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 모든 신을 받다-93화 (93/102)

# 93

93. 아이의 순수함

태석과 스카이는 일단 밖으로 나왔다. 밖은 여전히 풍경이 살벌하다. 담뱃재 같은 탄 냄새가 허공을 맴돌고 있었다. 헌터가 아니었다면, 독성 물질에 의해 중독되었을지도 모른다고, 과장하여 생각이 날 정도였다.

태석이 기지개를 주욱 켰다. 스카이가 인상을 찌푸리며 물었다.

“왜 이렇게 평화로워 보여?”

“일단 도주는 성공했잖아?”

“앞으로가 문제지만.”

“그래, 잘 아네.”

태석의 말에 스카이가 살짝 답답하다는 목소리로 물었다.

“그걸 아는 녀석이 그렇게 느긋하게 하품이나 하는 게 괜찮은 거냐고. 그걸 묻고 싶은 거야.”

“아아, 그건가.”

태석이 미소를 지으며 스카이의 머리를 헝클었다.

“도망에도 강단이 필요한 거야.”

“그게 뭔데?”

“간단히 말하자면…….”

태석이 피식 웃었다.

“계속 자신을 쪼기만 하면 오히려 금방 지치거든. 쉴 때는 쉬어둬야지.”

“그런데 말이야.”

스카이가 고개를 돌려 어떤 쪽을 보았다. 남자 셋이 여자 하나를 붙잡고 있었다. 강간이나 변태 같은 짓을 하려는 것은…… 아니었다. 통조림 하나를 들고 여자와 실랑이를 벌이는 모양이다. 그러고 보니 6시간 정도 지난 상태에 먹을 게 거의 없는 상황이니, 통조림 하나라도 급하게 얻어먹으려는 모양이다.

남자들의 목소리와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내놔, 새끼야.”

“싫어요.”

“우리가 굶어 죽게 생겼다고. 앞으로 얼마나 먹을 게 남아 있을지 모르는데.”

“그래도 안 돼요. 저도 살아야 해요.”

“우리는 죽어야 하나?”

“그건 아니지만…… 그래, 나눠 먹는 건 어때요?”

“우리 쪽이 입이 더 많아. 그리고 우리가 더 강해.”

“치사…….”

“그래, 치사하지. 하지만 살아남으려면, 지금 같은 상황에서 살아남으려면 뭔 치사한 짓도 마다치 않겠어.”

태석이 그 상황을 보고 잠깐 상념에 빠졌다.

두 쪽 다 틀린 소리는 아니다. 어느 한쪽도 자신이 죽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 게다가 남에게 베풀 정도로 여유로운 상황은 아니다. 배도 고파서 여유로운 생각을 할 상황도 아니다. 결국 상황이 나쁜 것이다. 그들은 나쁘지 않았다.

태석이 잠시 쳐다보고 있는 것을 보고 스카이가 말했다.

“도와줄 거야?”

“어떻게?”

“그거야 태석이라면 알고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드는데.”

“나도 이런 상황에서는 어쩔 도리가 없어.”

“왜?”

“지금 내가 능력을 이용해 먹을 걸 만들었다고 치자. 토르는 농부들의 우상이나 다름없었으니까, 음식을 일시적으로 만들 수 있으니까 가능은 해.”

“그런데? 지금 주면 되는 거 아니야?”

“먹을 것은 지속적으로 필요한 거야. 한 번 먹는다고 일주일 내내 안 먹고 지낼 수는 없어. 지금은 인정하기 싫지만, 아포칼립스의 시대가 된 것이나 마찬가지. 그러니 더욱 먹을 것을 구하기는 힘들고, 배는 계속 주기적으로 고파 올 테지. 지금 당장 돕는다 해도 나중까지 도울 정도로 나는 여유로운 상황이 아니야.”

“그래서 돕지 않는다?”

“그래.”

“하지만.”

스카이가 입술을 살짝 깨물며 물었다.

“너의 사상과는 다른데.”

“사상이라……. 해피 엔딩 말인가?”

“그래, 모두가 행복해지는 것이 네가 중요하게 여기는 거잖아.”

“그렇지.”

“그런데도 돕지 않는 거야?”

“도울 방법이 없어. 그리고 나는 지금 유일신과 싸워야 하기에 바쁜 상황이야.”

“의외로 인간적이군.”

“그래. 변했지, 나도.”

“그 변화가 좋은 것일지 나쁜 것일지는 잘 모르겠다.”

“좋았으면 해.”

태석이 씁쓸하게 웃고는 고개를 돌려 남쪽으로 향했다.

“일단 들를 곳이 있어.”

“어디를 갈 건데?”

“태희를 만날 거야.”

엄태희, 태석의 동생이다. 태석으로서 태희의 상태가 걱정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리고 그녀를 찾기 위해 태석은 서울의 지하철 내부를 탐색할 예정이었다. 지하철이 이런 상황에서 대피소로 이용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지하철의 운행은 중단되었겠지만, 서울 곳곳의 역들을 걸어서 방문하면 언젠가 태희를 만날지도 모른다. 얼마나 걸릴지는 모르지만, 반드시 만나야 한다.

걱정되니까.

자신의 소중한 여동생이니까.

태석이 말했다.

“어서 가자.”

스카이가 고개를 돌려 남자와 여자 쪽이 실랑이를 벌이다가 결국 통조림을 다 같이 먹는 꼴을 보며 피식 웃었다.

“굳이 개입할 필요는 없었네.”

때로는 개입이 필요 없을 때도 있다.

오히려 방해만 되는 경우도 있는 것이다.

태석이 계속해서 걷다가 무너진 건물 쪽을 보았다.

스카이도 멈춰 섰다.

“뭐야? 왜 멈춰?”

“저기 봐봐.”

태석이 싱긋 웃으며 무너진 건물 내부에 하얀 원피스를 발견했다. 태석이 말했다.

“저거 입어 볼래?”

“유아용이잖아. 싫어.”

“넌 유아잖아?”

“…….”

뭐라 반박할 말이 없다.

태석이 미소를 지으며 은근슬쩍 말했다.

“어때, 유아의 귀여움을 만끽하는 것도 좋을 것 같은데.”

“그래. 뭐, 이 옷도 다 시꺼메졌으니까 새 옷을 입고 싶기는 해.”

“그러면 저거나 입어보라고. 대충 탈의실은 형태는 유지되어 있는 모양이니까.”

“너…….”

“왜?”

스카이가 자신의 몸을 가리며 물었다.

“소아성애자는 아니겠지?”

“무슨 소리야?”

태석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떤 의미로 말한 거야, 그거?”

전혀 모르는 눈치였다. 태석은 정말로 잘 몰랐다. 의도가 뭔지, 어떤 의미인지도 잘 모른다. 소아성애자라는 단어가 익숙지 않아서 일지도 모른다. 스카이가 한숨을 뱉었다.

“하긴, 너 같은 고자 새끼가 뭘 알겠어. 겁에 질린 내가 바보다.”

“어쨌든, 마음에 드는 걸로 어서 입어.”

“네, 네.”

스카이가 아장거리며 탈의실로 옷 몇 개를 들고 들어갔다. 태석이 잠시 기다렸다.

앞으로의 할 일을 생각했다.

태희를 만나고, 멀쩡한 도시 쪽에서 공중전화를 이용해 에덴을 호출하고, 지하 세계로 가는 방법을 묻고 에덴을 이용해 지하 세계에 입장한다. 그리고 거기서 미래가 적힌 책의 역사를 개변하여 유일신을 살해하고 세상의 평화를 이룬다.

아주 간단한 계획 같으면서도 힘든 계획이다.

왜냐면, 콜렉터나 여러 헌터들이 태석을 죽이고 돈을 받고자 하기 때문이다. 아직 방송으로 통보하지는 않았지만, 확실히 일어날 일이다. 스카이가 30분 뒤의 미래를 알았기 때문이다. 이미 우주적 수배령은 내려진 상태고, 아마 오늘이나 삼 일 이내로 대대적으로 방송을 할 것이다. 그때가 되면 유일신, 그러니까 세킨 시레나의 부하 헌터 뿐만 아니라, 모든 헌터들이 태석을 죽이고자 할 것이다.

골치 아프네, 이거.

태석이 머리를 긁적였다. 스카이가 탈의실 문을 열고 나왔다. 태석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귀엽네, 정말로. 칭찬이야.”

“기분 나쁜걸, 고자야.”

“아무튼…… 지하철로 가자. 태희를 만나야 해.”

“어디 있는 줄 알고.”

“아마 집 근처 지하철역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을 거야. 걱정될 테니까. 나도 여동생이 걱정되고.”

“그래서 알기 쉽도록 집 근처 지하철에 거주하고 있을 거라고? 너무 맘 편하게 생각하는걸.”

“뭐가? 그렇게 맘 편하게 생각하지는 않은 것 같은데.”

“그야…….”

스카이가 살짝 조심스러운 어조로 말했다.

“그렇게 일이 잘 풀리지는 않았을 거라고 생각해.”

“그렇게 생각하는구나. ……그보다 너무 친절해졌는데? 벌써 색욕이 사라진 거야.”

“그건 아니고. 나는 아직도 하고 싶다고.”

“……7살짜리 꼬맹이로 보이는 녀석한테 그런 이야기를 들으니 마음이 심란해지는데.”

“심란하라고 하는 말이야.”

스카이가 웃어 보였다.

“하지만 뭐, 태석 같은 녀석과 같은 핏줄이니, 태석 너처럼 생존에는 강할지도 몰라.”

“그래, 그렇다고 믿어. 실제로 어렸을 때도 그 녀석은 살아남는 것에는 강했으니까.”

태석이 지하철 내부로 들어왔다. 집 근처 역까지 걷기 위해 지하철 선로로 내려와 걸어갔다. 가는 길에 몇몇 사람들이 죽어가는 표정으로 멍하니 앉아 있는 것을 보았다. 식량을 제대로 챙겨는 먹는 건지 모르겠다. 걱정되지만 별수 없다.

스카이가 선로를 멍하니 보면서 걷다가 말했다.

“살아남는 것에 강했다니? 실종이라도 당한 적이 있는 거야?”

“어렸을 때, 사고를 또 당한 적이 있거든.”

“사고라. 어떤 사고?”

“간단한 사고인데, 수련회 때 버스가 전복되었던 적이 있거든. 여동생이 탄 버스가.”

“그거 심각한 일이었군.”

“그때 태희 녀석은 안전벨트를 하고 있었고, 버스가 전복되기 직전에 미리 예측하고 쿠션으로 몸을 보호했던 모양이야. 그래서 하나도 다치지 않고 살 수 있었지. 물론 죽은 사람은 없었지만, 많이들 다쳤거든.”

“너는 그때 뭐 하고 있었어?”

“학교에서 뛰쳐나와서 여동생이 있는 곳까지 택시를 타고 갔었지.”

“너도 참 대책이 없구나.”

“나도 그렇게 생각해.”

태석은 한숨을 뱉었다.

“그보다, 이제 도착했어.”

태석이 주변을 보았다. 당산역의 모습이 보였다. 집 근처에 있는 역이 당산역이었고, 태석의 예측대로라면 이곳에 태희가 있어야 한다. 태석은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아이들이 유독 많았다. 어른도 있었지만, 수가 적다. 당산에 이렇게 아이들이 많은 건가? 아니면 아이만 살아남은 건가? 순간 불길한 생각이 들었지만, 빵과 물을 들고 오는 여자를 보고 안심했다.

“태희야.”

그 여자는 태희였다. 태희가 고개를 돌려 태석 쪽을 보고 순간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누구…… 아, 오빠.”

태석이 쓴 미소를 지었다.

태희가 살짝 당황한 표정으로 말했다.

“순간 오빠가 아닌 줄 알았어. 인상이 너무 달라져서.”

“나도 지금 내 모습이 생소해.”

“변신한 건 아니지? 그보다 옆에 어린애는?”

“스카이.”

“설마 그 악마…….”

“맞아.”

“그런데 어째서 같이 있는 거야? 악마와 손을 잡고 나쁜 짓이라도 하려는 건 아닐 거고, 서로가 억지로나마 필요한 상황이구나?”

“역시 잘 아네.”

태석이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지금 서로가 필요한 상황이야. 그래서 말싸움하면서도 떨어질 수 없는 상황이고.”

“그렇…… 구나.”

“그보다 여기서 뭘 하고 있어?”

태석이 물었다. 태희가 주변을 슬쩍 보았다. 아이들의 모습이 보였다. 아이들이 유독 태희를 따르는 듯했다. 아이 한 명이 달려와 외쳤다.

“빵이다! 빵 가져오셨어요?”

태희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래, 빵이야. 아껴 먹어야 하니까 한 명당 반씩 잘라서 줄게.”

“배고픈데…….”

“하지만 음식이 부족한 상황이야. 조금이라도 아껴서 생존해야 하지 않겠니?”

“그렇…… 겠죠.”

아이가 살짝 실망한 표정이었지만, 태희가 무릎을 꿇어 눈높이를 맞춘 채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분명 이 지하철에서 벗어나 다시 도시를 뛰어다닐 수 있을 거야.”

“그랬으면 좋겠어요.”

“그래.”

아이가 미소를 지으며 태석과 스카이를 향해 고개를 꾸벅 숙이고는 다른 아이가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신나게 놀고 있는 모양이다. 아이들은 어떤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순수함을 잃지 않는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든 태석이었다.

“아이들을 보살피고 있구나.”

“아무래도 남 일 같지가 않아서.”

“그래, 나도 그런 느낌이야.”

태석과 태희는 어렸을 적 안 좋은 일을 당했다. 생활고로 자식을 죽이고 자신도 죽으려던 부모님이 괴수에게 살해당했다. 그런 아픔이 있으니 지금 이런 아포칼립스 상황에서의 아이들의 상황이 남 일 같지 않을 것이다.

태석이 잠깐 침묵하다가, 말했다.

“그래, 태희. 잠깐 의논할 게 있어.”

“무슨 의논을?”

“내가 하려는 일이 있는데, 스케일이 워낙 커서 너에게 의견을 묻고 싶어.”

“어서 말해봐.”

태석이 잠깐 입을 다물었다가, 고개를 끄덕이고 말하기 시작했다.

자신과 스카이가 세운 계획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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