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0
100. 신은 존재할까?
가즈 나이트.
신의 기사단.
태석을 비롯하여 태석에게 도움을 받거나 어떠한 계기로 연이 생긴 존재들을 어느새부터인가 가즈 나이트라는 명칭으로 부르기 시작했다. 신의 힘을 쓰는 태석의 동료들이라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대한은 전투를 하던 중 그런 생각이 떠올랐다.
만약 태석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자신은 어떤 삶을 살았을까. 이런 위험을 겪지 않아도 되지 않았을까. 어쩌면 편안하고 안락한 삶을 영위하지 않았을까.
하지만 고개를 저었다. 눈앞의 적에 집중했다. 공격을 피하고, 연속해서 타격을 먹였다. 흑마법이 제법 통한다. 흑마법에 맞은 자로부터 흑색의 연기가 대한에게 파고들었다. 대한의 몸의 잔상처가 빠르게 치유되었다.
에너지 드레인.
이제 그런 것도 쓸 수 있게 되었다.
대한이 미소를 지으며 싸우고 있는 태석의 동료들에게 소리쳤다.
“우리는 시선을 끕니다! 콜렉터들과 오크가 죽어서 생긴 언데드들과 싸웁니다! 그리고 승리합니다! 태석이 지하 세계로 갈 때까지 버티기만 해도 성공이에요!”
“네!”
“좋아, 그럼 해볼까.”
“알았어요!”
“자신 있어요!”
“알겠다.”
“알겠습니다아~!”
“……네!”
성시연이, 고란 홀이, 강세희가, 견현지가, 겐세 노르도가, 하레니아 크웰이, 그리고 강지가 각자의 방식으로 대답했다.
이곳에 없는 엄태희나, 이지석, 한세연 또한 마찬가지의 대답을 했을 것이다.
그 대답을 들은 대한이 서둘러 흑마법을 준비하며 언데드 군단과 그 중심에 있는 두 명의 콜렉터들과 세킨 시레나를 보며 달려들었다.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7명의 기사들과 군대의 격돌이었다.
“드디어인가.”
그 격돌을 지켜보던 태석이 스카이에게 말했다. 스카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드디어야. 이제부터 본격적인 진엔딩 루트에 들어가는 거야.”
“진엔딩? 무슨 소리야, 게임도 아니고.”
“혹시 모르지. 이 세계는 누군가에 의해 조작된 세계이고, 우리는 게임처럼 시뮬레이트 당하는 것일 수도.”
“예전에 말했던 음모론이구나.”
“그래, 네가 한창 낭떠러지 밑에서 난동을 부릴 때 내가 주장하던 이론이지.”
“그때는 말도 안 되는 개소리라고 생각했어. 하지만…….”
태석이 조심스레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는 말이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해. 느껴지거든, 무언가가.”
“저스트 필링이라는 거야?”
“그렇게 말하니까 신빙성이 없는걸. 그보다 너, 영화도 본 거야?”
“섹스하는 영화는 전부.”
“그 영화에 섹스가 있었던가?”
“10초 정도 묘사가 있었어. 슈퍼맨과 그 여자친구가 욕조에서.”
“그걸 기억하는 네가 신기하군.”
“뭐, 나는 사춘기 소년보다 성욕이 강했을 때니까.”
“하긴, 악마니까. 그러면 가자.”
태석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길을 우회해서 가기로 했다. 우주선 내부에 에덴의 흔적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겐세가 직접 찾아낸 정보이니 확실할 것이다. 에덴에 대해서는 성천주들이 확실히 정보를 잘 알고 있다. 태석이 서둘러 이동했다.
에덴으로.
우주선 내부는 깜깜했다. 보이는 것이 없었지만, 태석이 적당히 푸른 번개를 몸에 둘러 자신을 발광하여 주변을 비추었다. 그제야 앞이 보이는 스카이가 콜록댔다.
“왜 이렇게 기침을 해?”
“그야 먼지가 많아서.”
“그보다 어디에 있을까, 에덴.”
“대충 이쯤일 것 같은데.”
얼마나 걸었을까. 5분도 되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우주선 밖은 현재 가즈 나이트와 세킨 시레나의 군단과의 전투가 거세다. 태석은 문득 가즈 나이트들 중 일원이 죽었을지도 모른다는 안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하지만 고개를 저었다. 죽지 않는다. 태석의 동료들은 그렇게 약하지 않다. 분명 잘 싸우고 있을 거다. 그렇게 믿을 수밖에 없다.
이제 와서, 최후에 와서 누군가가 죽는다면 슬프니까.
태석이 그렇게 생각할 때.
팟!
푸른 불빛이 들어왔다.
태석이 고개를 들어 그곳을 보았다. 그곳에는 어떤 인간이 보였다. 남자도 여자도, 노인도 아이로도 보이지 않는 존재.
에덴.
그 에덴이 큐브 형태의 푸른 기계에서 홀로그램 형태로 반신이 드러난 채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당신이 어째서 찾아왔는지 저는 알고 있습니다.]
에덴의 말에 태석이 미소를 지었다.
“그래, 너는 고성능 분석 특화 장치니까.”
[그리고 당신이 해결하려는 위기의 해결책이기도 하지요.]
“그래, 알고 있겠지.”
[어서 물어보십시오. 당신의 선택을 존중합니다.]
“에덴, 그 전에 물어볼 것이 있어.”
[……무엇을 말입니까?]
에덴조차 눈치채지 못했다는 느낌이다.
“이 세상에는 관리자라는 것이 존재한다고 들었어.”
[관리자……? 그게 무엇입니까?]
“세계를 만들고, 부수는 것이 용이한 자. 유일신이라는 세킨 시레나보다 더욱 상위에 존재하는 자. 유일신조차 그들의 앞에서는 한 명의 피조물에 불과하다고 해. 알고 있어?”
[금시초문입니다. ……그보다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뭐가?”
[신들의 위에 있는 존재라니. 그렇다면 그 존재들보다 상위의 존재들도 있고, 끊임없이 이어질 것입니다. 그런데 굳이 그 상위 존재들을 알아야 할 필요가 있습니까? 당신들은 당신들의 삶을 사는 것도 바쁜데?]
“그렇긴 하지. 하지만…….”
태석이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우리를 이렇게 불행하거나 행복하게 만드는 이유를 알고 싶으니까, 그러니까 신을 알고 싶고, 그 신보다 위의 존재를 알고 싶고 하는 거야. 우리는 끊임없이 위를 알고 싶어 해. 그 끝이 있는지도 모르지만, 반드시 알고 싶은 거야.”
[그렇군요. ……이 정보 또한 저의 전뇌 세계에 등록하겠습니다.]
“전뇌 세계라……. 아직도 만들고 있는 거야?”
[아주 중요한 기록이니까요.]
“그보다 잔말이 길어진 느낌이네.”
[인간 사이의 대화는 이렇게 쓸데없는 내용들로 가득 찬 커뮤니케이션의 결정체라고 들었습니다.]
“그렇지. 하지만…… 이제 시간이 없어.”
[예, 알겠습니다.]
“지하 세계로 가는 법을 알려줘.”
[죽어주십시오.]
“뭐?”
[죽어야 갈 수 있는 곳입니다. 심장을 찔러 피를 바치십시오.]
그렇게 말하는 에덴은 조용히 은은한 미소를 짓고 있어 더욱 두렵게 느껴졌다. 심리적인 공포심이 자극되었다.
태석이 자신의 속성단검을 들어 올렸다. 그리고 왼쪽 가슴팍, 심장 부근에 들이댔다. 속성 단검이 찌지직거리는 비명이 이제는 듣기 싫었다. 미소를 지으며 눈을 감았다.
에덴에 도달했다. 그리고 지하 세계로 가는 법을 알려달라 했다. 에덴은 태석의 목숨을 바치라고 했다. 그렇기에 태석은 심장을 찔러 죽고자 했다.
그렇게 거리낌 없이 죽으려는 태석을.
“잠깐.”
스카이가 멈춰 세웠다.
“왜 그러지? 어서 지하 세계로 가야 하잖아?”
“그 전에 방법이 하나 더 있어.”
스카이가 에덴을 보며 말했다.
“에덴이라고 했지? 나는 지하 세계의 주민이야.”
[죽었습니까?]
“그래, 악마로서 완살을 당했어. 지금은 잠깐 게스트의 권한으로 이곳에 온 거야.”
[그렇군요. 그러면 돌아가야 하겠군요.]
“그래서 나는, 태석을 게스트로 지하 세계에 들어갈 생각이야.”
[게스트로……?]
“가능하지? 그러면 태석이 지하 세계로 가는 것이 불가능한 이야기는 아니지?”
[그렇긴 합니다. 하지만…….]
“오케이. 어떤 한계가 있는지는 알아. 그 해결책도 알고 있고. 그러면 에덴, 부탁할게. 태석을 게스트로, 나를 지하 세계로 가는 방법을 알려줘.”
[알겠습니다. 하지만…….]
“…….”
스카이가 에덴을 노려보았다. 에덴이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이것이 바로 희생이라는 것이겠지요. 악마가 그런 것을 한다는 것이 이해가 가지는 않지만…… 이해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저는 고성능 분석 특화 장치, 에덴이니까요.]
에덴이 그리고는 미소를 지으며 스카이와 태석에게 손을 뻗었다.
[그러면 이 방법을 따라 하십시오. 태석을 게스트로, 스카이를 지하 세계로 돌려보내는 방법이니까요.]
그 방법을 따라 했다.
태석은 서서히 의식이 끊기는 것을 느꼈다. 아니, 다른 세계로 이동된다는 느낌이다. 차원을 이동하는 느낌이 바로 이런 것일까. 그리 유쾌한 감각은 아니다.
어지럽고, 메스껍다.
그리고 눈이 감기고, 뜬 순간.
태석은 자신이 지하 세계에 왔다는 것을 깨달았다.
“여기는……?”
스카이가 미소를 지으며, 태석을 올려다보면서 말했다.
“지하 세계. 온 것을 환영해.”
지하 세계는 푸른 동산 같았다. 초록색, 푸른색, 붉은색, 가지각색의 꽃과 풀들이 무성했다. 나무 한 그루가 이 동산의 중심에 존재했다. 그 나무 밑에는 책 한 권과 책상 하나가 놓여 있었다. 태석이 말했다.
“여기가 지하 세계야?”
“응, 방금 말했듯이 이곳이 지하 세계. 신들의 사후 세계.”
“그렇구나.”
“왜? 이상하냐?”
“응, 조금.”
태석이 쓰게 웃었다.
“신기할 정도로 익숙해.”
“하긴, 그렇게 느껴질 수도 있지. 신들의 후손이 너희나 다름없으니까. 그 고향을 보는 느낌일지도.”
스카이가 서둘러 걸어갔다.
“어서 가자, 저 나무가 있는 곳으로.”
나무가 있는 곳이라……. 저 중심에 있는 책이 놓여 있는 나무를 말하는 것인가? 어쩌면 저곳에 놓여 있는 책이 역사를 개변할 수 있는 책일지도 모른다.
“저 책이 설마…….”
“그래, 크리스반. 역사가 적혀 있고, 펜을 통해 역사를 수정할 수 있는 책이야.”
“그렇구나. 어서 내가 써야겠어.”
“아니, 쓰는 건 나야.”
나무 근처에 도착했다. 태석이 물었다.
“그게 무슨 소리야. 문장을 쓰는 건 너라니?”
“당연하지. 너는 게스트니까.”
“잠깐, 그러면…….”
스카이가 자신의 머리칼을 잘랐다. 짧은 단발이었다. 어린 소녀라 그런지 단발이 더욱 잘 어울렸다. 태석은 스카이를 내려다보았다. 스카이는 뭔가 결심한 표정이었다. 불길했다. 꼭 태석 자신의 표정을 보는 것 같았다. 어느 때냐면, 목숨을 바쳐서 남을 구하려 할 때 누군가가 뭘 할 거냐고 물을 때의 그런 표정이었다. 태석은 남들이 자신을 어떻게 느꼈는지 이해했다.
“나는 이 머리칼을 바쳐 펜을 얻을 거야. 그리고 네가 원하는 문장을 쓸 거야. 그리고 그 대가로 내 존재를 소멸시킬 거야. 이 세계에서 영원히.”
“……어째서 그런 짓을.”
“당연히 너를 보고 배웠으니까.”
“나쁜 것을 배웠군.”
“네가 많은 사람들을 위해 세계의 적이 되어서라도 싸우는 모습을 보았어. 많은 세계를 지키기 위해 자신의 존재를 소멸시킬 각오로 싸우는 것을 보았어. 그리고 거리낌 없이 죽으려는 것을 보았어.”
“그만해.”
하지만 스카이는 계속해서 말한다.
“나도 그러고 싶었어. 나도 목숨을 바쳐서 뭔가 뜻깊은 일을 하고 싶었어. 나도 세상을 구하고 싶어. 너처럼, 너만큼은 아닐지라도 너처럼 멋지게.”
“그만해.”
“웃기지? 악마라는 존재가 그런 짓을 하는 게. 그렇게 해서 세상을 구하려 하는 게. 결국 망하게 하는 데에 나도 한몫했으면서, 이제와서 박쥐처럼.”
“…….”
“그만하라고 하지 않는구나.”
“알고 있으니까.”
“무엇을?”
태석이 살짝 울먹이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네가 내 말을 이제 안 들을 거라는 걸.”
“그래, 알고 있네. 그러니까 네가 쓰고 싶은 문장을 말해.”
태석은 눈을 감고 생각했다.
이 문장을 쓰면 세상은 이제 돌이킬 수 없다, 역사가 개변되어 그 어떠한 세상으로 일변할지 알 수 없다.
어쩌면 태석 혼자 행복해질 수도, 세계가 평화로워질 수도, 아니면, 세계가 멸하고 태석 또한 불행해질 수도 있다. 그 어떤 미래도 다가올 수 있다. 그렇기에 두려웠다.
과연 자신의 생각이 맞을까.
지금 하고 있는 것이 옳은 판단일까.
정말로 옳을까?
“맞을 거야, 너의 생각이.”
아아, 스카이의 말을 들으니 자신감이 생긴다.
맞을 것이다.
분명히.
태석이 그렇기에 눈을 감았다가 뜨면서 말했다.
“신은 존재치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