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7
97. 죽음의 배에서 트럭까지
골든링의 팔에서 무언가 돋아나고 있다. 잘려나간 단면에서 어떤 괴물 같은 것이…… 크고 웅장하고, 거대하게.
“그 팔, 정체가 뭐야?”
태석의 물음에 골든링이 킬킬거렸다.
“설마 모르는 거야?”
“무슨 소리지?”
“요즘의 세상에서 잘려나간 팔을 재생시키는 일 따위는 일도 아니야. 아주 간단한 일이라고.”
“…….”
“그런데 왜 굳이 팔에 칼날을 붙이면서까지 재생시킬 수밖에 없었을까? 과연 어떤 특수한 폭발에 의해 상처를 입었기에 그런 걸까?”
“설마…….”
“그래, 그 설마가 맞을 거다.”
골든링이 자신의 잘려나간 팔에서 자라난 수많은 뱀들과도 같은 무언가가 꿈틀거리는 것을 보며 히죽 웃었다. 그리고 말을 이었다.
“흑수정을 정화하던 중 실패하여 폭발했다. 그 핵의 폭발의 파편을 우연히 있던 내가 맞았다. 팔이 잘려나가고 새로운 물질이 거기서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래, 기생과 관련된 괴수가 내 몸을 지배하려 한 거야.”
“그걸 세킨 시레나는…….”
“그래, 세킨 시레나 님께서 나의 팔의 통제권을 나로 유지시키기 위해 칼날을 달아주었다. 이제 더 이상 빼앗길 일은 없지만, 계속해서 칼날을 단 채 헌터로서 생활해왔지. 그래서 팔이 잘려나가면…….”
“너의 팔에 잠재워진 괴수가 깨어난다, 그건가?”
“그래, 맞아. 그러니…….”
골든링이 달려들었다.
“나와 붙어보자, 태석.”
“……윽.”
태석이 인상을 찌푸렸다. 뱀이 태석을 노리고 돌진했다. 태석이 간신히 피해내고, 연이어 골든링의 안쪽으로 파고들어 푸른 전기를 내뿜는 속성 단검을 휘둘렀다.
팡!
그것을 뱀이 기묘한 각도로 꿈틀거려 공격을 차단한다. 뱀의 머리가 대신 잘렸다.
‘마치 숙주의 몸을 보호하려는 것 같이 움직이고 있어!’
기생형 괴수가 숙주를 보호하고 있다. 숙주의 육체를 언제든 지배하기 위해 우선적으로 숙주의 육체를 보호하는 거다. 태석은 상황을 그렇게 이해했다.
곧이어 뱀이 태석의 팔을 물었다.
“으으으윽?!”
태석이 서둘러 몸을 움직여 뱀째로 팔을 당겼다. 뱀의 대가리가 뜯겨나가 태석을 물고 있다. 태석이 서둘러 뱀을 떼어냈다. 스카이가 그것을 밟았다. 팍 하고 터져나갔다.
“이상한 몸이네.”
“그래, 이상한 몸이야.”
“그런데 태석.”
스카이가 인상을 찌푸리며 골든링을 보았다.
“내가 방법이 떠올랐는데, 그걸 써볼까?”
“그래, 좋아.”
“조금 위험한 방법일지도 몰라. 정확히는 이 스카이 님이 위험한 방법이라는 거지.”
“부디, 사용해줘. 어차피 어려운 것도 아니고, 대단한 것도 아니잖아.”
“너 때문에 나까지 변한 느낌이야. 약한 몸 상태라 굳이 나서지 않으려고 했건만.”
“하지만 너도 얻어야 할 것이 있잖아.”
“얻어야 할 것이라……. 그래, 태석 너는 언제나 그렇게 싸워왔구나.”
무언가를 얻기 위해, 자신의 가장 소중한 것을 잃을 각오로 싸웠다라……. 스카이가 피식 웃었다.
콜라잔을 든 채 주먹을 불끈 쥐고 달려들 태세를 했다.
스카이와 태석이 둘 다 전투태세를 취하자, 골든링이 자신의 팔 부분에서 꿈틀거리는 뱀을 쳐다보다가 그 둘을 쳐다보고는 웃음을 터트렸다.
“푸핫!”
“뭐가 그렇게 웃기지?”
“당연히 웃기잖아! 테러범 어른 녀석과 아무것도 몰라 보이는 애송이 녀석이 같이 싸우다니. 너, 소아성애자냐?”
“그런 건 아니야. 나는 딱히 좋아하는 사람은 없어. 모두가 소중할 뿐.”
“그러니 이상한 거다, 이 변태 새끼야아아아아아!”
골든링이 덤벼들었다.
태석이 소리쳤다.
“스카이!”
“응!”
둘다 동시에 움직였다.
골든링은 종종 생각했다.
만약 세킨 시레나가 없었다면, 골든링은 어떻게 되었을까. 아니, 제임스 콜이라는 소년은 어떻게 살았을까.
골든링의 본명 제임스 콜이었던 시절, 그는 자신의 동네에 갑자기 등장한 흑수정을 정화한다는 말에 제일 앞에서 구경했다. 동네의 주민들도 모두 신기하게 그것을 보았다. 미국에서 흑수정 정화는 흔한 일이지만, 직접 보는 것은 처음이었으니까. 제임스 콜은 어른들의 허락을 받아 제일 앞에서 구경했고, 세킨 시레나라는 차가워 보이는 성천주가 정화를 시작했다.
하지만 정화를 하는 과정에서 예기치 못한 폭발이 발생, 주민의 절반이 죽고, 제임스 콜은 괴수에게 감염되어 육체를 빼앗길 뻔했다. 그것을 세킨 시레나가 구원했다. 고쳐주었다. 헌터로 만들어줬다. 주민을 잃은 복수를 위해 괴수들과 싸워왔다. 그는 세킨 시레나를 존경했다. 골든링은 세킨 시레나 님을 위해 죽을 각오도 되어 있었다.
하지만 종종 생각한다.
만약 세킨 시레나가 더욱 실력이 뛰어나 흑수정 정화 시의 폭발을 막았다면? 아니면, 막을 수 있음에도 막지 않은 거라면? 일부러 자신 같은 헌터 한 명을 만들기 위해서라면……?
뭐…… 이제 와서 생각해봤자 쓸모없는 일이다.
골든링은 세킨 시레나를 존경한다. 믿는다. 설령 세상을 멸한다 해도, 믿을 거다.
골든링이 그렇게 생각하며 뱀의 팔을 내뻗었다.
죽인다, 죽인다, 죽인다! 반드시 죽인다. 태석이라는 테러범을 그와 함께 행동하는 정체불명의 유녀를 죽인다. 그렇게 하여 세킨 시레나 님에게 신뢰를 쌓는다. 그에게 사랑받는다. 세킨 시레나님을 위해서 목숨이라도 바친다!
뱀의 팔이 태석에게 닿는다. 골든링은 태석을 노려보고 있다.
하지만 그때였다.
촤악!
검은 액체가 골든링의 눈을 덮쳤다. 뭐지? 달콤한 냄새가 싸악 퍼지며 시야가 가려졌다. 눈을 감고 뜰 수 없다. 그 상태에서 유녀의 목소리가 들렸다.
“여기 주문하신 콜라와…….”
하얀 모래 같은 것이 골든링이 다시 억지로 뜬 눈으로 뛰어들었다.
“모래 감자입니다! 개새끼야!”
“끄으으으으으으으윽?!”
눈을 부여잡고 모래를 떼어내려 하지만 콜라 특유의 끈적거림 탓에 눈을 뜰 수 없다. 골든링이 괴성을 지르며 소리쳤다.
“태석, 태서어어어어어어억!”
스카이가 태석에게 말했다.
“골든링의 시야를 잡았어.”
“그래.”
“이제 빨리 달려들어 녀석을 공격해!”
“알았어!”
태석이 골든링에게 달려들었다. 골든링의 몸으로 파고들었다. 한 손에 묠니르를 든 채, 번쩍 들어 올렸다.
노리는 곳은 골든링의 왼팔 부분.
뱀들의 중심.
뱀을 잘라낸다.
[토르가 준비가 되었다고 합니다!]
[어서, 시작하십시오!]
“좋아아아아아아아아아!”
태석이 묠니르를 내려찍었다. 푸른 천둥이 번쩍이며 뱀을 잘라내고, 뱀을 태워냈다. 뱀의 모든 부위가 깔끔하게 타들어 가 하얀 잿더미만을 남겼다. 태석이 소리쳤다.
“너의 기생 괴수는 완전히 소멸했다, 골든링!”
“뭐?!”
골든링이 뒤늦게 눈을 뜨며 주변을 둘러봤지만, 태석은 보이지 않는다. 스카이도 보이지 않는다. 골든링이 자신의 왼팔을 보았다.
뱀의 흔적이 느껴지지 않는다. 뱀이 기생 중이라는 흔적조차 느껴지지 않는다. 확신했다. 뱀의 꿈틀거림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지금, 기생 괴수가 완전히 자신에게서 떨어져 나가 사라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그건 불가능할 텐데? 신이 나서지 않는 이상 그런 일은 불가능하다. 기생 괴수를 떼어내다니, 현대 과학으로는 불가능한 일이라고 들었다. 그런데 어째서……?
아아. 깨달았다.
“녀석은 신을 다루는 녀석이었지.”
그렇기에 가능했던 것일 수도 있다. 골든링이 주변을 두리번거리다가 쳇 소리를 뱉었다.
“태석은 도주했군.”
지금 상태로 싸우기에는 무리다. 태석은 이 주변에 있겠지만…… 찾더라도 지금 상태로는 싸우기 무리다. 골든링이 서둘러 자신이 끌고 온 트럭으로 달려가 트럭에 탑승했다. 한 손으로 적당히 운전하기 시작했다. 사고가 날 일은 없다. 한 손 운전은 많이 연습했으니까. 이럴 때를 위해서. 물론 헌터 같은 초인이라 가능한 거지 일반인은 불가능할 것이다.
트럭이 운전하여 멀어지고, 태석과 스카이가 서둘러 뛰어왔다.
“녀석이 트럭으로 가고 있어.”
“좋아, 그러면 어서 쫓아간다.”
“트럭을 미행하자는 거야?”
“그래, 맞아.”
“하지만 우리 몸이 트럭보다 빠를까? 아무리 헌터라고 해도 달리기에는 무리가 있잖아.”
“그러니까…… 신의 힘을 쓰는 거지.”
[헬라가 응답합니다.]
머리카락이 하얗게 바래졌다. 그리고 몸에서 검은 연기가 피어올랐다. 태석이 손을 뻗었다. 배 한 척이 등장했다.
헬라가 라그나로크 때 자신의 손톱으로 만들어낸 죽음의 배, 그것이다.
태석이 그것에 올라탔다. 그리고 스카이의 손을 잡아 끌어올려 배에 타게끔 했다.
배를 툭툭 쳤다. 배가 응답하듯이 빠른 속도로 날아가기 시작했다.
“우와아아아아아아아아악?!”
스카이가 비명을 질렀다. 배가 놀라울 정도로 빠르게 돌진했다. 트럭보다 빠르게, 트럭을 제칠 기세로.
“뭐야, 이거!"
"엄청 빠르지?“
“무슨 신의 힘이야, 이건?!”
스카이가 비명을 지르며 물었고, 태석이 답했다.
“헬라!”
“헬라라면…… 그래, 뒤진 신, 죽음의 신이구나!”
“죽음의 신, 그래 맞아!”
앞에 차 한 대가 있다. 용케 움직이고 있는 차였다. 멀쩡한 차로 서울 쪽으로 향하는 걸까? 모르겠지만, 지금 이대로 가다간 배가 차에 부딪히고 만다. 스카이가 울먹이면서 말했다.
“이러다간 부딪친다고!”
“괜찮아, 안 죽어!”
“나는 죽는다고!”
“알아!”
“뭐야 지금…….”
“그래! 네 죽음 따위는 신경 안 써! 이미 뒤진 놈이잖아! 너는!”
“……지금 장난해애애애애애?!”
“그리고…….”
태석이 피식 웃으며 지켜보았다. 배가 저절로 방향을 틀어 차를 피하고 더욱 빠르게 날아갔다.
“이런 기능은 부착되어 있거든.”
“그런데 놀린 거야!?”
“당연히 놀려야지. 재밌잖아!”
“지금 장난 하냐?!”
“응!”
“…….”
스카이는 할 말이 없었다. 그저 멍하니 앞을 보고 있었다. 이제 엄청난 속도로 자신에게 부딪쳐 오는 바람 때문에 겁이 나는 것도 느낌이 없었다. 너무 익숙해진 탓이다. 어질거려서 눈이 감겨온다. 뒤질 것 같다.
태석이 히죽 웃었다.
“이제 거의 도착이다.”
“뭐가?”
“트럭에 거의 도달했어. 좋아, 그러면 몰래 접근하자.”
“몰래가 가능할 것 같아?”
“왜?”
태석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의문을 표했다. 스카이가 자신의 주변을 둘러보며 소리쳤다.
“자, 잘 생각해봐.”
“그래, 특별히 생각해주지.”
“우리는 엄청 빠르게 허공을 날아가는 배를 타고 있어.”
“응.”
“그런데…… 모르겠어?”
“뭐가?”
“미친놈아! 배가 날아가고 있는데 이상하게 안 여길 녀석 없냐고! 트럭에 몰래 접근이 가능할 것 같냐?!”
“그러면 간단하지.”
“뭔데?”
태석이 히죽 웃었다.
“깽판 쳐서 트럭을 점거한다.”
“처음부터 그럴 생각이었지?”
대답은 없었다.
다만 태석은 행동으로 보여줬다.
팟!
태석이 뛰어들어 트럭 위에 올라타자 배 위에 있던 스카이가 잠깐 벙찐 표정을 보였다.
“뭐해? 어서 올라와!”
태석의 외침에 스카이가 한숨을 뱉었다.
“나 참…….”
“왜 그런 반응이지?”
“아니…… 네가 상상 이상의 미친놈이라는 걸 미처 까먹고 있었거든.”
“그거 재밌는 일이네. 그런 걸 까먹다니. 어린 나이에 벌써부터 치매냐?”
“…….”
스카이가 한숨을 뱉었다.
배에서 일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