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2
Epilogue
신은 존재치 않는다.
태석은 역사 개변의 문장으로서 그런 문장을 선택했다.
강신자인 태석은 신의 힘을 모두 잃었다.
유일신은 자신의 근본이던 신의 힘을 잃었다.
서로에게 숙적이던 그들은 힘을 잃고 평범한 인간으로서 시공의 축에서 주먹질을 하며 싸웠다.
피가 터지고, 비틀거리고, 넘어지고, 쓰러지고, 구토를 하며…… 계속해서 싸웠다.
처음에는 뭔가 말을 하면서 서로의 논리에 반박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시간이 갈수록 그들의 싸움은 처절하고 개싸움으로 변질되어갔다.
아아, 인간과 인간의 싸움은 이렇게 추잡하구나.
이렇게 본능에 의지하여 싸우는 싸움은 짐승과 다를 바 없구나.
태석은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면서 의식을 잃지 않고 계속해서 주먹으로 후려쳤다.
몸 그 자체는 약했던 유일신이었기에 가능했다.
목을 졸라 기절시키고, 태석은 유일신을 역사 개변의 안쪽으로 밀어 넣었다. 시공의 축 중심으로 밀어 넣어 역사 속의 일부가 되도록 했다.
유일신은 괴성을 지르며 말했다.
“미안해, 미안해, 미안해. 나를, 나를 내버려둬. 나는, 나는, 평범한 인간이 되기 싫어, 죽기 싫다고.”
“시끄러워.”
태석이 차가운 눈으로 말했다.
“너는 많은 이들을 한순간의 폭발을 일으켜 죽였다. 그리고 나를 전범으로 몰았어. 나는 모두의 불행에 분노했고, 나에게 덮친 누명으로 분노했어.”
그러고는 한숨을 뱉었다.
유일신의 모습은 지나칠 정도로 불쌍해 보였다. 추악하고 더러운 권력자가 모든 것을 잃으면 필시 이런 모습이 될 것이다.
“하지만…….”
태석은 쓰게 웃었다.
“너의 모습을 보니 그럴 마음도 사라지게 되었어.”
“그, 그러면 살려줄…….”
“아니, 너는 죽이지 않아. 하지만 평범한 인간으로서 살게 만들 거야. 모든 기억을 잃은 채 역사 개변 되어 평범한 인간이 된 너를 지켜볼 거다. 네가 나약한 인간이 된 모습을 지켜보고 비웃어 줄 거야.”
“그건 싫어, 싫다고. 나는 신이 되어야 해, 관리자가 되어야 해, 이 세상을 지배할 거라고!”
“그런 거 지겹지도 않아?”
태석이 차갑게 말했다.
“남들의 위에 군림하는 게 즐거워? 남들을 괴롭히고 죽이는 게 즐겁냐고.”
“……그래, 즐거워. 콜렉터들에게 불행한 과거를 심고 나를 바라보게 만들어 나의 부하들이 되게 하는 게 즐거웠어. 그런 게 나야. 나는 그러니 계속해서 신이 되어야 해. 남들의 위에 군림해야 해. 그게 내 존재 이유야.”
“그러니 그걸 못하게 하는 거야.”
태석이 쓰게 웃으며 그의 목을 부여잡으며 계속해서 말한다.
“나는 언제나 생각했어. 신들의 신화를 읽으며 신들은 과연 어떤 생각을 하며 인간들을 행복하거나 불행하게 하는 걸까, 그걸 고민했어. 그러면서 그들이 정말로 추구하는 게 뭔지 고민했어. 그리고 답을 냈어.”
그 답이 무엇일까.
하지만 지금에 있어서 그런 것은 중요치 않다.
“하지만 적어도 이것 하나는 알겠군.”
태석이 그를 시공의 축 중심에 밀어 넣었다.
“너는 적어도 신이 될 재목은 아니야.”
그 순간이었다.
노란 전기 같은 것이 태석의 몸을 휘감았다. 태석은 피식 웃었다. 그 전기 같은 것이 태석의 내부에 휘감겨 들어가고, 태석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이게 그 녀석이 바라던 거였나.”
태석은 쓰게 웃었다.
토르의 힘이 태석의 몸에 들어왔다. 아니, 토르의 힘이 아니다.
태석은 태석 그 자체로 신화를 만든 것이다. 유일신을 죽인다는 신화를, 역사가 개변 되었기에 시작점이라고 할 수 있는 현시점에서.
어쩌면 태석은 강신자가 아닌 신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힘을 빌리는 게 아니라, 그 자체로 신이 된 것이다.
태석은 눈을 감고 역사 개변이 끝나기까지 아무 곳에나 걸터앉아 기다렸다.
그리고 역사 개변이 모두 끝나고, 태석은 현세에 도달했다.
긴 여행이 끝을 고했다.
칸타로스.
그 안에 태석과 대한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대한이 주린 배를 부여잡으며 말했다.
“이야, 헌터 일도 끝났으니 이제 고기를 먹을 시간이다!”
“또 몇 달 동안 폐인 생활을 즐겨야 하려나.”
S랭크 헌터 태석과 D랭크 헌터 대한.
태석은 분류상으로 전기를 다루는 헌터로 불리고 있다. 가끔 변신 능력이나, 뼈로 만들어진 배를 불러오는 등 위급한 순간에 기괴한 힘을 쓴다고 해서 많은 이들이 그의 진짜 능력이 무엇일까 궁금해하고, 겐세의 경우 대놓고 실험을 해보겠다고 태석에게 매번 실험 동의서를 내는 형국이다.
이번에는 며칠 동안 헌터로서의 사냥 작업을 끝내고, 흑수정을 정화한 뒤에 칸타로스에 방문한 것이다.
‘흑수정은 여전히 있군.’
모두 다 기억하지 못하고 있지만, 태석 혼자 역사 개변 이전의 일들을 기억하고 있다. 그때 있었던 많은 일들을 떠올렸고, 지금과 달라진 것은 유일신이 없다는 것 하나뿐이라는 걸 알 뿐이다.
태석은 햄버거를 입에 물고 휴대폰을 만지작거렸다. 대한 또한 칸타로스의 햄버거를 먹으면서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대한이 물었다.
“뭐하는 거야? 설마 여자친구?”
“그건 아니야.”
“그러면 누군데.”
“내 여동생.”
“크, 동생 사랑 한번 엄청나네. 그래서 또 그거야?”
“……응, 내가 생각하는 게 맞다면.”
태석은 최근 작업하고 있는 일이 있었다.
신이 존재하지 않는 세상이었기에, 신화가 많이 사장된 감이 있는 세상이 되었기에 분명 어딘가에 남아 있는 신화들을 복원하는 일이었다. 그 과정에서 스스로 기억나는 신화들을 집필하고 구성하여 박물관 같은 곳에 기증하는 일을 하고 있다.
분명 토르나 헬라 같은 신들의 신화가 이 세계에도 존재는 하나 그것이 역사 개변 이전 때처럼 그렇게 마구잡이로 알려진 이야기거나 한 것이 아닌 탓이다.
‘뭐, 내가 없앤 거니까 내가 되살려야겠지.’
그런 사명감으로 하는 일이지만, 시연이라던가, 현지라던가, 강지라던가…… 그런 사람들이 보기에는 그저 기괴한 취미로 알 뿐이다.
태석은 몸을 일으켜 대한에게 여동생을 만나러 가겠다고 통보하고 밖으로 나왔다.
밖은 공기가 제법 따스했다. 여름이라 그런 거다. 태석은 조금 더웠기에 땀을 흘리며 천천히 걸어갔다. 여동생은 이 근처 어딘가에서 자신을 기다린다고 했다. 그러니 만나러 가는 거다.
여전히 이 세계에서도 태석에게 부모님은 살아 있지 않다. 그 점이 조금 슬프고 외로웠지만, 여동생 태희가 있으니 문제는 없다. 사랑하는 가족이 있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다.
태석이 쓰게 웃었다.
“왔네.”
“그래, 왔어.‘
태석은 태희의 모습을 보며 활짝 웃었다.
“많은 일들이 있었던 느낌이야, 오빠.”
“그게 무슨 소리인데?”
“그게…… 지금의 일이 아니라 아주 오래전에 어떤 일이 있었던 느낌이야.”
“어떤 일이라…… 무슨 말이야?”
태석의 목소리가 살짝 떨렸다.
“분명 지하철에서 여자아이 하나와 오빠가 와서 몇 가지 의논을 하던 일이었던 것 같아. 잘 기억은 안 나는데, 그때 엄청 슬펐던 게 생각이 났어.”
“그래? 그거 신기하네.”
태석은 쓰게 웃었다. 기억할 리 없을 텐데, 이럴 때면 또 희망고문을 하게 된다. 태석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어서 가자.”
“그래, 오빠.”
그리고는 태석이 서둘러 몸을 돌려 움직이려 했고, 그때 태희가 외쳤다.
“잠깐, 태석 오빠!”
“……?”
태석이 고개를 돌려 태희를 보았다. 태희가 살짝 울먹이는 표정으로 말했다.
“살아 돌아와서 기뻐.”
하하.
웃음이 살짝 난다.
태석은 그런 상태로 태희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살아 돌아왔어. 마음껏 기뻐해 줘. 언제, 어디서든, 설령 이 역사가 변하기 전이든, 마음껏.”
그래.
잘 된 일이다.
태석은 그럭저럭 일이 잘 풀려서 정말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유일신이라는 세계를 위협하는 위기도 사라졌고, 수많은 동료들도 그대로이고, 관계 또한 그대로이다. 자신 또한 죽지 않았다.
가끔 쓸쓸할 때도 있다. 자신이 기억하는 일들을 그들은 조금씩 다르게 기억하고 있을 때 절실히 느껴진다. 태석은 그럴 때마다 생각하곤 한다.
분명 사라진 역사이며, 사라진 운명이며, 태석 혼자 기억하는 일이지만, 분명 그것은 있었던 역사이며, 있었던 운명이며, 태석이 분명히 기억하고 있는 일이라고.
그러니까 그렇게 슬퍼할 필요 없다고.
태석에게는 수많은 소중한 인연과 수많은 일들이 그를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그때의 일이 끝났다고 해서, 변해서 사라졌다고 해서 자신의 앞으로의 미래가 사라진 것은 아니니까.
영원히 계속될 테니까.
그러니 태석은 걸어갔다.
앞으로, 더욱더.
<헌터, 모든 신을 받다 - 완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