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1
101. 세계 대전 이후의 무기들
신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유일신도, 강신자도, 신화도 존재하지 않는다.
다른 말로, 토르도, 헬라도, 로키도, 오딘도, 그 어떤 것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런 선택을 한 것이다.
어쩌면 자기 자신조차 무너질지도 모르고, 세상의 근본이 무너질지도 모를 그런 문장을 쓰기로 한 것이다.
스카이가 조심스레 말했다. 확인 차원에서.
“그게 너의 문장이야?”
“그래.”
“확실해?”
“확실해. 지금에 있어서는 내 삶에서 가장 확신을 가지고 하는 말이야.”
“하하…….”
스카이가 미소를 지으며 문장을 써넣었다.
“대단하네, 너는.”
“그거 칭찬 고맙네.”
“이렇게 역사 개변의 문장을 ‘신은 존재치 않는다.’ 라고 쓰면 어떻게 되는지 알고 있지?”
“그래, 이 세계의 근간이 뒤틀리는 거지.”
세계의 역사 속의 고대의 인류의 존재가 완벽히 사라지고, 역사 근본이 뒤흔들린다. 그 정도로 흔들린다면, 유일신은 고사하고 이 세계에 인류가 존재할지도 의문이 된다. 그런 선택을 할 정도로 유일신의 존재를 없애야 하는가? 인류를 포기하면서까지?
“그리고…… 인류는 그렇게 약하지 않아.”
“인간을 믿는 거야?”
“그래, 나는 인간을 믿어.”
태석이 굳세어진 표정으로 미소를 지었다.
“인간은 신이 없다고, 관리자가 없다고 호락호락하게 사라질 그런 존재들이 아니야. 특별하고 강한 존재들이라고.”
“그렇게까지 말한다면, 별수 없네.”
스카이가 피식 웃으며 펜을 들어 올렸다. 흑색의 잉크가 뚝뚝 떨어졌다. 그리고 역사 개변의 책, 크리스반에 문장을 적는다.
[신은 존재치 않는다.]
그 순간, 스카이가 멈춘 듯했다. 쿵 하고 신체의 일부가 정지된 느낌이 들었다. 태석이 말했다.
“이제 사라지는 거구나.”
“그래, 바라왔지? 내가 이렇게 되는걸?”
“솔직히, 이전까지는 그렇게 되었으면 했어. 모든 일을 제치고 네가 사라졌으면 했어. 나의 소중한 사람들을 많이 괴롭히고, 실제로 죽이려고까지 했으니까.”
“그렇게 말해도 할 말은 없지. 솔직히, 전범은 나야. 태석, 너는 전범이 아니야.”
“하지만…….”
태석이 미소를 지으며 손을 내밀었다.
“지금에 이르러서는 네가 중요한 사람이 되었어. 잊지 않을 거야, 이 희생을.”
“그…… 래.”
스카이가 손을 힘겹게 뻗어 악수를 청한다. 그리고 그 손이 맞닿을 시점, 스카이의 몸이 서서히 가루가 되어 사라지기 시작했다.
새하얀 가루였다.
지하 세계, 신들의 사후 세계, 그 푸르고 아름다운 동산에서 스카이의 것이었던 가루들이 일제히 흩어져 아름다운 진풍경을 만들었다.
태석은 미소를 지으며 눈이 서서히 감기는 것을 느꼈다. 지하 세계에 올 수 있던 것은 스카이가 있었기 때문이다. 스카이가 초대한 게스트의 권한으로 들어온 것이기에 태석은 쫓겨나고 있던 것이다. 어디로 쫓겨나는 걸까, 어디로 향하는 걸까, 그의 몸은.
태석은 지구일 것이라 생각했다. 자신이 나고 자란 그곳 말이다.
하지만 전혀 아니었다.
그가 향하게 된 곳은 강신 세계.
강신자로서의 세계, 그곳으로 육체가 잠시 이동되었다.
아아.
태석은 눈을 떴다. 검은 하늘, 그리고 별들이 서서히 사라지기 시작한다. 저 별들은 분명 어딘가 세계의 밖까지 쫓겨난 신들의 모습이었겠지. 그 별들이 사라진다는 것은 신들이 서서히 사라지기 시작한 것이다. 신은 존재치 않는다는, 자신이 개변한 역사 탓에 그 아귀를 맞추기 위해 신들이 하나둘 소멸하는 것이다.
강신자로서의 자신도 소멸하는 것일까.
태석이 눈을 감았다가 떴다. 눈앞에 토르가 있었다. 하얀 안개가 되어가고 있는 토르가 보였다.
토르가 말했다.
“멋있는 짓을 벌였더군.”
“미안.”
태석은 솔직히 사과했다.
토르가 화났다고 생각했다. 왜냐면, 자신이 그들의 존재를 지워버렸으니까. 토르 또한 이제 사라지고,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것이 되어갈 것이다. 태석은 쓴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토르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미안해할 필요는 없어. 어차피 이제는 사라져도 되겠다고 생각하던 참이니까.”
“하지만…….”
“그리고 너는 내가, 아니 우리 고대의 인류가 미워서 그러는 것이 아니다. 유일신, 그러니까 이 세계의 악을 없애기 위해 우리를 들어내는 것에 불과해. 그러니 이해한다. 이미 사라졌지만, 다른 신들도 그 말에 동의했어. 그러니…….”
토르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너는 잘해준 거다. 옳은 선택을 한 거야.”
“그렇게 말해주니 고맙네.”
“그보다 문제는 너다. 알고 있나? 지금 상황을?”
“신은 존재치 않는다. 그렇다는 말은, 강신자가 없다는 거지. 신이 없으니 신의 힘을 불러들이는 능력이 없는 거야. 그렇게 되면…….”
“그래, 은호가 노인을 덮치던 때 너는 달려들고 대한은 달려들려다가 멈추고, 태석 너는 강신자로서 각성하지 못하고 죽겠지. 소멸하는 거다. 그래도 괜찮은가?”
“이제 와서 그런 건 상관없어.”
태석이 미소를 지었다.
“그저 나는 모두를 지키고 싶을 뿐이야.”
“지독한 이기주의자군.”
“그렇게 말해도 할 말은 없어.”
“그렇다면 너의 선택을 망칠 수밖에 없겠다.”
“뭐?”
“본래라면 지금의 너는 강신 세계에서 소멸하고 새로운 태석으로서 재구축 될 것이다. 하지만…… 그것을 막겠다.”
“뭐?”
“새로운 태석의 탄생 자체를 막고, 현재의 태석, 그러니까 역사가 개변되기 이전의 태석을 어떻게든 현세에 유지시켜서 네가 소멸하는 것을 막겠다.”
“그게 무슨…….”
말도 안 된다. 그렇게 되면 역사는 엉망진창은…… 되지 않지만, 적어도 태석이라는 존재가 엉망진창이 된다. 현세의 태석이 둘이 되거나, 아예 없거나, 아니면 이상하고 기괴한 인간관계로서 존재하게 된다.
태석을 기억하지 못하는 여럿이 있을 것이며, 그러면서도 태석이 있던 빈자리를 의아하게 여기는 그런 상황이 온다는 거다.
그런 건…… 솔직히, 태석이 아예 죽는 것보다는 나을지도 모르지만…….
“나는 혜택받지 않아. 나는 그저 모두가 행복하다면…….”
“그러면 곧바로 반박하도록 하지.”
토르가 미소를 지으며 태석의 배를 툭 쳤다.
“나는 너의 행복을 바란다. 그거면 돼.”
배를 친 그 순간이었다.
세상이 뒤집힌다.
그런 착각이 들었다.
하지만 착각이 아니다.
쿵!
실제로, 태석은 역사 개변에서 제외되어 현세에 남는 상황에 도달하기 시작했다.
태석이 어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고 갑자기 사라진 강신 세계를 찾기 위해 눈을 굴렸으나 보이는 것은…….
“맙소사.”
기괴하게 변형되고 있는 시공의 축이었다. 역사가 개변되는 중간에 역사 개변에서 제외된 태석이 보게 되는 광경이었다. 태석은 세상의 시간도, 공간도, 운명도, 모든 것이 뒤틀리고 뒤바뀌는 현상을 보며 허탈하게 웃었다.
“하하…… 뭐야, 이게.”
태석이 확신했다.
“이런 거 게임이랑 다를 바 없잖아.”
게임처럼, 프로그래밍을 디버깅하는 듯한 모습을 보며 태석은 스카이가 종종 말하던 단어를 떠올린다.
“관리자…… 인가.”
관리자.
그 존재가 절실히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태석은 계속해서 뒤틀리는 시공의 축에서 무언가 목소리를 들었다.
고개를 돌려 보니 시공의 축 중심에서 남자 하나와 여자 하나가 대화를 하고 있다. 손가락으로 무언가를 열심히 조작하면서.
[한혁, 한혁, 제대로 되어가는 거 맞아?]
[그래, 역사 개변의 프로그래밍은 정상인 상태다. 그럭저럭 문제없이 진행되고 있어.]
[그보다 퀘스터…… 그러니까 엄태석이라고 했던가? 잘도 이런 상황을 이끌었네.]
[이미 프로그래밍 되었던 상황들이니까. 모두 우리 예측 내였지만, 잠깐.]
[뭐야, 저게.]
[태석, 태석이 역사 개변의 외벽으로 도주했군.]
[어떻게 하면 좋을까?]
[우리 목소리도 전부 듣는 모양이군. ……뭐, 상관없나. 어차피 이번 사건이 끝나고 퀘스터인 태석이 퀘스트를 완료하면, 세계의 끝에 도달할 녀석이었으니까. 세계의 끝의 멤버가 더 늘어나면 우리에게 있어서는 좋은 일이지.]
[일단 무시할까?]
[그래, 그렇게 해. 우리는 우리의 일에 집중한다. 그리고…….]
태석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상황을 지켜볼 때였다. 한혁이라 불린 차갑고 매서운 눈의 남자가 시공의 축 중심에 선 채 태석을 힐끔 보다가 말했다.
[뭐, 나름대로 이것도 시스템 범위 내의 일인 것 같으니까.]
그 순간이었다.
쿠구구구구궁-!
시공의 축을 비틀고 어떠한 것이 튀어나왔다. 아니, 어떠한 것이 아니다. 태석이 아주 잘 아는 녀석이다.
유일신.
날카로운 인상에 여성스러운 외모가 돋보이는 남자 모습의 신, 유일신이 비틀거리며 태석을 부르짖었다.
“태서어어어어어어어어억!”
“그래, 왔구나.”
태석은 한혁이라 불린 남자와 여자가 어느새 모습을 감춘 것은 무시하고, 시공의 축에 서 있는 유일신과 자신을 인지했다. 유일신을 보며 말했다.
“유일신, 이제부터 마지막 싸움의 시작이다.”
“닥쳐, 닥쳐! 네가 다 망쳤어! 감히 역사 개변을 해내다니. 이런 걸 예측 못 한 건 아니지만, 미친 짓을 벌였어! 그런 역사 개변을 하는 새끼는 상상도 못 했다!”
“그래, 신은 존재치 않는다, 제법 운율이 좋은 문장이지?”
“지랄하지 마! 너 때문에 신은 물론이고, 이 세계 자체의 근본이 뒤틀리게 생겨버렸어! 어떻게 할 거냐, 어떻게 할 거냐고! 신이 없다면, 인류도 존재하지 못할 거다. 그리고 그 어떤 생명체도 이 우주에 존재하지 않을 거다!”
“그런 거 전부 헛소리야.”
태석이 단호한 표정으로 말했다.
“인간은 그렇게 약하지 않아.”
“어찌 됐건.”
유일신이 히죽 웃으며 손을 뻗었다.
“이 시공의 축에서 역사 개변에서 제외된 것은 나와 너뿐. 그러니 너를 죽이고 내가 유일한 신이 될 거다. 너는 안 좋은 선택을 했어. 나에게 네가 패배하여 죽으면, 세상에 남는 신과도 같은 존재는 나뿐이 되니까.”
“아니, 잘못된 선택을 한 것이 아니야. 왜냐면…… 나는 너를 이기고 너를 다시 역사 개변의 현장으로 밀어 넣을 거니까.”
“그렇게 안 될 거다.”
유일신이 주먹을 내뻗어 힘을 사용하려 했다. 하지만 불가능하다. 당황했다. 대체 무슨 일인지, 힘을 어째서 쓸 수 없는 건지, 자신의 힘이 어디로 간 건지. 관리자의 힘을 빌려 쓸 수 있는 자신의 유일무이한 권능이 어째서?!
태석이 마찬가지로 강신을 못 하는 상황인 것을 파악하고는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이제부터 주먹질의 시작이다.”
“뭐? 뭐? 내 힘이, 내 힘이 어째서…….”
“신은 존재치 않으니까 신의 힘이 없는 거야. 우리는 그 어떤 힘도 없이 주먹과 발로 싸울 수밖에 없어. 개싸움의 시작인 거지.”
“그게 무슨…….”
“예전에도 누군가가 말했잖아? 세계 대전 이후에는 사람들이 돌멩이와 둔기를 들고 싸울 거라고. 물론 지금은 그런 도구조차 없지만.”
“시끄러워!”
유일신이 느릿느릿하게 달려갔다. 인간과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태석도 평소보다 몸이 무거운 것을 깨달으며 싸울 태세를 갖췄다.
유일신과 태석의 지나치게 원시적인 격투가 시작되는 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