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흑막 공작의 못난이 부인 (3)화 (3/131)

3화

하녀는 대답을 해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 머뭇거렸다.

“……너는 별관에 있는 이유가 나를 모시기 위해서가 아니라 감시하기 위해서였어?!”

“아,, 아닙니다.”

“그러면 얼른 내 질문에 대답하렴.”

하녀는 입을 꾸욱 닫았다가 결국 그레이스의 질문에 답했다.

“론델 운하에 봉사하시러 가셨습니다.”

“론델 운하.”

그레이스는 입 안에 구슬을 굴리듯,, 론델 운하를 되뇌었다.

“그곳에 혹시 성녀 아리아가 있나?!”

“오,, 오늘 신전이 론델 운하에서 대대적인 정화 의식과 봉사를 한다고…… 합니다.”

“…….”

성녀 아리아가 있다는 의미였다.

그레이스는 하녀를 보던 시선을 거두어 창 쪽을 바라보았다.

아무도 없는 정원과 옅은 자신의 잔상이 보였다.

“그렇구나.”

굳이 거울 앞까지 가서 제 외모를 또 확인할 필요는 없었다. 지금 또 거울을 본다고 해서 갑자기 외모가 달라졌을 리는 없을 것이다.

‘이런 외모를 가진 아내를 사랑하기는 힘들 테니까.’

그레이스는 검지로 제 뺨에 콕콕 박힌 주근깨를 쓸었다.

까슬까슬한 피부 결이 느껴졌다. 햇빛을 자주 보지 않아 피부의 색이 회색빛으로 칙칙했다.

하녀들이 열심히 정돈해 준 머리칼은 곱슬 기가 심해 이미 비죽비죽 튀어나오고 있었고, 옷은 아무리 고급진들 돼지 목에 진주목걸이였다.

<실제로 진주목걸이를 하고 있으니, 그 격언에 딱 맞는 꼴이네.>

머릿속에서 그녀를 비웃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렇지.’

실제로 그런 꼴이지 않나. 그레이스는 제 머릿속의 소리에게 공감했다.

“……음?!”

“마님?!”

퍼뜩, 그레이스가 정신을 차리자 하녀가 그녀를 걱정스레 바라보고 있었다.

“아, 아냐. 아무것도.”

하녀를 향해 괜찮다며 고개를 저었지만, 여전히 머릿속에는 이상한 소리가 남긴 잔상이 존재했다.

영 찝찝하고 불안한 소리였다.

‘내가 너무 몰입해서 그런 생각이 들었나?!’

그레이스는 아리아의 외모를 익히 알고 있었다.

실제로 본 적 없어도, 소설 내에서 그녀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매번 작가가 지문을 통해 찬양했기 때문이다.

깨끗한 눈처럼 새하얀 머리칼에 찬란한 태양 같은 금빛 눈동자, 티 없이 맑은 피부에 늘씬한 몸매.

아무튼 그레이스와는 정반대였다.

마치 벤자민이 아리아에게 끌리는 건 어쩔 수 없다는 것처럼.

하녀는 한참 동안 말없이 창문을 바라보는 그레이스를 지켜보며 어쩔 줄 몰라 했다.

창문 너머로 그 행동을 엿보던 그레이스가 입을 열었다.

“……결정했어.”

“무, 무엇을요?”

“운동을 해야겠어.”

“운동이요?”

“그래, 운동.”

냉정하게 운동을 해서 살을 뺀다고 예뻐질 외모는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의 몸은 건강이 다소 걱정되었다.

기껏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몸을 갖게 되었는데 제대로 살아 보지도 못하고 병을 얻고 요절하는 건 사양이었다.

‘게다가 지금 이 몸은 체력이 너무 없어.’

이 몸뚱이라면 몇 미터도 달리지 못하고 금방 바닥에 쓰러져 헉헉거리다가 호흡곤란으로 쓰러질 게 뻔했다.

이래서야 전생의 자신과 다를 게 없지 않은가? 물론 전생의 자신은 아예 걸을 수조차 없었다는 게 다르지만.

그레이스는 기왕 움직일 수 있는 몸을 얻은 거 건강하게 살고 싶었다.

건강한 몸, 건강한 정신으로.

그레이스는 체력 증진을 도모하며 살도 빼기로 다짐했다. 그녀의 목표를 위해서였다.

‘그리고 이혼을 하는 거지.’

그레이스는 오래 살고 싶었다.

벤자민은 이미 아리아와 만나고 있는 관계였으니, 그레이스가 언제 벤자민에 의해 죽을지 알 수 없었다.

더군다나 그레이스는 저택 밖을 나가지 않으니 현재 소설이 얼마큼 진행되었는지도 알 수 없었다.

‘내가 언제 죽을지 알 수 없으니 불안한데. 아니 원래 사람은 언제 죽을지 모른다지만.’

아무튼, 그레이스가 살기 위해서는 하루빨리 벤자민과 이혼해야 한다.

그래야 벤자민이 그레이스를 방해물로 인식하지 않을 테고, 그래야 쓱싹 죽이려고 하지 않을 테니까.

……그레이스가 죽은 원인이 벤자민인 게 확실하지는 않지만 말이다.

그레이스가 이혼 전에 다이어트를 하려는 이유는 간단했다.

첫째로, 이 모습 그대로 이혼을 하게 되면 ‘그 추녀가 너무 못생겨서 버림받았다.’라는 소문이 더 확산될 거 같았다.

‘날씬하기라도 하면 덜 비루해 보일 테니까.’

둘째로, 다이어트는 부유할 때 하기가 쉽다.

돈이 많고 사용인이 많으면 쓸데없는 것에 신경을 기울일 필요가 없었다. 비싼 식재료도 얼마든지 융통 가능하며, 언제든 운동을 할 수 있고, 따로 일을 할 필요도 없었다.

‘오로지 몸 관리에만 신경을 기울일 수 있는 환경이란 건 축복이니까.’

공작저에 있는 모두가 그레이스를 어떻게 생각하건 그녀는 공작 부인이었다.

그냥 공작 부인이 아니라 집안 내부의 일을 관리하지 않는 공작 부인이었다. 그레이스는 그래도 되나 싶었지만 주어진 안락함을 거부할 필요는 없었다.

‘물론 안주인이 저택을 관리하지 않는다는 건 그만큼 무능하다는 거지만.’

예전의 그레이스는 실제로 어땠을지 모르겠지만 지금의 그레이스는 무능한 게 맞았다.

저택 재정 관리를 하라고 해도 저건 숫자고 저건 표네, 정도밖에 알 수 없을 게 뻔했다.

“그러니까, 앞으로 식단 관리를 하고 운동을 해야겠어.”

“마, 마님.”

“진지해.”

그레이스는 결정했다.

살을 빼고, 벤자민과 이혼한 다음 이 파국에 가까운 스토리에서 벗어나 혼자서 오래오래 잘 살겠다고.

다이어트의 기본은 균형 잡힌 식사와 규칙적인 생활 그리고 적당한 운동이었다.

그레이스의 경우, 그간 활동량이 지나치게 적었으니 힘든 운동은 바로 시작할 수 없었다. 애초에 그녀의 최대 활동은 별관 뒤쪽 정원을 산책하는 거였다.

아기 사슴보다 못한 체력을 가진 게 바로 그레이스였다. 그녀에게 운동복 같은 건 필요하지 않았다.

애초에 이 세상에 운동복이란 개념이 존재하지도 않았지만 말이다.

“으음.”

그레이스가 거울에 자신을 비추어 보며 하녀에게 말했다.

“사이즈가 큰 옷 말고 딱 맞는 건 없을까? 있으면 부탁할게.”

“…….”

갑자기 손바닥 뒤집듯 바뀐 그레이스의 행동을 보며 하녀가 침을 꼴깍 삼켰다. 그레이스는 원래 자신의 몸이 드러나는 것을 극도로 꺼렸다.

제 몸을 꾸미지도 않았으며 가리는 데 급급했다.

갑자기 무슨 변덕이 분 건지, 달라진 그레이스의 행보에 하녀는 예의에 어긋난 행동임에도 제 주인을 빤히 바라보았다.

하녀의 시선을 눈치채지 못한 그레이스가 말을 이었다.

“만약 없으면 지금 있는 옷 중 몇 벌의 사이즈를 줄이자. 재단사를 불러와야 하나?”

“아예 새 드레스를 맞추실 건가요?”

“으으음…….”

그레이스는 잠시 고민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나에게 배당된 재정 상태가 괜찮으면 그래야겠어. 손이 빠르고 다양한 걸 만들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하녀가 그레이스의 눈치를 살피며 물었다.

“……평소에 부르던 분, 으로 부를까요?”

하녀의 목소리에서 조금 떨떠름한 감정이 묻어 나왔지만, 그레이스는 그 사실을 눈치채지 못한 채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게 좋겠지.”

‘새 재단사를 불러 이 모습을 아는 사람을 더 늘려 봤자 좋을 거 없으니까.’

그레이스가 표현한 ‘이 모습’에는 많은 의미가 내포되어 있었다.

‘……뚱뚱하고, 주근깨도 있고, 머리카락은…….’

그레이스는 꼬일 때로 꼬인 당근색 머리칼을 성의 없이 한번 그러쥐었다 떼어 냈다.

‘이런 모양이니까…….’

이건 지금의 그레이스의 생각이 아니었다. 이 육신에 남아 있는 감정 그 자체였다.

‘나는 움직일 수만 있으면 돼. 건강하기만 하면 되는데.’

대체 그녀는 자기 자신을 얼마나 끔찍하게 싫어한 건지, 그레이스는 다시 거울에 비친 모습을 빤히 바라보았다.

하녀가 그레이스의 눈치를 보는 것이 느껴졌다. 그레이스는 그 아이에게 이만 물러가라고 손짓했다.

그레이스는 방에 자신만이 남아 있단 사실을 확인하고 모든 창의 커튼을 내렸다.

그레이스가 빙의 직후부터 이렇게 바로 ‘그레이스’로서 적응할 수 있던 건 아니었다. 처음에는 온갖 부정적인 생각과 이유 모를 무력감 때문에 괴로워서 죽고 싶고,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겨우 그 고통에서 벗어난 다음에야 제 몸이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또 그다음에서야 이 공간이 제가 머물던 병원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그리고 그다음에야 거울을 봤지. 또 시간이 지나서야 여기가 소설 속인 걸 알았고.’

그레이스가 이 몸에 들어와 정신을 다잡은 후 늘 찾고 있던 게 있었다.

‘그레이스의 일기장은 대체 어디 있는 거지?’

그레이스의 집무실은 이미 샅샅이 뒤져 보았으나 아무 데도 없었다.

지금 그레이스가 갖고 있는 기억은 너무 흐릿했다. 지금이야 사람들과의 접점을 최소한으로 하고 있으니 들키지 않고 있지만, 시간이 길어질수록 한계가 드러날 것이다.

‘이혼하고도 이 저택에 있을 수는 없으니까.’

그렇다고 자신이 어떤 사람이었는지 하녀들에게 물을 수도 없었다.

그레이스가 지금 의존할 수 있는 것은 딱 하나, 이 흐릿한 기억 속에서도 떠오르는 ‘그레이스가 빼놓지 않고 쓰는 일기장’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흐릿한 기억력 덕분에 그 일기장을 어디에 뒀는지는 모른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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