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5
95. 승리를 위하여
콰르르르르릉-!
수화기를 드는 순간이었다. 무슨 일이지? 태석이 서둘러 고개를 돌려 무슨 소리인지 보려고 했다. 폭발음, 폭발음이다. 어떤 폭발음이 아주 근거리에서 들린 것이다. 설마?
“고개 숙여! 멍청아!”
스카이가 있는 힘껏 태석을 발로 후려쳤다. 그 와중에 손에 꼭 쥔 콜라를 비틀거리며 간신히 낚아채는 데에 성공했다.
쾅!
태석의 머리 위를 스치며 머리카락 몇 올을 자르곤 공중전화 쪽을 정통으로 어떤 것이 부딪쳤다. 태석은 스카이에 의해 공중전화 밖으로 튀어나오게 되면서 공중전화를 부순 그것을 보았다.
검날.
검날이다.
흑색? 아니, 회색? 모르겠다. 워낙 빠르게 움직여서 어떤 색인지도 분간이 불가능하다. 미처 시선을 맞추어 보지 못한 것이다.
그리고 공중전화에서 5m 거리에서 어떤 인간의 형체가 멈춰 섰다. 저 인간의 형체가 태석을 노리고 결론적으로 공중전화를 폭발시킨 것이다.
그 인간은 금색의 귀걸이를 양 귀에 끼고 있었으며, 고개를 돌려 얼굴을 보인 그는 혓바닥을 낼름거렸다. 그 혓바닥 끝에는 마찬가지로 금색의 링이 장식되어 있었다. 피어싱을 한 것이다. 남자다. 여자 같아 보이기도 하지만 중성적으로 보이기에 그런 것일 뿐이다. 태석은 남자의 왼팔을 보았다. 왼팔은 강지의 오른팔처럼 기계처럼 보인다. 아니, 기계가 아니다. 기계라기보다는 마치 검날을 팔에 박아넣은 것처럼, 검고 빛나는 검날이 무수히 많이 왼팔에 박혀 있다.
태석은 그자가 누구인지 안다. 헌터 업계에서는 엄청나게 유명한 존재니까.
“골든링.”
“알고 있네~. 태석? 태석 맞지?”
“……그래.”
태석이 모자를 깊게 눌러 쓴 체 그렇게 말했다. 골든링이라고 불린 남자가 히죽이며 말했다.
“나에 대해서 잘 알겠지만, 설명하자면 헌터명은 골든링, 실명은 비공개. 세킨 시레나님의 부하 헌터라고. 잘부탁해.”
골든링이 히죽 웃으며 고개를 숙였다. 금빛의 피어싱들이 찰랑거렸다. 그리고 보니 멀쩡한 오른팔에 잔뜩 금색의 반지를 끼고 있다. 헌터명다운 컨셉이다. 정신이 이상해 보일 정도로 기괴한 컨셉이다.
태석이 입을 다물었다가 말했다.
“어떻게 안 거지? 내가 여기 있는 걸.”
“간단해. 멀쩡한 도시들의 공중전화 박스에 여러 감지 장치를 설치해뒀거든. 정확히 태석에 반응하도록 말이야. 왜냐면, 태석의 휴대폰이 부수어진 것을 알아낸 직후인 데다가, 분명히 가즈 나이트들에게 연락을 취하려고 공중전화를 이용할 것을 알았거든.”
“…….”
태석이 인상을 찌푸렸다.
실책이다.
휴대폰을 부수고 공중전화를 통해 에덴과 연락하겠다는 것은 확실히 무모한 생각이었다. 물론 휴대폰으로 누군가에게 전화를 거는 것조차 불가능한 상황이어서 답은 없었지만, 그래도 이렇게까지 치밀하게 수사망을 좁힐 줄은 몰랐다. 방심한 것일지도 모른다.
태석이 사납게 웃었다.
“아무튼, 골든링 씨.”
“왜 그러지?”
“나에게 이렇게 찾아올 정도의 성의를 보였다면, 나와 싸우겠다는 의미이기도 하겠지.”
“그래, 맞아. 너를 잡으면 세킨 시레나 님에게 칭찬받을 수 있어. 나는 그분에 의해 살아난 거나 다름없으니까. 그분에게 구원받았으니까 그분은 나에게 있어서 신이야! 나를 창조한 거나 다름없어!”
“그러냐.”
“당연하지. 반면에 너는 어떻지? 스스로가 강하면서 그걸로 세상을 구원할 생각을 하지도 않고, 오히려 세상을 망가트린 미친 독재자야. 그런 너를 나는 혐오해. 그러니 죽어.”
착각일까. 골든링의 흑색의 왼팔이 반짝이는 느낌이 들었다.
꿀꺽.
스카이가 침을 삼키는 소리가 들렸다.
태석이 잠시 입을 다물었다가 말했다.
“스카이.”
“왜 그래?”
“무서운 거냐?”
“아니, 딱히. 솔직히 내가 대항할 방법이 없고 너한테만 있어서 문제지만.”
“너도 충분히 할 수 있어.”
“뭔 소리야?”
“너, 도구를 가지고 있잖아.”
“도구는 개뿔. 내 손에는 지금 칸타로스에서 사온 콜라밖에 없어.”
“충분히 도구야.”
“자꾸 내 상황 거지 같다고 놀릴래?”
태석이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농담 아니야. 잘 생각하고 행동해, 이 눈치 없는 녀석아.”
“…….”
스카이가 한숨을 뱉었다.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모르겠다는 눈치였다. 태석이 살짝 답답한 표정을 지었다가, 사나운 미소를 지었다. 손을 뻗어 허리춤에 장비하고 있는 속성 단검을 들어 올렸다.
파직, 파직.
속성 단검이 한계에 도달한 것인지 비명을 지르고 있다. 여느 때처럼의 비명이었지만, 지금은 느낌이 다르다. 거의 수명이 다해가고 있다. 이럴 줄 알았다면 지석에게 장비를 새로 달라고 할걸. 괜한 정이 들어버려서 낡아빠진 속성 단검을 계속 쓰고 있었다.
하지만 다시 정신을 전투 쪽으로 돌리고, 온 신경을 골든링과의 대결에 쏟아부었다.
눈을 감고 심호흡을 하고 말했다.
“토르를 강신한다.”
[토르가 기꺼이 응답합니다.]
처음 공격은 태석이었다.
좋아, 언제나처럼 간단히 해치우면 된다. 태석은 자신이 있었다. 왜냐면, 그동안 수많은 죽을 고비를 넘기며 심지어 악마까지 죽인 전적이 있기 때문이다. 공교롭게도 그때 죽인 악마인 스카이는 자신의 옆에서 콜라를 든 채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지만.
태석의 몸이 쏜살같이 달려들어 속성 단검에 토르의 천둥을 휘감았다. 푸른 전기가 찌지지지직! 소리를 내며 미친 듯이 속성 단검을 쪼아댔다. 속성 단검이 강제적으로 푸른 전기의 속성을 띄며 골든링에게 공격을 가했다.
“핫! 핫! 좋아, 재밌네! 움직임이 좋은걸?”
골든링이 아주 날렵하게 잘 피해내고 있다.
젠장, 몸놀림이 빠르다. 태석도 느린 편은 아니지만, 골든링은 태석과는 차원이 다른 몸놀림을 보이고 있다. 회피에 있어서는 특유의 가볍고 곡선 있는 여성적인 몸매가 큰 도움을 주고 있다. 태석의 투박한 근육으로는 골든링에게 데미지를 입힐 수 없다.
휙! 휙!
태석이 서둘러 연속해서 속성 단검을 휘두르고, 그 휘두른 방향으로 피하는 녀석에게 찌지지지지직! 천둥을 다른 손으로 모아 쏘았다.
“끄르르르르르르?!”
골든링이 사나운 표범마냥 비명을 지르며 서둘러 뒤로 빠지려 했다. 하지만 움직임이 방금 전과는 달리 느리다. 전기에 공격당해 신경이 살짝 죽은 탓이다. 인간의 신경계는 전기를 이용하는, 일종의 로봇과도 비슷한 시스템으로 움직인다. 그렇기에 천둥을 가하면 움직임이 느려지기 마련이다. 헌터는 느려지지만, 일반인은 즉사할지도 모른다. 골든링이 인상을 찌푸리며 생각했다.
‘늦었다.’
태석이 느려진 골든링의 움직임을 빠르게 쫓으며 속성 단검을 찔러넣었다.
피식! 푹! 푹!
빠르게 한 번 얕게 베어 가슴팍에 상처, 그리고 복부를 두 번 강하게 찔러넣었다.
순간 내장이 흘러나오는 착각이 들었다. 복부의 복막이 찢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골든링이 커억! 하며 피를 토했다. 그리고는 서둘러 뒷주머니에서 힐링팩을 꺼내 들어 단숨에 들이키고, 곡예를 펼치듯 몇 번 크게 몸을 돌아 물러났다. 태석 또한 일단 뒤로 발을 차서 물러났다. 태석과 골든링이 서로를 노려보고 있었다.
태석이 말했다.
“나는 너를 죽이기 싫어.”
“이 세상의 수많은 목숨을 앗아간 네놈 따위가 이 골든링을 죽이기 싫다고? 그건 무슨 위선이지?”
“오해야. 나는 그렇게 많은 인간들을 죽이지 않았어.”
“그러면 그 폭발은 뭐지?”
“그건 내가 한 게 아니야.”
“아니, 내가 봤어. 증거를, 세킨 시레나가 발견한 증거를.”
“그래도 내가 아니야. 그 증거는 거짓이야.”
“아니, 나는 만나본 적도 없는 너를 믿지 않아. 내가 어릴 때, 폭발에 휘말렸을 때 나를 구해주고 강한 헌터로 만들어준 세킨 시레나를 믿어. 너라면, 너 같은 놈을 믿겠냐? 멍청한 거 아니야~?”
키득거리며, 상처가 전부 회복되자 골든링이 서둘러 달려들었다. 태석이 이번에는 빠르게 몸을 회피했다.
[토르와의 동기화율을 극대화합니다.]
[순간 최대 동기화율 95.5%.]
[움직임에 특화하여 동기화합니다.]
뭐야, 왜 이렇게 빨라?
골든링이 당황했다. 자신이 회피할 때는 아주 느려서 쉽게 잡겠거니 했는데, 태석의 움직임이 지금 엄청나게 빠른 형태로 변질되었다. 마치 다른 존재가 된 것 같았다. 대체 무슨 일이지? 그때 세킨 시레나가 브리핑한 정보를 읽었다.
“이게 강신자구나! 좋아! 좋아! 아주 신나는걸? 더욱더 피해 봐! 더욱더! 내가 죽일 맛이 나게!”
골든링이 사납게 웃으며 미친 듯이 왼팔의 검날로 태석을 옥죄이듯 서서히 몰아넣었다.
태석이 유리해보이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실제는 달랐다.
‘동기화율을 유지하기 힘들어. 지금도 몸이 간헐적으로 느려지고 있어.’
태석이 이대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어딘가 도망쳐야 한다. 태석은 현재로서는 골든링을 가볍게 이길 것이라 보지 않았다. 네 명의 콜렉터가 있고, 그중 하나가 골든링이며, 네 명 모두 이길 수 없을 정도로 태석은 현재 몸 상태가 좋지 않다. 몸 상태가 최악이다. 아직도 세킨 시레나, 즉 유일신에게 당한 상처가 남아 있다. 겉은 회복된 것처럼 보이지만, 속, 그러니까 마력 같은 것들이 많이 상처가 난 상태이다. 회복되려면 아직 한참이나 남았다.
그러니 어떻게든 골든링으로부터 도주할 방법이 필요한데, 어떻게 하면 좋을까?
태석이 더욱더 집중했다. 골든링의 움직임을 미리 보고 피하며, 또 다른 일에 의식을 집중한 것이다.
[토르의 동기화율은 강제로 더욱더 증가시킵니다.]
[순간 동기화율 100%.]
파아아앙!
태석의 몸이 순간 사라지는 것처럼 보이고, 실제로 보이지 않는다. 골든링은 눈앞에서 사라진 태석을 찾기 위해 주변을 두리번거렸고, 생각대로 보이지 않자 괴성을 질렀다.
“태서어어어어억! 어서 모습을 드러내라! 치사하게 몸 숨기지 말라고, 거지 같은 부랑자 새끼야!”
한편, 태석은 건물 옥상 부근에서 숨을 돌리고 있었다. 골든링과의 거리는 그리 멀지 않다. 허리춤에 묶듯이 들고 있는 스카이를 집어 던졌다.
“아얏.”
스카이가 작은 고통 섞인 비명을 내뱉으며 허리를 잡았다.
“허리 나가겠네. 갑자기 그렇게 잡는 게 어딨어, 새끼야.”
“토르의 동기화율은 순간적으로 100%로 올려서 도주할 수 있었어. 고대의 인류라는 존재들은 정말 강하구나.”
“그래, 지금으로 따지면 신이라고 불리는 녀석들이니까.”
“으으으. 머리가 어질거리네.”
도주하기 위해 동기화율은 너무 극대화한 부작용이다. 태석은 지끈거리면서 소음을 들었다.
-헬라, 정말로 갈 거냐?
-죽음, 그게 내가 가야 할 길이야.
-어째서 그런 겁니까, 아버지.
-나는 라그나로크를 막기 위해 나 자신을 바친 거다.
-너 때문에 멀쩡한 산을 부수고 말았다. 이것의 책임을 어떻게 질 생각이지?
-토르, 나에게 또 속았구나.
“흐으으. 이상한 소리가 다 들리고 난리네.”
태석이 어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았다. 시간이 5분 정도 지나니 그나마 좀 나아졌다.
태석은 고개를 살짝 내밀어 옥상 쪽에서 지상에 있는 골든링을 보았다.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도망치는 소리가 들리고, 넘어지면서까지 어떻게든 골든링에게서 멀어지는 모습이 보였다. 태석이 머리가 아파 제대로 보지도 못하면서 중얼거렸다.
“골든링 때문에 동네가 다 시끄럽네.”
“뭐 어때. 이제 이 상태로 도망치면 되는 거겠지. 골든링과 싸워서 이긴다는 보장이 없으니까.”
“아니, 그렇지 않아.”
“뭐야, 도망 못 친다는 거냐?”
스카이의 물음에 태석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럼 뭔데?”
“간단해.”
“맨날 간단하다고 지랄은.”
“우리는 골든링과 싸워서 이길 거야. 그러니까 우리는 도망치지 않아?”
“뭐?”
스카이가 귀를 의심하는 표정이었다. 태석이 싱긋 웃으며 말했다.
“자존심이 상하거든. 저렇게 덤벼드니까 이기고 싶어졌어. 골든린과 싸워서 이기고 싶어.”
“…….”
스카이가 잠시 태석과 지상의 골든링 쪽을 번갈아 보다가 멍한 표정으로 말했다.
“네가 드디어 수많은 스트레스 끝에 정신이 돌아버렸구나. 나는 미친놈에게 내 노후를 맡기고 말았어.”
“사후 아닐까.”
“아무튼, 그게 그거야. 내가 말하고자 하는 건 네가 정신 이상자라는 소리야.”
“그럴지도 모르지.”
태석이 스카이가 여전히 들고 있는 뚜껑이 열려 있고 내용물이 반이 남은 콜라를 보면서 말했다.
“하지만 지는 것보다는 낫잖아? 어차피 도망친다 해도 또 쫓아올 것 같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