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 모든 신을 받다-99화 (99/102)

# 99

99. 형제에게 바치는 이야기

트럭의 앞쪽 칸은 연기가 자욱했다.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았다. 가끔 스파크 같은 것이 튀는 것이 불안감을 증폭시켰다. 스카이가 태석의 뒤에 숨은 채 고개만 내밀어 차량 안쪽을 보았다.

“……안 터질까?”

“안 터져.”

“그래도 혹시나…….”

“혹시나 터져도 안 죽어.”

“너는 안 죽지만, 나는 죽는다고!”

스카이가 한소리 했다. 태석이 피식 웃으며 반론했다.

“알고 있어.”

“……나 참.”

스카이가 어쩔 수 없다는 듯 성큼성큼 걸어가 트럭 안쪽의 기계를 떼어냈다. 내비게이션이 장착되어 있던 것을 뗀 것이다. 기계가 부수어져서 쓸 수 없을 것처럼 보인다. 태석이 한숨을 뱉었다.

“별수 없군.”

“잠깐만, 알 것 같아.”

“네가 뭘 아는데?”

태석이 시큰둥하게 스카이에게 물었고, 스카이가 답했다.

“그러니까…… 이 기계를 이렇게, 이렇게 만지면…….”

치직! 치직!

내비게이션이 다시 동작했다.

“좋아 5분 정도는 멀쩡할 거야.”

“그것도…… 카락스한테 배운 거야?”

“응, 그 녀석이 나랑 섹스했던 녀석이라면.”

“섹스로 기억하는 거야?”

“정확히는 물건의 모양과 크기로.”

“……나 참, 너도 정신이 이상하군.”

“너도 이상하긴 마찬가지야, 나와는 다른 방식으로.”

태석과 스카이가 쓴웃음을 짓고 내비게이션을 동작하여 목적지로 설정된 장소를 보았다.

“여기는…….”

태석과 스카이가 잠시 입을 다물었다. 태석이 어색하게 웃었다.

“하하…… 결국 여기인가.”

“그렇네. 이 일의 시작점이 된 곳, 그곳으로 향해야 할지도.”

태석과 스카이가 가야 할 곳은 간단했다.

카알이라는 오크와 싸우기 위해 도달했던 우주선이 있던 장소.

그 우주선의 잔해가 있는 곳.

그곳에 에덴, 혹은 세킨 시레나라는 유일신이 있었던 것이다.

처음부터 그 자리에서 줄곧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태석과 스카이는 이동하기 위해 준비를 하려 했고, 그 순간 태석과 스카이가 트럭의 근거리에 위치해 있는 순간…….

파파파파파.

붉은 레이저 포인트 백팔 개가 태석과 스카이의 몸 곳곳을 채웠다. 태석과 스카이가 몸을 멈추었다. 멈춘 채로 입만 열어 대화를 지속한다.

“이게 무슨 일이지…….”

“레이저 포인트…… 그리 유쾌한 것은 아닌 모양인데.”

태석은 주변을 살폈다. 순간적으로 눈동자만 오딘의 힘을 빌려 살핀 것이다.

“무인 저격 드론 백팔 개, 그게 우리의 몸을 노리고 있어.”

“그리고?”

“저쪽에 누군가의 목을 들고 있는 여자가 걸어오고 있는데?”

“그렇다라…….”

스카이가 간단히 지금의 상황을 요약했다.

“좆됐군, 우리는.”

“……아직은 아니야.”

곧이어 태석이 입을 다문 채 앞을 직시했다. 앞쪽으로 저격 드론을 조종하는 리모컨 같은 것을 든 여자가 천천히 걸어오고 있었다. 여자는 옷차림이 기괴했다. 찢어진 가죽자켓에 탱크톱을 속에 입고 있고, 담배로 지진 듯한 상처가 복부를 장식하고 있다. 검은 바지 같은 것을 다리에 두르고 있고, 다리 한쪽에는 체인이 가득하다.

양아치 같은 복장이다, 라고 태석은 문득 생각했다.

하늘색 머리로 염색한 여자가 히죽 웃으며 발언했다.

“자, 여기 목이야.”

그리고는 자신의 손에 들린 누군가의 머리를 태석 쪽으로 던졌다.

데구르르르.

“……?!”

“그래, 보면 알겠지. 네가 죽이지 않고 살리고, 도망치도록 내버려둔 골든링의 머리. 고맙지, 대신 잡아 주니까?”

“너는 콜렉터가 아닌가?”

“콜렉터 맞아.”

“그런데 골든링을 이렇게 간단히 죽인 거야?”

“그게 무슨 소리지? 이제 5분 후에 뒤질 녀석에게 듣기는 싫은 소리인데.”

“동료를 죽인 거냐고 물었다.”

“그런 물음이라면…….”

할짝. 여자가 자신의 입술을 핥으며 기괴한 변태 같은 웃음을 내며 말했다.

“후흐흐흐흐흐하흐흐흐흐흐흐. 당연히 죽여야지. 배신자는 죽여야지. 그래야 이 세상은 제대로 돌아가는 법이야. 세킨 시레나 님의 뜻대로 말이지.”

“단순히 정의를 지키는 방식이 다른 줄 알았는데…….”

태석이 고개를 저었다.

“너를 보니 꼭 그렇지만도 않은 모양이야.”

“흐흐흐흐……. 뭐, 콜렉터는 딱히 정의를 지키는 조직이 아니야.”

여자가 자신의 이마에 총구를 들이밀었다. 리볼버 같은 총알을 직접 채워넣는 방식의 총이었다. 그런 총을 들이민 채 호흡을 거칠게 하며 말했다.

“단순히 세킨 시레나 님을 어떻게 따르느냐에 차이를 둔 일원들일 뿐이야.”

“너는 어떻게 따르고 있지?”

“성욕을 느낀다고 해야 하나. 이성적으로 좋아한다는 느낌이야. 나는 세킨 시레나 님과 떡을 치고 싶어.”

“…….”

태석이 스카이를 곁눈질했다.

“너랑 잘 어울리는데.”

“이제 성욕이 없어서 나는 저러지는 않잖아.”

스카이가 잠시 입맛을 다셨다.

“이런 애송이 몸이 아니었다면, 지금쯤 또 하고 있었을 텐데.”

“거봐, 똑같잖아.”

태석이 한숨을 뱉었다. 요즘 들어 주변에 있는 여자들이 다 이 모양 이 꼴이라니…….

태석이 스카이에게 말했다.

“너, 총알 맞아도 버틸 수는 있어?”

“아프지만, 죽지는 않아. 이미 죽었으니까.”

“전에 우주선에서 죽을 때처럼 사라지나?”

“아니, 사라지지도 않아. 다시 재생돼. 고통스럽지만, 비명을 지르면서 깨어날 수는 있지.”

“그러면 다행이군.”

“또 무슨 미친 짓을 하려고?”

“자…… 이제부터 우리는 백팔 개의 저격 드론의 탄환을 맞고 싸운다.”

“뭐?”

그 순간이었다. 태석이 몸을 움직였고.

타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

저격 드론에서 총합 백팔 개의 탄환이 쏘아져서, 태석과 스카이의 몸을 벌집으로 만든다.

물론 총알을 무조건 맞기만 한 것은 아니다. 대비책도 나름 세워두었다. 태석과 스카이는 움직임과 동시에 각자 주머니에 비축해둔 힐링팩을 하늘로 던졌고, 저격 탄환에 우연히 맞은 힐링팩이 팍 하고 터져나가 태석과 스카이의 몸을 적셨다.

몸이 잘려나가고 구멍이 뚫리고, 힐링팩이 그것을 다시 재생시켜 회복시켜준다. 이미 태석과 스카이의 옷은 구멍투성이였으며, 그 안에서 솔솔 새살이 돋아나는 기괴한 풍경을 보여주고 있었다.

태석이 서둘러 몸을 움직였다.

“으아아아아아아아아!”

토르를 강신했다.

골든링은 세킨 시레나를 따른다는 증거로 정의를 추구했다. 그 정의의 방향은 태석과 달랐지만, 태석은 그의 정의를 인정할 수는 있었다. 결코 따를 수는 없었지만.

태석이 서둘러 주먹을 쥐고, 푸른 천둥을 휘감았다.

여자와의 거리는 대략 5m가량. 좀 더 달려가면 주먹을 꽂을 수 있다.

저 여자는 이해할 수 없었다. 세킨 시레나를 성적으로 사랑하고 따르려고 하는 감정을 이해할 수는 있겠지만, 이해할 수 없다. 다시 말해, 이해하기 싫다.

무엇보다 골든링을 죽였다는 사실이 더욱더.

여자와의 거리가 가깝다. 여자가 자신의 볼에 주먹이 닿는 순간, 히죽 웃으며 말했다.

“참고로 내 콜렉터로서의 이름은 스나이프홀. 내 머리에 내가 구멍을 뚫는 걸 좋아해서 지은 이름이야.”

“닥쳐.”

퍽-!

태석에게 볼을 얻어맞은 스나이프홀이 비명조차 지르지 않고, 히히힉거리는 이상한 웃음을 내며 나가떨어졌다. 목이 돌아가 꺾인 상황. 일반인이라면 즉사했겠지만, 태석은 그녀가 죽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했다. 헌터이기 때문이다. 헌터라서 죽지 않는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태석이 서둘러 스카이에게 외쳤다.

“스카이! 배에 타라!”

“응! 만들어, 빨리!”

태석이 헬라를 강신했다. 그리고 손톱에서 배가 튀어나왔다. 뼈로 만들어진 배에 탑승하고, 배의 뒤쪽을 세게 발로 쳤다.

파아아앙!

배가 부스터라도 쓴다는 느낌으로, 날아가기 시작했다. 태석은 스나이프홀이 깨어나기 전에 서둘러 도주했다.

우주선의 잔해가 있는 곳으로, 에덴을 사용하기 위해.

한참이나 배를 타고 도주한 느낌이다. 얼마나 걸렸을까. 태석은 끊임없이 지나치는 풍경 속에서 무언가를 발견하고 서둘러 배를 멈춰 세웠다. 갑자기 배가 멈추자 튀어 나갈 뻔한 비교적 가벼운 몸무게의 스카이가 불평했지만, 태석이 고개를 저었다.

“잠깐 기다려봐.”

“이제 곧 도착이라고. 그냥 걸어가도 될 것 같은데.”

“그러면 그렇게 하자. 그보다…… 무서워서 걸어가자는 거야?”

“솔직히, 배 타면서 지릴 뻔했어.”

“그렇구나…… 푸하하하!”

“웃기냐?”

“응.”

태석은 이제 이런 대화가 익숙해졌다. 어쩔 수 없이 스카이가 한숨을 푹 내뱉으며 고개를 저었다.

“정말이지 나쁜 놈이라니까.”

“여러 사람을 죽음으로 몰아넣으려던 너보다는 착하지.”

“그거 반박하기 힘들군.”

태석은 그렇게 말하고는 계속해서 걸어갔다. 방향은 우주선 잔해가 있는 쪽이었고, 10분 정도 걸으면 도착할 거리였지만……, 솔직히 조금 다른 방향으로 걷고 있었다. 스카이는 그것에 의구심이 들었지만, 그럭저럭 참고 걸을 수 있었다. 배를 타는 것보다는 훨씬 편했기 때문이다.

“아, 발견했다.”

태석이 미소를 지으며 어느 남자가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태석을 보고 대한이 잠시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누구…… 아, 태석. 태석 맞지?”

“그래, 맞아.”

“조금 생긴 게 바뀐 것 같기는 한데……. 꽤나 여기까지 오면서 고생했을 테니까.”

“연락을 하지 않아서 모르겠는데, 다른 가즈 나이트…… 멤버들은 어떻게 됐어?”

태석의 물음에 대한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각자가 사건 해결을 위해 힘쓰고 있어. 노는 사람도 없고, 죽은 사람도 없어. 가장 이상적인 상황이지.”

“그거 다행이네.”

태석이 고개를 돌려 우주선 잔해 쪽을 보았다. 꽤나 고도가 높은 지형이라 이곳에서 훤히 보인다.

“그보다 이제 어떻게 하면 좋을까?”

“우주선 잔해…… 에덴 말이지?”

“너도 정보를 거기까지 얻었나 보군.”

“네가 에덴을 원할 거라는 걸 알고 있기는 했어. 어렴풋이.”

“이제부터 잘 들어. 나는 지하 세계로 갈 거야. 그러는 동안 너와 다른 멤버들이 세킨 시레나의 시선을 끌어줘.”

“위험한 일은 네가 다 차지하겠다는 거구나.”

“그런 건 아니지만…… 아니.”

태석이 고개를 저었다.

“이제 와서 내숭은 그만 떨게. 나는 위험을 무릅쓰고 사후 세계와 비슷한 세계에 도달하려는 거야. 그렇게 해서 역사를 바꿀 거야. 이 세상이 멸하지 않는 역사로 바꿀 거라고.”

“……그래.”

대한이 쓴 미소를 지었다.

“너라면 할 수 있어. 아마도…… 분명히.”

“그래, 그랬으면 좋겠네.”

대한과 태석이 잠시 멍하니 허공을 응시하고 있었다.

“태석아.”

“듣고 있어.”

“나는 말이지, 그때의 일이 아직도 떠올라.”

“어떤 일.”

“네가 은호에게 당할 때, 내가 달려가려다가 달려가지 못한 일.”

“아, 그때…… 꽤나 오래전이라는 느낌이네.”

“체감상 반년은 지난 느낌인데…… 뭐, 반년은 넘게 지났으려나.”

“그때의 일은 왜 갑자기 떠오른 건데?”

“나는 너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버릴 각오로 달리질 못했어. 하지만 너는 언제나 달랐지. 나보다 우수하다고 해야 하나……. 너는 죽을 각오로 능력도 없는 주제에 은호에게 뛰어들고, 다른 자들에게 뛰어들고…… 이제는 진짜로 죽어보려고까지 하고 있잖아.”

“죽는 건 아니지만…… 뭐, 비슷하지. 신들의 사후 세계니까.”

“그래서 나는 네가 부러웠다. 동시에 시기심이 들기도 했어. 질투했다는 소리야.”

“질투라……. 너와는 잘 어울리지 않는 느낌인데.”

“아니, 틀려.”

대한이 태석을 응시했다.

“솔직히 질투심이 들었다.”

“…….”

“질투심이 들어서 더욱더 노력했어.”

대한이 미소를 지었다.

“너처럼 되기 위해서.”

“하지만…….”

“그래, 나는 나고, 너는 너야. 나는 결코 너처럼 될 수 없고, 너는 결코 나처럼 될 수 없지. 그건 정해진 사실, 피할 수 없는 현실이야. 그렇기에…… 나는 지금은 생각을 고쳐먹었지. 언제부터인지는 모르겠지만…….”

바람이 불었다.

차가운 바람이었다. 하지만 조금은 따듯했다.

“나는 너와는 다르지만, 너만큼 뛰어난 그 무언가가 되고 싶다고 줄곧 생각했어. 다른 형태로 최고가 되어 보이겠어. 너에게 필요한 존재가, 아니 세상에 필요한 존재가 되어 큰 획을 긋겠어. 너는 이미 세상에 여러 획을 그었으니, 나도 언젠가…….”

“아니, 틀려.”

태석이 미소를 지었다.

“나는 아직 만족하지 않아. 세상의 큰 획을 그어 세상을 지킬 거야.”

그리고는 쓴웃음을 지었다.

“세상이 나를 버리려 했고, 암울한 상황에 놓이게 했어. 어쩌면 다른 세상의 나는 자살하려 했을지도 모르지. 실제로 죽어서 여러 이들이 울게 만들었을 거야. 하지만…… 적어도 나는 이 세상에 큰 획을 그어, 세상을 구해서 이 세상에게 말할 거야.”

그리고는 입을 다물었다. 바람이 거세게 불다가 잠잠해졌다. 모든 것들이 조용해진 느낌이다.

타들어 가던 잔해들도, 울고 있는 짐승들도, 부수어진 나무의 조각이 흩날리는 소리도, 모두.

그때, 태석이 말했다.

“나는 이곳에서 이렇게 살아있다고. 나는 결코 잘못되지 않았고, 너에게 버림받을 이유는 없었다고.”

그 순간이었다.

현세에서의 마지막 전투가 시작되었다.

신의 기사단, 가즈 나이트와 유일신의 전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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