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8
98. 열쇠와 대비책
태석은 스카이가 트럭 위에 올라선 모습을 확인하고, 천천히 몸을 움직였다.
덜컹! 덜컹!
트럭이 달리면서 일어나는 바람의 저항도 강력했지만, 아스팔트 특유의 기울기 있는 바닥 같은 것에 닿을 때마다 덜컹거리면서 태석을 어지럽게 했다. 스카이는 한 번 넘어져서 떨어질 뻔했다.
“우으으으으으으읏?!”
스카이가 조그마한 몸으로 간신히 손톱을 세워 트럭 위에서 버티는 데에 성공했다.
끼기기기기긱!
손톱과 트럭의 마찰음이 들렸다. 태석이 서둘러 움직였다. 상처투성이인 몸으로 겨우겨우 몸을 가누어 앞으로 갔다. 트럭의 앞쪽에 도달했다. 아직 골든링은 눈치채지 못했다.
스카이가 트럭의 화물칸 겉면을 툭툭 쳐보았다.
텅! 텅!
“이 안에 뭐가 있는 것 같은데.”
“나중에 확인하고, 골든링부터 처리하자.”
“계획을 말해줘. 트럭 위에 일단 올라탔고, 이제 어쩌려고?”
“요즘 시대에 어딘가로 이동하려면 내비게이션이 필요하지? 내비게이션에 도착지를 설정하는 게 중요한 거야. 길을 전부 외우고 있는 사람은 드무니까.”
“그렇지. 요즘은 도로 같은 것이 복잡하다고 들었어.”
“그러니까, 트럭 운전 중인 골든링은 분명 내비게이션에 목적지를 찍었을 거야.”
“그렇겠…… 지?”
아직 눈치채지 못한 모양이다. 태석이 한숨을 뱉으며 말했다.
“내비게이션의 목적지에는 과연 누가 기다리고 있을까? 세킨 시레나, 혹은 에덴일 거야. 왜냐면, 내가 에덴을 노린다는 사실을 세킨 시레나, 즉 유일신이 모를 리가 없으니까.”
“아…….”
이제 이해한 모양이다.
말 그대로이다.
태석은 에덴을 노리고 있다. 에덴으로 지하 세계로 가서 엄청나게 강력한 유일신, 세킨 시레나를 없애고자 한다. 그것을 세킨 시레나가 눈치채지 못했을 리가 없다. 그러니 막고자 하겠지. 에덴을 자신의 소유로 하거나, 부수려고 할 것이다. 하지만 부수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늘의 신이라는 고대의 인류가 만들어낸 유산이기에. 그것을 부수는 것은 유일신 혼자의 힘으로는 불가능할 것이다. 적어도 태석의 내부의 신을 먹어치워 힘을 키운 뒤에야 가능할 것이다. 그렇다면 세킨 시레나는 어떻게 할까?
콜렉터들을 동원해서라도 에덴을 소유하고, 태석의 접근을 막을 것이다. 그것을 위해 공중전화에 태석 감지기를 설치한 것이다. 태석이 에덴에게 전화로조차 접근하지 못하도록.
그러니 콜렉터인 골든링도 에덴이나 세킨 시레나에게 돌아갈 것이고…… 태석은 그것을 위해 이용 중인 트럭을 탈취하여 내비게이션 기록을 살펴서 세킨 시레나, 혹은 에덴과 마주칠 생각이다.
그런 것이었고, 스카이가 중얼거렸다.
“나 참, 이럴 때만 그럴듯한 생각을 하고 있군.”
“그래, 칭찬 고맙다.”
“하지만…… 세킨 시레나가 그렇게 손쉽게 정보를 풀었을까? 어쩌면 세킨 시레나는 골든링이 죽거나 사로잡힐 것을 예상하고 골든링에게 다른 장소를 알려줬을 수도 있어. 이미 뒤질 놈이니까 거짓 정보를 준 거지.”
“그렇게 생각할 수 있지만…… 일단은 이 방법 외에는 없어.”
“설령 속임수일지라도 부딪쳐 보겠다는 거냐?”
“응, 당연히.”
“나 참…… 똑똑한 건지 머저리인 건지 모르겠군.”
“똑똑한 머저리라고 불러줘.”
태석이 엄지를 척 올려 보였고, 스카이가 고개를 저었다.
“미친 새끼.”
“아무튼, 이제 시작이다.”
태석이 트럭의 앞면 위쪽에 선 채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리고 토르의 힘을 강신했다. 그 직후, 파지지직!
트럭의 엔진 부분을 엄청난 전기로 지져버렸다.
콰가가강!
트럭의 엔진이 폭발, 순간적으로 빙글빙글 하늘을 돌았고, 태석은 스카이를 한쪽 어깨에 들쳐 메고 토르의 힘으로 비바람을 만들어 트럭을 추격하면서 하늘로 부유하고 있었다.
트럭이 몇 차례 빙글빙글 돌아 아스팔트를 부수면서 멈춰 섰고, 트럭이 엉망진창으로 찌그러진 채, 안에서 비틀거리며 골든링이 빠져나왔다. 트럭 전체가 불에 타들어 가지 않도록 태석이 토르의 비바람으로 물을 흩뿌려 불길을 잠재웠다.
이걸로 내비게이션은 어느 정도 안전할 것이다. 기록은 살펴볼 수 있다.
골든링이 비틀거리면서 잘려나간 왼팔이 있던 부분을 보았다. 그리고는 특수한 힐링팩을 왼팔 부분에 부었다.
꿀렁꿀렁-.
검고 칼날이 박힌 팔이 서서히 재생되기 시작했다. 골든링이 히죽 웃으며 말했다.
“도망친 게 아니었나?”
“내 진짜 목적은 도망치는 게 아니야.”
“그러면 뭐냐, 테러냐? 또 테러를 저지를 거냐? 전범이.”
“다시 말하지만, 나는 테러를 한 적도 없고, 전범도 아니야. 나는 그저 세상을 구하기 위해 나설 뿐이야.”
“세상을 구하는 건 네가 아니다. 너는 세상을 망가트리고 있어. 세상을 구하는 건 나의 세킨 시레나 님이다. 세킨 시레나 님이 마치 신과도 같이 세상을 구해주고 있어! 그런 상황에서 네가 무슨 변명을 하, 듣지 않을 거다.”
“그래, 믿음이 확고하군.”
태석이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네가 믿고 있는 세킨 시레나는 세상을 부수려는 존재야. 그자가 한국을 비롯한 대륙에 막대한 폭발을 일으켜 세상을 아포칼립스의 시대로 만든 녀석이다.”
“그걸 무슨 수로 믿지?”
“믿을 수 없다면, 믿지 않아도 좋다. 어차피 세상을 구하는 건 내가 될 거니까.”
“하! 논리 따위는 전혀 없군! 그러면 어서 결판을 내자.”
“그래, 좋아.”
“그보다…….”
골든링이 피식 웃었다.
“네가 일부러 그런 건 아닐 테지만, 기생 괴수를 떨궈줘서 고맙군.”
“그래, 그 정도면 된 거야.”
태석이 입꼬리를 올렸다.
“네가 도움받은 것, 그것 하나만 감사하다면 나는 만족이다.”
“괜히 선량한 사람 코스프레는 하지 마라.”
골든링이 사나운 맹수와도 같은 표정으로 달려들기 시작했다.
“나는 너를 죽일 거다. 진심으로, 이번에야말로!”
태석이 전투태세를 갖추었다.
이번에는 진짜다.
골든링은 온 힘을 다해 태석을 죽이고자 하고 있다.
태석은 토르의 강신을 해제했다. 골든링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태석에게 느껴지는 압도적인 힘이 사라졌다. 하지만 어째서 사라지게 한 것인지 이해할 수 없다.
설마, 설마.
“나를 얕잡아 보는 거냐아아아?! 크하하하핫! 하지만 그 방심이 너를 죽게 할 거야!”
“글쎄, 딱히 얕잡아 본 건 아니야.”
“그런데 어째서! 어째서! 힘을 쏟지 않는 거지?”
태석은 골든링의 왼팔로 인한 공격을 피해내면서 말했다.
“나는 좀 더 강한 힘을 쓸 거다.”
태석이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고, 스카이가 상황을 지켜보면서 속으로 생각했다.
‘태석이 토르의 힘의 강신을 해제했어. 정말로 얕보는 건 아닐 거야. 그렇다면 대체 무슨 힘을 쓰려고…… 설마…… 또다시 오딘의 힘을 쓰려는 걸까?’
그리고 그 생각은 사실이었다.
태석의 한쪽 얼굴을 가리는 가면이 생겨났다. 황금빛의 가면이었다. 그 가면에는 여러 고대의 문자들이 새겨져 있었고, 눈동자 쪽에서 금빛 눈동자가 번쩍였다. 오딘의 눈이다.
한 손에는 손을 감싸서 잡는 형태의 오딘의 지팡이가 생겨났다.
태석이 사납게 웃으며 외쳤다.
“오딘을 강신할 거니까.”
팟! 팟! 파아아앗!
태석이 공격을 마치 순간적으로 위치를 이동하듯이 피했다. 왼팔을 공격하면 순간 왼팔이 사라지는 듯 보였다가 골든링이 얼굴 정면을 후려치고 있는 형태로 나타나고, 오른 다리를 노리면 오른 다리가 갑자기 위치가 변해 골든링의 복부를 발로 차는 식으로 변하는 것이다.
“크어어어억?!”
골든링이 복부를 얻어맞아 고통스러운 괴성을 외치며 뒤로 슬금슬금 물러났다. 복부를 부여잡았다. 피가 터졌다. 안 그래도 태석에게 다쳤던 상처가 아물자마자 다시 터진 것이다. 피를 토해냈다. 비틀거리며 골든링이 태석에게 덤벼들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근처에 도달하지도 못했다.
“가라, 발키리. 이 몸을 지켜라.”
태석의 뒤편으로 열 명의 발키리가 갑옷 날개를 퍼덕이며 각자의 무기를 들고 골든링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골든링은 피해내는 것이 고작이었다. 게다가 상처가 더욱더 나고 있다. 버티기 힘들다. 질 것 같다. 아니, 지는 것은 이미 확정되었다. 태석에게 죽지 않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다.
‘이길 수 없다. 절대로.’
골든링은 도주를 생각했다. 서둘러 빈틈을 찾았다. 그 빈틈을 노리고 뒤로 빠지고, 주머니에서 연막탄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 터트렸다.
물론 연막탄으로 태석의 시야를 가릴 수는 없다. 금빛의 눈알이 모든 것을 볼 수 있게끔 해주었기 때문이다. 태석은 멀쩡히 보이는 시야 속에서 골든링이 도주하는 모습을 똑똑히 새겨보았다. 완전히 모습이 사라지자 태석은 오딘의 강신을 해제했다.
그리고 스카이를 보며 말했다.
“좋아, 이제 시작하자.”
“내비게이션 조사?”
“그것 말고 또 있어.”
“또 뭐?”
“트럭 위에 올라탔을 때, 스카이 네가 말했었지. 화물칸에 뭐가 있는 것 같다고.”
“그랬던 것…… 같은데?”
“그러니까 한 번 확인해보자고, 화물칸에 뭐가 있는지.”
태석은 찌그러진 화물칸을 통통 두드렸다. 스카이가 침을 꿀꺽 삼켰다.
“뭔가 불길한데.”
“어떤 면에서 불길한데?”
“우리가 상상도 못 한 뭔가가 있을지도 몰라. 어쩌면 알지 않는 편이 나을지도 몰라.”
“죽은 놈이 겁은 또 많아 가지고는.”
태석이 피식 웃었다. 살짝 씁쓸한 미소였다.
“확실히 이 앞에는 미지의 무언가가 있어. 알 수 없는 뭔가가 있다는 거야. 그러니까…… 겁은 나도 나. 세킨 시레나가 운송하라고 했을 정도니까 꽤나 중요한 물건일지도 몰라. 어쩌면 여는 순간 세상이 망할지도 모르지.”
“세킨 시레나는 이 시대에 남은 신이니까. 태석 너처럼 몸속에 가두어진 신이 아니라, 실제로 움직이고 살아 숨 쉬는 신이니까…….”
“그렇지. 전지전능해서 뭔 짓이든 할 수 있는 녀석이니까. 하지만…….”
태석이 진지한 표정으로, 트럭의 화물칸을 열기 시작했다.
“그래도 확인해야 해. 판도라의 상자를 열어야 해.”
그리고 문을 열었다.
화물칸 안에 있는 것을 보고, 미소를 지었다.
“확실히 이런 거라면 꽤나 위험하지.”
“하지만 열자마자 세상이 멸망한다는 그런 끔찍한 일은 안 일어났네.”
스카이가 몸을 부르르 떨었다.
“솔직히 조금 쫄았어. 무서웠다고.”
“겁도 많아라.”
태석이 화물칸 안에 들어 있는 자물쇠 같은 것을 보았다. 자물쇠는 잠금장치가 열려 있었다. 그리고 언제든지 무언가를 잠글 수 있는 것처럼 보인다.
푸른 빛이 둥둥 떠다니는 듯 보인다. 자물쇠 근처에서 알아들을 수 없는 고대의 언어가 둥둥 떠다니는 것이다.
“고대의 언어라…….”
태석이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에덴과 관련이 있어 보이는군. 뭔지 알겠어, 스카이?”
“응, 대충은 알 것 같아.”
스카이가 자물쇠를 넘겨받아 살펴보았다.
“내가 너에게 열쇠를 상자에 넣어서 준 적이 있었지.”
“그래, 에덴의 속을 볼 수 있는 열쇠, 그렇게 알고 있었어. 세상이 달라질지도 모른다고 해서 강신 세계에 가두었지.”
“그거, 사실 조금 내용이 달라.”
“겐세는 그렇게 말해줬는데……?”
“이미 에덴은 열려 있어. 에덴의 열쇠를 쓸 곳이 없는 거야.”
스카이의 말에 태석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카락스를 잡으면서 얻게 된 에덴의 열쇠는 에덴을 열 때 쓰는 거라고 했다. 열게 되면 알 수 없는 위험한 사태가 벌어진다 해서 에덴을 강신 세계에 가두기까지 했다. 그런데 이제 와서 에덴의 열쇠를 쓸 필요도 쓸 수도 없다니? 그게 무슨 소리일까?
“무슨 소리야?”
“간단해.”
스카이가 잠시 입을 다물었다가.
“에덴은 자물쇠로 잠겨 있던 시절이 있었고, 그걸 악마 하나가 연 거야. 그래서 에덴은 다시 눈을 떴고, 고성능 분석 특화 장치가 되었지.”
“그래서 그 자물쇠가…….”
“그래, 지금 우리의 눈앞에 있는, 트럭 화물칸에 있던 자물쇠지. 이걸로 잠가서 세킨 시레나는 우리가 에덴을 써서 지하 세계로 갈 수 없게 만들려고 했던 거야.”
“하지만…… 이미 늦었어.”
태석이 히죽 웃었다.
“나에게는 열쇠가 있으니까.”
“자물쇠도 있지.”
스카이가 히죽 웃었다.
태석 또한 웃었다.
세킨 시레나가 정말로 이 방법만 준비했을 리 없다. 자물쇠로 잠그기만 할 것은 아닐 게 뻔했다.
하지만…… 설령 잠근다 해도, 태석에게는 에덴의 열쇠가 있다. 그걸로 열면 그만이다. 그러니…… 좀 더 유리하다.
적어도 세킨 시레나의 한 가지 대비책은 무용지물이었으니까.
그러면 이제…….
“이제 내비게이션을 뒤적거려볼까.”
태석이 트럭의 앞쪽 칸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