 오지 않게끔 제가 잘, 안전하게 아이들을 맡고 있을 테니 안심하세요.”

벤자민이 제 가슴께를 톡톡 두드리며 활짝 웃고는 사탕이 담긴 바구니를 들었다.

“미안해요. 부탁 좀 할게요.”

“이런 걸로 미안해하지 말아요. 제가 도와줄 수 있어서 기쁜걸요.”

벤자민은 정말로 미안해하지 말라며 걸음 소리도 내지 않고 부엌을 떠났다. 그의 모습이 사라지는 것을 보며 그녀는 바구니에서 재료를 하나씩 꺼냈다.

허브 찻잎을 소분해서 가져온 유리병과 압화를 보관해 둔 틴케이스, 알코올 스프레이 등이었다.

“찻잎의 종류는 다양해요. 압화도 여러 개가 있고요.”

이런 건 투명한 비누로 만들어야 예쁜데, 다행스럽게도 고아원에서 준비한 비누는 거의 투명한 색이 주류였다.

‘최근 차에 꽃을 띄워 마시는 게 유행이랬지.’

하지만 비누 안에 꽃을 넣은 게 유행이라는 건 들어 본 적 없었다. 아마 이미 유행이 지났거나, 흔해진 걸 수도 있었다.

그레이스의 알 바는 아니었다.

왜냐하면 지금은 축제였다.

생각보다 축제로 들뜬 사람의 씀씀이는 컸다.

그레이스는 욕실에서 슬쩍 챙겨 온 에센셜 오일을 녹인 비누에 톡톡 떨어트리고 조금씩 소분해 여러 허브 잎을 섞어 각 몰드에 담았다.

그다음 위에 예쁘게 압화를 샥샥 얹고, 알코올 스프레이를 칙 뿌렸다.

클레타는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게 움직이는 그레이스를 동그란 눈으로 바라보았다.

“원래 수공예를 하시나요?”

“음, 취미로요.”

원래의 그레이스도 책갈피를 만들거나 압화를 즐기곤 했다.

그레이스는 그녀가 쌓아 둔 압화를 이런 식으로 이용해도 되나, 살짝 찔렸으나 괜찮을 것 같았다.

‘어쩐지 원래의 그레이스라도 이랬을 거 같거든.’

그런 확신이 들었다. 게다가 쓰지 않으면 언젠가 버려질 것들이었다.

그레이스와 클레타는 환기를 위해 창을 활짝 열었다.

“비누가 굳어 가는 동안, 포장을 준비해요.”

“네.”

그레이스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그 자리에 앉아 포장 리본을 금방 만들기 시작했다.

3단 리본, 두 가지 색 끈을 엮은 리본, 꽃 모양의 리본…….

클레타가 리본 2개를 만들 때 그레이스는 6개를 만들었다.

“……취미라고 하셨죠?”

“네.”

그레이스의 통통한 손은 상당히 야무졌지만, 그레이스는 그런 인식이 없는 듯했다.

그레이스가 클레타에게 물었다.

“얼마에 팔 생각이에요?”

“음…….”

클레타가 머뭇거리며 가격을 책정하려다가 그레이스에게 물었다.

“원가까지 생각하면, 아, 혹시 재료가 비쌌을까요?”

“전부 집에 있는 거 가져온 거예요.”

그레이스의 집은 공작가였다. 당연히 전부 최고급품이었다. 그녀는 이 부분을 생략하고 그냥 집에서 가져왔다고 설명했다.

‘허브티를 케이스째로 가져왔으면 바로 고급품인 걸 알아봤을 텐데.’

잎으로는 파악하기 어렵지만, 케이스는 딱 봐도 ‘나 고급품이오’ 하며 위용을 뽐냈다.

“그러니까 제가 가져온 재룟값은 크게 칠 필요 없어요.”

클레타는 그 말에 다시 가격을 매겼다.

“그러면, 대충 450젠이려나요.”

클레타의 말에 그레이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 900젠에 팔죠.”

두 배의 가격이었다.

“……네?”

상당히 비양심적인 가격 측정이었다.

“그건 너무 올렸는데요?”

클레타는 그러면 절대 팔리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그레이스는 절대 팔린다고 확신했다.

‘아까보다 훨씬 좋으니까.’

잠시 후, 그레이스는 완성된 비누를 틀에서 꺼내 향을 맡았다.

딱딱한 비누의 표면에서부터 허브와 오일이 어우러진 기분 좋은 향이 났다.

‘좋은 걸 넣어서 그런가 봐.’

그냥 물품도 아니고 정말 최고가 상품이었다. 사실 원가로 따지면 손해였지만 클레타는 절대 모를 일이었다.

그레이스는 흠, 하고 생각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다 팔리면 어쩔래요?”

“네?”

“그러면 다음에도 제가 하자는 대로 할 거예요?”

클레타와 그레이스가 만든 압화 비누는 수북했다. 그렇기에 클레타는 절대로 900젠짜리 비누가 판매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애초에 클레타가 450젠이라고 부른 것도, 그레이스가 가져온 것들이 비싸 보였기에 생각보다 높게 부른 것이다.

‘원래라면 200젠이라고.’

클레타는 하얀 가면 너머의 청록색 눈을 바라보았다. 처음 봤을 때는 몰랐는데, 이상하게 지금은 눈이 반짝이는 듯했다.

“……혹시 돈을 빌리라거나.”

“아, 그건 아니에요. 이 건물을 팔라거나 아이들을 넘기라는 것도 아니고, 당신의 몸을 넘기라는 것도 아니에요.”

그레이스는 그 외에도 클레타가 생각할 수 있는 부정적인 모든 이야기를 꺼내며 죄다 아니라고 부정했다.

클레타는 그녀가 생각할 수 있는 끔찍한 일이 차례차례 부정당하자, 대체 그럼 뭘 제안하려는 건지 몰라 두려움에 떨었다.

하지만 결국 고개를 끄덕이는 수밖에 없었다.

당연했다.

그녀가 지금 고를 수 있는 선택지는 없었다.

클레타가 고개를 끄덕이자 그레이스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다가 꽂혀 있는 식칼을 찾아 빼 잡았다.

“혹시 큰 물그릇 두 개 있어요?”

⋆★⋆

“어머, 무슨 향기지?”

무릇 축제는 음식이 잘 팔리기 마련이다.

그야 사람들이 많이 오가고, 그들을 붙잡기 위해서는 온갖 노력이 필요한데, 음식은 시각뿐 아니라 후각 또한 사로잡을 수 있기 때문이다.

“좋은 향이야.”

때는 점심이 조금 지난 후였다.

그레이스가 벤자민이 사 온 음식을 받아먹으며 느낀 건데, 이 축제에서 파는 음식은 기름지거나 달콤하고 자극적인 게 많았다.

그런 걸 먹고 나면 사람들은 본능적으로라도 깔끔하게 속을 씻어 줄 음식을 찾게 되었다.

음식은 아니지만 상큼하고 향기로운 향이 나는 곳에서 오색 빛의 투명한 방울이 두둥실 떠다니다가 팍! 하고 터졌다. 아이들이 까르르 웃는 소리가 들렸다.

“이렇게 후~ 하고 불어 봐.”

“후~”

그레이스는 축제에서 파는 저렴한 유리 반지를 들고 아이들에게 무언가를 가르치고 있었다.

아이들이 유리 반지에 입을 대고 ‘후’ 하고 바람을 불자 투명한 막이 생기더니 방울이 생겨나 하늘 위에 두둥실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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